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택에 돌아오자 카스톨이 의외의 소식을 알려줬다.

 “오늘 저녁쯤에 알베도 이비스님께서 오신다고 방금 연락이 왔습니다.”

 처음 듣는 이름이다. 나는 알프레드에게 누군인지 믈어보았다.

 “옛날부터 관계를 유지하는 가문의 영애입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알프레드는 카스톨에게 무슨 이유로 방문하는지 물었지만, 카스톨은 거기까지는 모르겠다 말했다. 알프레드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카스톨에게 손님방을 청소하고 폴룩스에게 손님이 좋아하는 다과류를 준비하라 말하고 남은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도 알프레드를 도와 짐을 옮겼다. 제발 지금 옮기고 있는 감자 포대에 내 허리가 버티길 빌고 싶다.

 

몇 분 후

 저택은 손님으로 온 나를 제외하고 분주했다. 카스톨에게 어제 저택을 안내해 줄 때의 여유는 볼 수도 없었고 항상 미소를 짓는 알프레드도 이번에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바쁜 모습을 보니 도와주고 싶었지만, 저택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무턱대고 도와주겠다 해봤자 걸리적 거릴 것이고 나 또한 방금까지 식료품 포대를 옮기느라 지쳐 그냥 조용히 방으로 돌아와 어제 읽던 책이나 봐야 겠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 옆 탁자 위의 책을 집었다. 가름끈을 조금 당겨 어디까지 읽었는지 보려 했지만, 가름끈은 책의 뒷 표지에 있었다. 어제 잠결에 제대로 끼우지 않은 것 같다. 결국 책을 펼쳐 어디까지 읽었는지 찾아야 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겨도 읽지 않은 부분은 나오지 않았다. 분명 어제 중간에 읽다가 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책의 모든 내용에 기시감을 느꼈다. 결국 나는 책을 처음부터 보기로 했다. 재밌는 책이었으니 다시 읽어도 재밌을 것이다.

 

몇 시간 후

  [이 방의 벽 속에서 악마의 쥐들이 뛰어다니며 내가 모르는 더 거대한 공포 속으로 나를 유혹하고 있다. 사람들은 쥐떼 소리를 듣지 못한다. 저 벽 속에 쥐, 쥐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결국 소설 한 권을 다 읽었다. 혼자 방안에 있어 봤자 심심하니 책을 반납하고 새 책을 빌리기 위해 서재로 향했다. 서재 문 앞에 다다르자 계단에서 가방을 들고 있는 카스톨과 함께 누군가가 올라왔다. 

 푸른 빛이 감도는 검은 단발 머리에 그에 대비되듯 새하얀 피부와 하얗고 화려한 드레스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마치 새하얀 장미에 흑진주를 장식한 듯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녀가 아마 저택에 온다 말한 ‘알베도 이비스’일 것이다. 나는 그녀의 모습에 잠시 넋을 놓고 말았다. 그녀가 감정없는 눈빛으로 날 보자 비로서 내가 길을 막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즉시 비켰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넋을 놓은 것도 있지만 더 황당한 사실에 나는 넋을 놓고 말았다. 그녀는 온 몸이 젖어 있었다. 분명 저택에 돌아올 때 까지만 해도 햇빛이 화창했고, 책을 읽는 동안에도 빗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하면 저렇게 젖을 수가 있는 것일까? 나는 이어서 카스톨이 들고 있는 가방을 보았다. 가방에는 물이 꽤 많이 새고 있었다. 카스톨에게 이게 무슨 일인지 묻고 싶었지만 끙끙대는 그녀를 보자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지나가고서 카펫을 보았다. 푹 젖어서 볼품없었다. 거기에 계단도 흥건한 것이 뒤처리가 까다로워 보였다. 그녀에게 약간의 동정을 느끼며 나는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

 

몇 분 후

 “식사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알프레드의 말에 읽던 책을 책장에 넣고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는 폴룩스와 알프레드, 그리고 나 이렇게 세명이 있었다. 알프레드에게 손님과 카스톨에 대해 물어보니 아직 목욕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손님도 왔는데 먼저 먹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오면 같이 먹겠다고 말했다.

 폴룩스에게 오늘 저녁에 대해 물으면서 요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니 알베도 이비스와 카스톨이 식당에 들어왔다. 그녀의 옷은 계단 때와 달리 검은 드레스였다. 아까와 달리 검소한 드레스 덕분에 그녀는 마치 검은 대리석 조각 같았다. 그녀가 앉자 폴룩스는 준비한 에피타이저를 꺼냈다. 

 이후 아무 말없이 식사를 하다 메인 요리가 나왔을 때 알베도 이비스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보아하니 저택 사용인은 아니신 것 같은데, 누구시죠?”

 그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저번 경찰에게 그랬던 것처럼 사업가로 말할지 아님 솔직하게 말할지 고민이 되었다. 

 “엘크 디어혼님의 자제입니다.”

 내가 말을 못하는 것을 보고 알프레드가 대신 말해주었다. 알베도 이비스는 별다른 반응 없이 조용히 메인 요리를 먹었다. 뭔가 괜히 민망해져 나도 조용히 메인 요리를 먹었다. 요리를 다 먹을 때쯤 그녀가 다시 말을 걸었다.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하셨습니까?”

 순간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역시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알프레드가 대신 말해주었다.

 “셀베스 오벳님은 아직 저택에 오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대답에 알베도 이비스는 다시 조용히 음식을 먹었다. 뭔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메인 요리를 끝내고 다음 요리를 기다리던 중 그녀는 또 다시 말을 걸었다.

 “오랜만에 온 저택은 어떠셨습니까?”

 어느정도 답할 수 있는 질문이 나왔다.

 “저는 이곳에 처음 왔습니다. 설령 전에 왔다 해도 너무 어릴 때 일이라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꿈을 꾸시지 않았습니까?”

 “무슨 소리입니까?”

 갑작스런 꿈 얘기에 조금 공격적인 말투로 물었다. 이런 말투에도 그녀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십니까?”

 “알프레드가 말한 것처럼 저는 저택에 온지 고작 3일째입니다. 그 전까지는 이 저택에 대해서도 아버지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습니까?”

 “지금 제가 이 저택에 알고 있는 거라곤 저택의 구조와 생전 아버지께서 하신 사업 정도입니다.”

 내 대답을 듣자 그녀는 나를 조용히 응시했다. 이윽고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그녀는 입을 열었다.

 “제가 괜한 질문을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질문들은 잊어 주세요.”

 그녀의 말에 약간의 허탈감을 느꼈다. 대체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진정하기 위해 차를 마시려고 찻잔을 들었지만, 찻잔은 텅 비어 있었다. 차를 마시기 위해 알프레드에게 부탁하려 했지만, 그의 표정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살짝 선 목의 핏대와 파르르 떨리는 그의 콧수염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그의 화가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내 시선을 눈치채고 다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십니까?”

 “차 한 잔 부탁하겠습니다.”

 그는 미소를 보이며 차를 따라주었다. 그가 따라준 차를 한 모금 마시니 폴룩스가 다음 요리를 가져왔다. 그리고 식사가 끝날 때까지 알베도 이비스와 나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몇 시간 후

 결국 식사 때 이후 그녀와 어떤 대화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녀가 떠날 때가 되어 나를 포함한 저택의 모든 사람들이 배웅을 나섰다. 가벼운 인사를 하고 그녀는 떠났다.

 이윽고 카스톨은 빨래를, 폴룩스는 빵 준비를, 그리고 알프레드는 오늘 미처 하지 못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홀을 떠났다. 홀에 홀로 남아 나는 그녀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알베도 이비스는 기묘한 사람이었다. 하는 말도 하나같이 나사가 빠졌고 단번에 이해하기 힘들었다. 거기에 올 때 몇 시간 있을 뿐인 데도 가져온 큰 가방과 비도 안 오는데 푹 젖은 모습도 그렇고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가방을 챙겼었나?

 문득 떠오른 생각에 나는 그녀가 머문 방으로 갔다. 가방은 열려 있는 채 방에 그대로 있었다. 가방 안은 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외에는 수첩이나 손수건 같은 것들이 물에 푹 젖은 채 있었다. 큰 가방 안에 짐이 별로 없었던 것도 이상했지만 안에 물이 가득 차 있는 것이 굉장히 이상했다. 이상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그녀를 놓칠까 봐 가방을 닫고 방을 나섰다.

 저택 나머지 사람들은 다 바빠 보여 내가 가방을 건내 주어야 했다. 그녀가 얼마나 갔을 지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녀는 저택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여기 가방을 놓고 가셨습니다.”

 그녀는 덤덤하게 감사 인사를 하고 가방을 받았다. 마치 내가 가방을 건내 줄 것이라고 아는 사람 같았다.

 나는 할 일도 마쳤겠다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저택으로 가려는 순간, 그녀가 나를 불러 세웠다.

 “알고 싶으십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저택이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습니까?”

 확실히 저택에서 이상함을 느낀 것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사용인들의 위화감이 드는 행동과 저택에서 느낀 묘한 기시감, 그리고 인신공양을 하는 종교까지, 이상함을 안 느끼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그녀도 내가 이상함을 느꼈다는 것을 알았는지 내 대답을 듣지 않고 바로 말을 이었다.

 “사슴의 뿔을 당겨보세요. 그럼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사슴의 뿔을…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제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입니다. 이 이상은 규칙에 어긋납니다.”

 “규칙은 또 뭐죠? 대체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사슴의 뿔을 당기는 것. 이것만 기억하세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갈 길을 갔다. 여전히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심란한 상태로 저택에 돌아왔다.

 “셀베스 오벳님, 어디가셨습니까.”

 정문을 열자 알프레드가 걱정하고 있었다. 그에게 놓고 간 가방을 돌려주러 잠시 나갔다 말했다. 그 말에 그는 안심하고 다시 자신의 일을 하러 돌아갔다. 

 정말 피곤한 하루였다. 낮에는 형사가 밤에는 알베도 이비스가 나를 심란하게 만들었다. 몸도 피곤하고 정신도 피곤하다. 그냥 들어가서 푹 자고 싶었다. 계단을 오르며 문득 카펫을 보았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엉망이었던 카펫은 마치 새것처럼 말끔했다. 분명 내가 저택을 나선지 10분도 안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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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지적 및 고쳐야 할 부분을 알려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