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파티는 전열에 용사인 한선아와 공작가의 여식이며 왕실 기사단의 차기 기사단장으로 꼽히고 있다는 레오나 중열엔 마탑의 유력자이자 차기 대마법사의 후보이며 상상과는 달리 몸에 마력을 두르는 형태로 근접전도 그리 약하지 않았던 벨리카 후열엔 자애로운 성품과 강건한 신앙으로 여신에게 선택받았다는 성녀 아리아가 위치한 파티였다.

 

그 파티에서 전투능력이 0에 가까운 나로선 그저 잡일들을 처리하는 일꾼에 불과했는데 그마저도 곧 내쳐지기 쉬웠다.

고된 여행에서의 쓸모없는 사람이란 평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다른 사람도 가능해지는 순간 내쳐지기 마련이었기에.

 

* * *

 

‘어째서?’

 

웃고 있지만 웃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표정으로 해맑음을 연출하며 나를 끌고 가려는 그녀의 모습은 이전 회차완 사뭇 달라서 이질감과 거리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잠깐 스쳐 지나간 생각으론 그녀도 나와 같이 회귀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으나 그럴 리가 없었다.

 

오히려 그녀가 회귀했다면 이전보다 더더욱 나를 놓고 가려고 했을 것이다.

 

처음엔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도 다른 파티원의 의견에 공감하여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나를 귀찮은 짐덩이 정도로 생각한 건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이 시점에서 나를 떨구고 갈 수 있다면 어떻게든 놓고 가려고 했을 터였고 내 머릿속은 난잡한 생각들이 이어지며 생각이 정리되지 않고 입 밖으로 무슨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치? 낯선 세계잖아... 앞으로 만날 모든 사람들이 이분들처럼 좋은 사람일 순 없으니까 우리라도 같이 있는 게 좋지 않을까...?”

 

“...”

 

“긍정이라도 봐도 좋은거지? 응. 그래야만 해 당연한 거잖아? 친절한 시우니까. 자 가자 갈 길이 멀어.”

 

어떻게 된 건지 지금 시점의 그녀는 원래라면 남에게 주도적으로 의견을 피력하기보단 남의 의견을 들어주곤 하던 유약한 느낌의 그녀였고 그랬기에 난 그녀를 따라나섰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내 의견을 듣지 않고 그녀의 주도적으로 나를 이끌려 하고 있었기에 계속해서 느껴지는 이질감은 복잡한 내 머릿속이 정리되는데 걸리는 시간을 계속 늘리고 있었다.

 

난 어버버 거리며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녀의 손길에 자연스레 이끌리며 맹수 앞의 소동물처럼 원초적인 두려움을 왠지 모르게 느끼며 조금의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녀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지금 걷는 길은 그녀가 걸었다는 흔적이 남은 길.

 

결론적으론 난 다시 그 역겨운 년들을 만나게 될 여행길에 오르고 있었다.

 

* * * 

 

처음 그가 사라진 후의 용사파티는 순조롭게 여행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가 파티 내부에서 맡았던 일은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잡일이었기에 그가 없다고 해서 심히 불편함을 느끼진 않았었다.

 

“짐덩이가 사라지니 이제야 마음이 좀 편하네~”

 

“벨리카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은...”

 

“괜찮지 않은가 아리아. 실제로도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니.”

 

유일한 남성이었던 그에 대해 경계를 하던 파티원들도 그가 없어진 것에 대해 반기고 있었고 나도 그를 휘말리게 한 죄책감은 있었지만 고된 여행과 돌아갈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는 감각에 예민해져 있었는지 그가 사라진 것을 봤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었다.

오히려 좋다는 감정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계속해서 이어지는 여행에선 그가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데 필요한 세 가지를 우린 의식주라고 정의한다.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휴식을 취할 장소.

 

그 세 가지를 우린 여행 도중에 들리는 마을의 유력자나 영지의 귀족에게 얻어가며 해결했는데 모든 사람이 우리를 그렇게 좋게 보진 않았다는 걸 우린 모르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가 그걸 가리고 있었던 것이리라.

 

몬스터들을 토벌하거나 철이 많이 생산되어 병장기를 만들어 공급해 부를 쌓던가 하는 등의 몇몇 귀족들에게 있어선 지금의 인간과 몬스터의 전쟁이 오래 지속 될수록 그들에겐 이득이었고 그들에겐 우린 눈엣가시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런 내부적인 사정을 우리가 알 수 있었을 리는 만무했다.

 

현대 시대에서 지내며 이쪽의 사정은 잘 모르는 나와 공녀라는 신분에 이런 차질을 빚을 일이 없었으며 무가에서 태어나 기사로 키워져 정치적인 것에 대해선 그리 잘 알지 못했던 레오나.

 

살아온 평생에 가까운 시간을 마탑에서만 지내온 마법사 벨리카 그리고 성녀라는 신분에 교황청 밖을 나갈 일조차 별로 없어 이런 일에 대해선 문외한인 성녀 아리아.

 

그 누구도 이런 협상을 진행할 사람이 없었고 후에는 그런 사실을 알았음에도 우린 각자의 위치와 신분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시선이 중요한 인물들이었기에 더 나아가선 그들이 재정이 빠듯하여 머무를 곳을 제공할 수 없다는 말을 해도 우린 조금의 항의조차 하지 못한 채 아주 잠깐 경유하고 다시 야영을 진행할 뿐이었다.

 

“나쁜새끼... 우리가 그렇게 도움이 안 돼도 데려 와줬는데 우리를 버리고 도망쳐?”

 

“쓰레기 같은 새끼... 돌아오란 말이야...”

 

제대로 된 의식주를 제공 받지 못한 우리는 오히려 멍청하게 그를 원망하기도 하고 그가 이런 소문을 어딘가에서라도 듣고 후회하길 바라며 여행의 진행 상황이 순조로운 것처럼 말하기도 했지만 되려 그럴수록 그의 필요성을 뒤늦게야 깨닫고 있는 건 우리였다.

 

뒤늦게 그를 찾기 위한 사람들을 뿌렸을 땐 그는 이미 행적이 묘연해진 지 오래였고 죽었다는 말까지도 들려오기에 결국 포기해버렸고, 지친 몸을 이끌며 전선을 돌파해 도착한 마왕성에선 우린 이미 엉망진창인 상태였기에 결국 패퇴했다.

 

그러자 갑자기 곳곳에서 들리는 그럴 줄 알았다는 질타 어린 말들 그가 느꼈을 감정이 이랬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금 그를 보고 싶다고 희망했다.

 

떠올린 과거의 그는 항상 나를 봐주고 있었고 나를 위해 따라나섰던 그 여행에서 그런 모욕을 당하면서도 오직 나를 위해 따라왔던 그였다.

그땐 그저 같은 세계의 사람이었기에 그랬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그가 가졌을 감정이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이미 여러 번 깨진 내 정신을 난도질하듯 뭉개버렸다.

 

나를 널 그렇게 사랑해서 따라와 줬는데 너는?

 

그렇게 힘든 일들이 있음에도 묵묵히 따라와 줬는데 넌 나에게 어떻게 행동했지?

 

‘아니야...’

 

너가 나에게 한 행동은 그저 날 짐짝 취급하다 버리는 일이었지.

 

‘아니라고...’

 

내가 너희에게 했던 헌신은 그렇게나 보답 받지 못할 일이었나?

뒤늦게야 알아선 후회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던가?

 

‘내가 그런 게 아니란 말이야...’

 

한심하긴.

 

‘미안... 미안해요...’

 

한가지 알려줄까?

 

‘제발... 그만...’

 

죽은 자는 말이 없어.

 

내가 아무리 너희를 원망한다고 해도 너흰 들을 자격조차 없겠지. 난 죽었으니까.

 

지금 내 말들은 전부 네가 죄책감에 듣는 환상일 뿐이야.

 

정작 현실의 죽어버린 나는 너의 사과도 듣지 못하고 원망만 하다 죽었겠지.

 

그런 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가 뭘까?

 

제일 잘 알고 있는 건 내가 아닌 너잖아?

 

“사랑해.”

 

머릿속에서 이어지는 그의 질타와 함께 마지막으로 그의 목소리와 함께 겹쳐진 채 들리는 사랑고백.

 

내가 그를 내치지 않고 곁에 두었다면 들었을지도 모르는 그 한 마디는...

 

“헤헤... 나도 사랑해 시우야...”

 

벌써 그의 환각을 보며 미쳐가는 조짐이 보이는 날 완전히 미치게 하기 너무나도 충분한 한 마디였기에.

 

푸욱-

 

미쳐버린 내가 마지막으로 한 행동은 그를 떠올리며 처음 그와 함께 있을 때 받았던 검으로 자결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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