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 TS衛生兵さんの成り上がり (syoset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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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 서부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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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 마슈데일 철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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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 동계 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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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 북부 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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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광경은 한때 서부전선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세계의 총은 마력의 보조를 받기 때문에 발포 시에 빛이 발생합니다.


 그건 분명…… 수많은 병사들이 스러져갈 때 보이는 광경.


 탄환의 빗속에서 빛나는, 오로라와 같이 아름답고 차가운 밤하늘이었습니다.




 저희 11명은 각자 소총과 폭죽을 손에 쥐고 흩어져서 나무 그늘이나 진흙 구덩이 속에 몸을 숨겼습니다.


 그러곤 풀과 진흙 등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위장한 채 숨을 죽이고 적을 기다렸습니다.


 헤어질 때, 베르디 씨는 저보고 실탄을 건네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습니다.


 저희의 목적은 사바트군의 발을 묶는 것이므로 굳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죽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탄은 최대한 절약해서 플라멜과의 전선까지 가져가는 게 맞겠죠.



「……왔네요」



 자리를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복수의 소대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확인한 즉시 위협 사격을 가하면서 동시에 폭죽에 불을 붙였습니다..


 제 총알이 훈련탄이라는 사실을 들키는 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경로를 틀어서 근처의 풀숲을 맞췄습니다.





「……【순(盾)】」




 적도 곧바로 저를 인식하고는 총알은 맞부딪혀 왔습니다.


 저는 수시로 【순】을 사용하면서 찔끔찔끔 위치를 옮겨가며 적을 요격해갔습니다.



 사실, 베르디 씨의 실탄을 거절한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훈련탄에는 살상능력이 없습니다.


 살상능력이 없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습니다.


 조금만 망설여도 목이 달아나는 이 상황에서 거의 다뤄본 적 없는 실탄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한 시간.


 저희는 이번 시간벌기의 목표를 한 시간으로 정했습니다.


 한 시간만 버티면 아군이 통신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그다지 근거 없는 목표였죠.


 그래도 이런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서 뭐라도 작은 목표를 설정해 두는 것은 병사들의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됩니다.



 ……전투가 시작된 지 어느덧 10분.


 제 우측에서 들리던 총성 폭죽의 소리가 더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방향에 있던 건 분명 알렌 소대의 신병이었습니다.


 이제부턴 오른쪽에도 주의를 가해야 할 필요가 있겠네요.


 레타 씨라고 했나요. ……그와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순박해 보이는 청년이었죠.



「……【순】 읏!」



 30분쯤 지나자 저희 진지 측에서 울려 퍼지던 총성의 소리가 반 이하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드문드문 멀리서 총성 폭죽의 소리가 울리고 있습니다.


 로들리 군이랑 알렌 씨는 무사할까요.


 무사하다고 한들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살아 있다면 마음이 든든할 것 같습니다.




「……앗!」



 무심코 긴장의 끊을 놓은 순간, 【순】을 전개할 틈도 없이 총에 맞아 버렸습니다.


 부상당한 부위는…… 오른쪽 다리의 대퇴부군요. 우측에서 저격한 모양입니다.


 저는 곧바로 몸을 굴려 사선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고는 총성 폭죽이 적을 혼란시키는 사이에 치료를 마쳤습니다.



「……하아, 하아」



 방심했습니다. 이건 꽤 위험하네요.


 뭐가 위험하냐면, 이번 실수로 인해 마력이 절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회복마법은 【순】과 비교하면 마력 소비량이 상당합니다.


 아직 【순】은 한참 더 사용해야 하니 다음에 치명상을 입으면 완치까지는 힘들겠죠.





「……어라」




 40분 후. 결국에 수중의 폭죽이 전부 떨어져 버렸습니다.


 시간 배분을 실수해서 1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다 사용해버린 겁니다.


 게다가 이쯤 되니 아군 진지에서 들리던 총소리도 거의 잦아들었습니다.


 처음부터 1시간 분량에 미치지 못했던 거겠죠.



「불꽃놀이의 마지막은 언제나 씁쓸한 법이군요」

『■■■!!!』



 총성이 그치자 마침내 적 돌격부대가 쳐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후퇴하면서 필사적으로 버텼으나 슬슬 포기할 때가 온 모양입니다.


 그 자리에 머물면 총에 맞을 것 같았기에, 저는 찔끔찔끔 오른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잘하면 일찍 죽은 아군의 폭죽으로 시간을 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읏! 【풍포(風砲)】!」



 적의 돌격부대가 압박해오면서 점점 죽음의 기색이 짙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유탄과 납탄이 쏟아져 내립니다. 아무래도 적들은 저를 진심으로 죽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죽기 전까지 1초라도 더 시간을 벌 심산으로, 저는 포복 자세로 계속 기어나갔습니다.



「……앗?!」



 갑자기 등 뒤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었습니다. 아마도 수류탄을 던진 거겠죠.


 제 위치가 거의 발각된 모양입니다.


 폭발 범위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비산한 나뭇가지에 귀를 크게 베이고 말았습니다.


 귀가 파악 찢어지고 흘러나온 피에 귓구멍이 막혔습니다.



 ……그래도 치명상은 아닙니다.


 피만 잘 닦아내면 청각도 문제없을 겁니다.


 회복마법은 더 참아봅시다.



「……크학」



 폭심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면에 달라붙어 기어가고 있었더니, 이번에는 우측 어깨에 큰 충격을 받고 나무에 부딪혔습니다.


 상완골이 부러진 모양인지 지잉 하는 저림과 함께 팔의 감각이 사라졌습니다.


 확인해보니 동맥을 당한 듯, 오른쪽 어깨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큭, 【유(癒)】!」



 이건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팔을 못 쓰면 포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상처를 방치해두면 상완신경이 괴사하여 두번 다시는 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겠죠.


 어쩔 수 없이 즉시 회복마법을 사용하여 팔을 치료했습니다.




「……아」




 군홧발 소리가 가까워집니다.


 이대로라면 적에게 발각되어 총살당하고 말겠죠.



「……저도 참 바보네요」



 팔을 고친 건 적들한테 조금이라도 저항하기 위해.


 훈련탄이라도 좋으니 적에게 한발이라도 더 박아넣기 위해서입니다.


 그럴 생각이었는데.



「총…… 다 망가져 버렸지 않나요」



 좀 전에 제가 당한 부위는 오른쪽 어깨였습니다. 제 목숨줄이라고 할 수 있는 소총을 감싸고 있었던 곳이죠.


 그렇습니다. 우측 어깨를 피탄했을 때 소총에도 피해가 갔던 모양으로, 불출받은 OST-3형 소총의 총신이 꺾여 쓸 수 없게 돼버린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팔을 치료해봤자 뭘 할 수 있다는 건가요.


 맨몸의 여자애가 전장에서 대체 뭘 해낼 수 있다는 건가요.



「아아. 결국」



 저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구르고 굴러서 조금이라도 적한테서 멀어지기 위해 힘을 쥐어짰습니다.



「최후의, 순간이군요」



 ……여태 피해를 입은 마을들을 보아, 사바트 병사들은 적의 시체를 갖고 노는 악취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 시신도 한낱 그들의 장난감으로써 유린당하게 되는 걸까요.


 그건 조금 마음에 안 드네요.



「……으픕」



 아무런 생각 없이 데굴데굴 굴러가고 있었더니 구덩이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누가, 아니, 어떤 동물이 파 놓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까지 와서 이 무슨 추태인가요.



「아아……」



 그러나 함정에 빠진 저는 곧바로 눈치챘습니다.


 그 구덩이의 바닥에는 아직 열기가 남아 있었고, 밑에서 구린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이건 누군가가 파 놓은 구덩이가 아닙니다.


 아마도 좀 전에 뒤에서 폭발한 수류탄이 만든 크레이터겠죠.


「……」







 밑져야 본전, 저는 그대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구덩이 속에서 뒹굴었습니다.


 피가 나는 부분을 딱 붙이고 우측 어깨를 위로 향하게.


 이렇게 하면 수류탄에 맞아 폭사한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구멍 속이니 대충 봐서는 눈치채기 어려운 위치이기도 하고요.


 뭐, 발각되더라도 본전입니다. 여기서 죽더라도 저희는 이미 충분히 시간을 벌었을 겁니다.



「■■■■……」



 바로 근처에서 사바트어가 들렸습니다.


 그들은 대열을 유지한 채 천천히 제 근처로 걸어오기 시작했습니다.




「■■■■!」



 역시나 그들은 저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크레이터 속에서 굽은 소총을 끌어안은 채 옆으로 누워 있던 저는 적 병사들에게 그대로 들키고 말았습니다.




 죽일 테면 얼른 죽여주세요.


 갖고 노시려면 맘대로 하시던가요.



 사랑하는 모두와 함께 끝을 맞이할 수 있다면 죽음도 무섭지 않습니다.


 애초부터 내던진 목숨이거든요.



「■■!!」


 탕 하고 쏘아진 총알이 제 배를 관통합니다.


 저는 몸에 힘을 뺀 채로 충격에 몸을 맡겨 굴러갔습니다.


 둔탁한 복부의 통증에 구역감이 치솟았습니다.



「■■■!」

「「■■」」



 그 뒤, 사바트 병사들은 제 몸을 갖고 노는 일 없이 급히 어딘가로 떠나갔습니다.


 유흥보다도 베르디 씨 일행을 쫓는 것을 우선시한 모양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부디 무사히 도망쳐주세요, 베르디 씨.




 …….


 아직, 조금이지만 마력이 남아 있네요.







「……【유(癒)】」







 저는 죽은 척으로 사바트군의 눈을 피한 다음, 미처 다 치료하지 못한 복부의 상처를 억누르면서 이동을 재개했습니다.


 큰 상처는 어떻게든 지혈했지만 제 내장은 이미 엉망진창이겠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죽겠네요.



 하지만 치료가 가능한 장소까지 철수하는 건 무리입니다.


 주변에는 소름 끼칠 정도로 많은 사바트군이 깔려 있는 상황.


 기어가는 게 고작인 제가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로들리 군이 있는 위치는 분명……」



 그래서 저는 로들리 군의 곁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어차피 죽는다면 그의 옆에서 죽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제게 남은 소중한 사람.


 고향도, 부모도, 친척도, 아무것도 없는 제게 남겨진 유일한 인연.



…….



「죽기 직전에 가까이 있는 편이 다음 생에서 만날 확률이 높을 것 같으니까요」



 가능하다면 일본에서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클래스메이트라든지 이웃 친구, 그런 관계로요.


 게임 속에서 같이 팀을 맺고, 함께 즐기며, 로들리 군과 마주 웃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조금만, 조금만 더.



「……」



 수십 미터가 너무나도 멀게 느껴집니다.


 이동한다는 건 이렇게나 시간이 걸리는 행위였나요?


 총에 맞은 영향으로 몸이 어질어질하고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로들리 군」



 그래도. 그럼에도. 저는 혼자서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입이 거칠고, 그렇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그 소년의 근처에서, 서부전선의 참호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란히 누워 잠들고 싶습니다.



「……읏!」



 죽기 전에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알렌 선배도, 살사 군도, 그리고 그 무서운 소대장님도 함께였던 서부전선의 참호에서.


 엉덩이를 문지르며 훌쩍이는 살사 군을 보고 웃으며, 알렌 씨와 베르디 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술에 취해 볼을 벌겋게 물들인 가백 소대장님의 앞에서 개인기를 하고.


 차가운 흙바닥 위에서, 밤이 되면 로들리 군의 옆에서 잠들고 싶었어요.







「어?」

「……여어, 꼬맹이」



 그런 바람을 동기부여 삼아 필사적으로 기어가길 100미터.


 저는 바라 마지않던 광경을 눈에 담았습니다.



「뭐야. 아직도 움직일 수 있잖냐. 끈질긴 녀석이네」

「……로들리 군이야말로요」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는데.


 적들이 로들리 군을 살려둘 이유 따위, 어디에도 없는데도.


「어째서 살아 있는 건가요?」

「핫하하. 총에 맞은 뒤에 근처의 나무뿌리에 숨어서 따돌렸지」


 저랑 마찬가지로 엉금엉금 땅을 악착같이 기어오는 로들리 군과 재회한 겁니다.





「서둘러 수술해야……」


 로들리 군은 상태는 심각했습니다. 얼굴은 새파랗고 복부에는 검푸른 피하출혈이 보였습니다.


 복강 내에 대량의 출혈이 발생했음은 명백합니다.


 당장 수술 세트를 가져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살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수술 도구는 있고?」

「……가지러 돌아간다면」

「그럼 안 되는 거잖아, 바보야」


 로들리 군은 숨 쉬는 것조차 힘들 텐데도 저를 보며 킥킥 웃었습니다.


「그러는 너도 안색이 꽤나 안 좋은데」

「저는 일단 큰 상처는 막아서 한동안 버틸 수 있어요」

「……어깨랑 배에 딱 봐도 치명상인 것 같은 상처가 보이는데?」

「뭐어, 둘 다 치명상이긴 하죠」

「망했잖냐」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로들리 군은 저를 보며 계속 웃었습니다.


 그에 동조되어 제 얼굴에도 조금이지만 미소가 번졌습니다.


「아~. 설마 죽기 직전에 보는 얼굴이 꼬맹이 너일 줄이야.」

「뭐가 불만인가요」

「불만은 없어. 사바트 놈들의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죽을 생각이었는데 예정이 빗나가서 그렇지」


 그의 체력이 서서히 빠져가는 게 느껴집니다.


 로들리 군이 말한 대로 그는 이제 한계인 거겠죠.


 그러니 더는 서둘러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지막에 전우랑 이야기할 수 있다니 호상이네. 이거 설마 꿈이냐?」

「저도 살아 움직이는 로들리 군을 보고 순간적으로 꿈인가 싶었어요」

「알지. 너나 나나 악운이 강하다고 해야 할지」


 로들리 군은 새파랗게 뜬 얼굴 그대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무에 걸터앉았습니다.


 저도 그에게 다가가 달라붙듯 옆에 앉았습니다.


「역시 행운 배달부다워」


 그리고 사방팔방에서 총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저희 둘은 나란히 기대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아, 맞다. 꼬맹아, 출격 전에 뭐라 말하려고 망설이다가 만 거 들려줘라」

「엣」

「마지막까지 와서 숨길 게 뭐가 있어. 그 뭐냐, 저번에 말할 수 없다던 군사기밀인가 그거냐? 계속 신경 쓰였다고」


 로들리 군이 돌연 그런 말을 꺼냈습니다.


 그는 플라멜이 침공해왔다는 비극적인 정보를 어지간히도 듣고 싶은 모양입니다.


 ……죽음의 문턱을 넘기 일보 직전이니 말해도 상관없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맞아요. 매우 중요한 군사기밀입니다.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어요」

「에이, 쩨쩨하게 굴지 말고」


 그 사실을 듣고서 로들리 군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모르긴 몰라도 즐거운 기분은 아닐 겁니다.


 아니죠. 분명 무척 슬퍼할 게 틀림없습니다.


「……후우, 어쩔 수 없네요. 들어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나요?」

「안 해 안 해. 뭔진 모르지만」


 확실히 플라멜의 침공 소식을 털어놓으면 제 마음은 편해질지도 모릅니다.


 로들리 군에게 숨기는 일 없이 죽을 수 있다는 건 매우 매력적입니다.


 ……매력적이지만.


「그건 말이죠」

「뭔데. 뜸 들이지 마」

「제가…… 로들리 군을 좋아한다는, 그뿐인 이야기예요」



 저는 죽기 직전인 사람에게 현실을 때려 붓고 싶지 않았습니다.



「뭐? 그게 군사기밀?」

「네. 매우 중요한 고도의 군사기밀입니다」

「……. 뭐야 그게」


 저는 마지막까지 로들리 군에게 거짓말을 쳤습니다.


 플라멜의 침공 같은 건 없는 겁니다.


 그때의 제 망설임은 제가 끝까지 고집을 부려서 로들리 군에게 사랑의 감정을 고백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그런 흔해 빠진 이야기로 만든 겁니다.


「갑자기 울어대니까 틀림없이 뭔가 위험한 내용인 줄 알았다만」

「그게 무슨 말인가요. 이 이상 없을 정도로 중요한 이야기잖아요」

「……하아, 맥빠졌어」


 로들리 군은 식은 눈으로 저를 바라봤습니다.


 상관없습니다. 마음껏 한심하다 여겨주세요. 그렇게 플라멜의 침공을 눈치채지 말아 주세요.


「제 진심을 알게 되니 어떤가요, 로들리 군?」

「아니, 그. 미안한데 알고 있었어」

「아읏」


 미안하지만 알고 있었다라. 그렇게 나왔나요.


 아쉽게도 그건 로들리 군만의 착각이지만, 굳이 지적하진 않겠습니다.


 이런 착각을 했다는 걸 알면 무척 부끄러울 테니까요.


「뭐, 그래도 그런 거라면 죽기 전에 말해 두라고. 입 다물고 있다가 죽어버리면 미련이 남잖아」

「죽기 직전에 차이는 것도 좀 그렇다고 생각했거든요」

「……」

「찰 거죠?」

「아니」


 어차피 더는 뒤도 없습니다. 제가 로들리 군을 연모하고 있었다는 바보 같은 이야기를 갖고 돌아갈 사람도 없는 겁니다.


 그렇다면 다 죽어가는 로들리 군의 기분을 최대한 좋게 해주도록 하죠.


「그때 그런 말을 들었다면, 그럼 결혼하자 같은 흐름이 됐으려나」

「……엣」

「어차피 다른 여자를 붙잡을 시간도 없고 말이야. 저세상에서 그레이 선배한테 자랑하기 위해서라도 아내를 만들어 두는 건 나쁘지 않지」



 …….



「로들리 군도 참 못 말리겠네요」

「뭐가?」


 로들리 군은 참 실례되는 사람입니다.


 그는 달리 붙잡을 여자가 없으니까 고작 자랑하기 위한 목적만으로 결혼 상대를 저로 타협해주겠다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평범한 여자가 들었다면 뺨을 후려갈길 정도로 불쾌한 발언입니다.


「좋아요」

「응?」

「로들리 군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네요. 저를 호적에 올리는 걸 허락해 드릴게요」

「……왜 내가 애걸복걸한 것처럼 된 거냐?」


 그래도 뭐어.


 여태까지 몇 번이고 제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니 무례는 봐 드리겠습니다.


「그럼 결혼합시다. 자, 땅땅」

「어, 어어」


 저는 로들리 군의 손을 잡고 그를 똑바로 응시했습니다.


 그의 볼에 어렴풋이 붉은 기가 돈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자, 이걸로 저희는 부부인 셈인데, 뭔가 감상이 있나요, 로들리 군?」

「어, 이렇게 대충……? 뭔가 그, 반지를 끼운다던가 그런 건 없어?」

「없네요, 반지」

「그야 그런가」


 로들리 군은 조금 미묘한 표정으로 뺨을 긁적였습니다.


 하지만 딱히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로들리 군. 로들리 군은 성이 뭐였죠?」

「로우야. 로들리 로우」

「그럼 오늘부터 저도 토우리 로우라고 말하고 다니겠습니다. 죽기 전까지」

「얼마 안 남았네」


 슬슬 로들리 군의 안색이 흙빛이 되어가고 있었기에 저는 그의 머리를 제 무릎 위에 올렸습니다.


 이른바 무릎베개입니다.


「아, 맞다. 제 인식표, 노엘 부분을 찍찍 긋고 로우라고 고쳐 써야겠네요」

「그래」

「이걸로 의미를 알아채 준다면 묘비를 나란히 놔줄지도 몰라요」


 서서히 안광을 잃어가는 그에게, 저는 계속해서 상냥히 말을 걸었습니다.


「뭔가…… 좋네」

「뭐가요?」

「결혼한다는 거, 내 신부가 있다는 거, 좋다」


 희미하게, 그리고 공허한 눈으로 로들리 군은 그리 말했습니다.


 그 눈은 더이상 저를 포착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고맙다, 꼬맹아. 나 같은 걸 좋아해줘서」

「……. 틀렸어요. 저는 꼬맹이가 아닙니다」

「……응」

「제 이름은 토우리 로우라고요」

「그랬지. 미안」


 역시 로들리 군은 이제 한계에 임박한 거겠죠.


 제 눈앞에서 그의 생명의 불꽃이 서서히 다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조금이지만 꿈을 이뤘어」

「……」

「자식도 손자도 없고 침대 위도 아니지만, 엉덩이도 가슴도 다 쬐그만 아내가 마지막을 지켜봐 줘서 행복해」

「정말」


 그 꺼져가는 목숨을 끌어안고.


「마지막까지 무례한 사람이네요」


 더는 움직이지 못하는 로들리 군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며.


「먼저 갈게, 토우리」

「다음에 또 만나요, 로들리 군」


 조용히, 입을 맞췄습니다.






「……그래」



 입술을 떼니 그는 이미 절명해 있었습니다.


 눈동자는 공허하고 전신에 힘이 빠져 추욱 쳐진 몸은 더없이 무거웠습니다.



「아르노마 씨는 거짓말쟁이야」



 저는 눈감은 그에게 다시 한번 입맞춤했습니다.


 피와 흙의 맛이 스며들어 구슬픈 입술이었습니다.



「이게 제 인생 최초의 키스라고요」



 아아, 그리운 기억입니다.


 인생 최후의 휴일에 수도에서 데이트의 일환으로 아르노마 씨의 연극을 보러 갔던 그때.


 거기서 용사 이겔은 연인을 되살렸다고 했는데.



「전혀 안 살아나잖아요, 로들리 군……!」




 저는 적에게 발각될 수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로들리 군의 시신을 끌어안은 채 한참을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











「……」


 배가 너무나도 무겁습니다.


 현기증과 두통에 구역감이 치솟으면서도.


「……후우」


 저는 적의 경계망을 가로지르며 둘이서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얼마 안 남았어요, 로들리 군」





  가죽 요대를 사용해 로들리 군의 시신을 등에 업은 채, 한 걸음 한 걸음 무아지경으로 앞을 향해 걸었습니다.


 등으로 전해지는 그의 체온이 점점 차가워져 갑니다.


 그게 참을 수 없이 슬퍼서 입술을 꽉 깨물었습니다.



「……」



 타르강 주변에는 아직 수많은 사바트 병사들이 산개해 있었습니다.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앞에도 뒤에도. 농밀한 죽음의 기운이 떠돌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지옥 같은 장소에서 타고난 감으로 안전한 방향을 찾아 비틀비틀 나아갔습니다.




 다리가 물먹은 솜마냥 무겁습니다. 입속에는 비릿한 피 맛이 번지고, 배는 둔탁한 통증이 계속됐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한테는 가고 싶은 장소가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자, 로들리 군. 도착했답니다」



 전쟁 중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만큼 한적하고 잔잔한 물소리.


 사바트와 오스틴의 전쟁의 서막을 연 타르강 강변입니다.



「……참 예쁜 곳이지 않나요?」



 저는 등 위의 로들리 군에게 말을 걸면서 천천히 강에 발을 집어넣었습니다.


 슬슬 제 명도 다하려고 하는 게 느껴집니다.


 결승점에 도달했다고 긴장을 푸는 순간 그대로 의식을 잃고 잠에 들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몇 걸음만 더. 의식을 붙들고 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로들리 군의 몸을 적이 마음대로 갖고 놀게 해줄 성싶나요」



 제 목적은 로들리 군을 수장하는 것입니다.


 그대로 산속에 버려뒀다가 적들이 그의 머리로 공놀이라도 해버린다면 죽어서도 성불하지 못할 테죠.


 사실 알렌 씨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장례를 치러주고 싶었지만……. 제겐 남은 체력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제 시체로 장난치는 것도 싫고요」



 풍덩, 물보라를 일으키며 저는 타르강 깊숙이 걸음을 옮겼습니다.


 무릎께까지 물에 잠겼을 때쯤, 한 걸음 한 걸음이 철근처럼 무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수는 없기에 온몸을 채찍질하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일단 이 몸은 로들리 군의 것이니까요…… 읏」





 저는 위생병입니다. 자가진찰 정도는 당연히 가능합니다.


 복막염, 복강내출혈, 전신 타박상, 견갑골 골절. 즉시 후방 의료시설로 실려가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도의 중증입니다.


 그 상태에서 아무리 발버둥치더라도 살아날 방법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조금만 긴장을 풀면 정신을 잃을 정도로 약해져 있었으니까요.



 저는 그런 상태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궁리했습니다.


 모든 것을 단념하고 로들리 군과 나란히 잠드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때, 바로 근처에서 타르강의 물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차피 스러질 목숨이라면 흙비린내 나는 진흙탕보다는 아름다운 장소에서 죽고 싶어.


 그렇게 생각한 저는 로들리 군의 시신을 등에 이고 걷기 시작했던 겁니다.



「……」



 강의 수심이 점점 깊어져 갔습니다.


 두 사람분의 무게를 끌고 필사적으로 발을 내디디고 있으나 살짝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순식간에 물살에 휩쓸려버리겠죠.


 조금만 더 안으로. 조금만 더 깊은 곳에서 몸을 던지자고 재촉하며.


 그러면 저희를 더 먼 곳으로 운반해주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어라」



 제게 업힌 로들리 군이 조금 딱딱해진 것 같았습니다.


 아직 사후경직을 일으키기에는 이른데…… 그의 팔이 제 몸을 끌어안는 힘이 서서히 강해지고 있습니다.


「로들리 군은 의외로 외로움을 타는군요」


 그런 그의 팔을 감싸듯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벨트로 꽉 고정해놨으니까요」



 이윽고 몸의 한계를 직감한 저는.



「죽음이 둘을 갈라놓더라도 쭉 함께랍니다」



 다리의 힘을 풀고 무너지듯이 수면으로 뛰어들어.


 보글보글하는 산뜻한 물소리와 함께 물살에 몸을 맡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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