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어: 테스형, 피, 내장, 학살, 나이트봇, 쉬운 글이 좋은 글, 면도칼, 알든 말든 내 멋대로 쓴다, 민생당,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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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무언가를 주웠다. 공책 표지에는 Death Note라고 적혀 있었다.
잠만, 데스노트? 내가 아는 그 데스노트가 맞는 건가?
바로 공책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이 노트에 이름을 쓰면 그 사람이 죽는다고 나와있었다. 내 짐작이 맞은 것이었다.

누구의 이름을 쓰지? 모르겠다. 나는 야가미 라이토도 아니고 정의의 사도가 되리라고는 생각치도 않는다. 그래, 알든 말든 내 맘대로 쓴다.

우선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 자를 쓰자. 누가 있지? 그래, 요즘 뉴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사람. 그 사람이면 되겠다.

펜을 들어 이름을 썼다. 펜촉의 검은 잉크가 종이에 스며드는 때마다 나는 희열을 느꼈다.

'조두순'

이것이 내가 쓴 이름이었다.

바로 텔레비전을 틀어서 뉴스 채널을 켰다. 분명 이 데스노트가 진짜라면, 조두순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흉악범이었기 때문에 곧바로 뉴스 속보가 뜰 것이었다.

잠시 기다렸다. 1분, 2분이 흘렀다. 서서히 지쳐갔다.

5분쯤 되던 때, 뉴스 아래쪽에 빨간 바탕으로 속보가 떴다. 조두순이 피를 흘린 채 자택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타살이나 자살이 아닌 병사로 추정된다고 했다.

성공이었다.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사망 시각도 내가 노트에 이름을 쓴 시각과 같았다. 이 노트가 진짜 데스노트였다.


그러나 그 순간, 어디서 갑자기 요상한 사람이 등장했다. 한 손에는 면도칼이 들려있었고, 피가 가득했다. 그는 창문을 갑자기 뚫고 들어오더니 면도칼을 나한테 겨누었다. 내 목 앞까지 순식간에 당도해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넌 뭐야?"

집안으로 침입한 이 미친 녀석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감정에 격앙되었는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한테 다짜고짜 소리쳤다.

"네가 뭔데 조두순을 가져가? 조두순은 내 거라고! 내가 아껴먹으려고 얼마나 기대했는지 알기나 해?"

당황스러웠다. 이상했다. 이 새끼는 또 누구야?

"너 누구냐니까?"

"나는 데스노트의 플레이어 '김철수'다!"

"플레이어? 그게 뭔데?"

"뭐야, 너 모르는 구나?"

김철수가 뭔가 주저리주저리 말했다. 데스노트를 한 번이라도 쓴 자는 플레이어가 되고, 매년 죽인 사람이 가장 적은 플레이어는 사망한다는 것이다.

소름끼쳤다. 내가 갑자기 그 판에 휘말렸는 소식에 온 몸의 말초신경계가 나가 ㅈ됐음을 느꼈다.

"작년에는 민생당 당원이던 나이트봇이 죽었어. 데스노트에 이름을 5개나 썼는데도!"

일단 잠자코 들어보기로 했다.

"데스노트는 수량이 한정되어 있어. 근데 플레이어는 계속해서 늘어나지. 그리고 그 데스노트는 원래 내 거였다고! 그러니 그 데스노트를 다시 줘야겠어."

"뭐?"

본능적으로 데스노트를 품에 더 꽉 껴안았다.

"내장 한 번 꺼내져 볼래?"

김철수가 강제로 데스노트를 강탈하려 들었다. 그러나 나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동물적 육감을 총동원하여 데스노트의 일부를 뜯었다. 설명대로라면 데스노트 안의 종이는 무한대로 증식되기 때문에 공책을 찢어도 다시 재생한다고 했다.

"이런... 뭐, 상관 없나?"

바로 공책에 '김철수'라는 이름을 썼다. 저 미친 새끼에게 복수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경악할 일이 일어났다. 김철수가 죽지 않았다. 갑자기 왜?

"ㅋㅋㅋㅋ 그걸 진짜 쓰냐? 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면 바로 죽는데 누가 이름을 밝히냐? 그거 가명이야 ㅋㅋㅋㅋ"

아니, 이 무슨?

"그런 의미에서, 아무튼 네 집이니까 네 이름이 있겠지? 잘 가라."

ㅈ됐다. 바로 김철수와 실랑이를 했다. 김철수가 고꾸라지고 엎치락뒤치락했다. 면도칼이 내 팔을 베었으나 아드레날린 덕분에 아프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일단 살아야 했다.

김철수가 갑자기 씨익 하고 웃었다. 그렇게 사악한 미소는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내 이름을 본 것 같았다.

"자, 학살의 시간이다."

김철수가 바로 내 이름을 데스노트에 썼다. ㅈ됐다.

그런데 이상했다. 시간이 지나도 죽지 않았다. 뭐지? 무슨 일이지?

김철수의 표정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계속 시도해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뭔가 잘 안 풀리는 것 같았다.

"뭐야, 너 왜 안 죽어? 이름 류정남 아니야?"

생각났다. 나는 재일한국인이다. 본명은 야나기 마사오. 내가 재일한국인이라는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ㅋㅋㅋ 너도?"
"나도?"
"야, 나도."

그날은 테스형이 사무치도록 보고싶은 하루였다.


*****

"아 쓰기 귀찮다."

작가가 야나기 마사오라는 주인공의 이름을 밝히면서 말했다.

"몰라, 쉬운 글이 좋은 글이야. 설정은 아쉽지만 때려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