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시원하고, 내 볼은 염병하게 아프다. 나는 푸르게 멍든 볼을 어루만지며 그저께 갔던 대장간으로 향했다. 사실 길도 기억나지 않지만, 전에 멍때리면서 걸어갔던 방향으로 그저 계속해서 나아갈 뿐이었다. 지나쳤던 것 같은 거리를 지나고,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나지 않는 거리를 지나, 그를 만났던 문 앞에 도착하였다. 문 앞에서는 무기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 문을 열어 대장간으로 들어갔다.
“배달 아직 안 시켰는데요… 아, 아니었군. 어서와라. 아직 준비는 안 됐는데.”
“상관없어. 어차피 얘기할 것도 있어서.”
나는 대충 위험하지 않아 보이는 곳을 찾아 앉았다. 그는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을 만들고 있었다. 주변에도 퍼즐과도 같은 모양을 한 철들이 가득했다. 대체 뭘 만들려는 거야? 철을 때리는 소리에 정신이 팔려 멍하게 보고 있더니 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좀 이따 얘기할 거라면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들 좀 모아주겠나?”
“이거? 뭐하는데 쓰려고?”
나는 그 퍼즐을 들었다. 그것들을 하나씩 그에게 건네자 그는 내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면서 붉은 철에 물을 뿌려 그것을 식히고는 손잡이에 내 손을 손잡이 부분에다 가져다 댔다. 그러면서 내게 능력을 사용하라 한다. 그제야 이 망할 퍼즐들이 내가 주문한 대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손에 가볍게 힘을 주는 것으로 능력을 발동해 그것들을 순식간에 조립했다. 대충 보아도 이해되는 구조였기에 간단하게 조립했다.
“확실히 조립 속도는 빠르네. 이런 거면 어떻지? 마음에 드나?”
나는 그것을 들어 올리며 조금 떨어져서 휘둘렀다. 확실히 무게감도 있고, 느낌도 좋다. 확실히 실력이 좋은 대장장이인 모양이다. 손맛도 나쁘지 않고… 이 정도면 예전의 검보다 훨씬 편하다. 무게는 전보다 더 무겁지만, 그것이 내게는 오히려 더 편했다. 오히려 예전의 대검이 너무 가벼웠다. 아니지, 2차 해방이라는 거 탓에 무겁다기보단 가벼워졌다.
“좋은데? 뭘로 만든 거야?”
“소재에 대한 요청은 없었잖아. 뭉툭하게 형태랑 크기 같은 거만 말했지. 그래서 일단 남는 재료인 가공한 잃은 자의 핵으로 만들어 봤지.”
그렇군. 잃은 자의 핵이라면 확실히 이렇게 좋은 무기가 나오나 보군. 이만한 무기는 잃은 자의 핵이 아니고서는 나오기 힘들 테니까. 이런 좋은 무기는 써본 적이 없으니. 잠… 잠깐, 잃은 자의 핵이면 가격이…
“가격은… 가격은 어떻게 되는 거지? 잃은 자의 핵이 이 정도 크기면…”
“3만 아크 정도 하지. 근데… 돈보다는 의뢰로 받고 싶은 거라 말이야. 이건 선불, 그리고 너는 의뢰를 완료하는 것으로 3만 아크나 하는 무기와 수배자를 얻는 거지. 수배금이 탐나는 건 아니라서.”
아… 부려먹고 싶으시다는 거로군. 사실 3만 아크라면 지불을 할 수는 있지만… 일단 무슨 내용인지부터 들어보아야 하나? 3만 아크나 하는 무기를 의뢰 하나로 퉁 칠 수 있다면, 들어볼 만한 가치는 있다. 그렇기에 나는 대검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아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난… 옛날에 광기의 기사단의 전속 대장장이였지.”
전속 대장장이? 광기의 기사단이면 그 정예 부대… 허, 어쩐지 꽤 실력이 출중한 것 같더라니. 확실히 이 정도의 무기를 만들 정도라면 전속 대장장이가 될 만도 하네. 하지만 요점은 그게 아니다. 내게 맡기려는 의뢰가 무엇인지가 중요하지. 나는 그것을 입 밖에 꺼내어 그에게 따졌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젠장, 의뢰할 거라면 빨리 의뢰 내용이나 말하라고.
“후… 거기서 말이네. 아마… 2석이었나? 그 녀석이 내게 무기를 만들어달라고 하더군. 그래서 그 녀석의 무기를 만들려고 손을 잡았는데 참… 웃기더군. 아무리 생각해도 맨손으로 싸우는 게 더 강할 녀석인데 뭐하러 무기를 만들려는 건지가 궁금하더라고. 그래서 그걸 그대로 말했더니… 며칠 뒤에 잘렸어.”
참 명쾌하게도 말하는군. 허, 어이가 없네.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뭐, 기사단을 때려죽이라고? 나는 짜증나서 얼굴을 찌푸렸다. 의뢰 내용을 말하랬더니 쓸데없는 헛소리를 말하고 난리야. 급한 사람인데 짜증나게 하지 말라고 성질을 냈지만, 그는 그것을 무시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그 2석인 녀석이 말이야… 꽤 성격이 좋아서 친하게 지냈단 말이지. 근데 그 녀석이… 그 이후에 탈주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어. 아무래도… 친했던 녀석이라 조금 마음에 걸린단 말이야. 나 때문에 탈주한 것 같고… 그렇잖아. 그래서 말이야… 그 녀석이 여기로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그러니까…”
“말 좀 적당히 해. 결론은 그 사람을 잡아야 한다는 거잖아?”
그는 말없이 안색이 어두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염병하겠네. 그 짧은 말을 왜 그리 길게 하는 거야? 그냥 아는 놈이 수배범인데, 그 녀석 좀 잡아달라. 이 두 마디로 요약되는 것을 뭐하러 그딴 식으로 길게 늘여놓고 지랄이야. 나는 머리를 긁으며 알겠다고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안색이 확 밝아지면서 눈을 감고서 웃었다.
“핫핫핫… 고마워. 그럼 소식 기다리고 있겠어.”
고맙긴 지랄이, 후… 서드 씨의 의뢰랑 병행할 수 있다면 병행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고보니 그게 누군지도 안 물어봤군. 나는 나가려던 중에 뒤돌아보며 그에게 그것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엉? 광기의 기사단 2석이었던 수배범이면 유명해서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긴 헌터여도 정보의 차이는 있겠지. 그 녀석의 이름은 로지칸. 자기의 기사단장 외에는 이긴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강한 사내지.”
로지칸이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긴 한데… 역시, 모르겠다. 그냥 돌아가서 찾아봐야겠어. 다른 녀석들이랑 상담도 해 봐야겠고…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지금 당장 하기에는 너무 귀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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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관에서 마시는 술맛은 정말 죽이는군. 특히 다른 헌터들이 없는 여관에서의 한 잔은 각별했다. 어제까지는 사람이 끝도 없이 많았지만 ‘트럼프의 살인귀’, 그가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헌터들은 전부 자신이 원래 노리던 ‘사냥감’을 찾으러 아침부터 분주하게 활동을 시작했다. 그 많던 헌터들이 사라졌으니, 이 여관도 조용해질 수밖에 없지. 나는 술을 한잔 기울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점점 헌터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며, 조용한 분위기도 점점 사라져갔다.
“슬슬 방에 들어가 있지. 늦게 들어올 게 확실한 둘을 기다리느니 방에서 기다리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오는 케라르와 말다툼을 하고 있었기에 그럴 정신이 없었기에 레아가 그녀를 대신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졸리는군. 잠시 방에서 낮잠이나 잘까? 할 거라고는 기다리는 것 말고는 눈곱만큼도 없으니 어쩔 수 없나. 나는 날개를 펴며 기지개를 켰다. 그러고서 방에 가서 문을 열며 혼잣말을 했다.
“후… 한 것도 없건만. 괜히 힘이 다 빠지는군.”
나는 목을 풀며 침대로 향했다. 침대에 앉은 뒤 머지않아 그대로 드러누웠다. 나는 이불도 덮지 않은 채 침대 위로 올라가 베개를 벴다. 이유 없는 피곤함이 온몸을 덮쳤고 나는 그대로 잠에 빠졌다. 내 몸은 끝도 없는 어둠 속에 빠져들었고, 그곳에서는 나의 눈만이 제대로 기능했다. 나는 눈을 뜬 채로 몇 번이고 본 광경을 계속해서 보게 된다.
푸슉!
용종의 형체를 한 그림자가 꿰뚫린다, 베인다, 점점 부서져만 간다. 그러다 결국 그 모습에서는 날개가 뜯겨나간다. 검은 날개는 먼지처럼 흩어지며 결국 재로 변했다. 그리고 그림자의 눈이 있어야 할 곳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그 피눈물과 함께 쓰러진 그림자는 바스러지며 사라졌다.
“란…”
오래전 죽은 내 친구의 이름을 나지막이 입에 담는다. 추방된 나의 친구, 이해자, 절친. 란. 누구보다 내가 그리워한 내 친구… 나는 손을 뻗어 그 재를 붙잡기 위해 손을 계속 뻗었지만 이미 재가 되어버린 것은 잡을 수 없다. 손을 더 뻗을수록 허망함만이 물처럼 차오른다.
“젠장…”
나는 손을 펴서 허망함을 삼켰다. 눈을 감았더니 눈물이 차오르며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나는 땅을 치며 절규했다. 땅을 치고, 바닥을 뒹굴며 머리를 땅에 받았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지만, 아픔 따위는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이미 나는 슬픔에 젖어있었다. 몇 시간을 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정신을 차리자 침대에서 떨어져 있었고, 양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런… 내 머리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 모양이군. 벌써 몇천 년이 지난 일인데. 아직도 몇 번이고 꿈에 나온다. 그가 내가 입은 부상 때문에 분노하여 전장으로 향했고… 나는 그저 그가 협정을 어겨 추방당했다는 것을 들었을 뿐이다. 지금은 아닐 거라고 하기도 힘들지만, 그 때의 규율 위반은 날개를 뜯은 채로 추방하였으니… 그가 어떤 꼴이 되었을지는 뻔했다.
“후… 안 되겠네. 씻어야겠어.”
나는 샤워실로 향했다. 옷을 벗은 뒤 샤워실에서 물을 틀고, 몸을 씻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팔에 붙은 얼음을 발견했다. 자는 사이에 능력을 썼나? 나는 그 얼음을 떼고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젠장. 나는 그것을 부숴버리며 다시 씻기 시작했다. 손에서 조금 피가 났지만, 별 신경 쓸 정도는 아니군. 몇 시간이나 잤으니 슬슬 내려가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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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왜이리 적는 맛이 안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