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writingnovel/18957764


빛과 물. 필수적인 것들이 이타적인건 감사할 일이다.






벽이었던 것은 이제 문으로 변해 계속해서 빛을 토해나고 있었다. 나는 그 토사물에 뒤덮여 오도가도 못하였다. 고립되었다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나는 그 앞에 차마 등 돌릴 생각 못한 체 얼굴을 찡그리거나 손으로 작은 그늘이나마 만들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하얀 빛만이 보이고 있었다. 


문에서 내쫓겨진 구토물은 혼자 쫓겨난것이 억울한지 기어코 내 동자가 눈물을 뱉어내게 만들었다. 따뜻한 물줄기가 뺨을 스치며 떨어졌다. 순간 카밀라가 떠올랐다. 밤하늘의 별 같던 그 눈은 괜찮을까. 볼 수는 없더라도 들을 수는 있겠지. 옆에 있음에도 볼 수 없던 그녀를 향해 나는 소리쳤다.


"카밀라. 너는, 너는 괜찮니?"


그녀는 내가 들을 수 있는 가장 괴로운 답변만을 내놓고 있었다. 침묵이란 답변을. 내가 들을 수 있던 건 방금 말한 나의 질문뿐이었다. 그 누구도 답해주지 않음에 슬퍼하며 벽면을 두들기다 사라진 소리 말이다. 평소 같았으면, 아니. 아니다. 카밀라는 결코 타인의 부름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내 말에 답하지 않는다는 건 어떤 상황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점점 고요해지는 상황을 애써 무시하려 여러 번 그녀의 이름을 외쳐댔다. 달라지는 건 없었다. 말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결국 왼쪽 팔로 눈을 가리고선 오른쪽 팔을 길게 뻗어 그녀가 있다고 말해주는 머릿속의 그림을 따라 움직였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천천히. 홀로 떨어져 나간 카밀라가 괜찮은지 알고 싶었고, 더 이상 고립되어 남겨지는것을 원치 않았기에. 구두가 바닥을 가볍게 만지며 소리를 내자 손아귀에 부드러운 무엇인가가 붙잡혔다. 카밀라였다. 


또한 따스한 물방울이 내 손 등을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그녀는 고요하게 울고 있었다. 카밀라는 내 손결을 알아채더니 그제야 큰 소리로 울먹이며 외쳤다. 기이하게도 기쁨에 절여져 있는 목소리로.


"공비님. 공작님께서, 그러니까 저희 공작님께서 지금, 저희 앞에 와 계십니다."


몸이 얼어 붙었다. 소식도 없이, 얘기도 없이 그것도 이곳으로 그대가 왔단 말인가. 그 당혹스러움이 기쁨을 압도했다. 뭔가 잘못됐다. 무엇인가 그릇된 부분이 있었다. 머리를 얻어맞는 듯한 얼얼함이 점점 이상하게 변해갔다. 내 감정이 그랬던 것 처럼. 아니 그보다 더 카밀라는 기괴하게 뒤틀려 갔다. '아'와 '하'로 구성되어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선 점점 목소리를 키워나갔다. 


고개를 앞뒤로 흔들며 처음에는 몸을 경련하며 떨더니 이제는 제자리에서 뜀뛰기를 했다. 나는 카밀라를 붙잡던 손을 더 웅켜줬다. 저 공작이란건 내가 바라던 게 아니었다. 카밀라는 무엇을 보았는가. 확실한건 우린 여기서 나가야 했다. 


"카밀라. 이제 가자꾸나. 어서!"


등을 돌려 카밀라의 팔을 당겼다. 내 몸이 비틀거리며 쓰려질뻔했다. 카밀라는 망부석처럼 서있어 움직이지 못했다. 돌이 된 것처럼. 영원히 굳은 것처럼. 그저 카밀라는 그 자리에 멈춰있었다. 그러고선 내가 그녀의 팔을 잡고 당긴 것처럼 카밀라 또한 내 팔을 쥐고 강하게 당겼다. 이번에는 역으로 내 몸이 비틀거리며 끌려왔다. 그녀가 그토록 힘이 셀 줄이야. 


카밀라의 두 손이 내 팔을 붙잡음을 느낄 수 있었다. 팔이 비명을 지르며 내게 고통을 호소했다. 그 흐느낌에 따라. 나는 카밀라에게 소리치며 외쳤다.


"카밀라. 지금 뭐 하는 것이냐?"


"떠나지. 떠난다면. 떠나가신다면 안 됩니다. 공비님. 공작님께서 앞에 계시지 않습니까? 그분을 그토록 기다리셨지 않으십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저것은 공작님이 아니시다. 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게냐?"


카밀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발작하며 뛰놀지도 않았다. 억세게 동여잡은 내 팔을 가볍게 놓았다. 구두 소리가 부드럽게 들려왔다. 


옷 가락이 나풀거리는 소리가 풍겨졌다. 머리카락을 천천히 양옆으로 흔들어대는 것이 느껴졌다.

카밀라는 다시 입을 열었다.


"영구 대리 문서. 나, Il n'y a rien의 대 공작 엘리는 내가 성전을 나갈 동안 방치된 내 봉토의 모든 권리 행사를 이 문서의 소유자에게 맡긴다. 그는 대리인의 의무로 내 영지의 불임권 행사와 카밀라, 그리고 엘로이즈에 대한 권한을 가지게 될 것이다."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발음이 명확해 이해하기 쉬웠으나 어절 사이에서 느껴지는 규칙적인 끊김은 그 내용과 뭉쳐져 받아들이기는 어렵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가슴이 무너지는것 같았다. 


정녕. 저 괴상한 문서라는 것이 카밀라가 본 것인가. 그녀의 말을. 그 내용을 부정했기에 부신 빛을 힘겹게 뚫고선 카밀라의 시선을 따라갔다. 한 사내가 역광을 받고선 텅 빈 종이를 내밀며 웃고 있었다.


"저 종이에 의하여. 그분께서 하실 말은 전부 공작님의 말씀. 그분께서 하실 행위는 모두 공작님의 행동. 저는 공작님께 모든 걸 바쳤으니 제 모든 것도 전부 그분의 것입니다. 공비님 또한 예외는 아니십니다. 이제 문서를 보셨으니 공비님께서도 이해가 되십니까? "


"카밀라.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이냐? 저 종이는 비어있으며 눈앞 사내는 공작님도 아님과 동시에 그저 단순한 침입자이지 않느냐?"


카밀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선 내 팔을 강하게 잡고는 사내가 있는 공간으로 걸어들어갔다. 망설임도 없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저 끄덕임은 내 물음의 대답이 아니었구나. 내가 저항하며 외치고 소리침과 동시에 몸을 꿈틀거려도 오히려 그녀와 나와의 매듭은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내 구두가 끌리며 빛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었던 것이 다시 벽이 되었다.


"공비님. 공작님의 앞으로 가십시오. 공작님의 뜻이 그러하듯이."


+) 이번 거는 중간 점검 겸 하고 한번 낸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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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로이즈는 선택이라는 프랑스어에서 왔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