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떠나보까.”


어느새 이 배를 조종하는 방법을 알게 된 윤서는 해안가를 따라 남쪽으로 향했다.

뒤돌아본 시내 쪽은 아까의 버섯구름이 하늘 높이 치솟아 그 끝이 보이질 않았다.

유리는 다시 한 번 문을 열고, 선실 바깥으로 나섰다.

이번엔 열폭풍 대신 차디찬 바닷바람이 유리를 반겨 주었다.


“으, 추워. 역시 바다 위는 춥네..”

아직도 누군가가 쏟은 탓에 커피 향이 진하게 풍겨오는 후방갑판은 별 특별한 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선실 위에 얹힌 옥탑방 같은 게 유리의 눈길을 더 끌었다.

“여긴 뭐 하는 곳이지?”

방 내부는 작은 전기난로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유리는 난로를 챙겨서 선실로 돌아갔다.



“아, 왔나. 근데 그건 뭐꼬?”

“난로 같은데, 일단 이거라도 키고 있자.”

“하긴 좀 춥네. 함 키바라.”

“이건가?”

난로는 금새 빨갛게 달아오르며 훈훈한 공기를 내뿜었다.

“아~ 따뜻해~.”


“좀 낫네. 근데.. 저거 뭐꼬? 사람이가?”

어느새 남부 대방파제 가까이에 도달하자, 방파제 위에 누군가가 팔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디어디? 

사람 맞는거같은데..”

“우리쪽 보고 있는갑네. 함 가봐야 안되겠나.”

“일단 가보자.”

윤서는 방파제로 방향을 틀었다. 그 사람의 실루엣이 가까워져 갔다.


붉은 노을에 비춰지며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바로 유리와 윤서의 오랜 동네 친구였던

박준식이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어! 준식아!”

“준식이 아이가! 고향집 올라간다해놓고 와 여 있노?”

“뭐, 일이 있어서 올해는 못갔지.”

“일단 여기 탈래? 우리 배는 아니지만.”

“좋지. 구해줘서 고맙구만.”

이렇게 한산호에 새로운 멤버 준식이가 승선했다.


셋은 오랜만에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근데 어쩌다가 이까지 떠밀려 온 거야?”

“성철이랑 자전거타고 여기 한바퀴 돌고 있었는데, 갑자기 뜨거운 바람이 씨게 불더라고.

정신 차려보니까 성철이는 옆에 없고 나 혼자 방파제에 쓰러져 있더라.”

“그럼 성철이 갸 뒤진 거 아이가?”

“그렇겠지.”


일단 어떻게 기적적으로 모이긴 했지만 앞이 막막했다.

뒤는 아수라장이 된 도시, 앞은 현해탄. 심지어 날도 저물어 가고 있었다.

다시 정적이 감돈 선실에서 윤서가 입을 열었다.

“일단 오면서 동네 쪽 봤는데, 지금 뭍으로 돌아가면 바로 뒤지겠드라. 불타고 난리도 아이다.”

“그렇다고 바다 위에 떠 있을 순 없잖아.”

“그럼 저쪽에 보이는 섬에서 잠깐 기다렸다 돌아갈까?”

“무슨 섬?”


준식이가 손으로 남동쪽 먼바다를 가리켰다.

수평선 위로 희미하게 보이는, 대마도라고 익히 알려진 섬.

준식이는 결심에 찬 표정이었다.

“저 멀리까지 어떻게 가노.

“걱정 마. 우리 할배가 그랬는데, 요즘 배는 속도계랑 키만 잡으면 어디든 간다했다.”

“알았다. 저쪽 말이제?”


윤서는 방향을 남동쪽으로 잡았다. 해가 넘어가고 바다에 칠흑이 깔리기 시작했다.

“뱡향 140도, 속도 35노트. 45분 정도면 도착하지싶다.”

“오케이.”

잠시 후, 그나마 한산호를 비춰주던 빛마저 사라졌고, 유리와 윤서, 준식이 셋은 어둠 속에 고립되었다.

이들에게 다시 빛이 내리쬔 건 대략 40분 후의 일이었다.

희미하게 빛나는 대마도 해안가의 가로등이 마치 마지막 사명을 다한 등대마냥 깜빡였다.


“여기 잠깐 대 놓고, 내일 저기로 돌아가재이.”

“그러자.”


암흑의 너머, 불빛이 꺼져가는 도시로 날아가는 비행기들을 보며 유리는 작게 속삭였다.

‘꼭, 다시 돌아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