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이 소설에는 종교적 소재가 들어갑니다.

중립을 최대한 지키고 논란이 될만한 내용은 최대한 배제할 예정입니다만,

혹여나 불편하시다면 뒤로 나가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여전히 미완성 표지)



***

덜커덩. 덜커덩.

험한 산길을 내려가는 마차 두 대.

마차의 천막 틈새로 햇빛이 비치고,

그 속에서 화사하고 선명한 금발의 소년이 눈을 떴다.


"윽, 아으윽... 허리가, 허리 아파..."

- 모포라도 깔지 그랬습니까. -


아무 대책도 없이 튀어나가서는 마차에 자리를 잡고 누운 소년.

허리가 아픈게 당연했다.

하다못해 모포라도 깔고 검을 옆에 치웠다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포 한장도 없이 목재 바닥에 그대로 몸을 뉘이고, 심지어 검 두자루를 끌어안고 잤으니.

말해두자면, 검을 안고 잤다간 허리가 작살난다. 검은 베개라던가 그런게 아니다.


"맞아, 지금 몇시지!?"


품을 급하게 뒤지고 회중시계를 꺼내 열자, 이제 막 10시를 지나고 있었다.

이제 마차가 산 아래에 도착하기까지는 한시간 가량 남은 상황.

슬슬 몰래 빠져나갈 준비를 할 때다.


"슬슬 나가야 하는데, 어디쯤에서 빠져나가지?"

- 대충 30분정도만 지나서 나가도 될 것 같은데요. -

"그럼 그때쯤에 나가는걸로 하고, 천막을 좀 들춰둬야겠네. 알림도 맞춰두고."


사박 사박, 뚝, 투둑.

칼집으로 천막을 적당히 들춰내고, 판자를 조금씩 떼어내서 나갈 만한 틈을 만들었다.

회중시계에다 알람도 맞춰놓고, 에텔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제 나갈 준비는 됐고, 그러면... 프리미티브, 그동안 나랑 얘기 좀 하자."

- 어떤 얘기를 하실 생각이신지? -

"별 건 아니고, 너한테 어떤 힘이 있는지, 내가 그걸 얼마나 쓸 수 있는지 알아야 할 거 같아서."

- 좋습니다. 좀 늦긴 한 것 같지만, 정보 수집은 중요하죠. -

"..."


덜컹, 덜컹.

자리 형태를 조금 틀어서 앉을만한 자리와 프리미티브를 기대어 둘 자리를 만들고, 대화를 시작했다.


"일단, 첫째. 어떤 능력들을 지녔어?"

- 등록명으로 말하자면, 《있으라》,《심판》,《전지전능》이 있습니다. -

"뭐? 이름들이 하나같이 좀 거창한데..?"

- 넘버즈들은 다 이정도는 합니다. -

"...혹시 히파이스 누나는 마법사였어?"

- 이 세상에서 마법을 쓰는 존재는 초대 아카샤 한명 뿐이라는 건 상식이잖습니까? -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거창한 힘이 칼 한자루에 담겨있다니..."


뒤로 이어지는 설명은 더더욱 거창했다. 이걸 요약하자면...

있으라 : 물질에 대한 영향력 행사, 물질 재구축

심판 : 일정 범위 내의 모든 존재 공격, 준 즉사

전지전능 : 과거도 현재도 모두 알 수 있음. 미래는 제외.


"...왜 넘버즈 한 자루가 도시 하나를 부술 수 있는지 실감됐어."

- 그렇기에 더더욱 강해져야죠. 빼앗겨서 악당이 쓰면 어떡합니까. -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그 때, 회중시계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까 맞춰뒀던 30분 알림이 켜진 것이었다.


"아, 시간 다 됐다. 이제 나가야겠네."


바스락, 끼익.

거울로 바깥을 슬쩍 살피고, 사람이 없는 걸 확인했다.

그럼 남은 건 재빠르게 뛰어내리고 수풀 속에 숨는 것.

검 두 자루를 허리에다 질끈 묶고, 배낭과 주머니는 배 앞쪽으로 돌려서 매어서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서.

타앗! 에텔은 잽싸게 열어둔 틈으로 뛰어내리고는, 낙법을 시전해 소리를 죽이고 땅에 내려섰다.

역시나 경계는 없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지만, 아카샤의 일족들은 경계심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뭐, 대륙의 정점이 비호하는 가문을 건드릴 곳이 몇이나 되겠나 싶지만.


"후, 떨어트린 것 없고, 빼놓은 것 없고. 돈주머니도 배낭도 검 두 자루도 전부 있고."

- 잘하셨습니다. 그럼 잠깐 쉬다가 가면 되겠네요. -

"그래, 일단 잠깐 앉아있다가, 책이라도 읽으면서 갈까?"

- 그러시죠. 어차피 근처에 산적이라던가 그런게 있을리도 없고. -

"그럼 읽을 책을 골라볼까..."



***

저벅, 저벅.

사락, 사락.

찰강, 딸강.

어린아이가 흙길을 걷는 소리.

책 종이가 한장 두장 넘어가는 소리.

검 여러자루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

기묘할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소리들을 뿌리며 에텔은 길을 걷고 있었다.


"우리 얼마나 걸었지?"

- 한 시간 쯤 걸었습니다. 30분 정도 더 걸으면 목적지에 도착하겠네요. -

"뛰어가면?"

- 10분 걸립니다. -

"그러면 뛰자. 빨리 도착해야 여러가지 빨리 처리하고 자리를 잡지."

- 그러시죠. 그런데 뭔가 착각하시는 거 같은데, 저 검입니다만. 뛰느니 마느니 하는건 직접 하셔야죠. -

"아. 그랬지."


텁. 책을 덮어서 품에 집어넣고, 에텔은 뛰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훨씬 강해진 속도에 호응하듯이 굉장한 바람이 주변에 나부꼈다.


"우하하하! 시원하다아!!!"



***

"도착했네. 그런데 여긴 어디지?"


에텔은 드디어 가까운 마을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거기가 어딘지는 전혀 몰랐다.

이 대륙에서 여행자가 어느 지역이 어떤 나라인지 아는 건 꽤나 어렵다.

위대한 대마법사, 초대 아카샤의 대륙제패.

그 때 대륙공용어가 공식적으로 정해져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각 국가의 수도 근방으로 갈수록 방언 사용률이 늘어나 그때는 알기 쉬워지지만,

천축의 근처에서는 그런 건 없다. 어느 나라라도 공용어만을 쓴다.

물론, 그런 사실을 각국은 모두 인지하고 있기에, 이럴때는 각 도시의 시청을 찾아가서 팜플렛을 보면 된다.

하지만, 산속에서 살아온 14살짜리 소년이 그런 게 쉬울까?


"...물어보고 다녀야 하나?"


그렇기에 에텔은 조금 어긋난 정면돌파를 택했다.

근처에 보이는 노점상에 향해서, 주문표에 적힌 대로 주문하면서 여기가 어딘지 물어본다는 식이었다.

마침 바로 앞에 닭꼬치 노점이 보였기에, 에텔은 그리로 향했다.


"아저씨, 닭꼬치 하나 주세요. 큰걸로요."

"아, 그래, 꼬마 손님. 3 키플스란다."

"네, 여기요."


짤그랑. 구릿빛 동전 3개를 건네며, 닭꼬치가 익어가는 걸 구경했다.

그리고, 이제 거의 익었다 싶을 때 쯤, 본론을 꺼냈다.


"아저씨, 여기는 어느 나라에요?"

"응? 여기는 아우로라인데, 아, 설마 여행자니?"

"네, 일단은요. 지도를 안 챙기는 바람에 위치를 잘 몰라서요."

"이야~ 어린데 여행을 나서다니. 검을 멘 걸 보니까, 기사지망이니?"

"아, 네."


닭꼬치가 나오기까지 잠시 실없는 대화를 나누고, 사장님의 호쾌한 인사와 함께 다시 길을 나섰다.


"일단 알아낸 것. 여기는 아우로라고, 도시 이름은 블루 혼. 시청은 저쪽 방면이라..."

- 그쪽 분 말로는, 시청에서 팜플렛을 챙기는게 좋다고 했죠. 우선 그쪽으로 가도록 하죠. -

"그래, 그러려면 일단 또 걸어야겠네. 그리 멀지는 않으니까 한 5분 걸으면 되겠다."


저벅 저벅, 와작, 우물우물.

닭꼬치를 씹으며 주변을 둘러보자, 확실히 천축의 마을과는 다르다는 감상이 훅 느껴졌다.

천축에는 높아야 3층짜리 건물이었는데, 여기에서는 기본이 5층이었다.

5층 높이에 옆으로 길쭉한 건물에는 창문이 잔뜩 나 있었고, 때때로 5층의 거의 2배 가까이 되는 탑들도 보였다.

건물들에 쓰인 재료들도, 천축에서의 목재와 벽돌이 아닌 매끈해보이는 석재 비슷한 것들이 많았다.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아, 도착했다. 진짜 크네..."


정신없이 구경하며 걷다 보니, 어느샌가 시청에 도착했다.

커다란 간판에 '블루 혼 시청'이라고 쓰여져 있었기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시청은 특이하게도 다른 건물들이 없는 널찍한 공터 가운데에 있는 2층짜리 건물이었다.


홀린듯이 정문을 향해 걸어가자, 옆에 서 있던 한 기사분이 앞을 막았다.


"실례합니다. 시청은 무기소지 허가증이 없으시면 무기를 지니신 채로는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허가증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아, 네? 허가증이요?"

"없으시다면 무기를 여기다가 맡겨두고 들어가셔야 합니다."


에텔은 고민했다. 허가증은 뭐지? 무기를 맡겨야 한다고?

그랬다가 안좋은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만약 누군가가 검을 슬쩍하면?

온갖 망상과 공상이 에텔을 휘저었다.

그런 그를 구해준 건 옆에 서 있던 다른 기사였다.


"야야, 딱 봐도 어린애잖아. 암것도 모를텐데 그렇게 설명하면 어떡해?"

"규칙대로 했을 뿐이다."

"에휴, 이 꽉 막힌 새끼. 거기, 꼬마 손님?"

"네, 네!?"

"그 무기, 어디 맡기거나 하기 곤란한가요?"


끄덕끄덕.

말로는 하지 못하고 동작으로 긍정을 보였다.

그러자, 끼어든 기사 쪽에서는 미소지으며 다시 질문해왔다.


"우리 꼬마 손님은, 어떤 일 때문에 시청에 가려는거죠?"

"저, 이제 막 도착해서, 팜플렛을 챙기려고요."

"아, 그런 거였어요?"


기사는 살짝 허무하다는 듯이 웃어보였다.

그러고는 허리춤의 주머니를 뒤져서는 팜플렛 한 장을 꺼내서 에텔에게 쥐여줬다.


"자, 여기 팜플렛이요. 앞으로는 잘 알고 다녀요. 기왕이면 무기소지 허가부터 따고요."

"저기, 무기소지 허가란 건 어디서...?"

"저 옆에 기사사무소에서요. 저기서 허가 업무도 병행해요."


기사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며 손을 살짝 흔들어 줬다.

에텔은 그에 맞춰서 살짝 고개를 숙이고서, 팜플렛에 첨부된 지도를 보고 기사사무소를 향해 갔다.


"이건 몰랐네. 무기소지 허가가 있다니."

- 그렇다고 넘버즈를 떼어두고 다닐 수도 없으니, 한시라도 빨리 허가증을 따야겠네요. -

"다 왔다. 들어가자."


딸랑딸랑, 기사사무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맑은 풍경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은 얼마 없고 한적했기에, 앞으로 가서 카운터의 의자에 앉았다.


"네,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저, 무기소지 허가를 받고 싶어요."

"...실례지만, 나이가 몇이신지?"

"...14살이요. 혹시, 나이에 제한이나 그런게 있나요?"

"네. 14세 미만은 허가를 못 받으니까요. 혹시 본인이 14세 이상임을 증명할 수단이 있으십니까?"

"아, 그거라면 여기에."


에텔은 품을 뒤져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고, 그 안에서 조그마한 쇠 카드를 꺼냈다.

그곳에는 생일부터 신체정보까지, 에텔의 온갖 신상정보가 적혀있었다.


"...네, 확인했습니다. 그럼 본인증명을 위해 앞의 종이에 식별문자를 적어주십시오."


사각사각, 식별문자를 작성하고 제출하자, 카운터의 직원은 금세 책자를 뒤적거리더니 어디선가 멈췄다.


"...특수, 아카샤 일족. 에텔 아카샤. 확인했습니다."

"아, 확인된건가요?"

"네. 이제 무기소지 허가증 발행을 위해서 어떤 무기의 허가를 받을지 여기 옆에 올려주십시오."

"아, 네."


철컥, 쿵.

프리미티브와 10번을 옆의 단상에 올려두자, 직원은 서랍에서 커다란 상자를 꺼내왔다.

그리고, 상자의 앞에 달린 둥그런 원통을 검들을 향하게 조준하고, 버튼을 눌렀다.


"네, 끝났습니다. 검들 챙겨서 가시면 되고요, 3일 뒤에 허가증이 완성될테니 그때 다시 오시면 됩니다."

"아, 네네, 감사합니다."


딸라라랑.

에텔은 검들을 챙겨서 사무소를 나섰다.


"프리미티브, 이제 머물 곳을 찾아야겠네."

- 그러게요. 적어도 3일은 머물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

"어디가 좋을지 봐야겠네. 무기 소지도 허락하는 곳이어야 하고."


에텔은 걸으며 생각했다.

처음으로 다른 나라로 내려온만큼 어려운 점도 많고 힘든 부분도 있었다고.

하지만 훌륭히 이겨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물론, 이제 겨우 한 걸음이지만.


꼬르르르륵.

열심히 걷던 에텔의 배에서 기묘한 소리가 났다.

현재 시각은 오후 2시.

점심시간이다.


"아하하, 일단 밥 먹을 곳부터 찾아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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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정보 - 아우로라

대륙을 나누는 4개의 왕국 중 하나. 동쪽의 왕국.

약학과 건축이 발달했다.

별칭은 탑왕국, 곳곳에 들어선 10층계를 넘기는 높은 건물들로 인해 지어진 별명이다.

특산품은 최고급 약재들, 석회, 점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