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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춤에 쓰러진 에리어스를 안은 채로 전갈자리의 별의 무구, 스콜피오 랜스를 고쳐 쥔 피오네 로웰은 땅을 박차고 순식간에 라투스에게 돌진했다.


게자리의 무구는 20년 전 사라졌기에, 그는 본인이 가진 카운터 능력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카운터 능력으로 지금 상태에서 블루시프트의 부단장을 상대하기는 어려울 거라 판단했다.


"제길, 이 타이밍에 피오네가 돌아올 줄이야."


라투스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깔고 앉아 있던 리브 앨런에게서 물러났다.


"괜찮으십니까? 리브경. 늦어서 죄송합니다."


"헤헤, 와줘서 다행이야. 부단장!"


리브는 피오네를 보고 표정을 활짝 폈다. 절망적이던 이 순간, 그녀의 존재는 너무나도 눈이 부신 기적과 같아 보였다.


피오네는 에리어스 에스퀘데와 리브를 지키려 라투스와 레온하르트에게 랜스의 끝을 겨눴다.


"보아하니, 하반신에 어떤 손상이 가해진 것 같습니다만, 제가 알기로는……."


"부단장! 여기서 그렇게 설명하고 있으면 위험할 것 같아! 저 두 명은 만만치 않은 상대야!"


피오네 로웰이 긴 설명을 시작할 기미를 보이자, 리브 앨런은 황급히 그녀를 진정시켰다.


"리브경이 옳은 말을 할 때도 있다니, 맞습니다. 지금은 눈 앞의 적부터 배제하겠습니다."


피오네가 방패를 앞세우고는 자세를 낮춰 스콜피오 랜스를 시동시킨다.


그 직후, 땅바닥이 크게 파이며, 피오네가 공중으로 날아 올랐다.


테일 스팅, 공중에서 랜스의 힘을 방출해 내리찍는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그녀의 주력기였다.


"레드시프트의 단장님. 지금은 용서하십시오!"


그녀는 이성이 남지 않아 생전의 고결한 무예가 퇴색되어버린 레온하르트를 향해 그 창을 내질렀다.


스콜피오 랜스의 핵에서 크게 빛이 나며 푸른 빛줄기가 방출되었고, 공격에 직격당한 레온하르트는 뒤로 나가 떨어졌다.


전갈자리의 무구인 스콜피오 랜스는 그 무구에 축적된 힘을 방출하여 무엇이든 꿰뚫을 수 있다고 전해진다.


생전의 그였다면 그 틈을 노리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의 영역이었지만, 지금의 레온하르트에게 피오네는 천적이었다.


"말도 안돼. 레온하르트의 별의 무구는……."


"레오 아머, 네메아의 사자를 형상화한 그 무구는 어떠한 공격도 막을 수 있다고 하지요."


피오네는 옆에서 당황하는 라투스를 돌아봤다.


"하지만 제 스콜피오 랜스는 모든 것을 꿰뚫는 창. 그의 무구의 천적과도 같죠. 게자리의 라투스경."


언데드가 되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레온하르트는 이미 자신의 복부가 뚫렸다는 것을 느끼지도 못한채 발을 울리며, 다시금 피오네에게 달려 들었다.


"레온하르트경. 그 몸을 편하게 해드리겠습니다."


피오네는 발을 뒤로 빼고는 랜스를 고쳐 쥐었다.


앞으로 발을 뻗으며 다시금 레온하르트를 쓰러뜨리려던 그 때.


"……읏!?"


그녀는 갑자기 자세를 잃고 무너졌다. 하지만, 지금까지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한 수련의 성과로 인해 그녀의 창끝은 흔들리지 않았고, 날카로운 에너지가 레온하르트의 머리를 그 몸에서 분리해버렸다.


피오네는 자세를 잃은 상태로 땅에 쓰러졌다. 자신의 신체는 멀쩡하지만 마치 허리 아래로 절단이 된 느낌이었다. 피오네는 리브와 자신의 상태가 동일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애초에 리브가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가 모종의 카운터 능력이라고 추정했지만, 이쯤 되면 확실해졌다.


"라투스경. 당신의 능력입니까?"


라투스는 후드 아래에서 하얀이가 드러나도록 씨익 웃었다.


"말해 뭐 해. 축하해. 내 능력의 또다른 밥이 되버린 걸."


라투스는 이죽거리며 쓰러진 피오네에게 점점 다가왔다.


"노려보는 그 시선이 좋네. 피오네, 넌 네 이미지로 인해 좀 과소평과된 감이 있어. 특히 그 외모가 말이야."


라투스는 피오네도 리브와 같이 무력화 됐다고 생각하고는 피오네의 머리칼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그리고─


"끄아아악!"


그대로 그 손목이 꺾여서 바닥에 메다 꽂혔다.


피오네는 하반신이 마비된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니라는 듯이 방패를 땅에 꽂으며 일어났다.


"움직일 수 없을때 싸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 수련도 있었습니다."


라투스는 손목이 꺾인 고통에 바닥에서 몸부림 치고 있었다.


"당신의 카운터 능력, 게자리의 집착이라고 보이는 군요. 왼손과 오른손으로 두 개의 신체 능력을 무력화시키는 능력. 그렇다면 그 손목을 꺾어 버리면 그 능력은 해제되겠죠. 리브경!"


"기다리고 있었어! 부단장!"


자신의 다리를 집요하게 물고 있던 게의 집게가 사라지자, 리브는 휘청이면서도 일어나 천칭을 들었다. 깃털처럼 휘두르던 때 만큼 가볍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이정도로 충분했다.


"오랜만에 일어나는 거라 어색할 수도 있다구, 부단장!"


"저는 방패로 지탱하고 있는 것이 고작입니다. 조디악나이츠의 배신자 처단을 부탁드립니다. 리브경."


"맡겨두라구!"


리브가 파쇄추가 달린 그녀의 천칭을 들고 라투스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라투스는 그 모습을 보고는 황급히 뒷걸음질 쳤다.


"리브, 미안해! 미안해! 그러지 마!"


"이미 늦으셨네요."


리브가 덧니가 보이는 쾌활한 미소를 짓고는 배신자를 향해 다가갔다.


"안돼! 안된다고!"


라투스는 절규하듯 빌었다. 하지만 그 후드 속의 입에는 찢어질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리브경! 가면 안됩니다!"


피오네는 바닥을 기어 리브를 덮쳐서 보호하고는 방패를 치켜 올렸다.


순간, 손목이 저릿할 정도의 충격이 방패를 연신 덮쳤다.


그 충격으로 인해 리브와 피오네는 한참을 날아가서 굴렀고, 정체불명의 공격을 막아낸 피오네의 방패는 금이 가서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니까 오면 안된댔잖아ㅡ, 멍청이들아!"


라투스가 웃으면서 일어났다. 그는 부러진 손목을 탈탈 털고는 쯧, 하고 침음성을 냈다.


"서프라이즈~, 이건 예상 외였지?"


라투스는 리브와 피오네에게 마치 무대에 선 배우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인사를 건넸다.


"정말 내가 저 언데드 덩치 하나만 믿고 너희들을 공격할 줄 알았어?"


"크……, 윽."


피오네와 리브는 충격으로 인해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흐릿한 피오네의 시선에 방금 자신들을 날려버린 충격의 정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거대한, 일직선으로 수십개는 박혀 있을 화살이었다.


"레드시프트 최강이라고 불리는 그를 잊어버리고 있다니, 제 불찰이었습니다."


레드시프트의 단장은 레온하르트였다. 하지만, 레드시프트가 과격하고 엄중한 방침을 취하면서 수많은 전투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부단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궁수자리의 길포드. 가히, 조디악 전체를 통틀어도 최강이라고 칭할 수 있는 기사였다.


"길포드가 어째서 너한테 협력한건데?"


리브가 신음을 흘리며 라투스에게 묻는다. 길포드는 단장 레온하르트 만큼이나 강하고 고결한 기사였다. 최강이라는 궁수자리를 가지고서도 모두에게 겸손하고 모범이 됐다.


"뭐, 각자 자신의 사정이 있는 법이지. 저 양반은 자기 아내에 미쳤고 말이야. 그럼, 그냥 다 끝내버려. 길포드경."




저 멀리서 수많은 빛이 번쩍였다.


이윽고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몰려 들었다.


하늘을 빼곡히 채운 수백의 화살이 블루시프트의 생존자를 몰살하는 재앙이 되어 다가왔다.


"제가 와서도 이런 상황이라니. 미안합니다, 리브경."


피오네는 체념한 듯 보였다. 지금 여기서 저 화살의 파도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괜찮아. 부단장! 우리는 여기서 쓰러지더라도 분명……."


리브는 자신들이 쓰러지더라도 에스테로사와 한솔이 적을 무찔러줄 것이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하기 전, 자신들에게 등을 보이며 가로막고 선 남자의 존재를 눈치챘다.


"리브 선배, 에리어스, 피오네 부단장님. 이제 돌아왔습니다."



"양자리의 견습기사 양한솔, 길을 밝히겠습니다."


검은 파도와 마주선 그의 주위에 맹렬한 바람이 일었다.


검은 산양은 하늘을 가늠했다. 아름다운 하늘의 별을 가리는 수백의 먼지들을 보았다.


그리고 별자리가 수놓아진 검은 장검이 하늘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