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유적지 탐사일지

제국대학 소속 아르카·리브 데 리팅·노웨르 교수 저

제국력 3114년 1월 10일, 탐사 1일차.

일정대로 우리는 미지의 기록물 보관소 부터 살펴 보기로 했다. 현대에도 구하기 힘들고 비싼 종이와 책들이 가득 들어있고, 심지어 시멘트로 지어진 것으로 보아 필시 왕궁이나 귀족의 저택 중 파손되지 않은 일부이리라.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천조각 에는 고대 문자로 (19금 코너)라고 쓰여져 있었다. 고고학에 무지한 머저리 병사들 손에 훼손된 책이 꽤 되었지만 뭐, 있는대로 만족해야지. 문자가 엄청 많은 책, 회색 종이로 만들어진 넓직하고 얇은 기록물, 표지가 빨간색이고 그림이 많은 책 등이 있었다. 대멸종 이전 구 문명이 발견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인지라, 문자는 당연히 해석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빨간 책부터 살펴 보기로 했다.

첫번째 유물, 빨간 책

종이를 칸별로 나누어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인물이 말을 하는것을 옆에 빈 공간에 적어놓는 식으로 표현을 했으며, 유독 벌거벗은 사람의 모습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당대 서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이 성교 장면이다. 하루 종일 닥나무를 잿물에 삶아내고 말리는 수고를 들여 만드는 값비싼 종이와 책을 이런 쓸데없는 내용으로 채워넣다니, 책과 이성과 지혜의 신 엔하 님께서 보시면 무슨 생각을 하실까. 역시 미개한 섬 원주민들의 조상 답게 저속하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내용을 살펴 보기로 했다.

당시는 신분제 사회였던 듯 하다. 귀족임을 나타내는 표식으로써 (안경)과 (최면앱)이 있었는데, 귀족 남성들은 이것들을 차고 다니며 길거리에 아무 여자나 겁탈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던 듯 했다. 여자들은 순종하였으며, 특히 얼굴이 기름지고 뱃살이 풍만하며, 머리숱이 없는 남자일 수록 더 기꺼이 봉사 했던 듯 하다. 이 유물이 만들어진 시기에는 주로 배우자가 있는 여인들이 표적으로 하는것이 유행이었던 듯 하며, 그들은 이것을 (네토라레)라고 불렀던 듯 하다.

두번째 유물, 넓적하고 얇은 회색 기록물.

벽보 등의 선전물로 쓰였던 것 같다.

그림은 오직 5번째 장의 윗 절반부분에서만 찾을 수 있었는데, 원형 경기장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여러 사람들이 싸우는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그들은 고대 '알 카탈라' 문명에서 처럼 투기장 경기를 즐겼던 듯 하다. 맨 위쪽에 (국회 만평)이라고 쓰여져 있는 것으로 볼 때 이 경기의 이름은 (국회 만평)이었던 듯 하며, 나는 그 내용을 살펴보고 어떤 단상 위에 얹어져 있는 나무로 된 망치를 차지하기 위해 회색 또는 검은색의 갑옷을 입은 전사들이 단상으로 일제히 달려들어 싸우는 경기였던 것 임을 추리해 낼 수 있었다. (안경)을 쓰고 머리가 벗겨진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뒤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신분에 관계 없이 참여 할 수 있었던 듯 하다. 아마도 이런 식의 폭력적인 축제로 하층민들의 불만을 달래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세번째 유물, 문자로 가득한 책.

이건 또 요상한 물건이다. 굉장히 애지중지 보관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중요한 기록일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포장되어 있었냐 하면 흰색 바탕에 초록색 글씨가 잔뜩 쓰여진 가죽 주머니? -아마도 멸종해버린 동물의 가죽이 아닐까 싶다. 처음보는 매끄러운 감촉의 가죽이다. 만지면 바람에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난다.- 속에 구겨진 종이가 잔뜩 들어있고, 그 주머니 깊은 곳에서 이 책이 있었다. 따라서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했다. 앞서 두 기록물에서 문자의 뜻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한반도 문명에는 띄어쓰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는데, 이건 그게 전혀 되어있지 않다. 다른 문명의 글자인가 생각도 해보았지만 아까의 두 유물과 문자의 각진 형태들이 너무나도 유사하다. 이 책은 문자밖에 쓰여있지 않으니 지금 당장은 해석이 어려울 듯 하다. 이럴때 학계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기술은 바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자 내지는 문자 덩어리 -아마도 단어-를 찾아내는 것인데, 이렇게 해석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3가지이다.

(엄준식), (투명드래곤), (죽음의데스)

아마도 이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들 -이를테면 지도자의 이름이나 호칭, 그들이 믿었던 신 등등-일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출토되는 기록물들은 이들 단어를 중심으로 살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