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이 소설에는 종교적 소재가 들어갑니다.

중립을 최대한 지키고 논란이 될만한 내용은 최대한 배제할 예정입니다만,

혹여나 불편하시다면 뒤로 나가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미완성 표지)


***
-호기롭게 나선 것 치고는, 어려운 모양이네요. -

"...그러게."


돈, 옷가지, 먹을 것, 그리고 검 두자루를 챙겨서 급하게 나선 모험은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첫째, 산을 내려갈 길이 너무 험했고.

둘째, 산 바깥의 지리와 문화를 전혀 몰랐다.


"...소설에서 보면 주인공은 뭐든지 편하고 간단하게 해결하던데."

- 14살짜리가 그런 게 쉽게 되겠습니까? -

"...아니."


하아.

한숨과 함께 생각해본 결과.

어려운 게 당연했다.

보통은 강해져서 자신을 찾아오라는 부탁을 받았다면 받은 쪽에서는 자료조사가 우선이다.

떠난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부터 알아야 하니까.

하지만 소년의 과한 충동은 이런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일단, 산을 내려가려면... 마을의 어른들한테 끼여서 가야겠지."


에텔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결국 하나였다.

상행을 나가는 어른들의 일행에 끼여서 가는 것.

그렇다고 대놓고 나갈 수도 없으니 숨어서 가야 한다.

이것조차도 어려울텐데, 이 뒤는 어떻겠는가?


"그런데, 산을 내려가고 나면, 어디서 어떻게 지내지? 돈이 얼마 없는데?"

- ...그것도 생각 안한 겁니까? -


산을 내려갈 방법을 생각하자마자 난관이 또 생겨났다.

내려간 뒤의 생활은 어떻게 하는가?


에텔은 생각했다.

하나. 자신은 검을 배웠다. 하지만 대장장이인 히파이스가 가르쳐준 것으로는 다양한 상황을 대처하기 어렵다.

둘. 그렇다면 그 외에 할 줄 아는 것은? 잡다한 집안일이나 온갖 잡일은 할 줄 안다.

셋. 그럼 내려가서 자유노동조합에 등록하고 잡일 의뢰를 맡아서 하자. 방은 그 돈으로 한 곳 빌리고.


이 세 단계가 지금까지의 에텔의 생각. 하지만 생각할수록 녹록치 않을 것 같았다.

우선, 검 두자루가 문제였다.

프리미티브는 검사가 본다면 누구나 탐을 낼 물건이다. 그만큼 품질이 좋았다.

숨겨진 힘을 제하고도 그정도인데, 힘까지 알려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고 10번은 귀족들이 원할 듯 했다. 화려하면서도 동시에 품위가 있고 실사용도 가능할 정도니.

거기다 10번도 일단은 넘버즈다. 잘 느껴지지는 않지만, 어떤 힘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즉, 이 검들을 지킬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만 한다. 그게 아니면 모든 계획은 틀어진다.


"분명, 누나도 말했었지. 성장하라고."


그리고, 가장 마지막. 성장해서 자신을 찾으라던 누나의 말.

그 말에 따라 산을 나서는 건데, 잡일에 시간을 쓰게 되면 필연적으로 수련의 시간이 줄어든다.


"결국, 잡일로 먹고산다는 방법은 안되겠네."

- 그럴거라고 예상은 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그러면 사냥이나 전투밖에 없긴 한데... 솔직히 작은 놈들은 가능해도, 큰 짐승들은 무리란 말야."


에텔이 단독으로 사냥 가능한 짐승은 최대가 여우였다.

그 이상 커지기 시작하면 반드시 히파이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 짐승같은 건 상관 없습니다. 저를 쥐었다는 전제 하에 뭐든지 상대할 수 있을테니까요. -

"엥? 그게 무슨 소리야, 뭐든지? 멧돼지나, 호랑이나 늑대나, 그런 것도?"

- 제가 넘버즈의 필두임을 잊었습니까? -

"아."


생각해보니까 이 검들은 넘버즈였다.

검들을 지킨다는 생각에 급급해 생각치도 못했는데, 

넘버즈들은 한 자루가 도시 하나를 부수는 그야말로 신기였다.

하지만...


"그런데, 그런 큰 짐승을 사냥하려면 힘을 써야 하지 않아? 그러다 들키면 어쩌지?"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넘버즈가 강해도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강한 힘을 쓰다 보면 당연히 여파가 발생하고, 

그렇게 되면 검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눈치채고 탐내는 자가 생기리라.

그런 상황에서 에텔은 검을 지켜낼 자신이 없었다.


- 사냥 따위에 힘은 필요 없습니다. 짐승이 달려드는 앞에 뻗고 있기만 해도 됩니다만. -

"...그정도야?"


설마하니 갖다대는 것만으로 될까? 싶은 마음에 프리미티브를 뽑아들었다.

스르르릉.

매끄럽게 뽑혀 나온 칼날이 빛을 받고 빛났다.

에텔은 칼날을 나무를 향해서 겨누고, 힘을 주어 찔렀다.

그리고 다시금 실감했다.

넘버즈는 일반적인 무기의 상식을 초월한다고.


사아아악.

"......"

- 제가 뭐라고 했죠? -


두꺼운 나무줄기가 마치 얇은 종이처럼 손쉽게 꿰뚫린 것이었다.

뽑을 때에도 힘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작은 힘만으로도 프리미티브는 나무의 상흔을 더욱 키우며 빠져나왔다.


"...성능 확실하네."

- 타임 코스모스~ -

"뭐야 그건!?"

- 드립입니다. -


...어찌됐든, 에텔은 확신했다. 이정도면 사냥은 문제 없다고.

'여차하면 프리미티브를 함정에 설치하고서 짐승을 끌어들여도 되니까.'

안전하게 사냥할 꼼수도 떠올랐으니 더더욱.


"그러면... 사냥꾼 길드에 가입해도 되겠다. 노동조합도 일단은 가입해두는 걸로 하고."

- 사람을 상대하는 건 하지 않는 걸 추천하죠. - 

"사람은 왜? 수련하려면 그 편이 낫지 않아?"

- 그럴거면 검술 수련소를 가야죠. 왜 실전부터 합니까? -


에텔의 말문이 막혔다. 지극히 정확한 정론이었다.

내가 배운 검술의 원류는 어디까지나 도구를 이상적으로 다루는 것.

말 그대로 대장장이의 재주를 무기 쪽으로 옮긴 수준 뿐이다.

다른 존재를 죽이기 위한 다양한 꼼수나 몸놀림은 그 범위에 들어있지 않다.


"...그러면 목표는 일단, 사냥꾼 길드랑 노동조합 가입, 그 뒤에는 가진 돈으로 방을 빌리고..."

- 검술 수련소도 알아봐야죠. -

"맞아맞아, 검술."


어느새 대략적인 틀은 잡혔다. 

어른들의 상행에 몰래 끼여서 내려가고, 수련소랑 방을 찾고, 길드와 조합에 가입.


"그런데, 상행이 언제였지..?"

- ...대체 왜 그런 걸 이제와서 생각하는 겁니까. -



***

바스락.

내일 곧장 출발할 준비를 마친 마차가 나무에 묶인 채로 멈춰있었다.

그 마차의 옆 수풀에, 선명한 금발이 희끗희끗 보인다.


"설마 내일이었다니..."


하지만 별 수 있는가.

일단 타고 봐야지.

허락 안받고 몰래 타는거지만 뭐 어떤가.


살짝, 조심스레 발을 옮겨 마차에 오르자.

삐걱. 끼이익.

제법 큰 소리가 났다.


"흡!"


타탓, 괜히 겁먹고 급하게 발을 놀려서 마차로 들어갔다.

물론, 한밤중인데다가 이 산중에는 아카샤 가문의 인원 외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


"일단 인기척은 없고, 이제 몸을 숨기면 되겠네..."


에텔은 필요없는 헛짓거리를 반복하며, 괜히 힘만 빼다가 이제서야 은폐를 시작했다.

그래도 숨어가겠다는 생각이 괜한 건 아니었는지, 

주변의 건초들과 상자들을 잘 옮겨서 사람 한명이 누울 공간을 완성해냈다.


부스럭. 열심히 만든 공간에 눕고, 검 두자루를 가슴에 올린 채 천장을 바라보자, 문득 두려움이 느껴졌다.

시작도 안했는데 두려움을 느낀다는 게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무서웠다.

무턱대고 세상으로 나가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지낸다는 것 자체가.


"조용하네... 프리미티브, 진짜로 말 안하는구나."


프리미티브는 아까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검에게도 잠이 필요하다나 뭐라나.

솔직히 믿기지는 않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넘버즈가 그렇다는데 내가 뭐라고 해야 할까.


"...나도 이제 자야지."


이제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몰래 숨어들었으니, 상행이 안전하게 도착하기를 바랄 뿐.


...

......

에텔은.

잠들어버린 탓에.

보지 못했다.

프리미티브가 반짝이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 반짝임의 박자에 맞춰서,

자신이 변해가는 것을.




***

"자, 세이지. 해명해 봐. 어떻게 된 건지."


해리어 왕국의 왕성.

왕성의 한쪽에는 아득한 첨탑이 있다.

최초의 탑이라고 부르는 곳이자, 초대 해리어 국왕이 설치한 곳.

해리어의 모든 비밀이 잠든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그 첨탑의 꼭대기 위에서 왕을 향해 명령하는 한 여자에 비하면 탑의 가치는 빛을 잃는다.

왕성의 모두가 그녀를 주목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수뇌부는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차르르릉, 차르르릉.

그녀의 주변을 떠다니는 아름답게 반짝이는 검들.

그녀의 오른손이 굳세게 쥐고 있는 길다란 봉.

이것들을 종합하면, 저기 서 있는 여인의 정체는 하나밖에 없다.


"...히파이스 아카샤, 이게 무슨 일이지...?"


히파이스 아카샤.

현 대륙의 정점.

그녀가 해리어 왕성의 가장 높은 곳에서 모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커럽션이 날 찾아왔는지, 해명해보라고."

"...뭐?"


히파이스에게 지목당한 자, 세이지 해리어.

해리어 왕국의 현 국왕인 그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커럽션이 그녀를 찾아갔다니? 이게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무슨 소리인가, 커럽션은 우리 쪽에서 관리하고 있어. 네가 가장 잘 알텐데?"

"잡아떼시겠다고? 좋은 선택이 아닐걸?"


세이지는 얼굴을 찌푸렸다.

당연했다. 자기도 모르니까. 커럽션이 움직였다면 당연히 관리역으로 배정된 본인이 알게 된다.

그럼에도 히파이스는 커럽션이 움직였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의심가는 부분은 있지만, 설마 그랬을 리가.


"정말로 모르는 걸 어떡하라는 건가. 나는 진짜로 모른다."

"그래? 그러면 커럽션 책임자 불러와."


세이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시종을 불러 말을 전하게 했고.

잠시 후, 누군가가 세이지의 옆으로 나타났다.


"쟤가 커럽션 담당자냐?"

"...그렇다. 인듀어 크리시스, 공작이다."

"헤에, 되게 못돼먹게 생겼네."

"이게 웬 망발인가!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국왕을 협박한다니! 아카샤라도 해도 될 게 있지 않나!"


찌릿.

히파이스가 보내는 시선에 세이지는 움츠러들었다.

당연했다. 히파이스는 원한다면 나라를 부술 수 있는 괴물.

대항하는 건 옳지 않다.


철컹, 철컹, 철컹.

그 때, 히파이스가 쥔 봉에 이변이 일어났다.

주변을 떠돌던 검들 중 3개가 봉으로 날아들어 하나로 합쳐진 것이었다.

그러고서 나오는 말은 모두를 경악케 하기 충분했다.


"너였구나? 어떻게 왕의 감시권한을 피하고 암살자를 보냈대? 인듀어."

"무슨 헛소리냐! 암살자라니! 내가 그럴 이유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일동은 멍하니 주변을 둘러볼 수 밖에 없었다.

당연했다. 누가 믿을 수 있겠나.

공작가의 주인이 아카샤를 죽이려 암살자를 보냈다니.


"이 검이 증명해주고 있어, 알레테이아, 마아트, 에델린. 진실을 비추는 힘이 있지."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를! 검이 그런 힘을 지녔다니, 무슨..."

"호오, 넘버즈를 써본 사람이 그런 말을 하네?"


인듀어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커럽션을 써봤기에 너무 잘 아는 것이었다.

그걸 검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사실을.

진실을 비추는 힘이 있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리라.


"...심연보다 깊은 타락의 왕이여, 오라."

"크리시스 공작! 지금 뭘 하는겐가! 검을 집어넣게!"


인듀어는 들켰음을 느끼자마자 커럽션을 불러들였다.

옆에서 왕이 검을 집어넣으라 명령함에도 듣지 않았고.

검이 손에 쥐어지자마자 검을 통해 얻은 압도적인 힘으로 허공을 향해 도약했다.


쿠웅!

단번에 테라스가 부서지고, 단련된 거대한 육신은 허공을 지나며, 검은 휘둘러져갔다.

하지만.


"몇번이고 말하는데, 너네 대장장이 너무 얕본다니까?"


턱.

휘둘러진 검은 무엇도 해보지 못하고 붙잡혔다.

그리고, 각국의 수뇌들이 안다면 엄청난 공포에 떨 장면이 나타났다.


"무슨!? 왜 커럽션의 힘이 사라진거지! 뭘 한거냐! 천한 야장 년!"

"제작자가 그정도도 안해뒀겠어? 그리고, 천하다고 하는 거 좀 기분 나쁘니까, 내가 만든거 돌려받아야겠다."

"뭐라고!? 돌려받는다니!"

"000. [아카샤], 기동."


그 순간 찬란한 황금빛으로 빛난 강철봉, 아니, [000-아카샤]에서 엄청난 힘이 쏟아져나왔고, 그 힘은 커럽션을 완전히 감쌌다.

여기서 이어진 그녀의 말.


"제작자의 권한에 따라 명령한다. 커럽션에 대한 《압류》를 실행하라."


콰아아아아!!!

금색의 광채는 일순간에 걷혔다. 하지만, 걷힌 뒤의 모습은 결코 아까같지 않았다.

인듀어 공작이 쥐고 있던 커럽션의 손잡이가, 갑자기 그의 손을 빠져나온 것이다.


"아, 안돼! 이게 뭐야!!!"


커럽션을 다시 쥐어 보겠다고, 그는 손짓했지만.

결코 잡을 수 없었다. 어떤 형태로든 손이 엇나갔다.

그리고, 첨탑 꼭대기의 높이에서, 붙잡을 것도 자신을 지킬 것도 없이 낙하하게 된 그는.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이.


"자, 이걸로 끝. 앞으로는 간수 좀 잘해라."

"......"


세이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어떻게 커럽션이 자신의 감시에서 벗어났는지, 왜 잔혹한 수를 쓴건지 묻고 싶었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그녀의 강함과 두려움을 실감한 것이다.

특히나, 마지막의 그것.

넘버즈를 쥘 수 없게 만드는 금빛의 광채.

그녀에게 대항할 수단조차 소용없게 만드는 빛.

그렇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커럽션을 받아들고 들어가는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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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정보 - 넘버즈

1번부터 10번까지 존재하는 히파이스의 걸작.

각각 하나하나가 도시 하나를 단독으로 멸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현재 4개의 나라와 한 사람에게 2개씩 분배됨.

공개된 넘버즈 : 1번 프리미티브, 2번 커럽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