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좋은 소꿉친구들 (9)

 

 

 

 

Side – 양미애

 

 

 

머리가 아프다.

 

요 며칠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자다가 깨고, 다시 잠들었다.

 

옥상에서의 대화 이후, 난 대체 어쩌면 좋을지 감조차 안 잡힌다.

 

사람의 마음이 수학처럼 식이 있는 것이었다면 얼마나 편리했을까.

 

“우애-”


방과 후, 나는 우애와 함께 집에 돌아가려고 그의 교실에 들렸다.

 

그러나 우애는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남자애들이었다.

 

“야 김우애, 너 이호린이랑 사귄다면서?”


“어? 아냐. 누가 그런 소리를 해?”


“다들 그러던데? 너랑 이호린이 며칠 전부터 사귀기 시작했다고. 근데 너네 맨날

 

붙어 다니잖아. 그 누구였지? 키 작고 파마한 여자애…….”

 

“양미애? 그 3반에 있는 이상한 애?”


“어, 그 녀석. 걔도 자주 붙어 다니는데 그럼 걔랑 사귀는 거야?”


“아니……우린 그냥 친구야. 이제 나 가도 될까?”


“근데 나 같으면 이호린이랑 사귈 듯. 양미애 걔는 좀 이상하잖아. 머리는 좋다던데.”


“종수 이빨 뽑은 사람이 걔라는 소문도 들었어.”


“에이, 그건 개소리지. 걔가 무슨 수로 종수 이빨을 뽑는데?”

“나 이제 갈게. 그리고 미애한테 그러지 마.”


우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남자애들을 제치고 교실에서 나왔다.

 

“어? 미애야,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던 거야?”


“아니……나도 지금 왔어. 저 애들은 누구야? 친구?”


“난 모르는 애들이야.”


난 우애를 따라 학교를 나왔다. 이호린은 오늘 촬영하러 가서 학교에 오지도 않았다.

 

“다른 애들은 널 이상하게 생각하나 봐.”

“……뭐, 그럴 수도 있지.”


어느 정돈 사실이니까. 난 이상한 여자다, 분명 그럴 것이다.

 

“저번에 나 때린 종수 말이야, 갑자기 전학 갔다는데 뭐 아는 거 있어?”

“잘 몰라. 사고로 이빨이 몇 개 뽑혔다는 건 들었는데.”


“대체 무슨 사고를 당해야 이빨이 뽑히는 걸까…….”


펜치로 이빨을 뽑으면 그렇게 되지. 이 말은 입에 담진 않았다.

 

“아참, 미애야. 너한테는 말해야 할 것 같은데…….”

 

“호린이가 너한테 고백했다고?”


“알고 있었어?”


“대강은.”


역시 했구나. 나는 뒤틀리는 입가를 숨기려고 고개를 숙였다.

 

“넌……뭐라고 대답했어?”


“일단은 거절했어.”


“왜?”


“난 이대로가 좋거든. 셋이서 친하게 지내는 거. 그게 내가 바라는 전부야.”


그럼 내가 없었다면?


나는 이 질문만은 하지 않았다. 그런 걸 질문하기엔 난 너무 겁쟁이였다.

 

“아참, 오늘 너희 집 동물들 구경하러 가도 돼?”


“응? 어어, 마음대로.”


“난 할아버지가 반대해서 그런 걸 못 키우잖아. 나도 뭔가 키워보고 싶은데…….”


“생각보다 되게 귀찮다니까, 이거. 넌 구경만 해. 키우는 건 내가 할 테니까.”


“고마워.”


우리는 버스에 올라탔다. 저 멀리 석양이 지고 있었다.

 

……고백이라.

 

그 때의 나였다면, 지금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날 비웃었겠지.

 

10년 전의 나.

 

우애와 만나기 전의, 나.

 

 

 

 

 

 

 

*****

 

 

 

 

 

 

IQ 152. 그게 내가 8살 때 받은 IQ 검사에서 받았던 점수였다.

 

날 때부터 머리가 좋았다. 한글을 다 배우는데 고작 2주일이 걸렸고 8살엔 이미

 

중고등학생용 문제집을 풀 수 있었다. 천재, 어른들은 날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난 한 번도 천재이길 바란 적이 없었다.

 

세상엔 멍청한 사람들만 잔뜩 있다.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유치원에 다닐 땐 다른 애들이 이해되질 않았다.

 

왜 고작 넘어진 걸로 엉엉 우는 거지?

 

왜 침을 질질 흘리면서 같은 말만 반복해서 하는 걸까?


왜 이렇게 쉬운 문제를 전혀 이해하질 못하는 거야?

 

7살 무렵,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다다랐다. 어른이고 아이고 모두 바보뿐이라고.

 

지루하고 지겨운 나날이었다. 부모님은 내가 적응할 수 있도록 애썼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역효과만 났다. 어느새 난 친구 한 명 없이 혼자 지내는- 흔히 말하는 ‘왕따’가 됐다.

 

“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는 걸까.”


아, 죽었다.

 

고양이가 부글부글 거품을 내뱉으며 늘어졌다. 아직 몇 방울 안 넣었는데, 너무 약하네.

 

얘, 이름을 뭐라고 부르더라? 아, 키티였나. 엄마가 화내려나. 아픈 건 싫은데.

 

나는 책에서 본 박제 만드는 법을 떠올렸다. 작은 동물로 박제를 만든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고양이는 처음이었다. 눈알, 내장, 근육 따위를 전부 적출하고 시체를

 

최대한 건조시킨다. 이 과정엔 몇 가지 약품을 사용한다. 취미로 개미집을 태우거나

 

들개를 독살시키는 것보다 더 건설적이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한참 하다가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셨다. 아, 생각해보니 이 고양이 엄마가 좋아하지 않았나?

 

“미애야, 또 집에서 박제- 너, 너……그거 뭐야. 왜 키티를 박제로 만들고 있는 거니?”


“실험 때문에 죽었어. 고양이는 내 생각보다 약하더라.”

 

“양미애! 너 또 동물은 죽인 거야?! 엄마가 그러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뭐 어때서 그래. 고양이는 또 구해오면 되잖아. 길에 널린 게 고양이라고.”


“키티는 걔 한 마리뿐이야!”


“다 똑같은 고양이일 뿐이야. 이게 죽어도 고양이는 얼마든지 있는걸.”


“양미-”


“시끄럽게 소리 그만 질러! 사람이든 동물이든 어차피 썩어 넘치게 많은데 뭐 이깟 걸로

 

그렇게 화를 내? 필요하면 다시 구하면 돼. 고양이 따윈 얼마든지-”

 

눈앞에서 별이 번쩍였다. 나는 곧 뺨을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너……너는 대체 뭐가 문제니?! 왜 이해하질 못하는 거야! 왜 생명을 해치면 안 된다는

 

걸 모르는 거야! 왜!? 제발 미애야, 엄마한테 이러지 마. 응? 이러지 마…….”

 

“…….”


왜 우는 거야. 자기가 때려놓고선. 엄마는 다른 사람들보다 그나마 똑똑하지만, 역시 바보다.

 

“생명이란 그저 세포의 활동일 뿐이야. 영혼이란 건 엄청 미약한 전기 신호에 불과해.

 

왜 사람들은 그딴 시답잖은 거에 집착하는 걸까. 난 모르겠어, 엄마.”

 

“미애야…….”


“됐어. 이젠 나도 질렸어.”


나는 엄마를 뒤로 하고 빌라를 나왔다.

 

마음이 불편했다. 이게 슬픔인가? 난 지금 슬퍼하는가? 아니면 이건 절망인가?


……왜 나는 살아있는 거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행복하다는데 난 행복이 뭔지 전혀 모르겠다.

 

박제를 만들 때의 만족감은 안다. 작은 동물을 해체할 때의 고취감도 안다.

 

하지만 그걸 행복이라 부를 수 있나? 애초에 행복의 정의란 무엇이지? 소크라테스는

 

행복이 인간의 보편적 목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난 보편적인 인간인가?


그런 생각들을 하며 걷다보니, 처음 보는 놀이터에 도착했다. 사람은 한 명도…….

 

아니, 한 명 있다. 어떤 남자애가 모래성을 쌓으며 혼자 놀고 있었다. 나이는 나랑 비슷했다.

 

“너 뭐해?”


“응? 모래성 만들어! 가능한 크게 만들 거야.”


하하, 그거 참 재미있네. 만들어봤자 몇 시간 뒤엔 박살날 텐데 왜 그 고생을 하나.

 

“난 우애야. 김우애. 넌?”


“양미애. 8살.”


“나도 8살이야! 같이 모래성 쌓을래?”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그럴까. 나는 그 애 옆에 앉았다.

 

“좋아. 아, 근데 이거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니까 다시 만드는 게 나을 거야.”


“……어……난 잘 모르겠어. 도와줄래?”


나는 우애가 만든 모래성을 무너트린 후, 가능한 안정적인 구조로 모래성을 쌓았다.

 

“근데 이건 왜 하고 있는 거야? 어차피 내일이면 무너질 텐데.”


“응?”


“모래성을 쌓는다고 누가 칭찬해주는 것도 아냐. 네 인생에 이득이 되는 것도 없어.

 

넌 무슨 목적을 가지고 이걸 만드는 거야? 난 이해하질 못하겠어.”

 

“음……미애야, 너 무슨 음식이 제일 좋아?”


“뭐? 일단은……감자칩.”


“그 감자칩을 먹는 동안엔 맛있다고 생각하잖아? 누가 칭찬하거나 이득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좋은 거잖아. 나도 그래. 이걸 만드는 동안 난 행복해. 그게 다야.”

 

“참 값싼 행복이군.”


“그럴지도.”


그러는 동안, 모래성이 완성됐다. 내가 만들었지만 꽤 그럴싸했다.

 

“너 진짜 잘 만든다. 난 이렇게 크게 못 만드는데.”


“네가 조금 더 똑똑해지면 할 수 있을 거야. 아무튼……난 이제 죽으러 갈 건데, 넌?”


“응?”

 

“이젠 지겨워졌어. 슬슬 죽을 생각이거든.”


우애가 눈을 껌뻑이며 날 보았다. 설마 죽는 게 뭔지도 모르는 멍청이는 아니겠지?

 

“왜 죽고 싶은데?”


“지겨워서. 학교도 집도 재미없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남들이 다 싫다고 그래.”


“불행한 거야?”


불행. 그럴지도 모른다. 난 지금 불행한 걸지도 몰랐다.

 

“아마도. 어쩌면…….”


“네가 죽으면 너희 부모님이 슬퍼하실 거야.”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난 죽어서 인지도 못할 텐데.”

 

“그리고 죽으면 네가 좋아하는 감자칩도 못 먹잖아…….”


“그 정돈 감수해야지. 인간은 수도 없이 많아, 최신 기준으론 65억 명 정도 된다더라.

 

나 하나가 더 사라진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아. 아무 일도 없겠지.”

 

“음, 적어도 난 슬플 거야.”

“왜?”


“우리 이제 친구잖아? 어……나만 그렇게 생각했어?”


친구? 나랑 네가? 우린 이름이랑 나이 말고 아는 게 전혀 없다.

 

애초에 친구란 뭐지? 어디까지가 친구고 어느 지점에서 친구가 아닌 거지?

 

“계속 살아봤자 재미없고 귀찮기만 할 거야. 그냥 지금 죽는 게 나을 텐데.”


“이해를 못 하겠어. 어떻게 살아보지도 않고 인생이 어떤지 말할 수 있는 거야?”


그건…….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반박할 논리가 떠오르질 않았다.

 

완전한 정론. 내가 누군가에게 논파당한 건 처음이었다.

 

“저, 왜 우는 거야?”


“울어? 내가 운다고?”


그렇다. 나는 울고 있었다. 이 감정은 뭐지? 난 왜 울고 있는 거야?

 

“나도……모르겠어. 이건 뭐야? 난 왜 울고 있는 거야? 대답해 줘. 나는…….”


나는 살아있어도 되는 거야?

 

“응. 살아있어도 돼.”

 

그 질문에, 너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나는 아직도 그 날의 석양을 잊지 못한다.

 

그 날, 네가 했던 대답이 날 살아가게 해줬다.

 

 

 

 

 

 

 

 

*****

 

 

 

 

 

 

 

“저기, 우애야.”


“응?”


우애는 내가 처음 만들었던 고양이 박제를 구경하고 있었다.

 

“호린이가 좋다면 그 녀석한테 가도 돼.”


“그건…….”


“나도 알아. 내가 빌어먹게 이상한 여자라는 거.”


나는 내 옆에 놓인 수많은 동물들을 보며 말했다.

 

“걔는 그래, 예쁘잖아. 성격도 나보단 낫고, 옷도 잘 입고……돈도 많아.”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난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네가 행복하면 난 그걸로 족해.”


“…….”


우애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눈만 껌뻑였다.

 

“이상한 동물이나 잔뜩 키우고, 제대로 꾸미지도 않고, 영문 모를 소리만 하고, 음울하고,

 

키도 작고……나도 솔직히 내가 싫어. 머리 빼면 장점이라고 하나 없는데.”

 

“미애 너는.”


우애가 박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너는 옛날부터 그랬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제대로 전하질 못했어. 

 

내가 널 미워할까 무서운 거지? 괜찮아. 널 미워하지 않아. 우린 친구니까.”

 

“하지만 내가 말하면, 너한테 강요하게 될 거야. 강요하고 말 거야.”


너는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그 선택 때문에 그런 일을 겪어야만 했다.

 

이번에도 그러지 말라는 보장 따윈 어디에도 없다.

 

“네가 내 행복을 바라듯, 나도 네 행복을 바래.”


“…….”


너는 내게, 빛이었다.

 

유일하게 친구가 되어준 사람. 내가 살아갈 이유를 준 사람. 내게도 사람의 마음이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사람. 그게 너였다. 너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 그 자체였다.

 

그런 너를 다치게 한다면. 내가 널 상처 입힌다면.

 

나는 절대로 나 자신을 용서치 못할 것이다.

 

“좋아해.”


“……응.”


“줄곧 너만 보고 있었어. 지금까지, 처음 만난 이후로……쭉, 앞으로도…….”

 

숨이 벅차올랐다.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차오르려 했다.

 

“내가 널 좋아해도 되는 걸까?”

 

“그건 내가 정할 문제가 아니야. 네 마음인걸.”


“내가, 네 곁에 있어도 되는 거야? 이기적이지만, 그래도…….”


그래도 널 사랑한다고 말해도 될까?


우애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날 안아주었다.

 

“……난 우리가 이대로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지낼 거라고.”

 

“하지만 그럴 순 없어. 이제, 나도, 그 녀석도……우리 둘 다 마음을 숨길 수 없게 됐어.”


“그리고 나도 대답해야겠지. 어떤 식으로든.”

“어떤 대답이든.”


지금은 답할 수 없겠지만.

 

하지만, 결국 우애는 대답해야한다.

 

“미안해. 너희한테 미안해.”


우애는 내게, 아니 우리한테 사과했다.

 

이로써 우리들의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가장 바라지 않았던 형태로.

 

그 누구도 바라지 않았던 관계로.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사랑싸움이 시작되는데 앞으로 어떻게 써야 재미있을지 모르겠다

글을 재미있게 쓰는 건 너무 어려운 거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