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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누구 있나요?"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발을 딛이며 그의 귓가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답하지 않았다. 반응하지 않았다. 그녀의 신중한 목소리는 구둣발에 묻혀 허공으로 돌아간 대신 바큇소리가 퍼져나갔다. 흔히 보던 카트의 것이었다. 카트가 타월의 틈 사이를 넘어가며 몸을 흔들어댔다. 


쇳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소리들이 머릿속에 들어와 공포스러운 상상의 재료가 되었다. 소리는 이윽고 멈추었지만. 그건 약간의 위안이라도 되어줄 수 없었다. 


손가락이 느껴졌다. 두피에서 퍼져가던 감촉이 이제는 어깨까지 내려왔다. 앞머리가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을 흔들고 뒤트는 것이 보였다. 날카로운 손톱이 머리에 원을 그렸다. 아프다는 감정보다는 아플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이 발작하며 뛰기 시작했다. 도망치라는 신호이다. 눈동자의 초점이 쉼 없이 움직인다. 심장의 신호에 덧붙여 살길을 찾으라 명령하는 것이다. 들리지 않는 몸의 암묵적 경고는 검은 베일을 뚫고 느껴지는 피부의 떨림에서. 자신도 주체 못 하는 불안한 호흡에서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그는 머리카락을 옷감처럼 쓰담았다. 길지는 않았지만. 여자의 것이었기에 자신의 것보다 길고 부드러웠다. 손을 베일 안에 넣고 한 번씩 빗질할 때면. 그녀는 간신히 눈물을 참고선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눈물이 고인 눈은 반짝이며 광택을 뽐내는 것이었다. 그는 머리카락을 다시 정리하더니 목. 그 다음에는 어깨를 건들였다. 면 너머로 따스하고 말랑한 것이 손아귀에 쥐어졌다. 힘이 들어갔다. 어깨가 파열음을 내며 비명을 질러댔다. 그건 그녀의 신음을 불러냈다.


"아파. 아프다고! 지금 뭐 하는 거야?"


"미안. 아플 줄은 몰랐어. 사과할게."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대사. 익숙한 대상. 사과의 말과 함께  보인 건 그의 얼굴이었다. 동자 안에 모습이 비쳤다. 그의 모습이 작게 반사된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 그녀는 외쳤다. 공포 대신 분노와 혐오를 가지고선.


"지금 뭐 하는 거야? 사람을 납치하다니. 모자란 새끼답게 모자란 행동만 골라서 하는구나! 뭐. 앉아서 다시 고백이라도 하려고? 아니면 차버린 것에 대해 보복이라도 하려고?"


그녀는 비웃으며 말했다. 그에게 하는 말이지만 답은 원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기에. 그녀는 벌레가 기어오르는 것을 털어내는 사람처럼 묶인 팔과 다리로 간신히 비틀거리며 몸을 흔들었다.


목을 약간이나마 움직이며 그가 정리했던 머리카락을 흩뜨려 놓았다. 숨은 여전히 크게 들이쉬고 있으나 겁을 먹지는 않았다. 오히려 저런 것에게 두려움을 느꼈다고 생각하니 창피하기까지 하였다.


"내가 옳았어. 꽃은 아름다웠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으니까. 오물을 곱게 포장하고 향을 덧입힌다 하더라도 악취는 숨겨지는게 아니야. 너의 그 생각도. 마음도. 변장하고 감추려 발버둥 쳐도 자기 자신마저 이를 숨기지 못하잖아?"


 "봐. 네가 한 모든 것들을. 네 지저분한 마음처럼 이것들이 감춰질 것 같아? 내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넌 즉각 채포될 거야. 실종수사는 보통 실종자와 악연이 있던 사람을 위주로 진행되거든. 잘가. 민증에 적힌 빨간 줄이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 되겠네. 붉던 장미에 대한 보답이야."


속사포처럼 말들이 그의 귓가에 들어갔다. 가슴에. 머릿속에 박힌 총탄이 탄흔을 비집으며 상처를 벌려나갔다. 몸이 피를 흩뿌리는 것처럼 마음은 눈물을 흘려댔다. 


떨어지는 물방울은 그녀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스며든 물방울은 그의 목으로 들어가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자신이 기회를 잡았음을 간파했다. 비바람 후에는 맑은 하늘이 있기에 사람들이 이를 증오하지 않는 것처럼 이런 독설 뒤에는 늘 부드러운 것이 따라야 했다. 그것이 열쇠였다.


"뭐. 그래도 이렇게까지 한걸 보면 내가 너에게 한 것이 좀 과했다고 생각이 들긴 해. 솔직히 그때 미안해서 따로 연락이라도 두려다 혹여나 네 상처가 덧나지는 않을까 걱정돼서 하지는 못했어. 허나 네 상처가 이토록 깊은 줄 알았다면 이렇게 네게 모질게 굴지는 않았을꺼야. 미안해."


검은 눈에서 나온 것이 검은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머리가 축축해져 물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를 느끼고선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네가 흘리는 눈물에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니? 그렇다면. 난 거부하지 않을께. 씨앗이 비바람을 이겨내야 비로소 그 향기를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것처럼 나 또한 너와의 일들을 거름 삼아 성장하려 해. 다 너의 덕택이야. 고마워. 그렇기에 사과할께. 내가 너무 못되게 널 대했나 봐. 진심으로 미안해."


 "나중에 같이 별 이나 보러 가자. 네가 추천했던 산기슭 명당 기억하지? 아직도 별이 보이고. 그 별이 아름답게 빛난다면 난 네 목소리와 함께 별에 젖어들 거야."


그녀는 낮고 잔잔하게 말을 해 나갔다. 거칠게 발광하던 심장이. 잡다한 생각의 집합체였던 뇌가 차츰 잦아들며 조용해졌다. 그의 훌쩍임을 바탕으로 했던 말들은 살길을 찾기 위한 발버둥이었지만 그럼에도 진정되고. 편안해졌다는 건 그녀 또한 마음의 짐들을 어느 정도 풀어놓았다는 기분에서 나온 것이었다.


자신이 너무 무례하게. 또 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거만하게 행동했다는 사실이 그녀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아까의 막말에도. 그는 바보같이 울고만 있었다. 그의 서글픈 

고통에서 깊은 상실감과 허무함이 느껴졌다. 괴로움이 그의 슬픔에서 나와 방안을 나가지 못한 체 그 곁에 주저하며 서성였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맴돌았다. 


그녀를 납치하고. 사지를 결박한 그였지만 지금 보이는 건 어린 시절 해 지는 것이 두려워 문 앞에 머뭇거리다 결국 자신의 곁으로 달려오던 동생이었다. 그 또한 스스로의 사랑 깨짐을 두려워해 얼마나 고심하다 내게 고백한 것일까.


"널 볼 수 있게 와줘. 네 상처를 만질 수 있게 와줘. 네 마음을 안을 수 있게 와줘. 내가 쏜 말들이 네게는 피고름이 넘쳐흐르던 고통이 되었구나. 이제 그 진물을 피하지 않을께."


그는 그녀에게 안겨 배에다 얼굴을 가져다 대고 눈물을 흘려댔다. 하얀 셔츠의 면이 짙은 색으로 매워지고 있었다. 그의 숨 고름이. 그의 떨림이 밀려와 그녀를 채워갔다. 그녀는 그런 그를 가만히 지켜보며 차츰 잦아들던 그의 호흡과 합을 맞췄다. 


그의 얼굴은 불그스름한 기운이 맴돌고 눈은 부어있었지만 어쩐지 기쁜 모양새였다. 그녀는 이를 지긋이 지켜보며. 애써 웃어보며 말을 걸었다.


"너가 좋아했던 우주를 보러가자. 어서."


"진짜 고마워. 이건 진심이야. 하지만 내가 볼 우주는 밖에 있지 않더라도 볼 수 있어. 이것도 진심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대체 무엇을 말하는거니?"


그는 미소를 남기며 일방적으로 시야에서 벗어났다. 그녀는 어리둥절해 속으로 많은 가설들을 세웠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그 모든 가설을 거짓말로 여기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모터의 진동소리가 벌래의 날갯짓과 동일한 소음을 냈다. 


벌레가 머리카락에 앉아 손발을 손질하듯 모터가 검은 베일을 손질해갔다. 굵고 진하던 머리털이 다발로 떨어졌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대체. 왜?"


차가운 것이 머리를 스쳐가자 그녀는 소리쳤다.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머리에는 방의 찬 기운이 퍼져나갔다. 


마지막 모터의 진동이 끝나고 찬 공기가 베일 넘어 감춰져 있던 두피를 계속 건드릴 때. 그녀는 떨어진 머리카락을 보며 같은 말을 되풀이하였다.


"내 머리카락. 내 머리. 내. 내 머리. 내 머리가 왜 저기?"


머리카락을 앗아갔던 손길이 다시 찾아왔다. 흰 라텍스 재질의 장갑은 분홍색의 젤을 몸에 치장하고선 그녀의 두피를 더럽히기 시작했다. 차가운 액체가 머릿속에 스며들었다. 알코올이 섞인 냄새가 났다.


"마취와 소독을 하고 있어. 마취는 네가 너무 아파서 쇼크사하는 것을 막기 위한 거고 소독은 네가 감염돼서 죽는 것을 막기 위한 거야."


그는 미소지으며. 고맙다는 듯이 떠벌이며 말했다. 공연의 순서를 말하는 사회자가 된 듯이. 


"냄새가 좀 독하지? 미안해. 하지만 너와 나 모두를 만족시킬 우주를 볼 수 있다면 이 정도는 너도 이해할 수 있지?"


모터 소리가 들려왔다. 벌레로 취급될만한 소리의 범주를 뛰어넘는 것이다. 자르고 절단하는 극단적인 소리. 톱이었다. 


그녀는 몸을 흔들며 떠나가라 소리쳤다. 그녀와 달리 머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러나 그 밑에서는 삶을 갈구하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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