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관철하는 신념을 위해 목숨까지 내던지는 생물은 인간이 유일하다. 그 신념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특히 종교와 관련된 신념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죽음을 초월하는 경우를 자주 접할 수 있다. 현재 이 제국에서 일반적으로 믿는 종교는 주신 카알짐을 주로 섬기는 '알직교'이긴 하다만, 제국으로서 통일되기 이전에는 다른 종족들이 각기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제국 통합으로 인하여 인간이 믿는 알직교를 반강제적으로 전도가 되면서 일어나는 각종 테러나 시위에 상당히 오랜 시간 진절머리를 느꼈던 역사가 있었다. 누구는 단식 투쟁을 하는가 하면 테러 시도까지, 종교적 죽음은 결국 신념만으로 자신의 삶까지 희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종교 간에 속해 있든 차이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종교적 죽음에 대해 딱히 큰 생각을 가진 적은 없다. 자신의 종교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행위가 테러로 이어지더라도 어느 부분에서는 실로 고결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라면 그런 행동 총으로 협박해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말한 것들은 전부 자신의 의지로 인한 것이었다. 타인의 의지가 아닌 자신이 원해서 한 것들이었다.


은사의 병원에서 잠깐 지내던 시절의 일이었다. 그 날은 그다지 춥지도 않은 날이었는데 유난히 바람이 창문을 눈과 함께 사정없이 두둘기던 날이었다. 집 안에서 볼 때는 매서운 날씨인가보다, 생각하고 목도리에 귀마개에 단단히 챙기고 나갔더니 병원에 도착할 쯤에는 땀을 뻘뻘 흘렸고 손에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고 맵시를 정돈하고 나오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는데 벌써 소란스러운 상황이 되어있었다.


간호원 하나를 붙잡고 물으니 보호자가 오직 나만이 환자를 담당해달라는 이유로 치료 받기를 거부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의아해하며 헐레벌떡 뛰어가니 그곳에는 거의 전신에 극심한 화상을 입은 환자와 나를 보더니 구세주를 본 듯 뛰쳐나오는 보호자가 있었다. 어째서 다른 의사들에게 진찰조차 받지 않고 나를 찾았냐는 물음에 그녀는 진찰을 받아봐야 똑같은 대답만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녀가 열심히 열변을 하는 내용을 들으며 환자를 번갈아보는 것으로 알아낸 내용으로는 환자는 몸에 불이 붙어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기적적으로 살긴 했지만, 실상은 그저 살아있기만 한 시체에 가까웠으며 이대로 두면 고름으로 썩어 문들어지기때문에 전에 만난 대부분의 의사들은 몸에 맞는 인공피부로 몸을 덮고 안정화되면 차후 인공피부에 마나회로를 덧씌우는 방법을 제시했지만 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이곳저곳 돌아다녔다는 것이었다. 나는 보호자를 등 뒤로 하고 환자를 훑어보았다. 자세히 볼 수록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군대군대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있었고, 악취가 이미 온 방을 가득 채웠다. 이젠 피부를 붙이는 방법도 통할지가 의문일 정도였다. 환자가 샤티로스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죽어마땅한 상황이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힐을 사용하실 줄 아는 유일무이한 의사라고 들었습니다. 선생님이라면 힐로서 해결해줄거라 믿습니다. 저는 이 인연을 주신님의 인도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녀를 보니 크리스마스날 묶여있는 선물보따리를 처다보는 아이가 생각났다. 하지만 나는그녀가 보았던 다른 의사와 같은, 아니 어쩌면 이제 그런 회복의 기미조차 거의 없다는 말을 해줄 수 밖에 없었다. 기대가 가득부푼채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힐이 그렇게 대단한 힘을 가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마법사들은 힐을 만능인 것처럼 선전하긴하다만, 실제로는 해당 부위를 과속화시켜 강제적으로 세포의 활동속도를 폭주시키는 것 뿐이었다. 그렇기때문에 그저 빨리 늙는 것뿐인데도 가벼운 상처들은 순식간에 회복되는 착각에 들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단순히 자연회복이라는 점에 있다. 뼈까지 들어낼정도의 화상에는 자연치유고 뭐고 허무맹랑한 소리다.

샤티로스들은 자체적인 회복력이 매우 뛰어난 종족이기때문에 힐로 대부분의 상처가 치료되긴했다. 그래서 대부분 샤티로스들은 '다쳤을때 힐을 사용하면 된다.  나약한 다른 종족들만이 의술에 의존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믿는 종교에서부터 영향을 미쳤다. 그렇기에 여기까지 상황이 온 것이었다.


나는 여러 논리적 근거로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지만 최후에 그녀에게 들은 말은 '역겨운 알직교 새끼들'이였고, 살아있는 시체를 마차에 조심스럽게 태우려는 뒷모습이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뒤로 그 샤티로스 가족의 소식을 전혀 전해듣지못했다. 어쩌면 이후 곧바로 죽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모르는 또다른 치료 방법을 찾아서 해결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는 그 일을 돌이켜보는 것이 불쾌했다. 그들의 뒷모습에서 마지막에 본 것은 초점을 잃은 환자의 멍한 두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희망을 잃은 듯한 그 눈빛. 차라리 죽는게 낫다는 그 표정. 그저 내가 죄책감으로 빗어낸 착각이길 바랬다.


환자를 최대한 좋은 상황으로 이끌어가야될 의사로서 이런 이유로 치료를 거부해버린다면 나는 누구의 의사를 존중해야하는 것일까, 환자? 보호자?

정말 난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