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호숫가의 통나무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통나무집의 소녀는 나를 이끌고 섬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저께 도시를 다녀온 이후로 나는 가벼운 감기를 앓았고 꼬박 하루를 누워 있어야 했다. 조금 몸이 괜찮아져 통나무집에서 빈둥대자, 소녀는 어디 놀러가고 싶은 곳이 없냐고 내게 물었다. 내가 ‘잘 모르겠는데’ 말로 우물대자 소녀는 어시장에 가 보자고 말했다.

 

나는 소녀와 함께 항구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이번에는 안 걸어가요? 밤하늘 좋아하잖아요.”

“멀잖아.”

밤하늘의 별을 세며 걷고 싶었다. 그러나 그 별들은 이미 죽어버린 지 오래라는 사실을, 나는 잊어버릴 수 없었다. 감기를 앓았을 때 그 사실이 자꾸 떠올라 자꾸 뇌를 파먹었다. 

 

작은 버스에는 관광객 두 명이 타 있었다. 그들의 행색은 화려했다. 도시에서 잔뜩 마지막 쇼핑을 하고 아마 항구를 통해 대륙으로 돌아가려는 참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는 생기가 없었으며 그들은 무척이나 지친 모습이었다. 버스를 가득 채운 탁하고 따뜻한 히터 공기를 쐬며 그들은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었다.

 

소녀와 버스 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소녀가 내게 창가 자리를 양보했다. 그러나 나는 밤하늘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버스 복도 쪽, 그러니까 소녀 쪽으로 고개를 비스듬이 돌린 채 그녀와 잡담을 나누었다.

 

소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소녀의 아버지, 소녀의 할아버지, 통나무집,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크게 집중하지는 않았다. 둘 모두 두꺼운 옷을 껴입고 있었고 서로의 어깨는 좁은 좌석 사이에서 맞붙어 있었다. 나는 그저 내 어깨에 가해지는 소녀의 무게를 가늠하고 있었다.

 

따뜻했다.

 

버스가 항구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검은 바다 위 오징어잡이 배들이 저-멀리 수평선 가까이에서 빛나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하얀 들판이었다. 하아- 숨을 내쉬면 새햐얀 입김이 공기 중으로 떠나 올라갔다. 소녀와 나란히 해안도로를 걸었다. 버스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어서일까, 왜인지 모르게 따뜻했다.

“이 도로에는 열선이 깔려 있네요.” 소녀의 말.

아하, 그거였나 보다.

 

어시장에 도달했다. 양옆에 가게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었고, 그 위로는 여전한 밤하늘이 있었다. 나는 소녀와 어시장을 구경했다. 이색적인 물고기들을 보니 기분이 꽤 즐거워졌다.

나는 회를 좋아했기에, 소녀에게 회를 먹는 게 어떤지 물었다. 소녀는 좋다고 답했다.

 

깔끔한 횟집 하나를 골라 들어갔다. 청소가 말끔히 되어, 비린내가 나지 않는 곳이었다. 우리는 큰 수족관 옆 테이블에 앉았다. 수족관은 관리가 잘 되어 있어, 투명하고 푸른 물이 유리 너머로 생생히 보였다. 

 

횟감이 될 물고기들이 수족관을 영혼 없이 떠다녔다. 모둠 회를 주문하고 소녀는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한 뒤 자리를 비웠다. 나는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수족관을 바라보던 중, 어느 이름 모를 한 물고기의 텅 비어버린 눈이 내 눈과 마주쳤다. 물고기의 눈동자는 새카만 잉크를 찍어 놓은 듯 완전히 평평했다. 눈동자의 깊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실력이 없는 화가가 그려놓은 눈 같았다.

 

그 눈을 본 순간 나는 무시무시한 권태를 느꼈다. 죽어 버릴까, 죽어 버릴까, 나는 되뇌었다. 삶에 대한 강력한 싫증이 나를 휘감았다. 모든 것이 부질없었고 즐겁지 않았기에 그저 죽어버리는 것이 편안해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살고 싶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 갑작스레 찾아온 권태감을 물리치려 횟집에서 파는 싸구려 증류주를 시켜 마구 들이켰다. 증류주를 허겁지겁 마시는 나를 보고, 다시 돌아온 소녀가 나를 주정뱅이라고 놀렸다. 나는 술김에 웃었다. 알코올 덕분에 몸이 따뜻했다. 허무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정신을 조금 차렸을 때는 이미 횟집을 나온 후였다. 회가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소녀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눈길에서 소녀를 껴안고 있었을 뿐이었다. 소녀는 말없이 품에 있었고 내 시야에는 그녀의 정수리가 보였다.

 

여전히, 밤이었다.

 

많은 걸 사랑했어. 그러나 모두 날 떠났어. 그래서 나는 어떤 것도 사랑하지 않기로 결심했어. 그러자 다 허무해졌어. 무서워, 무서워. 내 입이 말하고 있었다. 허무해지는 게 무서워. 싫증이 나버리는 게 무서워. 나는 소녀가 나를 위해 슬퍼해주길 은근히 바라며, 나의 입이 말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 조금 덜 취했다면 아마 나는 말하기를 멈추었을 것이다.

 

소녀는 말없이 나를 부축하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내 눈에는 밤하늘이 가득했다. 밤하늘에는 내가 한때 사랑했던, 죽어버린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