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그득한 새벽, 피 비린내가 진동을 한다. 한 걸음씩 나아갈수록, 발에 질척한 액체가 밟힌다. 오늘도 한바탕 했네. 속으로 그 말을 삼키며 앉아있는 짙은 초록 머리의 뒤통수를 바라본다. 그… ‘트럼프의 살인귀’인 척하면 될 거라더니, 가면도 떨어뜨린 꼴을 보아하니 본말이 전도되었다. 그 초록 머리의 뒤통수에 붉은색이 감돈다. 피의 냄새가 점점 더 짙어진다. 녀석이 앉아있는 곳에서부터 피가 튀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설마 저 녀석…
“야 데모니아! 너 설마…”
오… 젠장, 못 볼 것을 보고야 말았다. 피가 아직도 흘러내리고 사지가 갈기갈기 찢어진 시체, 그 앞에서 얼굴이 피투성이에 무언가를 우물거리고 있는 여린 사내. 혐오스러운 디바우러들이나 할 행위를 하고 있다. 난 머리를 짚으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거, 리란… 아니지 블러드리퍼가 처리할 수 있으려나? 나보고 관리 못 했다고 화내는 거 아닐까 몰라. 내가 리더라지만, 블러드리퍼나 이 녀석, 데모니아는 상당히 꺼림직하다.
다른 녀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 미친 녀석들은 감당이 안 됐다. 한 놈은 실험체를 제공하라고 난리를 치지 않나, 한 놈은… 보고 있는 대로이다. 이 녀석들은 내 혈압을 올리는 것에 정말로, 정~말 선수이다. 동지라지만 이 짓거리를 하다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나는 다음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며 슬슬 가자며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크르아아아아!!”
오, 젠장. 별생각 없이 손을 댄 내 실수다. ‘알터’ 쪽인 걸 눈으로 확인해놓고 이런 실수를 하다니! 나는 다급히 내 능력, 『레이란스』와 『블랙게일』로 날개를 만들어 그의 공격을 막았다. 녀석의 손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급하게 꺼낸 날개였기에 그것이 화상인지, 동상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었다. 알터 상태라면 죽도록 패서 ‘금강’으로 되돌리는 수밖에 없다. 나는 레이란스로 창을, 블랙게일로 방패를 만들어 녀석에게 돌진했다. 조금 위험할지라도 어차피 크게 다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나는 전력으로 녀석을 찔렀다. 아니 정확히는 찔렀다고 생각했다.
“그만둬라. 후… 심심할 틈이 안 생기는군. 안 그런가 스말라그?”
검은 뿔을 가진 사내가 후드를 쓴 채로 나타났다. 녀석은 오른손의 레이피어로 데모니아의 공격을 막고, 내 공격은 비껴냈다. 그의 손은 화상을 입었지만, 그것을 확인하기도 전에 데모니아가 달려들었다. 이런 젠장! 내가 그를 뿌리치며 달려드려 하자 데모니아의 전신에서 수많은 가시가 돋아났다. 그것이 누구의 능력인지는 잠시간 고민되는 상황이었으나, 이내 데모니아는 쓰러졌기에 어느 쪽의 능력이든 상관없어졌다.
“이거, 도와줘서 고맙다 해야 하나?”
내가 데모니아를 일으키며 도와준 사내에게 감사를 표하자 그는 고개를 돌린 채 내 말을 무시했다. 싸가지 없지만 그래도 녀석은 블러드리퍼와 데모니아보단 낫다. 최소한 일을 만들지는 않으니까. 나는 능력을 해제하여 날개를 없애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잘 해도 이걸 ‘트럼프의 살인귀’와 연계시키기는 어려워 보였다. 최소한 그는 능력에 대한 힌트도, 똑같은 방법으로 여럿을 살해하지도 않았으니. 심지어 제일 중요한 것은…
“트럼프의 살인귀는 식인종이 아닌데.”
정답. 내 뒤를 따라오는 그가 매우, 지극히 정상적인 정답을 내놓았다. 누군가가 데모니아 녀석을 우리의 일원으로 받아준 것을 후회하냐 묻는다면… 나는 아마 그렇다고 대답할 정도로 이것은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나와 블러드리퍼의 존재는 이미 밝혀졌겠지만, 다른 녀석들은 아직 그렇게 되면 곤란하니. 좀 더 ‘동지’를 모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거… 어떻게 한담?”
“그냥 평범하게 수습할 수밖에 없겠군. 흔적을 지우고, 시신은… 블러드리퍼에게 실험체로라도 던져줘라. 최소한 디바우러의 먹이 정도는 되겠지.”
녀석이 시신을 실험체로 사용하는 것은 보지 못했지만, 다른 것보다 어떻게 운반할지도 문제였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아니다. 이 방법은 상당히 좋지 못한 판단이다. 아무리 흔적을 없애야 한다지만 이 건물 채로 폭발시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존재를 광고하는 꼴이 될 테니. 그렇다면…
“그냥 치울 수밖에 없나… 이거 내일까지는 치우겠지?”
“오늘 끝내지는 못 할거다. 피가 천장에도 튀었어. 아마 새벽까지 여기에 있어야 하겠지. 그동안에 이 녀석이 날뛰진 않을지 걱정이군.”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 경계해서 나쁠 건 없겠지.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시신 수습에 나섰다. 젠장, 참 많이도 처먹었네. 대체 어떻게 사지를 이렇게 깔끔하게 절단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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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엔과 류가 ‘트럼프의 살인귀’… 유다를 잡아 온 지 이틀이 지났다. 그는 왼쪽 눈에 큰 고통을 호소했으나, 증거도 확실했었기에 녀석은 황제에게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에게 얼마나 시간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공개처형을 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오가 엄청나게 화났었다는 사실이다.
다름 아닌 다른 일행을 두고 나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것을 눈치채고도 말하지 않은 아우루엔은 본인이 그것을 밝혔다는 것에서 면죄부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나는 그냥 아오와 수다나 떨고서 잤으니. 알 턱이 있는가. 그러나 중죄인이 된 휴엔과 류는 오늘 아침에도 온 얼굴이 멍들어 있었다.
“네가 정말 이래저래 고생이 많구나, 아오.”
“그러게… 저 나이 먹고 저러는 휴엔이나~ 류나~ 휴…”
아오의 한숨으로 땅이 꺼질 것만 같았다. 그 두 멍청이들은 각자 사정이 있다며 여관을 탈출했다. 나와 아오, 그리고 아우루엔 이 셋만이 여관에 남아있었다. 아우루엔은 물을 마시듯 술을 들이켰지만, 안색의 변화는 없었다. 케라르씨에게 술에 대해 물어볼 수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미 놀라운데 괜히 더 놀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놀란 표정을 한 것은 내가 아닌 아우루엔이었다. 그는 탄식하듯 아, 하며 말을 이어갔다.
“잊고 있었군. 의뢰금은 어떻게 되었지? 거금이라 기다릴 필요가 있나?”
“그러고 보니… 수배액만 8만 3천 아크였던가??”
엄청나게 비싸네. 대체 사람을 얼마나 죽인 거지? 엄청나게 죽이고 다니지 않고서는 걸릴 수가 없는 금액일 것 같은데… 나는 주스를 원샷하고는 아오를 바라보았다. 아오라면 무언가 알고 있을 것 같았기에. 그러나 그녀 또한 나와 똑같이 고민하는 얼굴이었기에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긴, 의뢰주가 연락이 안 되는데 어떻게 알겠는가?
“돈이 급하시기라도 합니까? 답지 않게 성급하시네요.”
“케라르 씨? 무슨 일이세요?”
케라르가 아오에게 다가왔다. 그는 가볍게 아우루엔의 컵에 물을 채워주며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그것을 술로 바꾸었다. 아우루엔은 좋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리며 그것을 마시기 시작했다. 하여튼… 안 그래 보여도 의외로 단순하네. 케라르는 나의 옆에 앉으며 자신이 시작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마침 원하시던 서드 씨에게서의 연락입니다. 당장은 바빠서 못 오시는가 보더군요.”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우리에게 편지 봉투를 건넸다. 아오는 그것을 보더니 편지를 꺼낸 뒤 봉투를 태워버렸다. 그리고는 소리내어 그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사람이 많았더라면 부끄러울 상황이지만, 오늘은 술을 마시고 있는 헌터가 없었기에 크게 부끄럽지는 않았다.
“음… ‘휴엔 씨께, 이번 의뢰를 성공적으로 마쳐주셔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몇 주, 몇 달이 걸릴 것이라 생각한 의뢰를 얼마 지나지 않아 완료해 주신 것에 상당히 놀랐습니다. 모방범이 나타나는 등 수많은 방해물이 있었지만, 당신의 일행들이기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그리고 이제 전에 말씀드렸던 마지막 의뢰를 요청하고 싶습니다…”
오… 순서상으로 보았을 때 유다보다 더 흉악한 범죄자인가? 아니면 반대로 조금 더 쉬울 수도 있을까? 어떤 의뢰든 간에 그것에 대한 흥미가 가득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흥미는 이야기를 들을수록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이번 의뢰의 목표는 전 광기의 기사단 제 2석, 로지칸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잘 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름 아닌 현재 최고액의 수배범이니까요. 극비사항입니다만, 현재 그가 칼테크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를 막기 위해 기사단을 투입하게 되면, 그가 다가온다는 정보는 샐 것이고 결국 도시는 대혼란에 빠지겠지요…?”
아오는 말을 흐렸다. 그렇다. 우리의 일행이 아닌, 제 3자인 케라르가 듣고 있었다. 이거 비밀유지 필요한 거 아닌가? 조금 웃기지만 어쩌다 보니 케라르도 같은 배를 탄 동지가 되어버렸다. 그는 머리를 짚으며 눈을 질근 감았다. 나는 너무 웃긴 상황에 폭소했고, 아우루엔도 피식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아오는 굴하지 않고 편지를 읽어나갔다. 어차피 알게 된 거 끝까지 가자는 거겠지.
“이번 의뢰는, 그가 칼테크로 다가오지 못하도록, 사전에 그를 막아주셨으면 합니다. 이번 의뢰마저 성공하신다면, 그의 현상금의 절반인 49,035 아크를 의뢰비로 받으시는 것과 동시에 트럼프의 살인귀의 수배금인 83,000 아크를 수령 하시게 될 것입니다…’ 라는데? 어떻게 하지?”
아오는 활짝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나는 겨우 웃음을 멈출 수 없었기에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을 아우루엔이 가로챘다. 그의 말에도 조금의 웃음기가 깃들어 있었다. 케라르는 어이가 없는지 입을 떡하니 벌린 채로 멍하니 있었다.
“우선 휴엔이 오기를… 조용히 기다리지. 휴엔이 와서 이야기해야 할 사안이니.”
그러고서 케라르에게 빈 컵을 보여주며 손을 흔들었다. 케라르는 그 컵을 보고는 한 5초는 멍하니 있더니 그 후에는 화내는 것인지 무서워하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되는 얼굴로 소리 질렀다.
“그걸 대체 왜 말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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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하자 작업... 게임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