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붕이는 나 어떻게 생각해?'


붉은 석양이 내려앉는 늦은 오후

창문 너머로 빨갛게 물든 하늘을 뒤로 하고 소녀는 물어왔다. 전혀 맥락이 없는 질문, 하지만 여느 때보다도 진지한 눈초리는 대답을 외면할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음...좋은 여자지? 뜬금 없는걸 물어보네'


'얀붕이 취향에 딱 맞는 여자지?'


말할 필요도 없다

얀순이는 그의 취향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한 여성이다. 상냥하고 시원스런 성격에 길게 늘어뜨린 포니테일, 항상 공통의 관심사로 이야기를 꽃피우는 귀중한 이성친구였다.


'점심시간에 말이야'


'..........'


'고백받았지?'


'...어'

얀붕이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할 수 있다


'뭐라고 대답했어?'


'고맙다고, 잘 부탁한다고...'


'왜...?'

떨리는 목소리

추궁하려던 눈동자엔 어느새 눈물이 걸려있었다.


'나 노력했지?'

대답할 수 없다


'너가 좋아해줬으면 해서, 열심히 했어?'

그녀와 마주볼 수 없다


'근데 왜...?'


얀순이는 완벽한 여자다

그의 취향만을 고려한 결론이 아니다. 그녀는 재색겸비란 단어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여성, 얀붕이가 탐하기에는 아까운 여자였다. 말 그대로 그림의 떡,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모습에 그는 열등감을 품고있었다. 나보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다, 나같은 놈과 엮이기엔 아까운 사람이라고


그녀는 비틀거리며 다가왔고, 곧 양 어깨를 붙잡혔다.


'나 원래 얀붕이가 알고있는 여자 아니었어'


얀순이는 웃고있다. 허나 그 표정에선 슬픔밖에 찾아볼 수 없다. 너무나도 공허한 미소, 흔들리는 눈동자는 이미 얀붕이조차 비추지 않는다.


'널 보고 첫눈에 반해서, 네 취향이 되려고 노력했어.'


눈을 질끈 감는다

이제와 떠올려보면 확실히 그녀의 첫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녀가 얀붕이가 바라는 이상의 여성이 된 것은, 왜 그 것을 진작에 눈치채지 못했는가?


'나, 이제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얀붕이의 마음에 들기 위해 지금의 날 만든거야. 근데, 너가 없으면 난 뭐야? 항상 얀붕이와 함께했어 근데 널 잃으면 어떻게 되는거야?'


그녀는 더 이상 무너져내리는 마음을 억누룰 수 없다. 비통한 감정의 격류는 폭포가 되어 눈물로써 터져나왔다.


'나 널 이대로 잃을 수 없어. 얀붕이가 필요해. 너가 내 곁에 없으면 날 유지할 수 없어. 죽은거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제발...'


얀붕이는 대답할 수 없었다

어떤 말을 전하더라도 그녀가 상처 입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얀순이는 미쳐있다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고백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얀순이의 얼굴이었다. 얀붕이는 틀림없이 그녀를 좋아한다. 하지만 맺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 결론이 얀순이를 향한 열등감의 발로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추잡한 이기심을 버리고 좀 더 자신에게 솔직했다면 그녀를 이렇게나 아프게 하진 않았을텐데, 얀붕이는 후회한다.


'제발 뭐든지 할테니까...좀 더 얀붕이의 취향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할테니까...절 버리지 말아주세요'


얀순이는 오열했다

붙잡은 양손에 힘이 들어가, 그는 더이상 도망치지 못한다. 얀붕이는 각오를 마쳤다. 얀순이의 마음을 받아들여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그가 깨달은 사랑과 죄책감은 영원히 짓눌러 그녀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게할 것이다.


슬픔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다가온다

그는 저항하지 않았다. 곧 부드러운 입술이 사랑하는 얀붕이의 입에 포개졌다

그들의 첫키스는 짭짤한 눈물맛이었다



써달라고 하려는데 생각난 김에 써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