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님의 병원은 종족을 구분하지 않고 환자를 받기 때문에 보고도 믿기지 않을 일들이 적지않게 일어난다.  보기만해도 아장아장 걷다가 넘어질거같이 작고 귀여운 소형수인부터 내 몸을 두배로 늘려도 안 닿는 트롤까지 이런 다양한 종족들의 치료법을 대부분 알고 있다는 점에서 나의 은사님 또한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닌게 분명했다. 오늘은 밖에 함박눈이 내리니 특별한 눈을 가진 사이크롭스 환자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때는 마찬가지인 겨울이었는데 사건 전날 이상하게 따뜻하다 싶더니 눈이 아닌 비가 한참 쏟아지는 것이었다. 시간이 또 출근시간이다보니 나는 물론이고 길거리는 걷던 행인이나 물건을 다 진열해 막 장사준비를 끝마친 가게주인이나 마음의 준비도 못한체 쫄딱 젖어버렸고 그것이 하루종일 이어졌다. 아마 그날은 일주일동안 환자로서 온 사람보다 순간의 비를 급하게 피하기 위해서 밀어닥친 사람들이 더 많았을 정도였다. 나는 그날 의사가 아닌 청소부가 되어 다른 간호원과 함께 하루종일 범람해버린 바닥을 대걸래로 닦아내는 일만 했다.


중요한건 이 다음 날이었다. 이 날씨가 미쳐버렸는지 기온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쳐버려서 어제 내렸던 비들이 전부 길바닥을 꽁꽁 얼려버린 것이었다. 병원으로 들어올때 멀쩡한척 했지만 이미 오면서 길바닥에 한번 엉덩이를 대고 온 후였다. 출근시간을 조금 넘어버린 시간대라 눈치를 보며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생각보다 병원에는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탈의실까지 아무도 보질 못했다. 아마 나처럼 빙판길에 넘어지긴 싫어서 천천히 걸어오는 심산이라 생각하며 넘겼다. 탈의실에 나와서 이런 날에는 사람이 많이 다치겠다 싶은 생각을 하며 휴게실에서 커피를 타려는 순간 간호원이 급하게 나를 찾는 것이었다. 오자마자 추운 몸을 녹이려던 나는 입 한 번 대지 못한 커피를 내던지고 따라갔다.


급하게 수술실로 들어가니 이제 1년차인 신입이 어쩔줄 몰라하며 환자의 흉부에서 샘솟는 피를 어거지로 막고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없냐는 질문에 그는 갑작스런 맹추위에 차로 출근하던 사람들이 옴싹달싹도 못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그나마 그와 나는 도보로 출근하는 입장이었기에 평소보단 늦어도 멀쩡히 출근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울상인 표정과 구원받은 표정을 동시에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와 교대하며 그에게 상황을 건너들었다. 이런 날에 산을 타다가 30m되는 절벽을 거의 떨어지다싶이 굴렀는데 마침 다른 등산객에게 발견되서 이송됐다. 이런 골절에서 중요한건 갈비뼈의 상태인데 환자의 의식도 없는 수준이었고 맥박도 이상했으며 숨도 불규칙적으로 쉴 뿐만 아니라 이정도의 다량의 출혈인 것을 보면 폐를 건들였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그도 마찬가지의 판단을 하여 흉부를 열고 계속해서 새어나오는 피를 계속해서 빼냈지만 그 이상으로 건들기엔 그의 경험이 부족해 진전이 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어쩔줄 몰라하며 밑빠진 둑에 물만 붓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 중에 그나마 믿음직한 내가 왔다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하지만 나는 막상 두 폐를 스캔해보니 폐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설마 내가 뭔가 잘못된 전제로 생각하나 싶어서 환자의 종족명을 재차 물었다. 사이클롭스라는 말에 나는 아차 싶었다. 환자의 흉부를 제외하고는 수술용 천막으로 가려졌기때문에 조금 들어난 피부의 질감과 체형을 통해 트롤족이라고 어림짐작했던 것이었다. 나는 잠깐 어지러워졌다. 사이클롭스는 진단은 커녕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적으로 몇 번 접해본 것이 전부였다. 애초부터 희귀한 종족이라 보는 것 자체가 그날 복은 다 가져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와서 나도 모른다고 도망친다고 해도 이 병원에서 나 이외에 이 환자를 맡아줄 의사는 현재 없었다. 결국 혼자 짊어매던 것을 그냥 나눠서 들게 된 셈이었다. 


나는 일단 혹시 몰라서 마법으로 폐 둘레에 작은 막을 만들었다. 만약 막 아래로 피가 고이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폐에 상처가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좌측 우측 하나씩 해봐도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새 고여버린 피를 거즈로 최대한 닦아주고 폐를 들어보았다. 혹시 횡경막쪽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횡경막도 아니었다. 간쪽이 문제인가 싶어 우측 가슴을 조금 더 째서 살펴보았으나 간 역시 아니었다. 사실 스캔했을때 간쪽은 이상 없다고 나왔지만 점점 머리가 복잡해지자 그 사이 그걸 잊었던 모양이었다. 내 스캔에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한숨을 쉬며 소거법상 심장쪽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많은 출혈로 봐서는 이정도면 심장 자체에 구멍이 났거나 동맥이 절단되거나 싶은 상황이었으나 만약 그랬다면 이송되는 사이에 죽어야 마땅했다. 심장 위쪽을 조금 열자 그 사이로는 피가 뿜어져나왔다.  순간 당황했지만 어짜피 이걸 틀어막는다고 낫는 게 아니니 더 크게 열어서 하루빨리 원인을 찾아야했다. 열고 보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있었다. 갈비뼈가 말 그대로 아작나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심장을 조금 파고들어서 상처가 났던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멀쩡하게 심장은 기동하고 있었고 단지 매우 빠른 속도로 죽어갈 뿐이었다. 심장이 제대로 펌프질을 하지못해서 전신에 피가 가지 않는 것을 심세동이라고 하는데 갈비뼈 파편이 심장에 박혀서 제대로 펌프질을 못하게 되면서 심장이 제대로 뛰질 않아서 출혈량이 의외로 적었던게 행운이자 불행이었다. 일단 여기까지 살아있는 채로 오긴 했다만 문제는 이 가정이 사실이라면 지금 환자는 실시간으로 몸에 피가 가질 않아 뇌사할 것이다. 아니 사실 지난 시간상 이미 뇌사판정을 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 흐르긴했다. 


아무튼 모아니면 도에 걸 수밖에 없었다. 일단 심장에 박혀있는 뼈를 제거하면서 동시에 중력계 마법으로 심장 테두리에 압력을 가해 피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임시막을 만들어야했다. 동시에 심장이 터지지 않게 압력을 정확하게 조절을 해야했고, 이런 세밀한 조정을 위해 심장 자체를 잠깐 멈춰야만 했다. 그리고 뇌사를 방지하기위해 혈관에 회오리형태를 한 마나관을 작게 넣어 드릴처럼 돌리면서 혈관안에서 움직이게 한다면 심장의 펌프역활을 아주 조금이나마 대신 해줄 것이었다. 이는 본래라면 요로결석같은 병에 파석시술로 이용되는 마도구라 이런 곳에 써서는 안되지만 당장 떠오르는 것은 그정도였다.


먼저 석화마법으로 심장을 잠시 멈추었고 재빠르게 막을 형성했다. 그러는 사이에 옆에 신입이 조심스레 벌벌 떨리는 손으로 갈비뼈조각을 뽑았다. 제대로 힘을 못주길래 괜찮으니까 있는 힘껏 빼라고하자 잠깐 주저하더니 이내 눈 질끈 감고 시원하게 빼냈다. 석화때문에 심장이 딸려나와 터지나 했는데

 그런 최악의 수는 넘겼다. 아무리 압력을 외부에서 가한다고는하나 피가 아예 안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빼낸 자리를 의학용 풀과 실로 봉합했고 

석화를 풀어냈다. 정말 힘겨우면서도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마나관이었다. 처음에 넣을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수술 이후 그것을 빼낼 방도가 없었다. 석화의 부작용으로 심장은 제대로 뛰지 못할것이고 이것이 정상궤도로 올라올 때까진 인공적으로 펌핑을 해줘야만했다.


내게 심장 자체를 중력계 마법으로 터지지않게 감싸 조절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부위별로 힘의 완곡을 주면서 동시에 봉합부위가 벌어지지않게 주기적이고 세밀한 조정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아마 그정도까지 가능한 인물은 세계 그 누구도 없었다. 예상대로 석화가 풀려가는 심장은 심세동 일으켰다. 나는 발악이라도 할 겸 에피네프린을 주사하긴 했지만 결국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한 번 시도는 해볼까 라며 회오리관 넣을 생각으로 다시 혈관을 찢으려 하다가 다시 멈췄다. 주변에서 나를 바라보던 간호원가 신입은 이해한다는 눈초리로 나를 처다보았다. 나는 고개를 치켜들어 한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생각 해야된다 생각해내라. 뇌에 채찍질 하다가 머리를 다시 떨궜다. 그때 믿기지 않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분명 몇 초전까지만 해도 심장이 부르르르 떨기만하던 것이 금새 두근두근거리며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그대로 내비두자 혈압도 정상범주로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나머지 작업들을 마무리지었다. 골절 부위들을 교정하고 맞추고 적당하게 부위 별로 힐을 걸어주면 잘 붙었다. 종종 생각하건데 마법과 의학을 접목시키면서 생긴 편한 것들중 하나가 골절은 대부분 힐로 해결되는 점이었다. 


단 한시간에 기적적으로 행한 이 대수술은 내가 지금껏 했던 수술중에 가장 빨리 끝난 야메수술이기도 했다. 솔직히 수술하는 내내 심지어 끝나고 그사람이 멀쩡히 퇴원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꿈인지 현실인지 의심할 정도였다. 사실 수술 이후 몇일만에 벌떡 일어나서 멀쩡히 걸어다닌 것은 아니었다. 역시 장시간동안 혈류가 거의 멈춰있던 탓에 오랜 재활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평범한 사람일 경우 20분정도 혈류가 멈추면 뇌사였지만 나중에 알게된 정보로는사이클롭스는 상체와 하체로 보내는 동맥 2개로 나눠져있어 동맥 한쪽이 문제가 생겨도 뇌사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 환자도 입원해서 재활받는 내내 1년차 신입의 미화된 수술과정을 계속 듣다보니 무슨 감정이라도 생겼는지 이후 그가 자주 선물사온 채로 방문해왔다. 나랑은 취향이 여러모로 달랐기때문에 그가 받은 선물은 곧잘 간호원들의 먹잇감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좋은 뜻으로 오는 사람을 마다할 순 없었다.

그런데 솔직히 2m의 거구에 커다란 외눈박이를 아무리 많이 봐도 적응이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졸려서검수안했습니다

오타있으면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