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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내일 궁전에 갈 것이라고 확인했다. 이데인은 하녀와 하인을 뒤에 두고 소피아를 힐끗 보았다. 소피아는 여전히 내일 있을 대청소를 말했고 사용인들은 내일 있을 대청소에 한숨을 쉬는 것이 보였다.

 밤하늘은 조금 따스해진 것 같았고, 별이 펼쳐진 하늘이었다.

이데인은 이 하늘에 가득 얽혀있는 나뭇가지 위를 나는 하얀 매를 보았다. 여전히 날개를 뻗고 날고 있었다. 고개를 내려 이제 집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네, 먼저 들어가세요.”

 이데인은 멍하니 소피아를 보다가 웃어주며 곧바로 사용인들과 함께 ‘찬란한 나무’의 집으로 향했다.

‘찬란한 나무’가 있는 중앙에 오지 않았던 사용인들은 시간을 계산하여 물을 받아놓았고 이데인은곧바로 들어가서 목욕을 마치고 스스로 옷을 입고 나왔다. 사용인 두 명이 호롱불을 들고 서서 아가씨를 바라보았고, 이데인은 그 뒤를 바라보았다.

한없이 넓고 아무도 없는, 화려하며, 자신만을 위한 공간이 공허하게 있었다.

방까지 가서 이불을 덮고 호롱불이 멀어지는 걸 기다렸다. 천천히 이불을 걷고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하늘을 뒤덮은 나무와, 일렁이는 바람 그리고 많은 사람이 지키고 서 있는 ‘찬란한 나무’ 앞 그림자를 계속 바라보았다.

 창틀에 앉았다.

 바닥은 여전히 시렸다.

조용히 속삭이는 듯한, 아무도 듣지 못할 노래를 불러 한참 고요 속에서 잠을 달랬다.



아침이 밝았다. 잔디에서 일어났다. 어제 분명 깨끗이 씻었는데 또 이러면 어떡하냐고 주변에서 안달복달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데인은 슬슬 일어나 기지개를 켜다가 귀를 후볐다. 주변이 시끄러운 가운데 소피아가 없는지 슬쩍 확인해보았다. 소피아는 조금 있다 나타났다.

 아가씨는 맑게 웃었다.

 “소피아, 잘 잤어?”

 “네.”

이데인은 눈꼬리를 휘며 웃다가

“몸 상하면 저희가 고생이니 몸은 챙기세요.”

“으응, 잔소리.”

 이어 들리는 소리에 귀를 막는 시늉을 하였다.

 옆에서는 웬일로 더 잔소리를 하려는 것 같지 않아서 이데인은 소피아를 향해 어깨동무하며 시끌벅적하게 말을 걸었다. 소피아는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주위의 사용인들에게 따라오라고 지시하며 ‘찬란한 나무’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궁전’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하녀장은 그동안 세웠던 계획을 바로 아래 위치에 있는 아디나에게 모조리 확인하였다. 하지만 아디나는 사용인들과 함께 어느 정도 같이 정하였어도 세세한 부분까지 다 기억하지는 못했고 그 덕분에 쓴소리가 오갔다. 사용인들은 아디나가 탈탈 털리는 모습을 보며 바들바들 떨었고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중얼중얼 되짚으며 기다렸다.

그 사이 아가씨는 궁전에 갈 때 입을 옷을 둘러보러 사용인들을 제치고 혼자 수많은 옷이 있는 옷방에 들어갔다. 보통 이데인은 늘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이곳은 본인에게 더우니 속옷을 본인 특유의 옷으로 주문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위와 아래가 속옷의 형태인 옷이 많다는 뜻이었다. 밖에서는 본인들이 입히고 싶은 것 같았지만, 그걸 허락할 이데인이 아니었다.

 ‘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거야.’

 이데인은 옷을 고르며 잠시 생각했다.

처음에는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고 사용인들 대부분과 소피아, ‘궁전’에 드나드는 ‘푸른 나무의 땅’ 사람들까지 모두가 이상하다는 눈으로 보았다. 사용인들은 가끔 수근거리는 게 보였고, 소피아는 직접 대고 이건 아니지 않느냐며 뭐라 했으며, ‘푸른 나무의 땅’ 사람들은 앞에서 대놓고 면박을 주었다. 그러나 이데인은 끝까지 말을 듣지 않았다. ‘궁전’에서도 소란도 많고 그랬으나 어느 날을 기점으로 잠잠해졌고 그 후로는 뜻밖에도 욕하던 ‘푸른 나무의 땅’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따뜻한 곳에 살고, 본래부터 과시하며 본인의 부를 나타냈기 때문에 ‘푸른 나무의 땅’ 사람들은 저것이 아가씨가 더 따뜻한 곳에 살아서 입을 수 있는 특혜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유행시키기에 이르렀다. 그건 더 과감하고 더 시원한 옷차림이 되었고 어느 면에서는 예전보다 편한 옷차림으로 바뀌고 있음을 의미했다..

 물론 이데인이 그곳에서 옷차림은 아직도 독보적이긴 했지만.

 그런 뒷배경이 있었기에 사람들도 아가씨의 허락 여부에 따라 해 주는 것을 달리했다. 그리고 이는 화장도, 액세서리도 모든 게 이데인의 입맛대로 하기 전까지 난리 칠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아가씨는 화장도 귀찮다, 너희들이 하는 건 다 마음에 안 든다, 뒤집어엎고 난리 친 전적이 수두룩했다. 그러나 그걸 그나마 감당할 사람은 한 명 정도였고 그것마저도 난리 치는 걸 겨우 뜯어말릴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감당할 수 있는 사람도, 정도도 많이 부족했기에 늘 이 시간만 되면 담당 사용인들은 긴장한 채로 아가씨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가씨는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더니 말하였다.

 “오늘은 해도 돼. 다만 입가에 늘 미소가 있는 것처럼 해줘.”

이데인은 본인이 직접 벽장 가득 화장품과 갖가지 가루 냄새를 들이마셨다. 분 냄새와 향수 냄새가 얽혀 머리가 좀 아팠지만, 오늘만큼은 진하게 해도 상관없었다. 그 부탁은 담당 사용인들이 오랜만에 화장할 수 있다는 것을 뜻했고 늘 해 보내야 한다는 중압감이 있던 사용인에게는 오히려 좋은 소식이었다.

이데인은 거울을 통해 연분홍 색과 금의 조화로 화려한 화장대에 도구, 붓 등이 올라가 있는 것을 보았다. 사용인들은 갈색 얼굴에 화장대에 올라가 있던 상상도 못 할 가격의 도구로 본인의 얼굴을 세심히 들여다보며 어울리는 색을 조합하고 음영을 넣어 조각하듯 화장했다.

그 결과 이데인의 얼굴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화려하고 날카로운 얼굴이 되었으며 사람들도 만족한 얼굴이었다.

 분냄새가 진했다.

 게다가 평소에는 치렁치렁 늘어뜨리기만 하던 한 번도 자르지 않은 아주 긴 머리도 하녀들이 달라붙어 금실과 같이 땋아서 움직이지 못한 목이 뻐근했다.

 ‘역시 다 하면 엄청 오래 걸려.’

 다소 귀찮고 피곤한 얼굴이었고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아가씨, 왕관까지 쓰셔야 합니다.”

 사용인을 다 꼼꼼히 확인했는지 소피아가 왕관을 직접 전해주러 왔다. 내내 앉아서 한 곳만 노려보는 것도 지치는지 심드렁하게 소피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흐응, 이 왕관, 여전히 별로라고.”

 거울에 비추는 화려한 왕관.

 오늘은 그 왕관이 이데인의 땋은 머리와 같이 놓였던 금실과 어우러져 위엄까지도 느껴졌지만, 머리에 쓰고 다니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하셔야 해요. 아가씨는 이곳의 기적이니까 올릴 자격이 충분해요.”

이데인은 묘한 얼굴로 소피아를 바라보았지만, 소피아는 요즘에 그랬던 것처럼 눈을 깔고 있었다.

 “그걸 올릴 자격이라……, 소피아가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볼게.”

드디어 이데인이 기나긴 화장과 아주 최소한의 복장을 골라 입은 채로 일어섰다. 다른 여인들이 입는 드레스뿐만 아니라 상의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분명 속옷만 입었다고 할 복장이었지만, 모두 그 정도면 할 일을 했다며 안도했다.

 “가자.”

그 한 마디로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며 이데인의 뒤를 따랐다.

 소피아는 측면에 섰기 때문에 힐끔 보았다. 하지만 소피아는 그다지 말이 없었고, 이데인은 애써 본인이 이쁘냐며 말을 걸었지만, 냉철한 대답에 턱턱 막히고 말았다. 그리고 말하면서 걷는 사이 집 문이 활짝 열렸다. ‘찬란한 나무’가 바로 보이는 땅답게 상쾌한 바람이 불었다. 나뭇잎이 바람을 타고 날고, 초록색 잎들이 햇빛에 싱그러이 빛났다. 저 멀리 ‘아버지’와 에드가가 서 있는 모습을 보자 이데인은 아무렇지 않은 척 걸어갔다.

 딸랑ㅡ.

 바람이 녹색의 기운을 한껏 머금은 이 지역을 간질이고, 가운데 아가씨의 화려한 보석들이 반짝였다. 가장 큰 나무가 흔들리고 저 멀리 아가씨가 사는 곳 전반을 둘러싼 높은 검은색 철창이 보였다.

그 앞에 선 ‘아버지’까지. 이 ‘찬란한 나무’와 숲을 둘러싼 새까만 철창은 뾰족하게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이데인이 ‘아버지’의 옆에 서자 병사가 검은 철창이 하늘을 찌를 듯한 문을 열었다. 오늘 온다던에드가는 옆에 서서 굳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에는 한 번도 못 본 어린아이가 있었다. 에드가의 손도 같이 잡고 있어서 이데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아이의 앞으로 가서 말했다.

 “어머ㅡ, 에드가 동생이야?”

 에드가는 딱히 말한 적도 없는 동생을 곧바로 알아보자 흠칫하며 말했다.

 “어, 응.”

 “안녕하세요.”

 에드가 동생은 예의 바르게 인사했지만, 양쪽에 손이 잡혀 있어 꽤 어정쩡한 모양새였다. 이데인은 그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다는 듯 뒤돌아 걸었다. ‘아버지’의 손에 잡혀 있는 것을 보았고, 물었다.

 “높아서 안 불편해?”

 아이는 잠시 생각하는 듯 위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앞만 보고 있었고 동생이 말하였다.

 “그냥 그래요.”

 이데인은 그 말에 “흐응.”하며 콧소리를 내었지만, 그저 앞서서 걸으며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너 이름은 뭐야?”

 “에디스요.”

 이데인은 에드가, 에디스 번갈아 가며 말하더니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한참을 웃다가 과장되게 눈가를 쓱 닦으며 말했다.

 “우리에드가는 다정한 녀석이었구나?”

 에드가는 에드가는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고 그게 퍽 재미있는지 이데인은 동생과 눈을 맞춰 고개를숙이며에드가를 놀려댔다. 한참 놀리는 것을 보던 동생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오빠를 바라보고 있었고에드가는 어쩔 줄 몰라 할 때.

 “아가씨, 앞을 똑바로 보시지요.”

 딸랑ㅡ.

 이데인은 에디스와 눈 마주치던 그 표정 그대로 굳었다. 하지만 에디스가 의아하기도 전에 이데인은 허리를 펴서 ‘아버지’를 올려다보았고 표정은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래, ‘아버지’가 그리하라면 해야지 뭐.”

 거기다 미소까지 곁들여 웃으면서 빙글 돌아 앞을 보았다. 성큼성큼 앞서 걸으며 소피아를 불러 일방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곧이어 넓은 성채를 지나 ‘궁전’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다 커서와도 넓다니까?”

병사들이 안전을 위해 서 있고, 낮은 성벽을 지났다. 사시사철 얼지 않는 분수를 지나 가지런히 길을 만들어놓은 흰색 돌, 계단을 올라 예술인의 혼을 불어넣은 복도 곳곳의 벽화, 조각상. 웅장한 문을 열자 그 커다란 홀에는 그 콧대 높은 고귀한 분들이 벌써 뒷구멍으로 온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오늘 할 일이 있다며에드가와 에디스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 버렸고, 소피 그리고 그들을 향해 품위를 유지하는 척 느긋하게 접근하는 ‘푸른 나무의 땅’ 사람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말하였다.

“아름다우십니다.”

 ‘이 왕관이 아름다운 거겠지.’

 이곳의 햇살은 늘 적당히 따사로웠다.

 이데인은 성큼성큼 걸어가 중앙에 자리 잡았다. 주위에는 점점 많은 사람들이 와서 이 세상에서 구하기 힘든 물건이라며 이것저것 주려고 했다. 이데인은 여유롭게 웨이터가 지나갈 때 와인 한 잔을 들며 그들을 쭉 훑어보았다. ‘푸른 나무의 땅’ 사람들이 무엇을 어디에 가지고 있고 그들이 내미는 것이 무엇인지 속으로 계산해보았다. 수많은 선물이 쌓이는 것을 훑었다. 그리고 우아하게 와인을 들이켜며 연주를 듣고 있을 때.

“어차피 목줄 차고 있는 건 맞잖아.”

 실수인지 멍청한 건지 모를 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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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조절 실패...ㅜ어정쩡한 곳에서 짤려버렸군요. 조금 더 써서 나머지 분량을 올릴까 고민중인데 잘될지 모르겠어요. 무엇보다 1달에 한 번 연재는 너무 긴 것 같기도 하고, 욕심이 있어서 더 쓰고 싶은데 쓰는 시간보다 퇴고하는 시간이 더 긴 것 같으니...ㅜㅜ 노력해보겠습니다. 오늘 앞부분은 조금 지루할지도 모르겠군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https://arca.live/b/wners/989377

(앞부분 요약본. 자세히 보고 싶으신 분들은 창작소설 채널에서 나무 그늘 아래 를 치면 나옵니다! 시간 되는대로 이전 화를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