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카즈들은 모두 멈췄다.

불타고 있던 폐허들은 모두 중심으로 압축되어, 그 괴물같던 적들은 높은 곳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중심에 있었던 건, 어떤 갑자기 나타난 한 여성이었다. 어떤......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살카즈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전장의 중심에 서서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이네스는 떨고 있었고, 나는 그녀가 왜 이렇게 떨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청력이 폭발로 인해 조금 손상되어, 나는 그들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내 앞에 서있는 이 사람 때문인가?

아니다, 모두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 다른 이를 보고 있다.

의식을 잃기 마지막 1초 전, 나는 보았다——

한 명의......살카즈를.

아무 적의도 없는......가녀린 살카즈를.



_


......


그들은......임시로......

살카즈는......반드시......


......넌......뭐야?


그녀의 상처가 깊어......우리가 응급처리를 바로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그가......이곳을 찾게 되면......시간이 없어......

......켈시, 여기 좀 도와줘.


......음, 좋아.



_



W: ——!

W: 여긴——


이네스: 배 안이야.


W: 배......?

W: ......우리가 왜 아직 살아 있지?


이네스: 자신을 비웃을 거라면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아줄래?

이네스: 하아......

이네스: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린 구해졌어.


W: ......그럼 여긴 어딘데?


이네스: 운송대 본대야, 우리가 계속 호위하던 게 바로 이 함선이야, 지금 임시로 부상자들을 거둬들였지.

이네스: 보아하니 계속 짓고 있는 시설인가 본데, 이 함선은 대체 어떤 구조인지 모르겠어. 정말 듣도 보도 못했다니까.

이네스: (하지만 그때 보았던 그림자를 생각하면 확실히......역시 이 이상 파고 들진 말자.)


W: ......헤드레이는?


이네스: ......그는 고용주와......아니, 그는......지금 이곳의 주인과 대화를 하고 있어.


W: 하긴, 네가 여기에 얌전히 있는 걸보니, 헤드레이는 분명 문제 없겠지.


이네스: 쳇.


W: 그럼, 이곳의 주인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W: 너 지금 긴장하고 있는 모양인데, 네 그 시력에 나쁜 오리지늄 아츠를 쓰지 않아도 알 수 있겠어.


이네스: ......너 설마, 정말로 네가 걱정되서 내가 여기 있는 걸로 보여?


W: 확실히 그런 것 같진 않아 보이네, 그래서 왜?


이네스: 하아.

이네스: 나 지금 조금 그 녀석이 불쌍해졌어.

이네스: 그 방 안에 무슨 별 이상한 게 다......



_


//(구 로도스)



헤드레이: ......


켈시: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긴장은 회의의 효율을 떨어뜨리니까요.

켈시: 당신들은 잘해 주셨고, 정보가 노출된 건 저희의 실수였습니다.


헤드레이: ......전장에선 누가 옳고 그른지에 상관없이, 우리가 누구와 맞서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켈시: 그럼 됐습니다.


헤드레이: 하지만 그 지휘관이......정말로 폐하의 측근이었을 줄이야.

헤드레이: 당신의......그 힘엔 저도 정말 놀랐습니다, 아직 정식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지 못했네요, 닥터 켈시.


켈시: 감사라면 테레사에게 하세요, 이건 그녀의 뜻이었습니다.


???: 내가 왜?


헤드레이: ——!

헤드레이: 폐하——



???: 이곳은 카즈데일이 아니에요, 그렇게 예를 갖추실 필요 없습니다, 앉아 있어요, 헤드레이.


헤드레이: ......존명.

헤드레이: 그럼 옆에 계신 이 분이 바로......



// 박사의 모습


???: ......



//테레사의 모습


???: 너무 신경 쓰시지 않아 주셨으면 해요, 박사님께선 어떠한 전략적 정보도 전부 알고 계시는 게 좋거든요.


헤드레이: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_


W: ......

W: (정말로 한 척의 함선이잖아......이 정도면 작지 않은 규모인데......)

W: (보아하니 어떤 시설들은 최신의 것들인데, 또 어떤 곳은 낡아 빠져서 다가가지도 못하겠고......)

W: (내 기억으론......이건 림 빌리톤으로부터......)



//(일러스트는 없지만 아미야)


왜소한 카우투스: 아! 죄, 죄송해요, 이 앞은 아직 공사 중이라......

왜소한 카우투스: 켈시 선생님께서 얘기해 주셨어요......너무 깊숙이 들어가면 위험하다고......


W: 흐음——

W: 그래, 그럼 다른 길로 가지 뭐.


왜소한 카우투스: 감사합니다.




W: ......정말 예의바른 아이네, 저 귀를 보면 역시 살카즈는 아니겠지.

W: 그러고 보니, 그 이네스보다 질색인 여자는 아무래도 의사인가보네? 살카즈도 아니고......

W: 여긴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분명 전장의 한가운데에 있는데, 온통 살카즈 이외의——



왜 또 막힌 거야!!


W: 응?


???: 지, 진정해 클로져, 단지 오늘 7번째로 합선이 일어난——


클로져: 7——번——째——합——선——

클로져: 이건 이 천재 엔지니어에게 있어 굉장한 굴욕이라고요!

클로져: 아예 문을 싹 다 새로운 걸로 바꿔버리죠! 그 편이 더 빠를 거예요!


???: 음......그치만 부상자들이 많아, 그들을 위한 식량도 긴급 공수해야 되서 지금 인력이랑 예산이 조금......

???: 게다가 지금 이렇게 포기해 버린다고 했는데, 이건 굴욕이라고 생각 안 하는 거야......?


클로져: 크으으윽——

클로져: 그렇다면! 폐하!

클로져: 제게 3일만 더 주십쇼, 3일!

클로져: 이렇게 고치기 힘든 이상, 아예 전체 보안 제어 시스템을 전부 뜯어서 다시 설치하죠!


???: 저, 전부 다시? 그게 가능할까?


클로져: 대체 누가 이런 정체불명의 시스템을 만들고 이런 림 빌리톤 지하 깊은 곳에 묻어둔 건진 모르겠지만——

클로져: ——이걸 더 정체가 확실한 시스템으로 바꿔버리는 거예요! 아주 간단한 원리라고요!


???: ......그, 그럼 부탁할게.


클로져: 명을 받들겠습니다!


???: ......하아.

???: 로도스 아일랜드는......아직 사용하기엔 멀었나......



W: 로도스 아일랜드?


???: 아——

???: 당신은......그 헤드레이와 함께 있었던......

???: 깨어나셨네요? 꽤나 심하게 다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W: (방금 그게 깜짝 놀란 모습이었구나......)

W: 용병 W야, 헤드레이 대장을 찾고 있었거든, 그리곤 길을 잃어 버려서——


???: 조사할 땐 조심해 주세요, 어떤 구역은 아직 공사 중이라 케이블이 전부 노출되어 있어서 감전에 주의해야 해요.

???: 그래도 이렇게 신중하신 모습은 아마 용병들이 타고난 거겠죠.


W: ......


???: W, 인가.

???: 테레사라고 불러 주세요.


W: ——


테레사: 헤드레이는 회의가 끝나고 박사님과 말씀 한두 마디 나누시고 계셨어요, 지금쯤 아마 임시 병실에 돌아가셨을 거예요.

테레사: 동료들이 걱정할 거예요, 당신도 어서 돌아 가세요.


W: ......테레사......폐하?


테레사: 네? 아, 여긴 카즈데일이 아니니, 너무 딱딱하게 구실 필요 없어요.


W: 그럼 테레사......폐하는 왜 여기서 문 앞에서 고생하고 있어?

W: 방금 그 녀석은 엔지니어지, 겨우 이런 일을......


테레사: 겨우 이런 일이 아니에요.


W: 그런......가?


테레사: 제가 신경써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 걸요?


W: ......

W: ......그럼 로도스 아일랜드라는 건?


테레사: 아, 들으셨군요.

테레사: 이 배의 이름이에요, 비록 아직 정식으로 명명식을 하진 않았지만 전......이걸 이렇게 부르고 싶어요.

테레사: 제 바람일 뿐이에요, 어쩌면 박사와 켈시는 이것의 "본명"을 쓰는 걸 반대할지도 몰라요.


W: ......하아, 본명? 이 배의?


테레사: 보신 것 처럼, 이 배는 살카즈에 의해 만들어 졌어요.

테레사: 전 가장 깊은 곳에 남겨진 자료에서 이 이름을 찾았거든요......

테레사: “로도스 아일랜드”.

테레사: 저도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음......켈시라면 아마 저보다 더 잘 알고 있겠죠.

테레사: 하지만 제가 이걸 이 이름으로 부르고 싶은 건, 이 아이에겐 이미 이런 이름이 붙여졌기 때문이에요.


W: (카즈데일을 찬탈한 섭정과 대등하게 맞섰던......)

W: (거의 혼자 힘으로 카즈데일에 있는 대부분의 문벌들을 통합시켰던 그 테레사 폐하가......)

W: (지금 고장난 자동문을 손수 고치고 있다고?)

W: ......


테레사: 왜 그러시죠? 표정이 조금 이상한데.


W: 폐하 앞에서 웃음소리를 내면......조금 무례한 짓이려나?


테레사: 아, 아뇨......하지만 평소 켈시와 박사님은 잘 안 웃으셔서요......

테레사: 전사들은 짊어진 게 많아서 쉽게 마음을 터놓지도 못 하잖아요......

테레사: 가능하다면, 전 당신들 모두가 웃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테레사: 하지만 이건 무책임한 바람이 아니에요, 저도 모두가 짊어지고 있는 부담들을 무시할 순 없는 일이니까요.


W: 그럼 내가 잠깐 웃는다고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


테레사: 음, 편하실 대로 웃어 주세요?


W: ......

W: 아니, 이러니까 웃음이 안 나오잖아......


테레사: 뭔가 제 실수같네요......


W: 흠흠......크흠, 관둘래.


테레사: 당신은?


W: 나?


테레사: 전 테레사라고 해요, 이 아이는 로도스라고 하고요, 그럼 당신은요?


W: “W”......


테레사: 그걸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W”는 당신이 용병이라는 걸 대표할 뿐이잖아요.

테레사: 당신의 이름이야말로 당신을 대표할 수 있어요.

테레사: 그런 전쟁의 기운으로 가득한 위장은 그만하세요, 이름 뿐만이 아니에요.

테레사: 제가 오지랖 부리는 거라고 생각하셔도 좋아요.


W: ......


테레사: 아......죄송해요.

테레사: 이름을 가지고 계시지 않은 건가요?


W: 카즈데일에서 태어난 살카즈에겐 흔한 일이잖아.

W: 그걸 신경 쓰는 살카즈도 별로......없어.

W: 어차피 금방 잊어버리는데, 쓸데없이 그걸 외우는데 기운을 쓰는 게 가장 비효율적인 일이야.


테레사: 전 그들을 잊고 싶지 않아요, 잊어서도 안 되고요.

테레사: 카즈데일의 운명이 정해질 때까지......

테레사: 당신이 더 이상은 “W”가 아닐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얘기를 나눌 기회가 온다면...

테레사: 어쩌면 당신같은 살카즈 여성에게 더욱 어울리는 이름을 가질 수 있을 지도 몰라요.

테레사: 마치 로도스처럼 말이에요, 만약 이름이 있다면, 다른 이들이 듣기에 더 친근해 보이겠죠?


W: ......

W: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켈시: 테레사, 통신이야.

켈시: 카즈데일에 움직임이 있어, 박사는 이미 배치에 착수했어.


테레사: 응, 바로 갈게.

테레사: W?


W: 아, 응, 그래.


테레사: 만약 당신이 아직도 우릴 위해 싸우고 싶다면, 당신이 그때 뭘 했든 상관없이, 우린 당신을 환영해요.




켈시: ......하아.

켈시: 내가 테레사의 결정에 이래라저래라할 생각은 없지만......

켈시: 여기 있는 모두가 널 환영하는 건 아니야, 난 네 모든 이력을 봤어, 넌 상당히 위험해.


W: 음, 피차일반이려나?


켈시: ......네 몸의 회복 속도는 상당히 빠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돌아다닐 정도는 아니야.

켈시: 네 병상으로 돌아가, 그렇지 않으면 누가 널 들고 갈 거야.



_


나중에서야 나는 깨닫게 되었다.

난 처음부터 끝까지, 테레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왜일까.

겉보기엔 정말 순진해 보였는데.

마치 이 잔혹한 전쟁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리더 중 한 명이 아닌 듯이......

순진......한 건가?

하지만 순진한 사람이 그런 눈빛을 할 리가......그런......슬픈......


......그녀의 주변엔 아마 계속 그 두 사람이 맴돌고 있는 것 같다.

만약......내가 그들과 함께 설 수 있다면......

난 어떤 풍경을 보게 될까?


_



???: ......


W: ......?

W: (저 후드......그들이 말하던 "박사"인가?)

W: (이쪽을 보고 있는 건가......)

W: (......)

W: (왜......어째서......)

W: (왜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거지? 분명 평범한 느낌의......아니, 너무 모호해, 이런 기이한 사람은 처음 봐......)

W: (아......바벨탑의 야전(현장) 지휘관, 생각 났다......)

W: ("박사"인가.)



_



난 이네스가 왜 폐하의 근처로 다가가지 않으려고 했는지 깨달았다.

나도 조금은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왜 그런지, 아, 테레사에 관한 일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는 일이 있는데......

그냥 문득 떠오른 생각인 걸로 쳐야겠다, 헤드레이 쪽은 분명 이해해 줄 것이다.





켈시: 결정하셨군요.


헤드레이: 그럴 줄 알았다는 말투로군요, 닥터 켈시......

헤드레이: 아니, 최근에야 알게 된 건데, 당신을 켈시 경이라고 불러야 겠더군요.


켈시: 지금 이런 얘기를 해봤자 쓸모 없습니다.

켈시: 전 단지 이번 당신의 결정에 안타까워 하는 것 뿐입니다, 당신들은 분명 테레사의 든든한 힘이 되어줄 수 있었을 텐데.


헤드레이: 폐하께선......저번에 임무가 끝났을 때, 절 따로 불러 주셨습니다.


켈시: 그녀답군요.


헤드레이: 폐하께선 제 출신을 기억해 주셨습니다, 전 예전에 카즈데일에 있었습니다.

헤드레이: ......거대한 공업 단지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범죄와 죽음으로 가득한 부패 도시였습니다.

헤드레이: 난민들이 끊임없이 늘어났기에, 도시는 썩은 빈민굴로 넘쳐났습니다.

헤드레이: 당신은 카즈데일에 소위 말하는 “귀족”이 얼마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헤드레이: 또 전쟁 도중에 얼마나 많은 권력이 교체되고, 가소로운 살카즈라고 비웃음 당했는지 아십니까?


켈시: 흔하디 흔하겠죠.


헤드레이: 보통 흔한 게 아니었죠.

헤드레이: ......하지만 어쩌면 폐하께선 전부 기억하고 계실 지도 모릅니다.

헤드레이: 전 폐하의 인자함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폐하께선 우리 같은 살카즈가 인간다웠던 부분을 기억해 주셨습니다.

헤드레이: 이건 오직 폐하께서만 하실 수 있는 겁니다.


켈시: 그럼 당신들은 어디로 도망칠 계획이죠?


이네스: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말아 주세요, 닥터.


헤드레이: 이네스, 닥터 켈시께서 그동안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신 거 너도 잘 알잖아.


이네스: 흥......


켈시: ......저도 기분 나쁘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켈시: 당신들이 이곳을 떠나, 자유로운 용병 생활을 한다고 해서 제가 막을 권한은 없습니다.

켈시: 제가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헤드레이: 그렇습니다.


켈시: 그럼 또 다른 한 명의 살카즈는?


헤드레이: W에겐 자신만의 생각이 있습니다.

헤드레이: 게다가 이 용병들을 계속 묶어둘 마땅한 자격도 없는 것 같아서 말이죠.


켈시: 규모가 크지 않은 용병들은 항상 그렇죠.

켈시: 강대한 힘에 붙지 않고 독립을 유지하려는 세력은 그렇게 부숴지기 쉬운 법이에요.

켈시: 하지만 당신들이 추구하는 것도......일부 길을 잃어버린 살카즈 전사들에게 좋은 공부가 될 거예요.

켈시: 뭐가 어찌됐든, 이건 당신들이 스스로 택한 길이에요.

켈시: 설사 도망칠 수 없는 길이라 해도 말이에요.


헤드레이: 용병들이 할 줄 아는 거라곤 전장에 뛰어들거나, 폐허에서 피어난 연기에 몸을 숨기는 것 정도 뿐입니다.


켈시: ......가능하다면, 꼭 해내셨으면 합니다.


헤드레이: 감사합니다.



_




이네스: ......우릴 따르는 살카즈도, 이제 이 정도밖에 안 남았네.


헤드레이: 많은 이들이 이곳에 남기로 했어.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이 머물 곳을 선택할 권리를 영원히 잃었지.


이네스: 주둔지도 없어졌겠다, 장비도 바벨탑이 제공한 최저 등급의 장비들 뿐이야.

이네스: 용병이라기보단, 여행을 떠나는 단체 등산객같은 걸......


헤드레이: ......처음으로 돌아왔네. 우리가 자작 나무 숲에서 만나고 독립하기로 결정했던 그때로 말이야.

헤드레이: 다행히도 닥터 켈시가 우리에게 일부 특별한 계약을 제안해줬어. 적어도 일이 있으니 먹고 살 순 있겠지.


이네스: 계속 그녀를 위해 일하는 거라면 우리가 바벨탑에 있는 거랑 뭐가 달라?


헤드레이: 우린 단지 이익을 위해 싸우는 용병단으로서, 값이 나쁘지 않은 계약을 받아들였을 뿐이야.


이네스: 그건 자신을 속이는 일이나 마찬가지잖아.

이네스: ......잠깐, 우리 깃발은?


헤드레이: 두고 왔지, 전부 두고 왔어. 이왕 내 자신을 속일 거라면 철저하게 속여야지.

헤드레이: 기억나? 제일 처음엔 기수 한 명이 쓰러지면 바로 다른 기수가 왔었잖아.

헤드레이: 서부에서 동부까지, 용병이 되어 이곳으로 돌아오기까지, 깃발은 쓰러진 적이 없었어.

헤드레이: 17번째, 18번째 기수는 깃발 아래서 죽을 때도 깃발을 자신의 복부에 꽂아서 깃발은 쓰러지지 않았지.


헤드레이: 우리가 로도스 함선을 호위하는 임무를 수행했을 때......

헤드레이: 그 카즈데일에서 온 강적들은 가볍게 우리의 방어선을 뚫었었지.

헤드레이: 그때 깃발을 들고 있었던 건 한 아이였어.

헤드레이: 우린 언덕 아래, 적들은 언덕 위에 있었고 마술은 마치 토사가 밀려오듯이 지면을 휩쓸었었지.

헤드레이: 닥터 켈시가 오기 전까진, 우린 반격할 수 조차 없었어.


이네스: 깃발이 죄다 부숴졌잖아.


헤드레이: 그래.

헤드레이: 하지만 난 사실 손을 뻗어 깃발을 붙잡을 수도 있었어.


이네스: ......


헤드레이: 난 용병의 깃발을 계속 싫어했었어.

헤드레이: 그건 분명 쓰러져야 할 터인데.


이네스: 그때 함께 시작했었던 고참들은 이제 얼마나 남았지?


헤드레이: 너, 그리고 나.

헤드레이: ......일단 서둘러서 가볼까.



_


이네스: ......

이네스: 어이, 헤드레이.

이네스: 너 일부로 W를 폐하 곁에 둔 거야?


헤드레이: 왜 폐하만 보는 거야? 거기다 닥터 켈시, 그리고——“박사”도 있다고.


이네스: 너도 뒷담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헤드레이: 그냥 잡담하는 것 뿐이잖아.

헤드레이: 넌 그곳에서 한번도 네 아츠를 사용하지 않았지, 그건 정말로 흔하지 않은 일인데 말이야, 난 네가 걱정——


이네스: ......안 쓴 게 아니라 못 쓴 거야, 닥터 켈시가 나한테 암시를 했거든.

이네스: 그곳은 비밀로 가득해.


헤드레이: 역시 너무 파고 드는 건 좋지 않겠지. 켈시의 신분을 알아낸 것 만으로도 꽤나......


이네스: 하지만 난 무의식적으로 폐하를 탐색해본 적이 있었는데,

이네스: 내 마술은 사람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알아낼 순 없고, 그들의 "음영"을 관찰해서 알아내는 건데......

이네스: 폐하는 매우 특이하셔.

이네스: 폐하께선......정말 슬퍼하고 계셔.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위용이 있고, 온화하셔.

이네스: 닥터 켈시는 이상해, 그녀에겐 무언가 기계에 가까운 부분이 있어, 하지만 이 기계에게 사람 냄새가 가득해.


헤드레이: ......그 의사 말하는 거야?


이네스: 너흰 느끼지 못 했겠지.

이네스: 그녀는 평등하게 모두를 관찰하고 있어. 그녀는 우릴 “마족”으로 부르지 않았어.


헤드레이: 어쩌면 그건 폐하의 곁에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몰라.

헤드레이: 그렇다면 박사는 어땠어?


이네스: ......흔히 쓰이는 비유를 써보자면, 병사는 장기 말, 지휘관은 기사(棋手)야.

이네스: 그 사람을 보면 난 무의식적으로 내가 평생 장기 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


헤드레이: 그는 전장이 아닌 전쟁을 조종하고 있어.


이네스: 당연히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야.

이네스: 넌 장기 말과 기사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뭔지 알아?


헤드레이: 아니......너 왠지 말투가 W같아 졌는 걸, 넌 원래 말을 돌려 말하지 않는 스타일이었잖아.


이네스: 기사가 주목하고 있는 건 장기 말과 게임 자체가 아닌, 상대 기사야.

이네스: 그가 이기고 싶어 하는 건 오직 함께 동등하게 앉아 있는 상대지.

이네스: 이기고 나면 집에 돌아가 따듯한 밥 한 그릇 먹는 건 기사고, 상자 안에 집어 넣어 지는 건 장기 말들이야.

이네스: 이어지는 하루하루를 자고 깨어날 수 있는 것도, 다른 이와 말로 소통을 할 수 있는 것도, 기사 뿐이야.

이네스: 장기 말들은 상자 안에서 쥐 죽은 듯이 있지.

이네스: 우린 모두 물건이야, 생명이 없는 물건들이라고. 마치 모든 전장이 그 한 사람을 위한 것인 마냥.

이네스: 만약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인간으로 본다면......별난 건 그 녀석이겠지.


헤드레이: 과연, 우리 생각이 일치하는가 보군.


이네스: 하지만 폐하께선 보고서도 못 본 척을 하고 계셔.


헤드레이: 닥터 켈시도 처음부터 끝까지 엄청 경계를 하고 있었지.

헤드레이: 게다가 비록 우리가 같이 지낸 시간이 짧았지만, 그 전사들도 어느 정도 막연함을 갖고 있던 걸로 보였다.

헤드레이: 난 W에게 귀띔을 해줬어, 어떤 일들은 이미 왜곡되기 시작했다고.


이네스: ......어쩌면 떠나는 게 정답일지도 모르겠어.

이네스: 잠깐, 아직 대답을 안 해줬잖아, 우리 생각이 같다면, 왜 W를 여기 남겨둔 거야?


헤드레이: 그녀를 걱정하는 거야?


이네스: 그렇다면 뭐 어때서, 대답해.


헤드레이: ......만일에 대비한 거야. 우리도 언젠가는 다른 이들과 함께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헤드레이: 그게 아니면, 네 생각엔 섭정(왕)이, 그러니까 폐하의 오라버니께서,

헤드레이: 너그럽게 우릴 용서하고 멋대로 라테라노 사람들을 약탈하고 살게 놔둘 것 같아?

헤드레이: 난 가능한 이 전쟁을 멀리하고 싶어, 난 동포들끼리 싸우는 것에 지쳤어......우리도 할만큼 했잖아.


이네스: ......흥.


헤드레이: 오해하지 마, 내가 처음부터 W를 이용해 뒷길을 마련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헤드레이: 그 녀석한테 이곳에 남아도 좋다고 했더니 자신이 남고 싶다고 하더라고.


이네스: ......

이네스: 쳇......정말 배은망덕하다니까.



_


//(구 로도스 복도)



Scout: 생각했던 것보다 이곳의 일을 잘 해내는 군.

Scout: 네 두 동료도 마찬가지로 말이야. 비록 그들은 박사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일은 괜찮게 처리해냈어.


W: 아아, 그래서 테레사는 무슨 말 안 했어?


Scout: ......만약 테레사에게 칭찬을 듣고 싶은 거라면, 네가 직접 공을 가로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Scout: 어디까지나 네가 켈시 여사의 눈을 피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말이야.


W: 그럼 됐어, 그 빌어 먹을 여자는 테레사 옆에서 조금도 안 떨어지니까. 쳇, 귀찮아 정말.

W: 그럼 그들은 지금 어딨어?


Scout: 알면서 가게?


W: 보러 가는 것 정도야, 욕은 안 먹겠지?


Scout: 대체 누가 귀찮은 건지 참.


W: 난 너흴 위해 난민 사이에서 7명의 스파이들을 잡아냈잖아! 7명! 그 중엔 술사도 있었다고!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Scout: 조용히 해, 네 존재와 임무는 기밀이니까......하아.

Scout: 그건 네 자신의 임무잖아, 게다가 내 기억으론 적어도 한 명 정돈 그냥 놔두라고 했던 것 같은데......


W: 난 사람 구하는 일은 잘 못해서 말이야, 그 녀석이 자살하는 속도가 내가 죽이는 속도보다 빨랐는데 뭐 어떡해?


Scout: ......하아.

Scout: 그들은 함교 위에 있다, 아미야도 아마 거기 있겠지.


W: 그렇게 많은 이름들을 어떻게 죄다 기억해, 다른 사람들은 아무래도 좋잖아, 누가 신경 쓴다고.


Scout: 그럼 네 맘대로 해라......

Scout: ......잠깐, 네 손에 그건 뭐야?


W: 응? 스파이한테 뺏어 온 소형 카메라야, 흔한 물건은 아니지?


Scout: 너 설마......


W: 응? 일반적으로 말이야, 폐하와 같이 사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할 살카즈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Scout: ......음, 혹여나 네가 켈시에게 스파이 취급을 당해도 난 안 도와줄 거다.


W: 그래그래.

W: 이 스파이들은 어떻게 섞여 온 거야?


Scout: ......


W: 넌 최근에 뭔가......우리가 하는 모든 싸움들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어?


Scout: 이건 우리가 뭐라고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불만이 있다면 박사를 찾아.


W: 박사, 라.

W: 그럼 역시 됐어.



_


//(구 로도스)



W: (저긴가—— 역시 전부 있잖아, 잠깐 숨어 있을까.)

W: (저 토끼는 대체 누구야, 짜증나게, 귀 때문에 테레사가 가려졌잖아!)

W: (——! 켈시다......)

W: (......)

W: (......오지 않았어? 눈치 못 챈 건가?)

W: (젠장, 왜 박사도 있는 거야......저 인간이 사진에 들어오면 액자가 무슨 흉조처럼 될 거 같아서 좀 그런데......)

W: (......)

W: (아, 테레사가 웃었다.)

W: (흉조고 나발이고, 이런 기회가 또 올소냐!)

W: 치즈——!




......W, 너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몰라?


에이, 내가 아마 너보다 더 잘 알걸, 직접 전장에 나선 횟수는 내가 더 많을 거 아냐, “닥터”~


켈시, 괜찮아, 너무 화내지 마——




_


W: 쳇, 저 여자가 귀찮게 굴면 정말 곤란하다니까......사진 한 장 찍자는 건데!

W: 그건 그렇고 앞으론 꽤나 고생할 거야, 포로 씨.


살카즈 포로: 읍——읍읍!!


W: 에이, 그렇게 긴장하지 마, 의장실까지 다가갈 배짱이 있었다면, 분명 발견 당했을 때의 일도 각오했었겠지?

W: 게다가 나 지금 기분이 그렇게 좋진 않아서 말이야, 너무 편하게 있진 말아줘.


살카즈 포로: ——


W: 어라, 자결하게?

W: 급하긴, 넌 자결 못 해, 게다가 뭘 좀 물어봐야 하거든, 어디보자......

W: 저번 달에 “방앗간”의 전투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W: 넌 왜 이곳에 나타난 거야? 어떻게 이리 핵심에 가까운 구역에 나타난 거야?

W: 찾는 게 뭐야? 널 맞이하는 사람은 누구고? 넌 테레사의 뭘 가져갈 생각이었어?

W: 아. 급하게 대답할 필요 없어, 이건 내가 가장 알고 싶어하는 대답은 아니라서.


W: 우선 이것부터 알려줘.

W: 만약 오리지늄 송곳이 네 눈알의 가장 앞부분에 멈추고,

W: 그 다음 초속 3mm의 속도로 천천히 네가 영원히 감지 못할 눈에 들어간다면...

W: 넌 두려움을 느낄까?



_



헤드레이의 말대로, 전세는 왜곡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난 카즈데일의 정세는 아무래도 좋았다......내게 별 영향도 없으니.

난 단지......테레사가 걱정될 뿐이다.


비록 그 망할 의사를 볼 때면 거울 속에서 웃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만큼 역겨웠지만,

어쩌면 그녀와 잘 얘기해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녀와 나는 같은 류의 사람이니까. 아니, 만약 그녀가 정말로 “사람”이라면 말이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그녀의 비밀이 많다.


하지만 그녀는 나보다 훨씬 강하다, 어쩌면 그녀라면 테레사를 지켜줄 수도 있겠지——

아니, 그녀는 반드시 테레사를 지켜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hypergryph&no=134064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hypergryph&no=134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