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https://arca.live/b/yandere/9567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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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외의 존재가 인간으로 변해 있다는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광경을 목도하게 된 얀붕이.


두 눈을 빛내며 흥미진진 했어야 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 어디까지나 순수한 자들 뿐이었기에


얀붕이의 심성은 분명 착하다만 다양한 서적들을 읽으며 성숙해져있는 그의 정신은 현실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그리하여 현재 눈 앞에 닥친 상황에 그는 당황해 할 수 밖에 없었다.


동화는 어디까지나 허구의 이야기이므로 아름답고 신비로운 법.


허나 지금 상황을 비유하자면 동화 속 인물들은 실존 인물이며 이야기는 그들의 경험담이야~ 라고 말하는 거나 다름 없었으니


선물을 주던 산타클로스 아저씨는 사실 없었으며 너네들 본 그의 정체는 부모님이라고 동심을 파괴하는 것과 맞먹는 정도다.


그러니 얀붕이가 입 만을 뻐끔뻐끔 움직이며 경직되어있는 게 어찌보면 당연했다


"쭈인님?"


소녀는 그런 얀붕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 거리다가도 그에게 다가가 안겨들었다.


"흐악!"


그제서야 얀붕이의 경직이 풀리며 그는 돌발적인 소녀의 행동에 대한 짧은 비명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에헤헤~♡ 쭈인님 져하♡"


그러거나 말거나 소녀는 그저 얀붕이의 몸에 달라붙어 시종일관 그의 냄새만 맡을 뿐이었고


얀붕이는 소녀의 애교스러운 행동을 보며 조금씩 마음을 추스리고 있었으나........


그것도 잠시 그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두번째 일이 일어나고 만다.


"도련님! 무슨 일이십니까?"


밖에서 어떤 남성의 목소리와 함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집에 있는 사용인 중 한명이 우연찮게 그의 비명을 들어버린 것 이리라.


얀붕이의 머릿속은 다시 하예지게 되었고 그는 무슨 변명을 해야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지만


마땅한 변명거리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으며 결국 시간 초과가 되었다.


"도련님의 용태가 걱정되니 실례하지만 들어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잠깐만!"


일단 시간부터 벌고자 했지만 이미 문이 열리면서 집사 한명이 안으로 들어와 얀붕이가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야심한 새벽에 거의 헐벗은 거나 다름없는 여성과 남성의 밀회, 자칫하면 가문이 발칵 뒤집어질 정도로 문제가 다분했기에


얀붕이는 망했다며 세상 전부를 잃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안으로 들어온 집사는 그를 보며 따스하게 미소짓고 있었으니 얀붕이는 이 점에 의아했다.


"악몽이라도 꾸신 겁니까? 아직 동이 틀려면 멀었으니 한 숨 더 주무심이 건강에 좋을 것 같습니다, 도련님."


"응? 으응, 그럴게."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심히 문을 닫고 퇴실하는 집사를 보며 얀붕이는 뭐가 뭔지 모르게 되어버렸다.


어째서 소녀를 보지못한 것인가 해서 둘러보자, 그제서야 얀붕이도 소녀가 어느새 사라져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잠시 숨은 것이면 모를까,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처럼 소녀의 기척이 1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역시 꿈이었던 거야......."


얀붕이가 간과한 사실 한가지, 바로 그가 소녀에게 주었던 윗옷도 덩달아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그 점을 깨닫지 못했던 그는 꿈이였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으며 이는 곧 침대 구석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깨지고 만다.


"쭈인님~♡"


"어......?!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침대와 벽이 맞닿는 모서리, 어떤 마술을 부린 것인지 소녀는 그 자그마한 직각의 틈에서 튀어나와 얀붕이에게 엉겨 붙어서


이전과 똑같이 애교 부리기 시작했다.


"하하........"


자신의 양볼을 붙잡고 쭈욱 당겨보는 얀붕이, 하지만 아픔은 확실했으니 꿈은 아니다.


기괴한 생물이 인간으로 변한다 던가 말도 안되는 곳에서 튀어나온다 던가 말도 안되는 일들을 연속으로 보게 되며


얀붕이는 깊게 한숨을 쉬면서 한가지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책임.......져야겠지?"


인간으로 변했다고는 쳐도 소녀의 행동은 자동적으로 어린 강아지를 떠올리게 만들었으며 소녀는 얀붕이만을 따르고 있었다.


이런 소녀를 거부하고 방치하기엔 밖은 너무나 위험했으며 본래의 기괴한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또 다시 학대 당하게될 터니


얀붕이의 양심이 그렇게는 안된다고 아우성 치고 있었다.


결국 얀붕이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돌봐주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에헷♡ 쭈인님♡ 쭈인님~♡"


소녀의 정체가 뭔지 모르겠으며 앞으로도 알 수 있을지 몰라도 얀붕이는 소녀를 받아들이고자 했다.


그만큼 얀붕이도 오랜 세월 외로웠다는 뜻이며 소녀의 존재가 자신의 쓸쓸함을 채워줄 거라는 희망이 크게 작용한 것.


그러니 얀붕이는 소녀의 만남을 운명이자 행운이라며 좋게 생각했다.


그러나 둘의 만남이 행운일지 불행일지는, 본인들을 포함한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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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른다, 그 동안 얀붕이와 소녀에게 이런저런 사건들이 있었지만 둘은 우여곡절 끝에 다 해결하면서 넘아갔기에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얀붕이를 제외하면 아무도 소녀의 존재에 대해 깨닫지 못했다.


이에 있어서 소녀의 마법 같은 사라짐이 큰 몫을 차지했고 날이 갈수록 발전해가는 얀붕이의 임기응변도 제법 효과가 있었다.


그렇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매일 함께 지내고 성장하며 친밀해져가는 둘.


"쭈인님~!"


"응? 왜 불렀어 라르?"


"오늘도 이 책이 읽고 시퍼요!"


"라르는 정말 그 책을 좋아하는구나."


"네!"


소녀가 들고 온 책의 제목은 플라르의 보은.


장애를 갖은 채 태어나서 주인에게 버려진 아기 강아지, 플라르와 마음씨 고운 여성의 따듯한 이야기였다.


태생부터 기형이였던 지라 모든 사람에게 배척 당했던 플라르는 세상을 증오하며 저주하면서 살아갔지만


우연히 만나게 된 여성의 진심 어린 애정을 받고 성장하게 된다.


그렇게 올바르게 자란 플라르는 위험에 처하게 된 여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맞바꿔가면서까지 구해내며 소설은 끝이 난다.


이야기에 나오는 플라르와 비슷한 면모가 많았던 라르는 이 책을 매우 좋아했다.


자신의 이름까지 플라르에서 따왔으니 얼마나 좋아하는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으며


얀붕이도 마음에 들어 하는 책이었기에 하루에 한 번 무조건 그는 라르에게 이 책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읽어 줄때마다 얀붕이는 눈물을 흘려야했지만 아무튼 그만큼 감명 깊은 스토리였다.


"쭈인님!"


"응?"


"저도 언제나 쭈인님이 위험해지면 도와줄 거에요!"


눈을 반짝이며 달라붙어오는 라르의 모습에 얀붕이는 저절로 웃음 짓고 말았다.


"그래, 라르도 언젠가 플라르처럼 훌륭하게 자랄 거야."


"에헤헷♡"


사랑하는 주인님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지며 행복하게된 라르는 그대로 얀붕이의 품 안에 껴안겨 들었고


얀붕이는 그런 라르를 받아주며 이내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세월 지나면서 라르가 사랑스럽게 성숙해지는 것은 틀림 없으나 라르의 체형이 처음 만났을 때와 다름 없다는 게 그의 고민인 것이다.


얀붕이가 자신의 식사량까지 늘려 라르에게 먹였음에도 그녀의 몸은 도무지 성장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허약한 건 여전하나 얀붕이의 키도 분명 크고 있는데 라르의 신체 변화가 전혀 없었으니 그의 입장에선 답답할 지경.


입장상 라르를 의사에게 보일 수도 없었으며 라르 본인은 건강하다는 듯이 지내고 있었으니 딱히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리하여 얀붕이는 오늘도 라르를 딱하게 여기며 최선을 다해 그녀를 사랑으로 돌봐주자고 결심하고 있었다.


"도련님, 깨어있으십니까?"


한참 얀붕이가 라르를 쓰다듬어주고 있을 때, 문 밖에서 사용인이 그를 찾아왔다.


이에 라르는 쓰다듬 시간이 끝나 아쉬워하면서도 자신이 자주 숨는 모서리 속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응, 무슨 일이야?"


"주인님께서 도련님을 찾으십니다."


"알았어, 나 혼자서 찾아 가볼게."


"알겠습니다, 주인님은 서재에 계시니 부디 몸 조심히 하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사용인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고 얀붕이는 곧장 방에서 나와 그의 아버지가 있는 서재로 향했다.


일정 이상 걷고나니 그의 허약한 몸은 금세 지쳤지만 최소한 그의 부모가 페가 되지않게끔 최선을 다해 목적지에 도달하고자 했다.


마침내 도착한 서재 입구, 얀붕이가 문을 두드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안에서 들어오라는 허가 떨어진다.


그렇게 얀붕이가 서재의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얀붕이의 아버지 외에도 그의 어머니가 아버지의 곁에 서서 울고 계셨고


얀붕이의 아버지 또한 매우 침울한 표정으로 계셨으니 얀붕이는 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을 부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힘들게 불러내서 미안하구나, 너를 꼭 불러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괜찮습니다, 부디 괘념치 말고 전부 말해주세요."


"영지의 정세가 좋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더 이상 우리의 재력으론 너를 부양할 수 없게 되었으니........"


"독립하라는 이야기로군요, 알겠습니다 그 동안 부모님에게 민폐만 끼치고 떠나게 되서 진심으로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마을 외곽에 네가 살만한 집 한채를 준비해 두었다, 그리고 이건 한동안 문제없이 살 수 있도록 마련해둔 돈이니 갖고 가거라."


"마지막까지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짐을 다 챙기는 대로 저는 바로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제 주제에 하면 안되는 말이겠지만 괜찮다면 책 한권만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하거라."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부디 몸 건강하게 살아다오."


그 말을 끝으로 얀붕이는 서재 밖으로 나왔고 그와 동시에 서재 안에서 어머니의 설움이 터지며 밖까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그들도 병약한 얀붕이를 떠나보내는 걸 원치 않을 터,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며 어찌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얀붕이도 나오자마자 문 앞에 주저 앉으며 울기 시작했다.


부모님에게 효도하지 못할 망정 신세만 지고 떠나야만 했던 점, 자신이 다른 형제들과 다르게 너무나 무력하고 나약하다는 점.


이런 요소들이 겹쳐지면서 자기혐오에 빠지게된 얀붕이는 우는 것 외에는 서러움을 풀 수 없었다.


"쭈인님........"


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 라르도 얀붕이와 똑같이 마음 아파했다.


"괜찮아?"


희미하게 들려온 라르의 목소리에 정신 차린 얀붕이는 못 볼 꼴을 보였다며 곧바로 눈가를 닦아내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이제 괜찮아."


모서리 속 공간에서 자신을 지켜보며 말 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얀붕이는 억지로 웃음 지으며 작게 대답해주었다.


"그 사람들이 쭈인님을 울게 만들었어! 그 사람들 나빠!"


"아니야, 그저 내가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떠나게 되서 울게 된 거야"


"쭈인님........"


"나와 라르가 서로 껴안아주며 사랑하는 것처럼 나도 그들을 사랑해줬어야 했는데 사랑을 받기만 해서 슬펐을 뿐이야."


"나도 주인님에게 사랑받지 못하면 슬퍼!"


"그렇지? 그러니까 지금은 조용히 떠날 거야, 지금의 나에겐 그들을 사랑할 자격따윈 없으니까."


"어째서?"


"그들에게 있어 나는 그저 걱정스러울 뿐인 아들이니까, 나중에 건강해지고 성공하면 그 때 다시 찾아와서 사랑해주자."


"응!"


그렇게 얀붕이는 옷과 돈, 그리고 둘이 좋아하는 이야기가 담긴 책 한 권을 챙기고 집 밖으로 나왔다.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병약한 자신을 따듯하게 품어주고 지켜주던 집과 부모님.


얀붕이는 언젠가 자신도 플라르처럼 어엿하게 자라 그들의 은혜에 보답하게 될 날을 고대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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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허억........!"


어찌어찌해서 마을 외곽에 있는 자신의 집까지 도착한 얀붕이, 이대로 침대에 드러눕고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쭈인님 괜찮아?"


"괘...괜찮아.......!"


갖고 온 짐을 풀은 뒤, 시장으로 향해서 음식들을 사야한다.


살고 있었던 저택에서는 사용인들이 장을 보고 요리해서 갖다 주었지만 이제는 그가 직접 해야만 했다.


시장이 언제 닫힐지 몰랐기에 급히 가야만 했던 얀붕이는 도착하자마자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다.


다행히 시장 안은 여전히 시끌벅적할 정도로 상인들과 손님들의 거래가 이뤄지고 있었으니 그에게 숨 돌릴 시간을 주었다.


얼추 숨을 고르게된 얀붕이는 천천히 시장을 둘러보며 쇼핑을 하고 있었다.


다소 상인들의 목소리에 위축되어 버리곤 하지만 이조차도 극복하지 못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며 노력한 결과,


그럭저럭 첫쇼핑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었다.


라르와 내일까지 먹게 될 음식들을 한 아름 끌어안고 있었던 얀붕이는 이제 모든 볼일을 마쳤으니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쭈인님, 오늘은 뭐 먹는고야?"


"후후, 비밀이야."


"왜에엥~! 알려줘~!"


"기념적인 내 첫 요리인데 벌써 알려주면 재미없지."


쇼핑이라는 걸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어본 얀붕이의 발걸음은 시장에 왔을 때와는 다르게 매우 가벼웠다.


요리 또한 그에게 있어 첫 경험,


그러니 그의 현 심정은 매우 흥분되어있었으며 빨리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었다.


"거기 잠깐 형씨, 우리좀 볼까?"


"네?"


시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중간에 있는 슬럼가,


그곳에서 살고 있는 3 명의 거렁뱅이들이 얀붕이를 멈춰 세우게 만들었다.


"무슨 볼 일이 있으신가요?"


"조용히하고 따라와."


"저...저기?!"


갈 마음도 없었던 슬럼가에 강제로 끌려가게된 얀붕이는 의도치 않은 일에 처음으로 휘말린 탓에 얼타고 있었으나,


그것도 잠시 거렁뱅이들에게 인기척이 없는 골목길까지 끌려오며 협박 당한다 .


"우리같이 힘들게 사는 사람에게 선의좀 베풀라고 형씨."


"우리도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야, 음식은 뺏지 않을테니까 돈만 조금 베풀면 돼! 어때?"


그들의 강압적인 태도에 벌벌 떨기 시작하는 얀붕이.


"왜 이러세요! 저도 그리 돈 많지 않아요......."


실제로 몇 일이 지나면 얀붕이도 돈 한 푼도 없는 신세가 될 예정이었으나 애석하게도 그들은 얀붕이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무래도 얀붕이가 갖고온 평상복이 귀족들만 입는 옷이였다는 점, 좋지 않게 작용한 것이리라.


"씨발, 지금 우리가 거지라고 놀리냐?"


"좋게 끝내려고 했는데 안되겠구만."


"어서 털어보자고!"


무력을 사용하면서까지 얀붕이의 몸을 뒤적이며 돈을 찾아내기 시작하는 거렁뱅이들.


허약했던 얀붕이의 입장으로선 제대로된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끝내......


"우왓! 이것 봐! 땡 잡았다."


"이게 대체 얼마냐!"


"앞으로 한달간 술을 마음껏 마셔도 되겠는 걸!"


얀붕이가 들고 있었던 돈주머니를 발견하며 그들은 생각보다 많은 금액에 놀라워하고 있었고,


이제 얀붕이에게 볼 일 없다는 듯이 그를 내쳐내며 주머니만 챙겨서 떠나려고 했다.


"잠시만요! 그건 제 돈이에요! 돌려주세요!"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받은 귀중한 선물이었다.


그걸 아무렇지도 뺏길 수 없다고 생각한 얀붕이는 필사적으로 그들에게서 돈을 돌려받으려고 했지만


저항도 못하며 무력하게 뺏겼던 그는 돈은 커녕 주머니조차 만지지 못한 채 거렁뱅이들에게 맞아 바닥을 뒹굴었다.


"아...안돼!"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켜보려 하지만 이미 거렁뱅이들은 비웃음 소리만 남긴 채 얀붕이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힘이 없다는 건 다시 불합리함을 당해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


얀붕이에게 지금 같은 상황은 자주 일어날 것이고 그때마다 그는 그저 눈물만 흘리며 지켜볼 수 밖에 없다.


대책을 세워보고자 단련해봐도 그의 허약한 몸은 선천적 지병에 의해 무너져만 갔으니.


"........돌아가자."


자신과 함께 더러운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던 음식들을 주우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얀붕이.


그의 발걸음에는 어떤 경쾌함도 찾아볼 수 없었고 그저 패배자의 한탄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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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붕이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한 행동은 침대 위에 쭈그려 앉으며 고개를 숙이는 일이었다.


거렁뱅이들과 마주치지 않았으면 기분 좋게 요리를 준비하고 있을 얀붕이였겠지만 지금의 그는 도저히 그럴 수 없던 것이다.


"라르........"


항상 얀붕이와 같이 있으며 그의 동반자나 다름 없이 친해진 소녀.


얀붕이는 살며시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모습은 커녕 대답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얀붕이의 기분은 한층 더 침울해져간다.


그가 자신있게 집을 나온 것도 부모님의 마지막 선물과 '라르' 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둘 다 없어졌고 부모가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으니 그의 마음에 절망감이 깊숙히 자리 잡기 시작했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아예 없어지게 되었으나.


"쭈인님! 불러써요?"


"라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얀붕이의 눈 앞에 작은 소녀가 나타나며 그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쭈인님! 제가 쭈인님의 돈을 찾아 와써요! 잘했죠?"


"어...어떻게?"


"당연히 쭈인님을 아프게한 자들 혼내주고 찾아왔쬬!"


"아!"


그제서야 라르의 입가 주위에 혈흔이 묻은 걸 보게된 얀붕이는 돈주머니를 바닥에 내던지며 라르를 꽉 안아주었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추스릴 수 없었기에 벌인 행동이었다.


"바보야, 네가 다치면 어떻게 해!"


"하지만, 쭈인님의 소중한 돈이......."


"그깟 돈보다도 네가 소중하니까! 그러니 무리하지마!"


"에헤헷♡ 알아써요 쭈인님♡"


상당한 시간동안 라르를 껴안아주며 쓰다듬어준 얀붕이, 마음이 얼추 진정되자 그는 살며시 라르를 떼어내며 옅은 웃음을 보였다.


"많이 배고프지? 지금이라도 요리해줄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아니요, 저 배불러요!"


"응? 오늘 아침빼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잖아?"


"잔뜩 먹어써요! 쭈인님의 애정, 잔뜩 받아서 배가 빵빵해요♡"


정말이지, 매번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라르의 언행에 얀붕이는 이제 질렸다는 듯이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러면 진짜 밥 안줘도 되는 거지?"


"네!"


"정말로?"


"정말로요!"


그럼에도 얀붕이는 분명 라르의 몫까지 만들 것이다.


그야 그에게 있어서 라르는 이미 덧없이 소중한 존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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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고어 주의-



슬럼가에 사는 몇몇 주민들에게 신고를 받고 찾아온 마을 경비병들.


그들은 어떤 한 광경을 보고 죄다 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이...이건 도대체 뭐야?!"


"으웨에엑! 어떻게하면 사람을 이렇게......!"


그들이 목격한 광경.


사람의 형태라고 부를 수 없는 이형의 형체 3개가 피로 가득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들의 사지와 몸은 전부 여러 갈래로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으며 복부 안에 있던 내장들은 죄다 밖으로 튀어나와 흩어져 있다.


그들의 얼굴은 죄다 커다란 이빨에 의해 구멍 뚫려 있었고 그 구멍을 통해 뇌수랑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그들의 경비 생활 동안 이렇게 잔인하고 역겨운 장면은 한번도 없었을 것이다.


뜯어 먹혀있는 자국들을 보아 절대 같은 인간으로서는 만들어 낼 수 없었던 살해 현장.


이러한 짓을 벌이고도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존재가 마을 어딘가에 있을 거라 생각한 경비병들은 공포감에 벌벌 떨기 시작했다.


자신들도 언젠가 저리될 지 모른다고 생각해버리면서 실금까지 해버리고마니 안쓰러울 뿐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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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쓰려고 했는데 9000자를 넘겼네, 줄여야하는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