"이런이런 세상에..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거 같은데.."

 "무슨 점괘인데요? 제 아들이 무슨 큰 일이라도 당하나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자그마한 점쟁이의 집 안에서 한 젊은 부인이 점쟁이 노파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재촉했다.


 "저.. 어떤 일이길래 그러시는거에요?"


 노파는 못들은 척 한참을 수정구와 카드를 다시 살펴보며 빈둥거렸다. 그러다 마음을 고쳤는지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아니 이놈의 점괘는 참.. 다시 봐도 이렇게 나온다니.. 운명이란 게 참 가혹해."

 "..."

 

 젊은 부인은 걱정스러워서 두 손을 모은 채 한 쪽 엄지손톱을 입으로 잘근잘근 씹었다.

마을 사람들이 가장 용하다고 말하기에 태어난 지 한달이 지난 아이의 운세를 알아보러 왔는데 점괘를 듣기 전부터 불안해져왔다.


 "하... 자네.. 꼭 들어야 하나?"

 "..."

 "난 안들었으면 하네. 너무 가혹하거든."

 "뭔데요?"

 "자네 아이.. 자네 손에 죽을거야."

 "헉.."


 일찍 병사할 것이다, 전쟁터에서 죽을거다, 여러 불길한 죽음들이 떠올랐었지만 상상도 못했던 얘기에 부인은 눈에 눈물이 맺혔다.

차라리 노파의 말대로 안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녀는 몸에 힘이 풀려 고개를 책상에 내리박았다. 노파가 얼른 와인을 가져와서는 따라주었다.


 "내 점괘가 틀리길 나도 바라네. 자네 같은 여려보이는 사람이 그런 잔혹한 짓을 하리라고 믿고싶지 않아. 부디 기운내게."

 "..."


 부인은 아무 말 없이 잔을 받아들고 한 모금 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집을 봐주기로 했던 그녀의 소꿉친구 아이린이 아기를 재우고 있었다.


 "엇? 왔구나? 왜그리 안색이 안좋아? 점괘가 별로 안좋았어?"

 "응? 아.. 아냐. 그냥 좀 몸이 안좋은가봐.."

 "저런.. 겨울이 와서 그럴 거야. 스카디는 매서운 여인이니까. 옷 단단히 입고 가지."

 "그러게. 헤헤. 고마워 아이린. 이젠 내가 돌볼 수 있어."

 "그래. 몸 조심하고. 남편도 곧 돌아온다메? 밝은 얼굴로 맞아줘야지."

 "응. 고마워."


 아이린은 해맑은 얼굴로 손인사를 하고는 외투를 껴입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에게 점괘 얘기를 해주고 싶진 않았다. 괜히 걱정만 끼칠 듯 싶었기 때문일까.

오늘따라 남편인 한스가 더욱 보고 싶었다. 한스는 이번 약탈대의 일원으로 뽑혀서 나갔다. 묵직한 도끼를 아무렇지 않게 휘두르는 남편은 부족에서도 촉망받는 전사였고 본인 스스로도 긍지가 높았다.

분명 이번에도 많은 약탈품과 함께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저 문을 열고 자신에게로 돌아와줄거라고 그렇게 에마는 믿었다. 처음 자신에게 고백하던 그 날처럼.




 쿵쿵쿵


 며칠 뒤 여느날처럼 남편을 기다리던 에마는 집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문을 열어보았다.

 "아이린? 족장님?"

 아이린과 이번 약탈에 자신의 아들을 보냈던 족장이 밖에 서있었다. 아이린은 어디서 울고 왔는지 눈이 벌갰다. 에마는 족장의 굳은 얼굴을 보고는 무너져내렸다.

 "미안하구나 에마.. 한스가 용감하게 싸운 덕에 부족은 승리를 거뒀단다. 하지만.. 네르비 놈들한테 그만 니 남편은 당했다는구나."

 "..."

 에마의 눈에선 눈물만 흘러내렸다. 악운이 겹치는 걸까? 아들 막스에 대한 불길한 점괘를 받아온 뒤로 남편인 한스가 먼저 떠났다. 정말로 그 점괘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두려워 에마는 아무말도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네 남편의 명예는 네 아들에게도 전해질게다 에마.. 막스 또한 훌륭한 전사가 될 게야. 지금은 슬프겠지만.. 기운 내거라."

 족장은 말을 마치고는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면서 아이린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곤 떠났다. 아이린은 족장이 몇 걸음 걸어가는 걸 지켜보다가 이내 에마에게 다가와 그녀를 안아주었다.

 "세상에 에마.. 어쩌다 너한테 이런 일이.. 세상에 그 강하던 한스가 이리 될 줄이야."

 "..."

 에마는 울기만 했다. 그 날 아이린은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막스가 엄마의 품을 찾으며 칭얼거렸지만 두 여인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그저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세월은 덧없이 흘렀다. 막스는 이제 6살이 되었다. 한창 장난꾸러기인 나이에 막스는 이미 에마의 속을 많이도 썩였지만 그래도 먼저 간 한스의 어릴 적을 빼닮은 막스의 어리광에 에마는 웃을 때가 많았다.

최근에 부족에도 변화가 생겼다. 자주 수에비 인들이 방문해서는 족장과 얘기하고 돌아가곤 했다. 족장과 대전사들의 얼굴은 그때마다 항상 굳어있었다. 그리고 그게 무슨 이유였는지는 금세 알 수 있었다.

과거 어릴 적 할아버지가 자신과 먼저 죽은 남동생들에게 해주시던 로마에 대한 얘기를 에마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킴브리 족이 그들의 도시를 약탈하고 불태우려고 위대한 원정을 떠났지만 끝내 그 작은 난쟁이들에게 격퇴당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그 얘기를 할 때마다 킬킬 웃으며 '내가 거기 있었다면 그 난쟁이 놈들은 당장 내 방패에 얻어맞아 도나우까지 나가 떨어졌을텐데 말이야.'라고 말하곤 했다. 그 난쟁이들이 지금 라인강까지 와있다는 얘기가 부족민들 사이에서 돌았다.

그리고 그 난쟁이들은 더 이상 약해빠진 난쟁이들이 아니라고 했다.

 우비 족이 그들과 협상을 맺었다고 했다. 그 얘기를 할 때마다 '빌어먹을 겁쟁이들'이라며 남자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땅에 침을 뱉곤 했다. 게르만에게 싸우지 않고 무기를 내려놓는 일 따윈 없었다. 적어도 게르만이라면 싸워서 지던가 이겨야 했다.

대화로 일을 해결한다니, 말도 안되는 얘기였다. 우비 족이 협상을 맺자 그 난쟁이들의 타겟은 바로 우비 족과 가장 격하게 치고받던 수에비 인들에게로 향했다.

수에비 인들이 자주 찾아왔던 건 아마도 함께 싸우자는 얘기였던 것 같았다.

전사들은 피가 끓어오르는 지 하루에도 몇번씩 서로 힘을 겨루며 당장 전투에 나갈 준비를 했고, 족장도 결심했는지 가축들을 모두 끌고 이동할 준비를 해두라고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아 얘기하였다.

에마와 어린 막스 그리고 다른 부녀자들은 더 이상 싸움에 못나갈 노인들과 함께 늪지대로 피난에 나섰다. 그러나 다들 피난간다기보단 잠시 다른 곳에 지내다 올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전사들이 그 난쟁이들을 마주치는 순간 모조리 붙잡아 헬에게로 보내버릴거야. 그리고 우린 그 난쟁이들의 재물로 잔치를 벌이겠지!"

 "오딘께서 우리 남편을 너무 눈여겨보시면 안될텐데 말이야 호호. 발키리들이 아직 데려가진 않았으면 좋겠어."

 다들 이미 전쟁이 끝난 듯이 외쳤다. 에마도 별 생각 없이 집을 나섰다. 그녀가 기르던 막스에게 줄 자그마한 말에 한달치 정도 식량으로 삼을 치즈와 훈제 고기들이 실려 있었다. 막스는 숲에 간다는 말에 신나서 방방 뛰었다.

그 누구도 그 난쟁이들 따위에게 우리의 강한 전사들이 패배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결과는 참혹했다. 전사들은 대부분 라인강을 건너가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그 약하다던 난쟁이들은 라인강에 다리를 놓고는 건너와 그들의 숲을 맹렬히 베어넘기며 다가오고 있었다.

이미 부족은 계속해서 수에비 인들의 영토를 향해 도망친지 이주일 째였다. 몸이 약한 노인들과 부녀자들이 대부분인지라 숲 속을 걷는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오랜 행군에 지친 사람들은 점차 주저앉거나 뒤쳐졌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식량도 피난처를 떠나면서 못가져가는 것은 버리고 남은 것들을 아껴먹었지만 점차 비어갔다. 처음엔 서로 도우려던 부족민들도 이내 서로 자기 식량을 아끼며 나누려하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 말들은 이미 오랫동안 초원에서 제대로 풀을 뜯지 못해 비루해져 있었다. 

 


 20일째, 부족민들은 대부분 흩어졌다. 소꿉친구였던 아이린도 어느날 잠에서 깨어보니 말 없이 떠나가 있었다. 에마에겐 어린 아들 막스와 과연 일주일이나 먹을까 싶은 식량, 그리고 지쳐죽은 그녀의 말만이 남았다.

에마는 막스의 손을 끌고 죽은 말의 시체를 지나 수에비 인들의 영토를 향해 계속 걸었다. 이제 이 숲만 지나면 불모지가 나올 것이고 거기서 일주일만 더 가면 수에비인들의 영토라고 알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참으면 다시 일상이 돌아올거야.'

에마는 막연히 바랐다. 그리고 이번만은 프리그가 그녀를 따뜻이 돌봐주기를 기도하였다.


 30일째, 마지막 식량이 끝났다. 숲은 아직도 어두웠다. 얼마 안남은 무리 중 몇 명은 밤에 따로 떨어졌다가 늑대무리에게 당해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되곤 했다. 에마는 막스를 안은 채 하염없이 앞으로만 걸었다. 뒤에서 몇 안남은 부족민들 중 누군가가 그녀를 힘없는 목소리로 부르는듯 했지만 무시했다.

'난 살아야 해. 살고 싶어.'

그녀는 속으로 끝없이 되뇌었다. 그렇게 그녀는 아들 막스만을 안고 숲속을 걸어갔다.




 그로부터 이주일 뒤, 로마군 숙영지에 정찰대가 기괴한 여인 포로를 끌고 도착했다. 처음엔 오랜만에 여자라고 관심을 보이던 병사들이 그녀의 기괴한 몰골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뭘 쳐먹었길래 입이 저리 피투성이야?"

 어떤 병사가 투덜거렸다.

 "하여간에 바르바로이들이란 쯧."

 어떤 병사는 '그년 참 몰골이 재수없다.'면서 땅에 침을 뱉었다.

 군단장 크라수스는 숙영지 내 순찰 도중 정찰대가 오는 것을 보고 마중하러 나갔다가 병사들 손에 붙들린 여인의 몰골을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도망친 시감브리 족놈들 중 하나인 모양입니다. 숲속을 정찰 도중에 잡았습니다."

 "그래? 심문하기엔 정신이 나간 모양인데."

 "예 군단장님. 게다가 뭔가 끔찍한 일을 벌였는지 처음에 봤을 땐 온 얼굴이 피투성이였습니다. 그나마 오면서 물을 뿌려 좀 씻어낸 게 이 모양입니다만."

 "흠.. 이봐 여인. 수에비 놈들은 어디에 있나? 다른 네 부족민들은 어딨지?"

 "히히.. 히히힣.. 내 아들은 어디에도 안가... 내 아들은... 나와 함께 있어.."

 정신 나간 듯한 여인의 말에 다들 섬뜩함마저 느꼈다.

 "이게 무슨..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여인. 다른 이들은 어딨나?"

 여인이 순간적으로 크라수스의 얼굴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비쩍마른 에마는 지금껏 살면서 보여준 적이 단 한번도 없던 무시무시한 얼굴로 저주를 뱉으며 말했다.

 "헬에게나 가버려라 미친 난쟁아. 네놈들에게 내 아들을 넘겨줄 순 없었다. 그래서 히히.. 그래서 내 안에 집어넣었지. 키키키킥."

 광소를 터뜨리는 에마의 말을 이해한 병사들은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크라수스의 신호에 옆에 대기하던 수석 백인대장은 그대로 글라디우스를 뽑아 에마의 목을 찔렀다.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에마를 향해 처형을 집행한 백인대장은 나지막히 말했다.

 "너야말로 하데스에게 꺼져라 더러운 년. 아무리 그래도 제 아이를 잡아먹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