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X고등학교의 한 2학년 여학생이 왼쪽 눈을 크게 다쳤다. 안구에 가위가 박혔고, 망막까지 전부 망가졌다.



옛날같았으면 실명되었을텐데, 과학기술의 발전은 그녀에게 최첨단 기술로 무장된 새 눈을 달아주었다.



그건 '사고'가 아닌 '사건'이었다.


동급상이 입힌 상해였으니까.



학교 측은 곧바로 징계 위원회 회의를 개최했고, 피해학생의 왼쪽 눈에 가위를 찔러넣은 가해 학생은 10년간의 특별교육과정을 이수하게 되었다...



아니, 그럴 뻔 했다.




◇ 위선자의 시간 ◇




물리학자들은 일제히 약속라도 한 듯 시간을 주물러댔다.


그들은 복잡한 공식과 요상한 실험들로, 신의 영역을 넘보았다.



몇년 전 그들은 한 장치를 고안하기에 이르는데- 그것이 바로 '타임룸' 이었다.



싸구려 냄새나는 이름과는 타임룸은 꽤나 실용적인 장치임은 분명하다. 타임룸을 이용하면, 개인의 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 



설명이 필요없겠지만, 타임룸의 구조는 말도 안되게 복잡하다. 척척박사들이 달려들어 만든 기계니까. 당연하다.



하지만 나같은 일반인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타임룸의 구조는 3평정도 되는 휑한 공간이 전부다.



타임룸 외부에 위치한 온갖 기계장치들 사이에 작은 문이 하나 있는데, 이것을 열고 들어가면 3평짜리 작은 방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타임룸의 룸(room)이다.



타임룸의 복잡한 기계들이, 그 방 내부의 시간을 독립적으로 흐르게 만든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20세 A씨는 타임룸에 들어갔다. 그리고 1년 뒤에 나왔다.


그럼 A씨의 나이는 21세겠지?



아니다. 


이때 21세일 A씨의 나이는, 1000세가 훌쩍 넘어간다.



왜냐고? 이 타임룸 내부의 시간이 외부의 시간보다 1000배 느리게 흐르도록 설정되어있었으니까.


타임룸 밖의 세계에선 1년이 지났지만, 타임룸에 들어간 A씨는 무려 1000년이란 세월을 겪은 것이다.



심지어 타임룸엔 시간뿐만 아니라 내부 안에 있는 사람의 노화까지 멈출 수 있는 기능이 있어서, 밖으로 나온 A씨는 1000살이 넘어감에도 불구하고 21세만큼 건강하다.



돈은 많지만 남은 시간은 별로 없는 사람들이 타임룸으로 연명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들 대다수는 며칠도 버티지못하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야, 타임룸의 방은 3평에 불과했다. 인원도 1명 밖에 들어갈 수 없고. 안에서 무얼 하겠는가?



소설가나 만화가등, 크리에이터들이 거액의 돈을 지불하고 타임룸에 들어갔다. 마감 시간에 쪼들릴 바엔 1년만에 수십~수백년어치 원고(창작물)를 써버리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여담으로, 1년동안 300년이 흐르는 타임룸에 들어간 시인이 있었는데... 그는 타임룸 밖을 나오자마자 절필하고 승려가 되었다. 득도 했다나 뭐라나. 



아무튼.


타임룸은 시험을 앞두고 절망에 빠진 학생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다. 학교를 포함한 교육기관들 또한 이를 적극 활용하기도 했고.



하지만 놀랍게도, 이 최첨단 기계를 징계의 목적으로 활용하는 학교도 존재했다. '특별교육과정'이라는 명목으로, 학생들을 타임룸에 감금하는 것이다.



그 안에는 책상과 오직 교육 프로그램만 구동되는 PC가 있다.



특별교육과정이라는 명목 아래 이 끔찍한 곳에 수감된 학생은, 이곳에서 그 누구와도 만나지 못하고, 나가지도 못하고, 말 그대로 갇힌 채 오직 교육 활동에만 전념하게 된다.


밖에서 흐르는 시간과 단절된 채.



나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야, 난 조용한 녀석이었으니까. 성적이 그다지 좋진 않았으나 말썽을 일으킨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애초에 눈에 띄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이었고.



연애나 장래 따위에도 관심없었다.


난, 교실 뒷편에서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으니까.



◇◇◇



X고등학교 2학년 7반엔,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가 있었다.



괴롭힘은 중대한 징계 사안이라, 특별교육과정 5년(1년)이었다. 징계대상자는 타임룸에 갇힌다. 밖에서 흐르는 시간은 1년이지만, 그 안에서 5년간 썩는거다.



여기서 골때리는 건, X고등학교의 징계 규칙이었다.



지원자에 한해, 징계 대상자의 특별교육과정을 대리로 이수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특별교육과정 5년(1년)을 이수해야 될 학생의 친구가, 대신 5년간 썩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교칙은, 아무튼 존재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친구를 위해 이런 희생을 할만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서라면 몰라도. 



친구란 관계, 우정이란 감정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현실 앞에선 그런 것들은 순식간에 얄팍해져 버리기 마련이다.



징계먹은 친구를 대신해 타임룸에 들어간 대인배는, 학교 역사상 단 한명도 없었...아니, 딱 한 명 있었다.


 


바로 나다.



다시 말하겠다.


X고등학교 2학년 7반엔,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가 있었다.



혹시 괴롭힘을 주도하던 아이가 내 절친이라서, 그리고 그가 징계를 받아서, 그 대신 내가 타임룸에 들어간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한다면- 오답. 


유감이다. 난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난 그때 괴롭힘을 주도하던 아이와는 대화를 나눠본 적 조차 없다. 아니 그보다, 난 그런 부류의 인간과는 친해지고 싶지 않다. 다가가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그럼 무슨 일이 있었느냐-



이런 이야기다.



◇◇◇



X고등학교 2학년 7반엔,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가 있었다.


이름은 A. 왜소하고, 말수가 적은 여자애였다.



계기는 사소했다. 어느날 A가, 반의 리더격인 D의 지시를 무시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고의로 한 행동인지는 모르겠다.)



여기서 문제는, D가 반장이었고, 학교 이사장의 손녀였으며, 성격이 끝내주게 더러웠던 것이다. 한마디로 A는 상대를 잘못고른 셈이었다.



A는 순식간에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D는 주도자였고, A는 피해자였으며, 나를 포함한 반 아이들은 방관자였다.



D의 괴롭힘은 의외의 형태로 멎게 되었다. 3교시가 끝나고, A가 대뜸 D의 왼쪽 눈에 가위를 꽂아버렸다.


그게 할로윈 분장이었다면 봐줄만 했겠지만, D의 비명과 출혈이 엄청났기 때문에 별다른 감상을 할 순 없었다.



D는 곧바로 병원으로 가 박살난 눈을 적출하고 기계눈알을 달았다.


이사장은 수술대에 누운 손녀를 보고 눈물을 터트렸다고 한다. 



오후엔 징계 위원회 회의가 개최되었고, A는 특별교육과정 10년(1년) 이수를 받게 되었다.



타임룸에 1년 간 갇힌다.


그 안에서는, 10년이 흐른다.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징계 내용을 듣는 A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두렵지 않은걸까. 학교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어길 수 없다. 옛날과는 달리, 학교는 권력기관이니까.



타임룸에 들어간 A는 1년 후에 나올 것이다. 나이는 또래보다 10살 위일테지만, 노화가 억제되어 생긴 건 그대로일테고. 철저히 외부와 차단당한채, 3평짜리 방안에서 10년간 서서히 머리가 이상해질 것이다.



그럴 참이었다.



" ...추가로, X 고등학교의 징계 규정에 따라, 동급생에 한해 특별교육과정 대리 이수가 가능합니다. 그 때문에 이렇게 전교생 앞에서 위원회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대리 이수를 신청할 학생, 있습니까? "



위원 한명이 건방진 자세로 말했다. 



" 네, 역시. 아무도 없죠? 그럼 이걸로 회의를 종료..."



그때 누군가 손을 들었다.



300명이 넘는 전교생과 교사들의 시선은 그곳으로 향했다. 강당이 술렁였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A도 그를 보았다.



손을 든 건, 나였다.



◇◇◇



사실 반쯤은 충동이었다. 이상한 서류에 서명을 할때도, 내가 지금 저지른 짓에 대한 무게감을 전혀 실감하지 못했다.



그래, 이렇게 된 거구나.



난 소지품을 빼앗기고, 헐렁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 1년 뒤 돌려줄게. 아니, 너한텐 10년인가? "


돼지같은 교사 하나가 꿀꿀거렸다.



교사들에게 연행되어 기나긴 통로를 지나는 와중에, A가 보였다. 이제 그녀는 가벼운 징계만 받을 것이다. 그녀 대신 내가 타임룸에 들어가니까. 그녀는 자유로운 세상에서 1년을 보내는 동안, 나는 감옥같은 곳에서 10년을 보낼 것이다.



"...왜...왜..? "



얼빠진 듯한 표정을 한 그녀의 입에서 나온 건 "고마워" 가 아닌 의문의 반복이었다.


이해할 수 없겠지. 



통로 끝에는 거대란 타임룸이 기다리고 있었다. 징그러운 기계 외벽에 설치된 계단을 오르자 좁은 문이 있었고, 선생들은 나를 그 안에 밀어넣었다.



비좁은 방 안을 채운 건 책상과 변기가 전부였다. 그야말로 살풍경이었다. 책상 위 벽면엔 터치스크린이 있었다.



" 얼간이 같은 자식. 10년간 썩어봐라. "



끼익-



교사는 혀를 차며 문을 닫았다. 이제 저 문은 10년간 열리지 않을 것이다. 



1년 후 문이 열리는 건, 나에겐 10년 후의 일이었으니까.



다들 궁금할 것이다. 내가 왜 이런 미친 선택을 했는지.


아직 이야기할 시간은 많다. 이곳에서 나가려면, 아직 10년이나 남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