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녹는 걸 본 적이 있어? 

-응?

-눈이 제일 예쁠 때잖아. 녹을때가.


처음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너는 잔잔한 호수에 부유하는 듯 살았으니까. 그저 바람에 따라 흘러가듯, 너는 뭔가 닿을 수 없이 고고해서 우리네 세상과는 유리된 아이였으니까. 그래서 몰랐던거 같아. 그런 네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줄은.


생각해보면 우리가 처음 만난 날도 이런 눈 오는 새벽이었어. 


-새벽의 눈은 세속의 것을 감싸안는다. 그리하면 고요 속에서 마침내 신비가 태어난다. 


어느 시인이 새벽 눈에 바친 이 시 한 구절은 아마 너같은 사람을 만나고 쓴게 아닐까. 확실한 건 이 시는 분명히 활자를 묻혀 도화지에 옮긴 걸 거야. 


아무튼 흰 원피스를 입은 너는 나에게 물었지. 눈이 녹는 걸 본 적이 있냐고. 그때는 대답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아름다워서 더 슬픈 일이야.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널 보러 호숫가에 갈 때 마다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텀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지. 그리고 열 하루가 지난 그 날. 너는 내게 알려주었어. 눈은 녹을 때 가장 예쁘다고. 


그냥 눈물이 나더라고. 지금도 이유는 잘 모르겠어. 어쩌면 어린애 특유의 감일지도. 아무튼 그날 후 너를 보내고 난 지금에서야 알겠다. 눈은 마지막 순간에야 아름다운 본모습을 살짝만 보여주고 영영 숨어버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찰나의 상으로 그를 기억하곤 하지. 그러니까 눈이 녹을때 가장 아름다운 건, 그 순간이 영원할 수 없기 때문이야. 


지금은 조용한 새벽녘. 창문 너머로 깜빡거리는 도시의 등불들과 바람에 사락거리는 눈을 보면서 그때를 회상하곤 한다. 사라짐의 의미를 안 그날. 내 유년기도 그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