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랑 만날 기회 없었단 거 거짓말이죠?”


에스코트 하나에 그런 결론이 나온다는 것에 억울했지만 별 수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 이지않은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에스코트가 능숙하다고요? 흐응…… 아닌거 같은데?”


정작 미래에서 했었다는 이야기를 해보았자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거늘, 입증할 증거가 없으니 모르쇠로 일관할 수 밖에 없었다.


“저는 그저 교육받은대로 했을 뿐입니다.”


사실 귀족들이 흔한 것은 아닌지라, 기사단장의 아들쯤 된다고 해서 그것이 귀족여성과 연이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까닭이었다.


누가 평민여성에게 에스코트를 해줄 것을 요구나 하겠는가.


“……미심쩍지만, 뭐 그런걸로 하죠.”


루나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 잠시 내 얼굴을 살피고는 이내 픽 웃으며 고개를 돌려 앞으로 향했다.


“감사합니다.”


그것은 넘어가준다 라는 느낌에 가까웠지만, 넘어가 준 그녀의 불문에 감사를 표했다.


그녀의 에스코트를 한 채 들어선 다과회 장에는 몇명의 영애들이 이미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최근 변경의 남작령 쪽에서 안좋은 일이 일어나셨다고 들었어요.”

“저도 소식 들었어요. 마물들이 습격했다지요? 다행히도 무탈했다던 모양이던데.”

“요즘 흉흉한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니 정말 큰일이네요…”


저들끼리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던 와중 누군가가 걸어오는 우리에게 눈이 닿은 건지 안 체를 하기 시작했다.


“그레이스 영애님이 오셨어요.”

“차기 후작님을 뵙습니다.”


제법 사교성도 좋은 첫째인 루나는 사교계에서 제법 촉망받는 여인이자 차기 후작이라는 위광도 등에 업고 있는 능력자였다.


“어머나, 이렇게 환대 해주지 않으셔도 괜찮은데… 무슨 이야기 중이셨던 건가요?”

“아, 그게 무엇이냐면요…….”


그녀가 이야기에 자연스레 끼어드는 동안 나는 호위기사들이 대기하는 곳에 눈치껏 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나의 발달한 기감은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


“그러고 보니 저 분은 처음 보는 얼굴이네요. 호위기사가 바뀌신 건가요?”

“네, 맞아요 영애. 새로 바뀐 기사랍니다.”

“미색이 무척이나 고우신 분인데 실력은 괜찮은 건가요?”


먼 발치에서 들려오는 여인들의 수다의 화제는 나에 대한 이야기로 일색이라, 전생에는 받아보지 못한 여인들의 관심에 낯이 조금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여러분들의 걱정은 감사합니다만, 그는 믿을만한 분이예요. 저희 영지의 기사단장님을 아시는지요?”


하는 행동이 괴팍해서 그렇지 아버지는 익스퍼트 최상급을 자랑하는 왕국의 몇 없는 실력의 인재였다.


“네, 그분을 어찌 모를 수 있겠어요? 왕국에서 수위를 다투실만큼 강인한 기사 분 이시잖아요?”


다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을 이끌어낸 루나도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분의 아드님 되시는 분이랍니다.”

“어머나… 듣기로는 아드님 분도 성취가 높다고 들었는데.”


눈이 화등잔 만해진 영애님들의 반응이 내 얼굴에 금칠을 해주는 것이라 무척이나 뿌듯했지만 그와 반대로 과한 관심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분이었다.


애초에 스텔라를 섬길 적에는 몇 년간 얼굴을 드러내놓고 다닌 적도 드물어 그때 가벼운 제복을 입은 채 경호하던 다른 기사들을 얼마나 부러워 했던지…


하지만 그녀들의 과한 관심이 부담스러워지던 찰나에 그녀가 손바닥을 짝 소리가 나게 마주치며 주의를 환기했다.


“자, 여러분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제 다른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제 기사가 많이 부끄러워 하는 듯 보이네요.”


그 말을 끝으로 저마다의 이야기들을 나누던 끝에 시간이 지나 다과회가 끝나고 루나 아가씨가 나에게 걸어왔다.


“경, 저희도 이만 가 볼까요?”

“예, 알겠습니다. 다과회는 즐거우셨는지요.”


그녀의 내민 손을 조심스레 붙잡고 에스코트를 하며 물었다.


그 말을 들은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주변을 흘끗 살피더니 내 귀에 입을 가져다 대어 작게 속삭였다.


“후후… 솔직히 말하자면, 경과 이야기 하는 것 보다 재미없었어요.”


귓가를 간지럽히는 얕은 숨결, 그녀의 체향인지 향수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달착지근한 향기와 함께,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며 자연스레 팔에 닿는 뭉클한 감촉.


‘크윽…’


심장이 펄떡 하고 뛰는 느낌에 헉 하고 숨을 삼켰다.


“그, 그그… 그렇습니까?”


당황한 나머지 말을 더듬는 나를 보며 무엇이 그렇게 우스운 지 쿡쿡 웃는 그녀.


“네, 그리고 하나 알겠네요.”

“무, 엇을 말입니까?”

“여성 분들과 깊은 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다는 건 정도?”


그 행동 하나로 그것이 다 드러나는 것 일까… 정말이지 놀라운 아가씨였다.


무언가 놀림을 받은 것 같으면서도 기분이 나쁘기는 커녕 가슴 한켠이 간질거리는 생소한 느낌이 낯설었다.


“자, 장난이 과하십니다 아가씨…!”

“장난이 아니면요?”

“……”


평소의 나른한 표정은 어디에 가고 눈에 가득 서려있는 것은 장난기.


장난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스텔라에게서 겪었던 일 들과는 정 반대의 종류의 것이라 무척이나 대응하기 곤란했다.


“후후… 장난 맞아요, 장난. 어쩔줄 모르는 표정까지, 이러니까 레이먼드 경이 더 재미있다니까요?”


시녀인 니나와도 합류한 후 다 같이 마차에 올라타 다시금 그레이스 가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어머, 글쎄 니나 아까 전에 말이지……”

“진짜요? 어떡해!”


저들끼리 꺄르르 웃고 떠드는 마차 안의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건 이것대로 힘들지도.’


과장 안 보태고 심력을 소모하는 것은 이제는 익숙해진 4년간 자신을 못살게 굴던 스텔라보다.


루나 아가씨의 짖궃은 장난이 더 곤혹스럽다는 것을 깨닫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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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아버지에게 말씀 드렸지만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의 의사를 존중한 것 뿐이라고…


생각해보니 이상하다.


최근 그의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소문이 퍼져왔다. 듣기로는 부단장과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굉장하다는 소문.


암만 미래가 바뀌었다 해도 깨달음의 정도가 있다.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을 볼 때면 늘 환한 미소로 맞아주던 자신을 만나기 전의 그의 미소는 온데간데 없고 의례상 짓는 웃음 뿐.


무언가 이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도출해낸 한가지의 결론.


‘설마 그이도 돌아온 걸까?’


어떻게든 마음을 전하겠다는 자신의 소원을 들어준 여신님 덕분에 과거로 돌아오기까지 했으니.


사과도 그에게 빌어야 맞는 것이긴 하다.


입으로 소리내어 다짐을 한다.

“이번에야 말로 꼭…!”





*어캐된게 강의 들으며 교수님 목소리를 ASMR로 듣고 있을 때 더 잘 써지냐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