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돌아오면 결혼하자고 그녀는 말했다. 아마 그녀 외에도 그렇게 말하면서 연인을 떠나보낸 사람이 아주 많을 것이다. 지금 이제까지 유례가 없는 대병력이 동원된 만큼 더더욱 그럴 것이다.


백만! 백만의 대군! 이제까지 그만한 숫자가 동원된 전쟁은 있었던 적도 없었고, 있었더라도 대개의 경우 보급반과 전투병을 합쳐 백만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전투병이 백만을 한참 상회하고, 보급반은 그 2배에 이르는 대군이다. 거의 3백만을 초과하는 규모라는 뜻이다. 절대 이기지 못할 리 없는 숫자.


행군하며 사랑하는 그녀를 떠올려 보았다. 참 착하고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우리는 마을의 절에서 탑돌이를 하다 처음 만났다. 절의 규모는 별로 크지 않았지만 그 절이 나에게는 가장 큰 절이었다. 여인은 아름다웠고 나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는데, 항상 매일같이 나와서 탑돌이를 하는 사람이었다.


아마 탑돌이를 시작하고 열흘 정도 지났을 때, 처음 그녀와 대화를 했다. 그녀는 나에게 이름과 사는 곳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 날 시장에서 과자를 사 먹으면서 이야기를 좀 했다. 그녀의 이름은 소산이었고 나이는 열여섯으로 당시의 나와 동갑내기였다. 어촌과 농촌이 맞닿아 있는 우리 마을과 옆 마을의 지리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생선 냄새를 조금 풍기는 어부의 딸이었는데, 고깃배 열다섯 척을 가진 상당한 부잣집이었다.


다시 열흘 정도 지났을 때, 내가 많이 아팠다. 그런데 아파서 집 안에 앓아누워 있는데 소산이 나를 찾아왔다. 내가 매일같이 나오는데 그날 한 번 안 나오니 걱정되어서 찾아왔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양측 부모님이 인사하고 다음 날 번개같이 약혼을 했다. 굉장한 급전개이고 우리 후손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라떼는 그랬다.


그런데 그렇게 1년 정도가 지나고, 우리가 살 집도 짓고 땅도 준비했을 때 나라에서 징집령이 떨어졌다. 그런데 그 규모가 예사롭지 않았다. 처음에는 우리 나라가 침략을 받은 줄 알았을 정도로 엄청난 수준이었다. 원래 "한 집에서 장정 한 명" 혹은 "한 집에서 장정 두 명" 이런 식으로 인원이 배당되는데, 이번에 떨어진 명령은 "16세 이상 60세 미만의 모든 남성"이었다.


뭐, 나라에서 부르는데 어쩌겠는가.


내가 집에서 떠나기 전날, 소산은 나에게 임신한 것 같다고 고백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1년 가까이 동거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 전쟁에서 돌아오면 결혼하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마침내 군대가 집결한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병사들의 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기병들이 달리면 땅이 마구 울리고, 공병 구역은 공성탑과 투석기의 열대 우림을 이루었으며, 군량미가 쌓여 있는 것이 마치 태산과도 같았고, 바닷가는 수천 척의 군함으로 덮였다.


우리 군은 위풍당당하게 출병했다. 그리고 적지에 들어서 오합지졸 같은 적병 수백 명을 죽였고 사방으로 진격해 성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적들의 성은 생각보다 견고했고, 작전사령부에서는 새로운 작전을 수립하였다. 이곳에서 적들의 본대를 묶어놓는 사이, 병력을 일부 분리하여 적들의 수도를 직접 공격하자는 계획이었다. 우리 군에게 썩어넘치는 게 군사였으니 병력을 분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나를 포함한 수십만 특공대가 적들의 수도를 치러 진격하고 있다. 적장은 어리석어서 우리와 충돌할 때마다 다급히 후퇴하고, 또 주제파악 못하고 또 공격했다가 후퇴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것 때문에 일정이 이틀 정도 늦었지만 별 상관은 없다.


마침내 적들의 수도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도달했다. 그 때 말을 탄 병사 하나가 저기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장군님! 장군님!"


"오, 그래, 무슨 일이냐?"


"적 왕이 항복하겠다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장군이 그 글을 받아서 읽어 보더니 흡족하게 웃었다. 아, 이제 전쟁이 끝났다. 돌아가서 소산과 결혼하고, 내 아이도 볼 수 있다. 우리 군은 머리를 돌려 물러나기 시작했다. 적들의 수도로부터 물러나고 있는 군사들! 승전고를 둥둥 울리며 물러나는 병사들!


돌아가려면 강을 건너야 했다. 우리 군은 강에 거의 다다라서 도강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배가 모자랐다. 장군이 명령했다.


"전군 무기를 버려라! 갑옷도 버려라! 배를 가볍게 해서 최대한 많이 태워 가야 한다! 병장기는 그 다음이다!"


왜 이렇게 서두르느냐 하면, 식량 때문이다. 우리 특공대는 적들의 수도로 직접 돌격해야 했기 때문에 보급부대가 따라올 수 없었고, 우리 먹을 것을 우리가 가지고 가야 했다. 이제 우리는 식량이 바닥나서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야 했다.


내가 옆에 있던 선임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까 도망만 다니던 적장 정말 우습지 않으셨습니까?"


"아, 정말 웃겼지. 대장군이라는 자가 비명을 지르면서 "으아아아아!!"하며 달아나는 꼬라지하고는!"


"덕분에 우리가 이틀 정도 늦게 도착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내가 잠시 생각하다가 강을 바라보았다. 도강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제 1조. 그다음으로 도강할 예정인 제 2조. 그 뒤로 거의 30개 가까운 조가 있고, 우리는 마지막 조였다. 내가 갑옷을 벗고 방패, 칼을 모두 내려놓은 뒤 제자리에 섰다. 선임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문득 기억이 나지 않아서 선임에게 물었다.


"근데 그 적장 이름이 뭐였죠?"


"몰라, 굉장히 특이한 이름이었는데."


그러자 그 옆에 있던 다른 선임이 대답했다.


"4글자였어."


"아, 맞아! 여기 이 강에서 결판을 보겠다고 으스대면서 돌아가더니, 결국 두고 보자는 놈들 중에 무서운 놈 없군."


"그래서 이름이?"


"아마... 을지문덕이었나?"


그 순간 뒤에서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