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저와 첫 만남이 여름이 되기 직전이라 생각하는데.

사실 처음 당신과 마주친 건 벚꽃이 시들기도 전, 첫눈에 반했지만 마주치기가 겁나 몰래 숨어서 지켜봤어요. 당신이 뭘 좋아하는지, 자주 가는 곳이 어딘지, 듣는 수업은 뭔지.

어떻게든 당신과의 우연한 만남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첫 만남 때 당신이 말했죠? 이렇게 잘 맞는 사람은 처음봤다고.. 후후, 잘 맞을 수밖에.

 

 

여름에 바다로 갔던 날 기억나요?


여럿이서 가는건 오랜만이라며 기뻐하던 당신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지고, 밤 바다에서 당신이 저한테 고백 했을때의 설렘과 두근거림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당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자부했는데, 그런 남자다운 모습도 있을 줄이야.

선수를 뺏겨버려서 좀 아쉽긴 해요.

 

고백 멘트 도 아직 기억나네요.


붉은 꽃은 열흘을 그 아름다움을 넘기지 못하지만 너는 영원히 아름답다며 웬 시인마냥 고백했잖아요. 솔직히 웃기지만 기뻐서 눈물이 나왔어요.

그 말 하나 하기 위해 얼마나 긴장했는지 떨리는 목소리와 제 눈을 피하는게 보였거든요.

 

 

여름 끝 무렵 제가 당신에게 이유없이 화냈던 날 기억나요?


지금와서 얘기하는 거지만, 사실 그날 당신의 폰을 훔쳐봤어요 아니 그날뿐 만이 아니라 늘. 멍청한 사람, 비밀번호가 그렇게 쉬우면 어떻게 세상 살아가요?

 

단톡방을 둘러보는 도중 당신과 같이 찍은 여자 사진이 있는 것을 보자마자 화가 참을수 없더라고요, 하지만 뭐 말할 수는 없고... 들켜버리잖아요? 당신의 폰을 뒤져본게.

그래서 이유없이 당신에게 화내고 그년이 누구인지 SNS에서 하루종일 찾아보고 집앞까지 갈려 했던게 기억나네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중증이었나 생각돼요.

 

 

가을이 됐을 때 저보다 당신의 과보호가 더 심했던 것 같아요.

춥지도 않은데 한겨울에 쓸법한 목도리를 둘러주지, 장갑 꼭 끼라고 하지, 오히려 제가 해 주고싶은 말이었는데.

 

떨어지는 단풍을 보며 제게 했던 말 아직도 생각나네요.

늘 피어있을 것 같던 잎도 저렇게 떨어지는데 요즘 뭔가 불안하다는 식으로요.

그 말을 들은 제가 정색하고 쳐다보자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다음날 저한테 조화를 선물해 줬죠. 그때 사실 화난것 보다는 이 사람이 날 떠날 수 있을까? 왜 놓아줘요? 제가.

그리고 선물이 보라색 튤립이라니, 너무 귀여운거 아니에요?

당신이 부끄러운지 꽃말을 빙빙 돌려서 말해주는데 이미 튤립 밑부분에 돌돌 말린 종이에 조그마하게 적혀있었거든요, 영원한 사랑이라고.

 

 

첫눈이 내린 날 당신과 처음 관계를 가졌죠.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 절 먼저 원하길 기대하고 있었어요, 제 한계가 겨울까지 밖에 안된 것 뿐이지.

크리스마스 이브때도 눈이 내렸었죠? 그때 당신이 선물해준 반지를 보며 처음으로 그렇게 울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당신 시 같은거 정말 좋아하네요.

그때도 사계는 영원히 반복 될테고 그 곁에 네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프러포즈 했잖아요.

 

그리고 다시 봄이 왔고, 이야기는 계속 되겠죠.

 

 

 

 

 

 

 

 

"더 들려줄 이야기가 없네요.“

 

그녀는 책을 덮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이 사계절은 영원히 반복되겠죠."

 

보라색 튤립이 그려진 책을 가방에 넣으려고 하던 그녀는 잠시 멈춰서며 중얼거렸다.

 

"거짓말쟁이.“


그 후 기지개를 쭉 핀 후 뒤를 돌아 걷기 시작했고 뭔가 깜박했다는 듯 뒤를 돌아 웃으며 얘기했다.

 

"아, 내년에는 수연이도 데려올게요. 얼마나 이쁘게 컸는지 보면 깜짝 놀랄걸요?“

 

그녀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