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성녀였던 소녀에게 뒷이야기

 

 

 

 

알버트가 루실리카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또 몇 주가 지났다.

 

알버트는 루실리카를 위해 만찬을 준비하거나, 그녀의 쓸쓸함을 덜어주기 위해 매일

 

밤마다 곁에서 말동무를 해주었다. 이전부터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루실리카는

 

날이 갈수록 자신이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2. 그러나 루실리카는 진통제에 중독된 상태였기에 매일 약을 맞고 취한다.

 

약에 취한 그녀는 그야말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아서, 알버트가 곁에 있으면

 

얌전히 그에게 응석을 부릴 뿐이지만 그가 사라지면 곧바로 돌변하여 주위에

 

저주를 퍼붓거나 어두운 게 싫다며 불을 지르는 등,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3. 뿐만 아니라 루실리카는 강간으로 인해 임신한 상태, 떠돌이 마법사 홀트는 알버트를

 

위하여 마시면 유산하는 약을 만들어준다. 그것을 마시면 뱃속의 아기는 죽는 것이었다.

 

그는 그걸 마시게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강간으로 인해

 

생긴 것이라지만 태어나지도 못한 아이를 죽이는 것이 옳은가? 그런 고민 끝에 그는

 

몰래 루실리카에게 그 약을 먹이려고 각오하나, 밤에 잠든 그녀의 얼굴을 보고선 포기한다.

 

만약 아기가 죽는다면, 이미 위태로운 그녀를 완전히 부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었다.

 

4. 또 다시 시간은 흐르고, 날이 갈수록 루실리카의 배는 점점 커져갔다.

 

알버트는 다시 한 번 낙태약을 쓰려고 각오하지만 그런 그의 앞에 에디우스가 나타난다.

 

홀로 찾아온 에디우스는 알버트의 고민을 듣고 고민 끝에 자신의 아버지, 반역자인

 

루크마이어 엔더스에 대해 들려준다. 에디우스는 본래 태어나선 안 될 존재였으나

 

그의 어머니,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를 낳았다. 그 혈통 때문에

 

성을 물려받지도, 왕족으로 인정받지도 못하지만 자신이 태어난 것엔 아무 후회도

 

없다고 말한다. 또 ‘부모의 죄로 인해 죄 없는 자식이 처벌받는 것이 옳은가?’라고

 

알버트에게 질문하여 다시 한 번 그의 마음을 흔든다. 

 

5. 마침내 알버트는 루실리카에게 직접 묻는다. 그 아이는 태어나서 축복받지도 못할

 

것이며, 그 혈통 때문에 미움 받게 될 거라고. 강간으로 만들어진 아이가 태어나게

 

둘 순 없다고. 그러나 루실리카는 대답한다. 설령 아이의 아버지가 죄인이라 할지라도

 

아이를 죽이는 것은 분명 살인이라고. 태어나지도 못한 아이를 죽이는 짓만은 할 수 없다고.

 

알버트는 대꾸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그 이후로 루실리카를 조금 멀리하게 된다.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 뱃속의 아기가 너무나도 미워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6. 이런 탓에 루실리카는 자신이 미움 받는다는 생각에 점차 미쳐간다. 약에 의존하는 것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기억을 잊어버리거나 도저히 제정신이라고

 

볼 수 없는 짓을 거듭한다. 또 자신이 더럽혀졌기 때문에 알버트가 자신을 미워하게

 

된 거라 생각하여 자살을 시도하나, 알버트가 그것을 목격한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루실리카는 알버트에게 자길 죽여달라고 부탁하나, 그는 차마 그것만은 들어줄 수 없었다.

 

7. 알버트는 단단히 각오하고 루실리카의 곁을 지키기로 했다. 설령 그 뱃속의 아이를

 

용서치 못하더라도, 사랑하고 동경하는 그녀의 행복을 위해 그 어떤 고통도 버티기로

 

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루실리카의 상태는 호전되지만, 예견대로 그녀의 몸과 정신은

 

점차 망가져간다. 처음엔 덧셈, 뺄셈을 잊었고 그 뒤엔 자기가 살던 성소를 잊었다.

 

나중엔 자기가 왜 싸웠는지, 어째서 이렇게 고통받아야하는지조차도.

 

8.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깨달은 알버트는 동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결혼하기로

 

한다. 이미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여인을, 그것도 적국 병사의 아이를 가진 여자와

 

백작 가문의 기사가 결혼한다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 게다가 루실리카는 이미 반역자로

 

낙인찍힌 상태였다. 그녀와 결혼한다는 것은 곧 알버트도 자신이 반역자라고 시인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루실리카도 이걸 알고 있었기에 반대하지만, 알버트는 그녀의

 

소원인 ‘평범한 여자로 행복해지는 것’을 이루어주기 위해 결혼식을 강행한다.

 

9. 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그 누구도 이들을 축복하지 않았다.

 

알버트의 동생은 아예 참석을 거부했고, 그나마 온 사용인들도 겨우 눈치만 볼 뿐.

 

루실리카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죄인이 된 것 같아 괴로워하지만, 그럼에도 알버트는

 

당당하게 그녀에게 청혼한다. 설령 자신이 반역자가 된다 하더라도, 그녀의 뱃속에

 

너무나도 미운 아이가 있더라도, 그녀가 머지않아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이게 루실리카의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행복한 기억이었다. 결혼식이 겨우 끝나고,

 

루실리카는 정식으로 알버트의 부인으로서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

 

10. 그리고 마침내 시간이 흘러,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는 딸이었으며 이름은 기적이라는

 

뜻을 담아 루시아라고 짓는다. 출산을 한 탓에 가뜩이나 위태로웠던 루실리카의 몸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다. 알버트는 아기를 품고 홀로 언덕에 올라가 아이를 죽이려고

 

했다. 도저히, 도저히 그 존재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 아기 때문에 루실리카가 죽는 것

 

같아서, 그리고 그 아기의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어서. 그는 돌로 아기를 쳐죽이려 하지만

 

알버트를 바라보며 방긋 웃는 아기를 보고 오열한다. 죽여야한다고 몇 번이나 되뇌지만

 

그는 도저히 그러질 못했다. 끝끝내 알버트는 아기를 죽이지 못했다.

 

11. 어느 날 밤, 루실리카는 루시아에게 젖을 주며 알버트에게 옛날 옛적, 태양신을 

 

섬기는 어느 성인이 순교한 일화를 들려준다. 그 성인은 그 누구보다도 고결하고 순수하여

 

모두가 믿고 의지하던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성스러운 사람,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분이라

 

칭해질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성인이 광장을 지나다 십자가에 못박혀 화형당하려는

 

죄인을 목격한다. 그는 수없이 약탈과 살인을 저지른 도적이었다. 성인은 그에게 다가가

 

죄를 뉘우치냐 묻고, 죄인은 하염없이 울며 죄를 뉘우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성인은 그를 풀어주고선 그의 죄가 사해졌다고 말한다. 이에 백성들이 분노하여

 

그렇다면 죄인으로 인해 피해받은 이들의 슬픔은 어찌 달래느냐, 죄인은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하니 용서란 있을 수 없다며. 이에 성인은 그렇다면 자신이 그 죄를 대신 짊어지겠다고

 

한 뒤 죄인을 대신하여 화형을 받아들인다. 그것을 목격한 죄인은 통곡하며 용서받지 못할

 

자신을 대신하여 고결한 이가 죽으니, 자신의 죄가 완전히 사해졌노라고 소리쳤다고.

 

알버트는 루실리카에게 왜 그 이야기를 하느냐 묻는다. 루실리카는 그를 향해 당신이

 

스스로를, 그리고 이 아이를 용서하지 못한 것을 안다고 말한다. 그러니 이 아이의 죄와

 

당신의 죄를 모두 짊어지겠다고. 알버트는 그러지 말라고 애원하지만, 루실리카는

 

이미 마음을 정한 뒤였다.

 

12. 그녀가 구출되고 1년째가 되던 날, 에디우스와 그 휘하의 기사들이 찾아온다.

 

그들은 예정대로 루실리카를 처형해야 한다고 말하나, 알버트는 이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검을 휘두르며 그들을 내쫓으려 한다. 그리고 죽일 거라면 자기도 함께 죽이라며 소리친다.

 

에디우스는 그를 제압한 뒤 제발 당신만은 죽지 말라고 부탁한다. 알버트는 자신에게

 

이걸 막을 힘이 없음을 깨닫고 그저 루실리카에게 가지 말아달라고 말할 뿐이었다.

 

루실리카는 모든 걸 각오하고 스스로 사형장으로 걸어간다. 

 

13. 십자가에 묶인 루실리카는 알버트와의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그저 흐느끼는 알버트를 달래며, 루실리카는 그에게 세 가지 명령을 한다.

 

첫째, 루시아의 아버지가 되어줄 것. 둘째, 성전 기사단과 자신을 잊지 말 것. 셋째, 

 

마지막으로 웃는 모습을 보여줄 것. 알버트는 겨우 눈물을 삼키고 미소를 보여준다.

 

그 직후, 에디우스가 슬그머니 다가와 알버트에게 창을 쥐어준다. 화형은 본래 길고

 

고통스러운 것인데, 죄인에 따라 고통을 느끼기 전에 숨을 끊어주기도 하는 것이었다.

 

알버트는 그럴 수 없다며 창을 버리려 하지만 에디우스는 그에게 루실리카가 고통 받다

 

죽기를 바라냐고 다그친다. 그리고 이것은 오로지 알버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성녀를 죽일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성녀를 위하여 모든 걸 바친 사람뿐.

 

장작에 불이 붙고, 연기가 피어올랐다. 루실리카는 그 고통 속에서도 알버트를 향해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알버트는, 그는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고자 활짝 웃으며

 

루실리카를 찌른다. 창을 따라 흐르는 그녀의 피가 알버트의 손을 적시고, 그는 소리 내어

 

웃다가 이내 울기 시작한다. 더 이상 그 광경을 지켜볼 수가 없어서, 알버트는 오두막으로

 

돌아와 루시아를 안고 그녀에게 바쳤던 화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우리의 죄가 사해졌노라고 몇 번이나 외친다.

 

루실리카, 한 때 성녀였던 소녀는 그렇게 죽었다.

 

14. 그로부터 또 시간이 흘러, 반역자 루실리카가 죽고 16년이란 세월이 흐른다.

 

알버트는 루실리카와 결혼했단 이유로 반역자로 낙인찍히나, 에디우스의 변호 덕분에

 

모든 직위가 박탈되고 재산을 몰수당하는 것으로 죄를 면했다. 귀족 가문의 기사에서

 

아무것도 없는 떠돌이가 되지만, 루실리카가 했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고나

 

루시아를 자신의 딸로 기르기로 한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여자의 자식이면서

 

한편으론 자신이 가장 미워하는 어느 남자의 딸을.

 

또 그는 성전 기사단과 성녀의 진실이 잊히지 않도록 전국을 유랑하며 그것을 퍼뜨렸다.

 

성장한 루시아가 나이를 먹고 더 이상 걷지 못하게 된 알버트에게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냐고 묻는다. 알버트는 이에 그녀는 한 때 성녀였던 소녀였다고 대답하며 

 

이야기가 끝난다...

 

 

 

 

 

 

 

라는 스토리로 쓰려고 했는데 중간 파트를 제외하면 얀데레 요소가 좀 부족했음

좀 뻔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마지막까지 쓰진 못했지만 뒷이야기가 궁금한 사람을 위해 썼다.

그리고 이제 여기도 오래 있었으니 떠나도록 함

난 어디든지 한 곳에 오래 있으면 안 되는 것 같음

아무튼 완결 못내서 미안하다. 그리고 지금껏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