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은 책상에 앉아 그저 멍하니 있었다.



때가 되니 벽면에서 오래된 컴퓨터가 플로피 디스크를 내뱉듯이 무엇인가 튀어나왔다.


팩에 담긴 죽이었다. 


식기가 없는 건 자해를 막기위해서인 것 같은데, 그건 앞으로 10년간의 내가 먹을 모든 밥은 팩에 담긴 걸쭉한 죽이라는 걸 의미했다.



식사가 끝나면, 팩은 변기에 넣어 처리한다. 물에 녹는 재질이다. 여러모로 편리했다. 미니멀리스트라도 된 기분이었다.



난 비좁은 바닥에 누워 휘파람을 부르다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 자신을 이곳에 가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 이유는 사실 간단했다. 나의 위선, 그리고 동정이었다.


피묻은 가위를 들고 거친 숨을 내쉬던 A가 측은해보였던 것이다.



이건 나 자신에게 스스로 내리는 벌이기도 했다. 방관이라는 형태로 A를 괴롭히는 데 가담했으니.



그리고 학교에 대한 반항이기도 했다. D가 A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는 사실은 묻힐 것이다. D는 이사장의 손녀였으니. 권력을 쥔 자의 특권이었다.



부조리했다. A의 친구도 뭣도 아닌 내가 그녀 대신 타임룸에서 10년간 썩는 것보다 더한 코미디였다.



그러고 보니 방 안엔 시계가 없었다.


터치스크린을 두드려도 시간은 표시되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10년간 지내는건가.


혼자. 오락거리도 없이. 이 비좁은 공간에서.



난 책을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좋아했다.



난 이야기를 통해서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이야기에 빠진 난 답답한 현실을 잊고,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었다.



난 쉬는 시간에도, 그리고 기회가 되면 수업 중에도 책을 읽었다. 친구를 사귀지 않은 것, 아니, 못한 건 그 때문이었다.



책을 읽고 싶다.



난 바닥에서 일어나 터치스크린을 두드렸다.


오락적인 요소는 모조리 거세당한 교육 프로그램이 전부였다.


그래. 이거라도 해보자. 



◇◇◇



일주일이 지났다.


밤이 되면 전등은 저절로 꺼져 그걸로 하루가 지났음을 알 수 있었다.



처음 3일간은 학구열에 휩싸여 교육 프로그램을 열심히 들어봤지만... 그 열정은 벌써 차갑게 식어버렸다.


죽을만큼 따분해도, 머리아픈 공부를 하긴 싫었다.


역시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절대 변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그냥 바닥에 누워서 공상이나 하고, 억지로 잠을 자는게 나았다. 



그러고 보니 체취가 나지 않았다. 씻을 필요도 없었다.


특수제작한 옷의 효과인걸까. 천재들이 제작한 타임룸의 효과 중 하나인걸까.



난 몸을 이리저리 구르며 옛날 생각들을 했다.



D가 A의 발을 걸어 식판을 뒤엎었을때가 떠올랐다. 밥과 반찬을 뒤집어쓴 A는 울지 않았다.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타임룸에서 10년간 썩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도, A는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체구가 작고 멍해보여도 정신력만큼은 강한 아이였던걸까.



그녀의 성적은 중하위권. 딱히 사교성이 좋은 편도 아니었고...


자신을 괴롭히던 동급생의 눈을 가위로 파버렸다.



솔직히 난, 울부짖는 D를 보며 조금 통쾌했다.


기계눈알을 장착하게 된 건 유감이지만. 인과응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악랄하게 A를 괴롭혀왔으니까. 오히려 눈 한쪽 정도는 싸게 먹힌 걸지도 모른다.



인과응보.



사실 나도 그렇다. 충동과 위선, 그리고 방관을 죄목으로 이곳에 갇힌 신세. 그야말로 인과응보다.



A도 이곳에 갇힌 나를 생각하며 통쾌해할까.


아니,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방관자 24명 전부(7반 총인원)가 타임룸에 쳐박혀야 속이 시원할 것이다.



지금쯤 A는 뭘 하고 있을까. D가 보복해올텐데. 아니, 어쩌면 D는 A의 기세에 눌려 벌벌 떨지도 모른다. 


' 한번만 더 까불면, 그땐 오른눈이야. '



물론 위선자의 상상이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자, 슬슬 한계가 찾아왔다.



후회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 그랬지? A랑은 뭣도 아니면서. 심지어 대화도 두마디 이상 나눠본 적 없잖아.



맙소사.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거지?



그제서야 10년이란 어이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시간이 내 몸을 짓눌렀다. 뼈가 으스러지고, 내장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10년. 한달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10년?



올드보이의 오대수는 15년간 감금되었지만, 적어도 그는 군만두라도 먹었다. 나에게 나오는 식사는 정체불명의 잿빛 죽이 전부였다.



오대수의 방엔 TV가 있었다. 이 3평 남짓한 방 안엔, 무미건조한 교육 프로그램들로 채워진 터치 스크린 하나가 전부였다.



나도 오대수처럼 복수를 준비해볼까. 


하지만, 누구한테?



누구를 겨냥한 복수인가? A? D? 교사들? 아니면 부조리한 사회의 시스템?



아니면, 어리석은 위선자-나?



이건 모두 나의 선택이었고, 나의 책임이었다.


A에게 베푼 어이없을정도로 어리석은 동정이, 나를 지옥에 가뒀다. 나는 서서히 파멸될 것이다.



그렇게 두달이 지났다.



욕지거리를 내뱉는 것도 이젠 지쳤다.


살려주세요, 내보내주세요, 철회할게요, 제발-


추한 애걸을 하며 벽면을 미친듯이 두드리는 짓도 이젠 하지 않는다. 인간은 무력하다. 



이곳에서의 자살 시도는 무의미했다. 척척박사님들께서 만든 또 하나의 장난질인 모양이었다. 죽어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다. 이곳에서 나가기 위해선, 저 좁은 문을 지나야만 했다.



A의 세상에선 1년 뒤에, 이쪽에선 9년하고도 10개월 뒤에 열릴 좁은 문.



어느새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되었다. 혼잣말을 잠에 들기 직전까지 멈추지 않았다.



" 나는 위선자다. A가 괴롭힘을 당할때마다, 아무것도 못한 채 방관했다. 마음이 불편해도, 애써 책읽는 척을 했다. 그녀를 위해 할 수 있었던 건, 그녀대신 10년간 썩는 거였어. 흐하하하... 왜.. 도대체 왜? "



갑자기 A가 참을 수 없이 미워졌다. 난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죽을만큼 고통스러운데. 그 애는 뭐하고 있는 거지? 내가 자신을 위해 이렇게 희생하고 있는데. 다시 한번 가위를 휘둘러 교사들의 눈을 파버리고, 여기있는 나를 구출해주지 않는거야? 젠장. 젠장할...



그리고 며칠 뒤, 벽면에서 종이 하나가 튀어나왔다.



A의 편지였다.



◇◇◇



편지 전체를 공개하진 않겠다.



왜냐면 A가 너무나도 악필이라서, 편지를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자칫 그녀의 명예를 훼손시킬 수도 있으니까. 


정말로, 경악스러운 수준의 악필이었다.



편지 속의 A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원래는 타임룸에 외부 물건의 반입은 일체 금지되지만, 자신이 사정사정해 편지만은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도 일주일에 한 번, 딱 한 장만.



D는 전학을 가게 되었다고 했다. 


A는 이제 괴롭힘이 없는 평온한 환경에서, 3학년 진급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편지의 끝엔 일주일에 한번씩 편지를 보내겠다는 약속과, ' 미안해 '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나는 편지를 읽다가 무심코 눈물을 흘렸다. 누군가와 간접적으로 대화한다는 기분이 들었고, 그것이 너무 감격스러워서 였다.


그리고 좋은 오락거리가 생겼다. A의 편지. 일주일에 한번씩...어라.



A의 1년은, 나에게 10년.


A에게 7일은, 나에게 70일이었다.



A는 7일 후에 내게 편지를 보내겠지만, 내가 그것을 받는 건 지금으로부터 70일 뒤다.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고개를 꺽어 천장을 보고 미친듯이 웃었다.



뭐, 그 뒤로 일주일은 A의 편지를 반복해서 읽으며 보냈다. 수백 수천번은 읽었다. 토씨 하나 안틀리고 전부 외워버렸다.



머리 속으로 난 답장을 썻다. 


내가 너를 대신해 벌을 받는 이유와, 지금껏 방관해서 미안하다는 것. 그리고 사실 내 위선적인 선택에 대해 굉장히 후회하고 있다는 것. 난 편지를 이렇게 끝마쳤다.



' 솔직히 말해서, A. 난 널 죽이고 싶어. '



A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것엔 종이도 없었고, 필기구도 없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외부로 편지를 보낼 수단이 전무했다.



난 무심코 A의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리고 그 조각들을 먹었다. 


상관없었다. 어짜피 머리 속에 복사본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70일이 지났다.



◇◇◇



두번째 편지가 왔을 때 난,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중이었다.


처음엔 팔힘이 달려 벽에 몸을 기대고 해도 버티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벽에 굳이 기대지 않아도 30초는 버틸 수 있다.



교육 프로그램 중 '기계 체조'가 있었다. 미치도록 답답했던 나는, 이 좁아터진 방 안에서 기계체조라도 해야만 했다.



A의 두번째 편지가 벽면에서 튀어나오자, 나는 편지를 향해 몸을 던졌다.



A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 일주일이 지났어. 너는 그 안에서 어떤 70일을 보냈니? '



지루함을 견딜 수 없어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중이었어.



' 거기 밥은 뭐가 나오는 지 궁금하다. 학교 급식은 여전히 맛 없는데. '



여기서 일주일만 있어보면 학교 급식이 정말 그리워질거야. 


난 지금 급식을 먹을 수만 있다면 양팔을 잘라낼 수도 있는걸.



' 그래도 이젠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아. '



...



' 네가 나를 위해 타임룸에 들어간 거,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



...위선이었어, 그건.



' 왜 그랬는지 알고싶은데. 네 답장을 못받는 게 정말 아쉽다. '



나는 편지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수천번은 읽었다.



그 뒤 70일이 어떻게 지나갔던가.


조명이 켜져있을 땐 기계체조를 하고, 조명이 꺼지면 구석에 누워 웅크린 채 울었던 것 같다.



꿈에선 과거의 일들이 상영되었다.



D가 A의 사물함에 썩은 우유를 부어둔 일.


D가 교실의 방관자들 앞에서 A의 뺨을 때린 일.


D의 폭언. A의 무표정...



고립된 A의 작은 뒷모습. 



그때의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지금의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난 얼어붙은 시간과 엉겨붙은 기억들에 휩쓸려 끊임없이 괴로워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몸엔 기계체조로 단련된 근육들이 붙었다. 노화는 억제해도 근육의 성장은 억제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밖에선 한달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겠지.



편지 속의 A는 괜찮아보였다. 친구가 생겼다고 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젠 더이상 난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나의 선택이었고, 나는 그 책임을 다하는 중이었다.



난, 내 선택이 A에게 구원이 되었길, 간절히 빌었을 뿐이다.



◇◇◇



언제였던가.



학교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교실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나 발길을 돌렸다.



노을의 색으로 물든 교실엔 누군가 있었다.



A였다.


교실 문을 열자마자 나는 앉아있던 A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울고있었다.



나는 그녀를 무시하고 내 서랍에서 책을 꺼내 가방 안에 넣었다. 숨죽인 울음소리와 내 뒤척임이 섞였다. 



끝까지 무표정일 줄 알았는데. 방과 후의 너는 울고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눈물을 외면했다.



◇◇◇



편지 속의 A는 즐거워보였다.


그녀는 무사히 3학년으로 진급했고, 새 교실에서 새 친구들을 사귀었다고 한다.


난 이걸로 어느덧 5년 째인가.



똑같은 하루의 반복이었다.


조명이 켜지면 눈을 뜨고, 몸을 간단히 푼 후 아침을 먹는다.


팔굽혀펴기나 윗몸일으키기 따위의 맨몸 운동을 하고, A의 편지를 읽는다.



난 그녀의 첫번째 편지를 먹어버린 걸 후회하고 있다. 


아직까지 외우고는 있지만. 



책상 앞에 앉아 터치스크린으로 강의를 듣는다. 


교육 프로그램 안엔 고등학교 과정뿐만 아니라 학사 과정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과목이 어떻든 상관없었다. 그냥 무작위로 강의 하나를 고르고, 이해가 될 때까지 돌려봤다.



이제 난 러시아어와 독일어를 조금 할 줄 안다. 회화는 무리겠지만. 


이곳에서 난 선형대수학과 미적분학을 배웠고, 니체를 공부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다른 구성원들과 상호작용을 통해 살아간다.


인간은, 누군가와 소통하지 못하면, 죽는다.



70일마다 도착하는 A의 편지가 없었다면, 난 어떻게 되었을까. 


타임룸의 어떤 장치가 내부자를 정신질환으로부터 보호는다는 모양이었지만- 글쎄.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삭막한 생활을 했을 것이다.



징계 위원회 회의가 열렸을 때 '대리 이수' 라는 말을 듣고 내가 손을 올린 건, 아마 A와 대화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 그때 널 외면해서 미안해. "


네 눈물을 보고도, 모른척해서 미안해.


라고, 난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난 비겁한 방관자일 뿐이라서, 또 위선자일 뿐이라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그녀대신 10년을 썩는 것 뿐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



" A. 교과서는? "



과학 교사가 A에게 쏘아붙이듯 물었다.



잃어버렸어요.


A는 작은 목소리를 간신히 짜내어 말했다.



우리는 방관하고 있었다. D의 패거리는 웃고있었고.


나는 무표정이었다.



그로부터 1시간 뒤에 A가 가위를 들고 D에게 다가가, 그대로 한쪽 눈알을 터트려버린다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 조금은 웃었을텐데.



◇◇◇



' 오늘부로 징계로 받은 봉사활동 기간이 끝났어. 친구들이 도와줘서, 그리 힘들진 않았어. '



' 그곳에서 넌 9살을 더 먹었겠네. 이제 졸업이 얼마 안남았는데. '



' 난 대학 진학은 하지 않으려고 해. 공부는 영 내 취향이 아니라서. 하하. 졸업하고 요리를 배워볼 생각이야. '



난 책상 위에 쌓인 편지들을 바라보았다. 


너무 많이 읽은 나머지 너덜너덜해진 편지들을.



네 7일을 내 70일동안 바라본다.


네 1년을 내 10년동안 응원한다.



그거면 된거다. 



몇 년전부터 난 머릿 속으로 답장을 쓰고 있다.


A를 만나면 전해줄, 편지의 답장들을.



◇◇◇



" 어이. 끝났다. 얼간이. 하필이면 졸업식에 나오는군. "



10년만에 보는 인간의 얼굴은, 정말 어색해보였다.


나는 책상 위에 얹힌 편지묶음을 챙겼다.



" 근육질이 됐네. 운동은 어떻게 한거지? 저 좁은 곳에서. "



교사는 신기한 듯 말했다. 


나는 그를 무시하고 문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10년만에 만나는 세상.


졸업식이 끝난 강당은 고요했다.



그 광경을 멍하게 바라보는 나를 보고 교사는 "완전 바보가 되어버렸구만" 하고 혀를 찼다.



강당을 빠져나왔다. 밖에선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얗게 물든 세상은 아름다웠다.



정문에선 누군가 꽃다발을 들고 홀로 서있었다.


작은 체구에, 교복을 입은 소녀.


A였다.



나는 뛰었다. 10년만이라 잘 뛰진 못했지만, 다리를 필사적으로 움직여 그녀에게 갔다.



그렇게 만난 그녀는 내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엉망이었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오른쪽 눈엔 시퍼런 멍이 있었다.


입술은 방금 다쳤는지 피가 조금 묻어있었다.


왼팔엔 두꺼운 깁스를 한채, 오른팔로 꽃다발을 들고있었다.



건널목에선 D의 패거리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D도 X고등학교의 교복을 입고, 꽃다발을 든 채 즐거워하고 있었다.



" ...오랜만이네. "



A는 웃으며 말했다.


그 곁엔 친구가 단 한명도 없었다.



1년, 아니 10년간 그녀가 거짓말을 해왔다는 것을 깨닫자,


손에 힘이 풀렸다. 동시에 들고있던 편지 봉투가 떨어졌다.



난, 미안하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소리없이 울었다.



건넬 말이 있었는데.


분명, 건넬 말이 있었는데.



A는 그런 내게 다가와, 나를 껴안았다.



우린 위선자였다.



◇◇◇



한적한 카페는 따듯했다.



그곳에서 마주앉은 우리는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A에겐 1년 분의 이야기,


나에겐 10년 분의 이야기가 있었다.



양쪽 다 그리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어쨋든 우린 떠들었다. 


오랫동안.



오랫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