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을 긁는 전자 알람시계의 기상 음악에 얼굴을 베게에 파묻은 채 한 팔을 알람시계가 있는 곳으로 뻗어서 시끄러운 소리를 끄기 위해 더듬는다. 그러던지 말던지 상관하지 않고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 시계를 끄기 위해 손과 팔로 감각을 집중시켜 망할 소리를 잠재우는 것에 성공했다. 


 잠 기운이 가지 않아 작은 신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려 좀 더 수면을 취하자는 욕심을 부리나 이후 옆에서 부스스 일어나는 한 여인의 달콤한 목소리와 슬며시 몸을 더듬는 손의 마찰에 눈을 뜰 수 밖에 없었다.


"자기, 아침이야. 일어나야지?"


 다정하게 귀를 속삭이지만 그녀도 아직 잠 기운이 남았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유치원생 아기들도 아니고 어른으로서 자신들을 기다리는 다양한 업무가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더욱 일어나기 싫지만 그 의무를 저버릴 수는 없기에 눈을 뜨는 둥 마는둥한 상태로 상반신을 일으켰다.


 전날 달콤했던 밤을 보냈다는 증거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이 줄무늬의 꼬리를 살랑이며 부스스한 모습으로 남성에게 잘잤냐는 인사를 나눈다. 그런 모습에 매력을 느낀 것인지 여인을 끌어안으며 다시 한 번 침대로 돌진한다. 놀라기는 했지만 그 행동에서 사랑을 느꼈기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관계를 가지지는 않으나 둘은 서로를 포옹한채 입술을 맞추며 침대 위를 뒹굴었다.


 둘이 연애를 시작한 이후로 서로간의 달콤함을 즐기면서 각자의 업무에 임할 때 불만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로도스 아일랜드 소속 박사와 용문 근위국 소속의 총경인 베아트릭스 스와이어. 이 연인들의 관계는 순탄했다.


 어떻게 서로 매력을 느꼈었는지는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스와이어는 확실히 매력적이고 돈이 많았지만 박사는 그런 것에 관심 없었고, 박사는 로도스 아일랜드 기준으로 높은 직위임은 틀림 없었으나 스와이어는 그런 것에 관심 없었다.


 그저 서로라는 존재를 좋아한다. 라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를 그 이유를 알기도 전에 박사는 그녀에게 난생처음 고백이란 것을 했다. 기억을 잃었기 때문에 일단은 연애 경험이 아무래도 없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박사기에 어떻게하면 그녀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작전을 짜는데 능한 박사라도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법이었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고백을 하기 위해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전하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 돌려말하는 것보다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게 차라리 편하고 차였을 때를 대비해서 고통이 덜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긴장되는 고백 속에서 스와이어는 그의 마음을 받기로 결정했다. 


 냉철한 지휘관인 줄 알았지만 평소에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던 순박한 남성의 고백이 시너지를 더한 것인지 스와이어는 그런 남자가 자신에게 고백을 했다는 것은 무척이나 기쁜 일이었다.


 고백을 들었을 때 분위기니 뭐니 이런 이야기를 했지만 분명히 그때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천천히 관계를 진행하는 것보다도 그 자리에서 입술을 맞췄고, 머지 않아 몸에 관계를 맺은 것을 보면 진도가 빠름에도 풋풋한 관계였다. 그리고 그 둘의 관계는 사귄지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둘을 축하해주거나 부러워하는 한 편, 스와이어 말고도 박사에게 호감이 있었던 몇몇 오퍼레이터들은 둘의 관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잘 나가도 부잣집 따님인 스와이어를 이길 수는 없었는지 마음 아파하면서도 포기를 하거나, 둘의 관계를 보고 그저 자신이 느렸을 뿐이라며 인정하고 물러가는 경우도 있었다. 어찌 보면 운이 좋을 수도 있었다.


 결국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알아주는 커플의 탄생이었지만 '사생활'이라는 이유로 공적인 곳에서 애정행각만 벌이지 않으면 모두 상관 없다는 눈치였다. 실제로 그 둘도 그런 것은 누구보다도 잘 지키는 중이었다. 물론, 타오르는 사랑을 어떻게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던 지라 잠시 공적인 자리에서 둘이 보이지 않는다면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다.


 이제 다시 공적인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둘은 옷을 갈아입었다. 박사는 늘 입는 로도스 아일랜드의 코트와 스와이어는 격식 있는 제복. 매일 보는 옷들임에도 그 옷을 입은 대상을 사랑하기에 상관 없었다.


"그럼 다시 일하러 가볼까. 아, 스와이어 오늘은 근위국쪽으로 간다고 했지?"

"맞아. 아마 2주 정도 걸릴거야."


 사랑하는 사람과 하루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데 근위국에서의 용무가 있다는 이유로 몇 일 동안은 로도스에 올 수 없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원래 로도스 소속이 아니니 이게 당연한 상황이겠지만 더 멀리 생각하면 용문과 협력 관계가 끊어질 때 스와이어와 강제로 헤어질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는 현실을 생각하면 괜히 고백한 게 아닌지 후회가 되기도 했다.


 원거리 연애도 가능하면 가능하겠지만 모처럼 사귄 연인을 그런 식으로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협력 관계는 유지될 것으로 보였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용문에서 리유니온의 공격을 막아준 대가를 생각하면 용문쪽에서도 로도스 아일랜드를 쉽사리 처낼 바보들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면, 다녀올게. 저녁에 꼭 전화할테니 놓치지 마?" 

"걱정마. 일 있어도 받을테니까."


 가볍운 쪽 키스와 허그를 해준 뒤 스와이어와의 잠깐의 작별을 고했다. 키스도 하고 허그도 했지만 아쉬운 듯 계속 뒤를 돌아보며 걷다가 헛발을 디뎌서 넘어질뻔 해서야 몸을 돌린채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늘 입은 코드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한 번 깊게 숨을 내쉬었다. 완벽해 보임에도 저런 허당스러움이 스와이어의 매력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하며 박사도 로도스에서의 업무를 위해서 집무실로 향했다. 


 허전한 집무실에 들어서면 외로운 남자를 위해 배웅하는 평소처럼 쌓여있는 서류 산더미만이 반길 뿐이었다. 어서와, 일해야지? 라고 말하는 처리해야할 서류를 보면 한숨이 나오나 마중까지 해준 스와이어를 떠올리며 힘내기로 했다. 서류가 많은 것도 그때까지 애인 없는 켈시가 괜히 심통 부린거라 착각하며 서류 내용을 대충 확인했다.


 지금 시간으로는 아침식사 시간이지만 아침 식사를 잘 하는 편도 아니었고 지금이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스와이어가 건 전화를 받을 시간도 없을지도 모르기에 펜을 잡고 서류에 싸인을 시작했다. 각종 결제할 서류, 로도스 아일랜드와의 협력하는 외부 세력과의 복잡한 내용의 서류. 늘 읽는 것들이지만 하품만 나오는 일상이다. 


 그럼에도 차라리 이런 일이 더 나았다. 긴장을 감출 수 없는 전장에서는 하품은 커녕 여유 한 번 부리는 순간 모든 게 끝이니 말이다. 하루 빨리 광석병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 감염자, 비감염자로 구분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만 머리속으로만 상상할 뿐이었다. 기억만 잃지 않았다면 조금이라도 진전이 있었을까? 


 업무와 상관 없는 잡념이지만, 현실로 돌아와도 씁씁할 수 밖에 없는 점이다. 광석병이란 것이 발견되고 시간이 그렇게 흘렀으나 의료 기술의 발달 속에서도 광석병에 대한 연구는 제자리걸음이니 말이다. 로도스 아일랜드에서도 완화가 가장 최신 기술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러한 기술력도 여러 곳에서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것 치고는 로도스 아일랜드의 취급은 크게 좋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어중이떠중이 취급하는 한 편 로도스가 가진 기술력을 탐내서 빼앗으려 들려는 곳도 있으니 조바심이 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해야할 일을 할 뿐이었다. 본래 로도스의 목적인 감염자 구호. 그리고 그들을 보호하며 그들과 함께 세상을 혼란에 빠트리는 자들과 싸운다. 지금 당장에도 박사는 서류 작업이라는 단순하지만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나저나 오늘 어시스던트는 누구였더라? 하고 컴퓨터를 틀고서 일일 어시스던트 목록을 살펴보고 있었다. 


 첸


 정확히 오늘 날짜 아래에 써진 이름이다. 로도스에 처음 들어온 오퍼레이터들이 다 그렇지만 첸도 처음에는 딱딱하게 굴었어도 최근에는 살가워져서 둘이서 술 마시러 놀러갈 정도로 친분이 생긴 존재였으니 업무 시간이 지루하지만은 않을테였다.


 다만, 요새 첸이 이상한 느낌을 준다는 오퍼레이터들의 보고가 있었다. 소문에 따르면 37세라 너무 늦으면 애를 못 가진다... 라는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 돌던데, 설마 그런 이유 때문에 그런 거라고는 볼 수 없었다. 대체 어떤 미친 놈이 첸의 나이가 37세라고 주장하는 건가? 


 혼자 고개를 저으며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부정하면서 최근 첸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소식에 집중하였다. 첸도 첸 나름대로 힘든 일이 있겠지만, 분명 고민이 있을 때는 이야기 해달라고 했을텐데 자기한테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 정도로 엄청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 슬쩍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비록 첸이 사무적이고 딱딱한 성격이긴 하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기면 그만큼 솔직해지는 사람이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아직도 박사가 첸에게 신뢰받는 사람이 아닌 것이라는 뜻도 되었다. 역시 씁쓸했다.


 오전 업무에 들어서기 전 박사의 업무용 컴퓨터를 틀어서 메시지를 확인했다. 로도스 아일랜드 외부로 일이 있거나 휴가로 인해 로도스 아일랜드를 잠시 이탈해서 생긴 변화에 대한 안내 메시지가 있었다. 그 안에는 스와이어도 있었다. 


 중요 업무로 인한 일시적인 용문 복귀. 스와이어의 로도스 아일랜드 이탈 사유였고 그 옆에는 기간이 적혀 있었다. 2주일. 그 동안 로도스 아일랜드에서 해온 일들을 생각하면 긴 시간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자를 보내는 기간 동안은 엄청 길게 느껴질 시간이겠다. 좋은 것을 기다릴 때 체감상 항상 오래 걸리지 않던가.


 그래서 스와이어가 돌아오면 작은 이벤트로 자기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갈 생각 중이었다. 여태 스와이어가 어마어마한 자본력을 가진 관계로 백이면백 스와이어가 식사를 사줬지만 그녀가 박사를 챙겨주는 만큼 박사도 스와이어를 챙겨주고 싶었다. 비록 엄청 좋은 곳은 아니지만 그녀와 둘이서 분위기 좋게 한 잔하고 그 뒤에는 호텔로 가서...


"실례하지."     

"어이쿠 깜짝이야!"


 맨 마지막 코스인 호텔로 간다는 음흉한 상상으로 넘어가기 직전 난입한 목소리는 박사가 수상한 생각을 하게 했다고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크게 놀라게 만들었다. 어시스던트로서 들어왔을 뿐인데 이 정도로 크게 놀랄 일인가? 


 적어도 오늘의 어시스던트인 첸은 그렇게 생각했다. 팔짱을 끼우고 도도하면서 약간 한심하게 바라보며 기묘한 포즈로 놀란 자세를 취하는 박사를 마주보고 있었다.


"어, 어... 첸씨 오셨군요?"


 존대를 쓰면서 어시스던트에게 인사를 한다. 입장상 박사가 일단 더 높은 직위이기는 했으나 로도스 아일랜드 소속도 아니고 협력하는 용문 근위국의 팀장에게는 서로간의 예의란게 있는 법이다. 스와이어의 경우 사랑스러운 연인으로서 부탁으로 편하게 반말을 쓰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침부터 좋은 상상하고 있었나보네. 그런 헤벌레한 표정이 어떻게 그런 지휘관의 모습이 나오는 건지 나원..."


 첸의 핀잔과 함께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외에는 별 일 없다는 듯이 어시스던트용 자리에 앉아서 보조해야 할 업무를 위해 챙겨온 물품을 책상 위로 올려두었다. 기껏해야 볼펜과 업무를 위해 가지고 다니는 소형 태블릿 PC였다. 주로 현장에 뛰는 역할을 하나 사무적인 업무를 해야하는 첸에게서는 그게 전부인 물품이었다.


 '그게 전부'라는 부분은 기존 여성 오퍼레이터들과의 차이에서 나오기 하는 말이었다. 종종 오퍼레이터들은 개인적인 물품을 가져오는 경우가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일이 없을 때 시간을 때우기 위해 가져오는 것이었다. 서포터 오퍼레이터인 안젤리나의 경우 한창 자신을 꾸미는 것에 관심 가지는 나이 답게 화장품등을 가져와 거울을 두고 시험을 해보거나 이스티나 같은 경우 책을, 슈바르츠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무기를 점검하는 식이다.


 반면 첸은 정말 업무를 위해 그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남을 때는 박사와 함께 사적인 잡담이나 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편이었다.


 박사와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고 하지만 사무적이고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첸이기 때문에 작전을 짜는데 있어서는 별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알다시피 전장에서는 상황에 따른 새로운 작전 루트를 짜야할 다양한 계획들이 있어야 한다. 허나 첸은 작전을 계속 수행해야 한다는 고집이 있기 때문에 마찰이 발생하기도 했었다. 이럴 때만보면 박사도 스와이어와 같은 면모가 있기는 했지만 적어도 박사는 스와이어처럼 고집을 부리거나 강행하는 게 아니라 첸을 '설득'하였다. 


 엄밀히 따지면 스와이어 기준으로는 답답한 첸을 자기 나름대로 설득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딱히 두드러지지 않아서 문제다.


"애인하고 사랑하는 건 신경 안 쓰지만 적어도 장소는 가릴 줄 알아야지."

"갑자기 들어오실 줄은 몰랐죠."

"난 벨 제대로 누르고 들어왔다. 반응이 없어서 그냥 들어오기는 했지만."


 업무실에는 벨을 누르면 업무실의 PC의 화상화면을 통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확실히 몇 초 전에 벨을 누른 기록이 있었다. 스와이어와의 연애에 대한 상상이 좀 지나쳤던 모양이다.


"뭐 됐어. 좋을때지."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첸에게 연애 경험이 있을 리가 없었다.








수정하면서 다음 타겟 고를까 하는데
이번에도 투표로 할지 룰렛을 돌릴지 고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