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쁘게 움직여야하는 사람이다.


딱히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서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원래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 단지 그것 뿐이였다.


난 원래 매연과 전자기기에 찌든 세상속에 살면서 단순히 취미라고 하기엔 조금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한 온라인 RPG 게임을 주고장창 해왔었다.


그래도 어엿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평범하게 돈을 벌고 살면서 딱히 특별한것도... 그렇다고 못난 것도 없는..... 거대한 기계 장치 속 수 많은 톱니 바퀴중 하나에 불과한 평범하고도 전형적인 삶이였지만 현실에 안주하며 나름 만족스러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여느때와 다름 없는 평일의 밤... 


그 날 이후 내 인생은 너무나도 꼬여버리고 말았다.


갑자기 내 몸을 감싸는 의문의 빛 줄기....


그것은 이내 내 시야를 가려버렸고 눈부심에 못이겨 눈을 질끈 감고 다시 떳을땐....



"......?"


나는 그 게임 속으로 전이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가 싶어 허둥되기도 하며 여기가 그 게임 속인줄도 모르고 어쩔줄 몰라 방황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여기서 지낸지 어언 일주일.... 적응하는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리게 되었지만 대충이나마 상황 정리는 하게 되었다.


역시.... 시간은 모든 문제를 해결주지 않지만 적어도 내가 겪었던.... 그리고 겪을 문제는 해결해줄것이다, 이것만큼은 확신 할 수 있었다.


정리하자면 나는 흔히 이세계 장르 애니 처럼 내가 평소 즐겨하던 그 게임속에 전이 된것 같았고.... 나는 땡전 한푼 없는 몸으로 이 곳에서 나가야한다.


나가는 법을 모르지만 어렴풋이 알 것같았다.


예상에 불과하지만 무언가 확신 할 수 있었다..... 아마 스토리를 전부 클리어 한다면 귀환할 수 있을거이다.


그리고 스토리를 전부 미는건 하나 부터 열까지 전부, 캐릭터 육성을 위해 평소에 항상 숙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최대한 빨리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내겐 돌아가야할 자리 있다.


물론.... 연인은 없지만.... 나는 모셔야할 부모님도 대학을 가야하는 여동생도 존재한다, 가족도 친구도 직장도 있기에 서둘러야 할 마음만이 있었다.


회춘한듯 한 10~15년 정도 젊어진건 조금 아쉽기도 하고 적어도 여긴 공기가 좋긴하지만.... 역시 인터넷에 물든 삶을 살아왔기에 전자파가 너무나 그리워진다.



두우우웅....


조금 허름하고 작은 신전의 문을 열어 젖힌다.


입구에 보이는 기둥에는 덩굴 같은것이 휘감겨져 있었고 누가보면 버려진 신전을 연상케 했다.



"앗...! 헤롤드...! 왔ㅇ.... 음.. 크흠...! 그래 나의 유일한 기사 헤롤드....! 내 친히 안부를 전한다!"


라고 말하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여신님.... 


내가 했던 게임은 조금 독특했다.


흔한 중세RPG를 배경으로하지만 신의 종자라는 독보적인 시스템으로 한 때 인기를 끌었던 게임....


게임 내에는 신이라는 여러 NPC들이 존재하며 서약을 통해 그 신의 종자가 될 수 있다.


그 신들마다 서로 다른 서약의 증표를 몬스터를 통해 드랍하고 신에게 그 증표를 일정 갯수 공물로 받친다면 인연 랭크가 올라가며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인연 랭크가 높을 수록 더욱 값진 보상을 받으며 소모성 아이템, 희귀 장비나 그 신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마법등 여러가지로 받을 수 있었다.


지금 내 앞에서 서있는 한 소녀도 그러 했다.


보통 이 게임의 신이라면 설정상 왕도 곳곳에서 사람들에게 공물을 받으며 모셔지고 있는 존재이지만 내 앞에 서있는 여신은 달랐다.


"네... 기사 헤롤드.... 오늘도 역시 이 서약의 증표를 받치고자 역경을 해쳐왔습니다."


내 앞에 서있는 여신 이름은 엘레오나.... 초반 대살림 맵에서 숨겨진 길을 통해 만날 수 있는 히든 NPC 같은 존재였다.


"오오...! 역시 내 유일무이한 기사답군! 오늘도 그대에게 보상을 주겠노라!"


신들 사이에서 얼빠지고 무능력해서 항상 도태되고 왕도에 머물 자리 조차 받고 못하여 사람들에게 마저 평판이 좋지 않아 완전히 잊혀져 버렸다는 비운의 설정으로 찾기 힘든 이런 외딴 숲에 은거 중인 여신이였다.


하지만 그에 비해 그녀에게 공물을 바쳐 얻는 보상은 그야말로 밸런스 붕괴.... 따지고 보면 상당히 초반 구역에서 얻는 마법과 장비인데도 스토리 엔딩까지 쓸 수 있는건 물론 PvE 보스 레이드나 PvP에서 까지 유저들 평가 기준 항상 상위권을 유지하는 그야말로 사기 아이템만 수두룩 했다.


실제로 커뮤니티에선


'아니 엘레오나 이 년 사실 힘 숨기고 은거 중이였던거 아님? ㅋㅋ'


'엘레오나가 왕도에 등장하면 사람들 다 공물 바쳐서 자기들은 못받을것 같으니까 신들이 왕따 시킨듯 ㅋㅋㅋㅋㅋ'


같은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히든 NPC가 밝혀지고 나서 사람들은 계속 주구 장창 엘레오나에게 공물을 받치기 급급했던 시기도 있었을땐 '이 정도면 왕도에 있는 신보다 공물 많이 먹은듯 ㅋㅋ' 같은 글이 자주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게임은 게임이다 보니 설정에 따라 그녀가 막 왕도를 이동한다거나 추종자가 많아 진다는 내용은 없는 것이 조금 아쉬울 뿐이였다. 


"자...! 태양의 힘을 무기에 깃들게 할 수 있는 마법서를 친히 너에게 내린다! 이것으로 너와 나는 인연이 더 깊어졌구나! 앞으로 잘 부탁한다..!"


환하게 미소 지어주며 내게 낡은 책 한 권을 건네주었다.


행동이나 대사 이 모든것이 게임에서의 모습과 일치 했다.


이 책을 사용해서 마법을 배우면 초반 보스 치곤 악랄한 피통으로 뉴비 재초기라고도 불리는 어둠 속에 사는 데몬을 쉽게 잡을 수 있다.


정확하게 어느정도의 서약을 받쳤는지는 몰라도 보상으 봤을땐 한 3단계 까지 온것 같았다.


1단계 부터 10단계까지 있으며 나는 6단계에서 서약을 끊어야 한다.


엘레오나 여신이 주는 보상은 10단계까지 전부 좋은 아이템이다. 하지만 그건 스토리 엔딩을 보고 난 후의 시점이지, 스토리만 민다면 6단계에서 서약을 끊고 다른 신에게 갈아타는 것이 효율 적이였다.


내 목표는 스토리상으로의 엔딩이기에 굳이 인연랭크 10단계 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다른 신들과 서약을 끊으면 아쉽다는듯 한 마디 내뱉고는 보내주지만 엘레오나는 설정상 여전히 사람들에게 잊혀져 살았기에 플레이어가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유일한 추종자이자 최후의 기사이였기에 서약을 끊을려하면 눈물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붙잡을려한다.


뭐... 시스템적으로 결국엔 끊기게 되지만.....


받을것도 받았으니 다시 파밍을 할려고 나갈려는 순간....


"저기...! 기다려보거라 나의 기사여...!"


신전을 나갈려는 나를 붙잡는다.


뭐지...? 기억상으론 이런 이벤트는 없었던걸로 기억하는데...?


"그.. 그게... 세삼 말하는거지만 너는 내 영원한 기사로 남아주겠느냐....?"


솔직히 조금 기겁하고 말았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난처해지기 시작 했다.


분명 게임에서 엘레오나는 떠날려는 플레이어에게 말을 거는 이벤트나 시스템은 물론 이스터에그 조차 없다.


물론 방금 말한 대사도 없어야 했다.


"ㄴ... 네...?"


당황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으며 확실치 못한 대답을 하자 엘레오나가 갑자기 불안한 표정을 짓더니 당장이라도 눈가를 적실것만 같았다.


"설마.... 나를 떠날건 아니겠지....?"


당황하고 말았다..... 어떻게 해야할까..... 


"당연하지 않습니까? 저는 당신의 기사, 언제나 여신님 곁에 있겠습니다."


대충 즉석해서 생각해낸 그럴싸한 변명을 당당한 말투로 말하자 안심한 표정으로 내게 생긋 미소를 지어주었다.


"아... 그렇군.... 너는 내 유일한 기사...... 그거면 됐다! 괜한걸 물어봐서 미안하구나!"


그 말을 듣고 나는 신전을 빠져 나왔다.


"내가 까먹고 있었나...? 이런 대사는 기억에 없었는데...."


하지만 생각해보니 어차피 NPC들이였기에 딱히 내색하지 않았다.


빨리 6단계를 달성하고 다른 여신과 서약을 맺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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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깨달았어야만 했다.....


게임 속에 있는 캐릭터를 보자니 내가 게임속에 들어와 있는것이고 여기 있는 사람들도 전부 NPC이다 라는 착각을 하고 말았다....


따지고보면 내가 있는 곳은 현실이다....


그렇기에 만나왔던 여러 사람들 역시 내가 NPC라고 오해한것 뿐.... 데이터 쪼가리가 아닌 어엿한 감정을 가진 생명들이라는걸 알았어야 했다.....

 

"엘레오나님...."


"하..... 오늘도 쓸데 없는 이야기를 하러 온것이냐?"


매서운 눈빛이 나를 쏘아보기 시작 했다.


그 눈매가 나의 몸을 관통하고 서리 바람이 휘몰아치는것만 같은 서늘함이 전신을 타고 퍼저나간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 듣는거지? 넌 나와 서약을 끊을 수 없다... 영원히...."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햇볕이 스며드는 따스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내게는 눈보라가 내리는것만 같았다.


"저는 더 이상 엘레오나님에게 공물을 받칠...."


"말했지 않는가? 이젠 공물 따윈 필요 없다고....."


"......."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생각해..... 생각해야해...... 빨리 그럴싸한 변명을 생각하라고....!


"왜 나를 거부할려는거지? 내가 너에게 모든걸 준다 하지 않는가?"


그러면서 내 앞에 마법서 한 권이 툭하고 떨어져 내렸다.


책 제목에는 종말을 내리는 검이라고 써져 있었다....


난 6단계 이 후 단 한번도 공물을 바쳐본적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레오나는 내게 보상을 계속해서 내려주었다.


 

인연 10단계 보상을 받은지 옛날 옛적이다..... 지금 이게 몇 번째 보상인지.... 이제는 게임 내에 존재하지도 않는 아이템을 내게 계속해서 내려주었다.....


무섭다... 겁이나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지금 인연 랭크가 어떻게 될까....? 애초에 그런걸 숫자로 표시하는 의미가 있을까....?


온 몸에 소름이 돌며 알 수 없는 공포감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싶다.


"엘레오나님...."


"이런데도... 부족해...?"


와르르륵...!!


무수한 희귀 아이템이 말 그대로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다....


아이템 하나 하나가 게임 내에서 현금 몇 십만원치는 훌쩍 넘는 귀중한 물건들이 언덕을 이루듯 쌓여가고 있었다.


"이러면 만족해?"


두렵다.....


"아니면 부족해?"


공포가 파도 처럼 몰려온다....


"자.... 말해보거라.... 너가 얼마나 욕심을 부리더라도 내가 채워줄 것이니...."


순진무구하고 청량했던 눈동자도.... 어느센간 탁해져 광기마저 느껴져 왔다.


"하지만..... 조심해야할 것이다...."


도망칠려 해도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아날 수 없었다.


"만약 너가.... 서약을 끊을려 하거나 날 떠날려 할려는 그 날에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우며 내게 선고 한다.


"영원히 이 신전에서 나갈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