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음, 어려운 질문이네.”


용사, 안톤이 모닥불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다.

마왕군의 정찰 부대를 섬멸하고, 공터에

야영지를 만들고 불침번을 서던 도중이었다.

 

그는 마왕 토벌대의 대장이지만 불침번에서

제외된 적은 없었다. 오히려 대장이기에

더더욱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안톤은 말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될까요?”


“어어, 물론.”


“제 임무는 당신이 도망치지 않도록 감시하는 거예요.”

 

역시 그랬나, 안톤이 쓴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어째서 성녀처럼 고귀한 사람이 자기 같은

무지렁이를 목숨 걸고 따라다녔는가?

 

질문의 답은 그조차도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만약 자기가 도망치면, 마왕군을 막을 방법이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곁에서 지켜볼수록 이해가 안 됐어요.

당신은 이방인, 이런 곳에서 목숨 걸고 싸울

이유 따윈 없었죠. 그런데도 당신은 몇 번이나

목숨을 불태워가며 필사적으로 싸웠어요.”

 

성녀, 리스카가 두 눈을 감았다.

 

처음엔 그저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말에 혹해

속아 넘어간 머저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안톤은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시련과 고통을

알고 있음에도, 용사가 되기를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견뎌야했던가?

팔다리가 부러지는 건 예삿일이고, 두 번이나

심장이 멈췄고 한 번은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

 

그것 말고도 죽을 뻔한 적은 수도 없이 많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평범한 인간이라면 진작

그만두고 도망치고 싶다고 말했을 터였다.

 

하지만 안톤은 여기 남아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어째서, 죠?”


“있지, 나 말이야. 고향에 있었을 때는 정말

별 볼일 없는 인간이었어.”

 

안톤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잘하는 것도 없고, 노력해도 남들 발꿈치조차

따라가질 못했어. 집도 가난하고, 정말이지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인생이었거든.”

 

“…….”


“근데 말이야, 여기선 모두가 내게 의지해줬어.

나도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나도

뭔가가 될 수 있다고……그게, 기뻤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분명, 아무것도 아니었다.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인간.

순전히 운이 좋아 용사로 선택받은 인간.

그게 바로 안톤이었다.

 

“처음엔 분명, 난 선택받고 여기에 왔어.

하지만 지금은, 난 내가 선택해서 여기 남아있는

거야. 후회 따윈 하지 않아……조금도.”

 

모두가 손을 내밀어줬을 때, 그리고 자신을

용사라고 불러줬을 때.

 

안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이 누군가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기뻐했다.

 

아무 의미 없는 삶에, 살아갈 이유가 생겼다.

목숨 걸고 싸워야 할 의미가 생긴 것이다.

 

“저는.”

 

성녀는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의 앞날에 행복 따윈 없을 거라고.

 

이미 그 이전에 수많은 용사가 찾아왔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다.

 

어떤 용사는 전투에서 입은 상처의 후유증으로

죽었다. 또 다른 용사는 전투가 무서워 도망쳤다

반역자로 몰려서 처형당했다.

 

또 누군가는 지나치게 인망을 얻은 탓에,

권력의 구도가 바뀔 것을 두려워한 권력자들의

손에 암살당했다.

 

심지어 그를 암살한 암살자는, 용사가 그토록

신뢰했던 성녀였다.

 

‘저 또한 당신을 감시하고, 의존하게 만들고,

필요하면 당신을 죽여야 하는 암살자.’

 

그것이 성녀의 진짜 역할.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는 용사를

지지하고, 그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 막기 위해 의존하게 만드는, 용사의 목줄.

 

또한 용사가 위험인물이라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용사를 처단하는 처형인.

 

‘하지만 안톤, 당신은 너무나도 올곧아요.’

 

그는 아무리 불리한 전투라도 도망치지 않았다.

 

보급품이 떨어진 상황에서도, 기꺼이 자신의

몫을 동료와 주민들에게 나눠주며 그 자신은

며칠이나 굶주림을 견뎠다.

 

설령 적이라도 사정이 있다면 들어주었고,

진심으로 뉘우치는 적은 용서해주고 살려서

돌려보내곤 했다.

 

그러면서도 용서할 수 없는 악인은 그게 설령

권력자라 할지라도 당당히 맞서 싸워 처단하는

강직함 또한 갖추고 있었다.

 

그야말로 정의의 화신.

누구보다도 용사에 가까운 남자.

 

‘그러나 암살 지령은 이미 떨어졌다.’

 

너무나도 올곧기에, 그렇기에 죽어야만 했다.

권력자들은 안톤의 존재가, 언젠간 자신들의

안위를 위협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힘과 인망을 모두 가진 인간은 곧 권력을

손에 넣게 된다.

 

그들은 또 다른 경쟁자를 원치 않았다.

설령, 그게 그들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워준

용사라 할지라도.

 

“알고 있어, 내 최후가 어찌 될지는.”
 
“……!”


안톤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크고 딱딱한 손에는 굳은살이 가득했지만,

그 손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마왕을 토벌할 때까지만 기다려주지 않을래?
그 뒤엔, 네가 해야 할 일을 해.”

 

“스스로 버림받겠다는 건가요……?”


“그걸로 평화가 찾아온다면야.”


그가 바란 것은 돈도, 권력도 아니었다.

하물며 여자나 명예 따위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가 필요로 해준다면.

누군가가 그를 용사라고 불러준다면.

 

안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내가 죽지 않으면 네가 죽겠지. 나는 그런 걸

바라지 않아. 괜찮아, 어차피 나 같은 건 

아무 의미 없이 죽었을 테니까…….”

 

“저는, 그러니까…….”


“괜찮아. 나는, 네가 살았으면 좋겠어.”


그가 그녀를 껴안았다.


너무나도 크고, 따뜻한 품속에서 리스카가

눈물을 흘렸다.

 

‘신이시여, 부디 이 사람에게 자비를…….’

 

잔혹하다. 비참한 운명이었다.

그녀가 어떤 선택을 내리더라도 그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느 쪽으로 가든 상관없이 파멸한다.

 

이토록 올바른 사람이, 이토록 잔혹한 운명에

고통 받아야 하다니.

 

리스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을 원망했다.

 

 

 

 

 

그 남자, 카이스는 마왕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무렵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족은 기나긴 내전과 침략으로 무너져 내렸다.

 

시시때때로 마왕을 자처하는 자가 나타나,

또 다른 마왕과 전쟁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또 무고한 이들이 휩쓸려나갔다.

 

카이스 또한 그렇게 소중한 이들을 잃었고,

더는 동족이 고통 받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족을 구한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습니까?”


사천왕, 거신 크리그블룸이 말했다.

 

가장 거대하고 강한 마족, 그의 몸은 남들보다

10배는 컸으며 검은 갑주를 입고 있어 그 위압감

은 근처에 서 있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 카이스의 폭주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크리그?”


“모르겠습니다.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는지도.”


카이스가 마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

누구보다도 강했기 때문인가?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마족 중에서도 손에 꼽히게 약했다.

 

그렇다면 강대한 권력과 부를 소유하고 있었나?

아니다. 그의 혈통은 대단치 않은, 평범한

농노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마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움직여라, 노예들아!!”


“히이익!”


“아파, 아파아……!”


카이스가 성 밖을 보았다.

그곳엔 온 세상에서 잡아온 노예들이 있었다.

 

그저 힘만으로는 마족을 구할 수 없다.

이전 마왕들과 달리, 카이스는 철저하게

계책을 세워 그를 막는 자들을 농락했다.

 

인간은 감정적인 동물이다.

그래서 같은 인간을 노예로 사로잡아,

마족을 위해 싸우도록 훈련시켰다.

 

그럼 그들은 같은 인간을 해치지 못하고

망설이곤 했다. 심지어 그 군대에는 어린애나

여자, 노인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고기 방패로

쓰여, 적의 사기를 떨어트리는데 사용됐다.

 

엘프는 자존심이 드높은 동물이다.

 

그래서 카이스는 엘프를 사로잡아, 그들의

자존심을 철저히 꺾었다.

 

그 과정에서 어떤 고문을 가했는지는 측근들만

알고 있었다. 고문의 내용이알려지면 마족 

내부에서도 반발이 일어날 터였다.

 

오크는 강인하지만 지능이 낮은 동물이다.

 

카이는 탄압받던 오크를 마족으로 끌어들여,

그들의 동맹을 배신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전쟁이 끝나면 자유가 찾아오리라

생각하지만,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카이스는 언젠가 오크가 마족을 배신할 때를

대비해, 그들의 식량에 독약을 타 그들 대다수를

불임으로 만든지 오래였다.

 

오직 마족을 위해서 살아가는 마왕.

그 외의 종족은 아무래도 좋았다.

 

“크리그, 난 마족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악마든 괴물이든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어……마족을 다시 부흥시킬 수 있다면.”

 

모든 오명을 뒤집어쓰더라도.

마족의 미래를 위해서, 생존을 위해서.

 

“이건 정의와 악의 싸움이 아니야. 이것은

생존 경쟁이다. 생존하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용서되지……그래, 무슨 짓이든 말이야.”

 

그가 마왕성 너머의 산을 보았다.

 

용사가 오고 있다. 


이미 숱하게 많은 마왕들이 그랬듯, 카이스

또한 그 용사와 대적하여 할 터였다.

 

하지만 힘으로 싸우진 않겠다.

그를 상대하는데 필요한 건 힘이 아니라

지혜였다.

 

“듣자하니 용사를 따르는 성녀에겐 진짜

임무가 따로 있다더군.”

 

“네……용사를 감시하고 암살하는 역할입니다.”


“그거, 잘만 하면 이용할 수 있겠어.”


아무리 올곧고 강인한 자라도, 내부에서의

분열엔 버티지 못하리라.

 

만약 먹히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이미 다른 계획이 얼마든지 준비되어 있으므로.

 

“용사를 죽여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족을 위해서.

 

마왕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한없이 올곧은 용사 vs 동족을 위해 악을 자처하는 마왕

이런 클리셰적이지만 뽕차는 소설이 보고 싶다...

요즘은 이런 게 별로 없는레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