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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경순양함 시리우스


* 이번화는 시리우스의 시점으로 서술됩니다


"...미안해" 


자랑스러운 주인님은 난처한 듯

 쑥스러워하는 듯한 감정을 감추며

저, 시리우스의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



비번이라고 하는 날은 뭐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저 산책을 한다든지, 다른 분과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만

시리우스에게 안정되는 시간은 지휘관님 곁에 있을 때 입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일하는 자랑스러운 주인님 곁에서 편히 쉬는 하루


물론 일하는 날에도 하는 일은

변치 않는다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요


하지만 오늘... 앞으로는...

더이상 그런 날도 없을 것 같내요


예정대로라면 자랑스러운 주인님이 외출하시고

오늘 밤에 귀가하실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아직 대낮


할 일도 없어서, 일찍 점심을 먹으려고 나가려던 참에

노크 소리가 들렸습니다


다른 로열 분들인가 했더니

놀랍게도 무엇인가를 숨기듯 웃고 있는 

자랑스러운 주인님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사태여서 놀라면서도

손님을 밖에서 기다리게 하는 것은 무례했기에


저는 어서 지휘관님을 제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자세히 들어보니, 론 씨 혼자서도 일을 끝낼 수 있기 때문에

조금 억지를 써서 빨리 돌아왔다고 하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지휘관님은 오늘따라 뭔가 이상했습니다

마치 듣지도 못한 변명을 늘어놓은 아이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시리우스의 방으로 오신걸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단지 와 주셨다고 하는 사실만으로 시리우스는...


보고 싶었어요

한시도 떠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견딜 수 없었어요

그리고 만나고 싶지 않았어요

마음만으로 항상 곁에 있을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번졌으니까요

여러가지 기분이 복잡한 형태가 되어 왜곡되게 일그러지는 것을 느꼈어요


그런 마음을 가다듬을 새도 없어, 갑자기 나타난 지휘관님...



가혹하신 분

그러면서도 굉장히 다정하신 분

정말 모자란다고 생각하면서도 침울한

이 시리우스 앞에 나타나신 일의 의미를 깨달은 것 같아요


모자란 메이드를 지휘관님이 지휘관님만의 상냥함으로 감싸주시려고...

저는 지휘관님의 손을 잡고, 살짝 침대로 유도했어요

지휘관님은 놓여 있는 의자를 가리키고 있습니다만

모처럼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침대가 있는데

의자에 앉히라고 한다면, 그것은 무례일 것입니다


저는 상냥하게

지휘관님을 침대로 유도했고, 저는 그 가장자리에 앉았습니다

벨파스트 씨에게 체제를 유지해야한다는 말을 지도받았기 때문입니다

영예를 해치지 않고 하는 일

메이드로서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지도해 주셨습니다


자랑스러운 주인님

부디 그 명예를 훼손하지 않도록 일을 하게 해주세요

이 시리우스, 지휘관님에게 위로를 받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연기라도 받아들이겠습니다


저는 가장자리에서 지휘관님과의 거리를 조금 좁혀

평상시부터 때때로 조금씩 보여지는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습니다


"자랑스러운 주인님, 상처받은 이 시리우스를 위해서..."


"할 말이 있는데"


시리우스는 무언가를 헤아린 듯 


"자랑스러운 주인님의 심신에 안정감을 주는 것이 

메이드인 시리우스의 노력

지휘관님, 시리우스를 위해서라면 무슨 말씀이라도 괜찮습니다"


적어도 메이드로서의 체재는 이루어냈다고 생각하니까요


얼굴을 붉히는 자랑스러운 주인님

분명 시리우스도 마찬가지로 얼굴을 빨갛게 물들고 있을 거에요

차이점이 있다면, 지휘관님의 눈이 탁하다는 정도...?


지휘관님의 말씀은 깊이 요령을 터득하기엔 단편적인 것이였습니다

뭔가 말하지 못할 무언가가 있겠지요

단지, 짐작이 간 것은 시리우스가 모르는 것을

그리고 알 수도 없는 것을 론 씨가 알고 있다는 것

그것을 사용해 자랑스러운 주인님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것


...용서할 수 없어요

이 건에 관해서는 제가 나서야 겠습니다


자랑스러운 주인님은 제 반응에 놀란 표정을 짓고

제가 나설 일이 아니라며, 저를 달래려고 들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침착한 척했지만, 기분이 전혀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여러가지 감정을 부딪히며, 론 씨를 아주 나쁘게 생각해버리는 저였습니다


이 함대에서 누구보다 곁에 있었는데도

그런 시리우스도 모르는, 알 수 없는 것을 아는 것이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그것을 공유 했다는 것이

질투나 났습니다


"따뜻한 것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손님을 접대하는 타이밍을 놓쳐서 그런지

지휘관님은 여간 거북해하셨습니다.

아니면, 시리우스의 얼굴을 보는 것이 좋은 걸까요


"달콤한 것을 마시고 싶어"


아, 얼마나 듣고 싶었던 말일까요

저는 저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지휘관님을 방에 두고

차를 끓이러 가기로 했습니다


가르쳐 주신 대로 맛있는 홍차가 되길 바라며

제발, 이것이 마지막 기회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벨파스트 씨에게 가르침 받은 것을 필사적으로 되짚어 갔습니다

주방에는 다른 메이드 분들도 계셨기애

가벼운 인사를 나누면서, 차차 준비를 진행시켜 갔습니다

이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지휘관님을 떠오르며 과정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배운 것 중에 가장 놀란 것은

홍차를 따르기 전에 컵을 데워 놓는 거였습니다

예의범절 중에서도 가장 상식적인 것이였는지

벨파스트 씨는 놀라는 저를 보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벨파스트 씨 가라사대

용기가 차가우면, 따뜻한 홍차의 향기와 풍미가 손상되어 버린다네요


음식을 맛있게 하려면

음식을 하는 사람이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

그리고 모든 순서를 순차적으로 잘 이루어야, 맛이 배가 된다는 것

그것을 메이드로서 잘 해내야 한다는 것

그런 가르침들을 받았습니다


벨파스트 씨에게서 들은 가르침은 

모두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중요한 것을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것


시리우스가 손에 넣고 싶었던 것은, 처음부터 얻었던 것

비서함으로서 자랑스러운 주인님 곁에

누구보다 옆에 서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일

그것을 위해서라면, 누가 무엇이라고 말하든 상관없습니다


처음 만난 함선이라고 해도

비서함으로서의 재능이 없다고들 하시겠지만

메이드로서 낙오되어 있다고 해도, 상관 없습니다

자랑스러운 주인님 곁에 있을 수 있는

그것만이 나의 전부이자 행복이니까요


벨파스트 씨는 대단한 분이에요

로열 메이드의 메이드장으로서 메이드들을 이끄는 수완

그것은 퀸 엘리자베스님도 인정하는 기술

로얄 뿐만이 아니라, 다른 진영에서도 벨파스트 씨를 인정했어요


만약 그녀가 비서함으로 자리 잡았다면

주위의 불만들도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에요

주위 사람들로부터 손을 쓰고 잇는 그녀라면...


하지만 그녀도 오산은 있었다고 생각해요

비서함 선발이 훈련 MVP를 차지한 자로 뽑히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더라고 하더라도

표정 하나 잃지 않은 채, 여유 있는 미소로 사태를 지켜보던 그녀

분명 다른 방법도 있었기에 그랬던 것이 아닐까요?


시리우스처럼 원하는 것을 그저 원하는 대로 이루려는 타입이 아니니까요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나내요

사실 그녀의 한 마디만 없었다면, 지금쯤...

지금도 이런 두려움 없이 자랑스러운 주인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길 수 있었을테니까...



데워진 컵의 온도를 유지하도록, 홍차가 부어졌다

눈어림은 절대 허락할 수 없다

충분히 챈 설탕을 넣어서, 천천히 저어 갔다


처음에는 모아진 설탕이 천천히 떨어져갔으나

다음 순간엔, 흩어진 나머지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남은 것은 색도, 향기도 다르지 않은 홍차가 하나

안에는 설탕이라는 불순물이 있지만, 그 모습은 이내 사라졌다

깨긋이 사라졌다. 없어졌다. 세세하게 분산되어 눈에서 제거되었다


"이렇게 모두 사라져 버렸으면 좋을텐데"


시리우스는 순간 자신이 무슨 말을 한 건지, 놀라고 말았다

누가 자신의 실언을 듣지 않았을까, 당황해서 두리번 거렸다

주위의 메이드들은 다행히도 각자의 일에 열중한 나머지

아무도 듣지 못한 모양이였다


시리우스는 안심감에서 오는 숨을 크게 내쉬고, 홍차를 잡았다


따뜻한 것을 식기 전에 내놓으며

인사를 하면서, 슬그머니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더 있다간, 불편한 심기를 여러분에게 내뱉을 것 같으니 말이에요


뒤에서 소곤소곤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시리우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요?


...그렇다면


그렇다면 모처럼 억제하려고 하는

이 감정을 대체 누구에게 향하면 좋은 것일까요?



"자랑스러운 주인님, 지금 홍차를..."


시리우스는 거기까지 말하다가, 이내 눈치채고 말았다

지휘관은 시리우스 밖에 사용하지 않는 침대에서

몸을 둥그렇게 웅크리고는 자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어젯밤에 별로 잠을 자지 못했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평소 잠만은 제대로 주무셨던 분인데 말이에요


단지, 최근에는 벨파스트 씨에게

아침부터 억지로 일어나는 날들이 계속 되고 있다고 들었어요

피고가 쌓여 있었으니, 시리우스 곁에 오면 마음이 놓였던가봐요

그렇게 생각하니 시리우스 마음도 조금 편안해지네요


"자랑스러운 주인님"


침대 옆 탁자에 컵을 놓고, 그의 뺨에 손을 대었다


마치 시리우스의 차가워진 마음을 따뜻하게 하듯

지휘관의 체온이 그녀에게 전달되었다


"계속 그리웠어요"


다만 지휘관님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리우스는 만족해요

하지만 그 이상을 원해요

그런 일을 매일 반복되는 꿈을 꿔요

다만 그것은 이룰 수 없는 일

왜냐하면 저는 메이드고, 그는 주인님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자랑스러운 주인님

부디 그 자비로운 마음으로

앞으로의 시리우스가 하게 될 행실을 용서해 주십시오

천한 메이드의 어리광입니다...

그 깊은 마음으로 용서를..."


시리우스는 살며시 자랑스러운 주인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춰갔다


벨파스트 씨에게는 감사를 드리지 않으면 안 되겠죠

정성을 들여가라... 그게 이렇게 훌륭한 가르침일 줄이야


시리우스는 지휘관과 마주보도록 누웠다

그리고 그의 양볼을 두 손으로 부드럽게 감싸고

두 번, 세 번, 계속 입술을 포개어 갓다

키스라는 준비 단계만으로도 

이렇게 몸에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는 시리우스였다


이렇게 시리우스의 침대에서 몸을 포개는 것도 두 번째내요

그때도, 분명 이렇게 해서 시리우스가 무리하게...


아, 지휘관님

규칙적이고도 따뜻한 숨이 코와 입에 닿았다

좀 더 느끼고 싶어...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그의 가슴에 갖다대며,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그것은 마치 기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랑스러운 주인님... 상처받은 시리우스를 위해..."




제발... 제발


그 몸을 시리우스에게 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