쏴아아. 철썩.

멀리서 보면 회청색을 띠는 물결이 발 옆으로 와서는 조각조각 투명하게 뭉개졌다. 작업복 주머니 속엔 백 원짜리 동전 몇 개가 쩔렁대고 있었고, 바람은 동전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지 웃옷 밑자락을 휘둘렀다. 동전 말고도 그가 즐겨 피우던 담배 서너 개비가 라이터와 함께였다. 그는 익숙하다는 듯이 저 멀리 보며 주머니에 손을 넣어 허우적대다가 담배와 라이터를 챙겨 꺼냈다. 담배의 허연 몸통 끝에 붙은 불씨는 아주 천천히 담배를 파먹어 갔다. 그는 그것을 양 볼이 불쑥 들어갈 정도로 힘껏 빨았다가 세찬 달리기를 한 후의 숨결처럼 거칠게 연기를 뿜어내었다. 연기는 끝없이 올라가다가 언제쯤일까, 대기에 섞여 사라져버렸고 바다의 짭짤한 숨결이 불어와 연기 냄새와 섞였다. 그가 뿜어내는 연기가 입김인지 담배 연기인지 모를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거센 바닷바람은 별안간 휙 하고 불어와 담뱃대의 불씨로 하여금 더 확실하게 타버릴 빌미를 제공해 주었다. 그는 손목시계를 보더니 에이, 제기랄, 하면서 아직 더 피울 수 있는 담배를 바닥으로 던지고 다 낡은 운동화 끝으로 뭉개버렸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바닷가 근처의 일터로 향했다. 그의 일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아 보기 흉물스러운 건물 철골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껑껑 소리가 들리는 노동의 터에는, 삶에서 빈곤하여 하루하루를 힘에 겹게 살아가는 모순적인 사람들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말할 수 없기에 그 고통을 모르리라, 무시 받고 환멸 받으면서도 사람들이 곧 살아갈 안식처를 짓는 그들에게는 향후 그땐 그랬었지, 하며 추억이라고 회상할 만한 고됨만이 비교적 누릴 법한 위로였다. 그나마 적게라도 제가 이 집을 지었습니다, 하며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어제오늘 끼니도 가물가물한 그들에게는 추억을 간직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콘크리트 작업 후에는 천장에 온갖 글씨가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 사내는 달랐다. 그렇게라도 기억하면 뭐하나, 어디 가서 자랑하지도 못할 그런 것들인데, 자기 혼자 자랑스러워한다고 달라질 삶도 아니잖나, 하면서 그는 동료들에게 일명 '김 빠지게' 행동하는 놈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가 동료들에게 미움 받는 것은 아니었다. 일이 끝나고 나서 석양이 질 때 편의점 앞 노천의자에 옹기종기 앉아 술 한잔 꼴깍 들이킬 때면, 그가 솜씨 좋게 풀어내 보이는 이야기들에 하루의 노곤함이 나가떨어지는 듯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진짜 같았다. 개중에는 자신이 바닷일을 할 때에 겪었던 어디서 들어볼 만한 어부들만의 괴담도 번뜩번뜩하니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래, 그래,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밤이었여. 하필이면 말이여. 그때 좀 커다랗다, 취급할 만한 그런 배들이

싹 다 다른 데로 원정 나가서 우리는 마지못해 가장 작은 퍼어런 색 배 두갤 판자로 이어서 그 먼 바다에 타고 나갔제."

우리가 겁이 읎었어, 날씨가 그렇게 되뿌릴 줄은 몰랐지만, 그 쬐꼬만 배에 타가 육지를 벗어났으니께, 

그래도 살려면 어쩔 수 없는 것이여, 지금 그래서 이딴 일거리도 하고 있잖여."


다음 날이 일 쉬는 날이라, 잔뜩 술에 퍼마셔서 온전히 취해버린 그의 입에선 평소완 다른 발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한숨을 푹푹 쉴 때마다 풍겨오는 짙은 술 냄새와 처절한 처지에 동료들은 너도나도 같이 한숨을 쉬어 주었다.


"나랑 같이 바다 나갔던 놈은 젊은 놈이었어, 시도 때도 없이 휘파람을 불어 대서 

뭐가 그렇게 좋냐고 어른들이 물어도 아무 말 없이 입으로 기교를 부려댈 뿐이었제.

그 젊은 놈은 이제 막 바다 생활 시작한 놈 같더라고. 눈이 똘마앙똘마앙해서는

열정이 그득하지 못해 넘칠 정도였어. 해풍에 까일 얼굴이 아까울 정도였제."


꼬질꼬질한 작업복을 입은 청중들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흥미로운 눈빛으로 연신 종이컵 술잔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홀짝거리는 소리와 종이 삭삭거리는 소리를 내기 바빴다. 그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날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많았어. 젊은 놈이 뒤따라서 오질 않나, 

갑자기 장대비가 배를 부닥치지를 않나, 바다에선 이상한 소리도 들리고.

마치 여인이 울부짖는 소리 말이여. 따라온 애는 그냥 바람소리겠거니, 

하면서도 겁난 얼굴을 감추지 못했어."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에, 하필이면 앉은 곳이 바닷가 바로 앞이라서

시원하고 섬뜩한 바닷바람이 휘이잉하고 불어와 분위기를 한번 더 무겁게 깔아주었다. 모여 앉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누군가 쳐다보는 것을 느끼기라도 하듯이 몸을 짧게 떨며 두리번거렸다.


"그래도 난 바닷생활이 몇 년 차여, 베떼랑의 힘을 보여줘야 할거 아녀 베떼랑.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그물을 잡았제. 생각보다 쉽게 올라오더라고.

알고보니까 그물에 물고기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는, 죽죽 찢어진 상태이기만 했어.

난 충격을 받아서, 여태까지 이런 일이라코는 읎었는데 말여, 하면서 뒤를 돌아봤제."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머뭇거렸다.

집중해 듣던 동료들은 이야기가 멈춘 것에 적잖은 긴장을 탔는지, 그와 양 옆에 앉은 사람들과 눈빛 교환을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디 형씨? 빨리 말혀. 궁금하니께.."


그는 갑자기 술이 깬 듯이 벙찐 얼굴을 하며 속삭였다.

"없었제."


"뭣이? 뭐가 읎단겨"


"그놈이 사라졌다코. 첨벙 하면서 물에 빠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말여."


"그게 뭐여, 그럼 그놈 죽은겨?"


"그런갑지. 뭔가 이상하고 소름끼쳐서 난 곧장 그곳으로 달려가서 물을 살폈제.

근데 아무것도 없더라고. 정맬로 아무껏도 읎었어. 헤엄치는 소리나, 허우적대는 팔이나

그런 것들은 눈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제. 결국 그날은 온종일 바다에 있어야 했여."


"그래서 어떻게 된겨?"


그는 괴로운 듯이 퍽퍽하고 주름진 손으로 거친 머리칼을 헤집으며 말했다.


"결국은 못 찾았제. 못 찾았따코.. 뭍으로 돌아와서 난 꼼짝 없이 그놈 죽인 죗값을 받아야 했제.

내가 죽인 게 아니랍시고 그렇게 말을 해댔건만, 뭐 어쩌겄어. 바다가 데려간 놈을 도로 찾아올 수도 없고.

그때부터 어부일 관두고 감빵 생활 짧게 하고 나와선 생활이 빈곤해져부렀어. 잠결에 들려고 하기만 하면

꼬옥 항상 그놈 생각이 나고 금방이라도 날 죽일 것처럼 노려보는 그 젊은 상판대기에 정신이 망가졌제."


한창 듣던 동료들은 이것이 사실인지, 그냥 술김에 하는 헛소리인지 분간이 안 간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그저 길게 자라 한번 뜯긴 손톱을 플라스틱 의자에 긁고 있을 뿐이었다.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여? 이상한 거 꺼내지 말라니깐."


청중 중 한 명이 낄낄 웃으며 그의 어깨를 한 대 퍽 쳤다.

그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어허. 스읍. 혀를 깨물며 주의를 줬다.

아무래도 장난이라기엔 그가 처절하게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상상이라고 해도

반응이 시덥잖으면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을까, 어수선한 분위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그놈 죽은 뒤로, 바다 근처에만 가면 얼떨결에 익숙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고.

휘휘 하면서 그렇게 섬뜩한 소리를 내는 법이 없따코."


하면서 그는 자리를 털었다. 낡은 신발을 고쳐신고서는, 술병을 챙기고 잔뜩 취한 행동거지로 일어섰다.


"어디 가셔? 아직 밤은 남았시여. 빨리. 빨리 앉어."


장난을 쳤던 사람이 그의 케케묵은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아쉽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나 그는 에이, 이거 놔, 몸부림치고서 터벅터벅 불규칙한 발걸음으로 골목을 향해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고 나서, 너 때문 아니냐, 한바탕 이야깃거리가 사라진 것에 대한 분을 주제로 말싸움이 일어났지만, 그 다다음날 일을 시작했을 때 온데간데 사라질 모습이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번쩍 하고 사라지고는 한 명 두 명 컵을 놓고 즐거운 듯이 휘파람을 불며 사라져갔다. 


 정 반장은 청중들 사이에서 그를 가장 믿었던 사람이었다. 정 반장은 그가 가고 나서 소변이라도 볼까, 하는 생각에 편의점 옆 골목 사이에서 뚫어지게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허리춤을 벽으로 당겼다. 그는 소변 줄기를 쏟아내며, 그가 말했던 게 진짜라면 좀 섬뜩할 이야기 같다고 느끼며 벨트를 다시 잠글 때에 급작스레 추워지는 것에 강하게 떨었다. 반장의 머리 위 반짝거리며 빛나는 별들이 그런 일은 없었다, 이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겠냐, 하면서 장난쳤던 사람을 변호하는 듯 했다.

 정 반장은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상가 불빛을 반사해 어둡게 번쩍거리는 바닷물을 보면서, 고단한 몸을 이끌었다. 내일은 쉬는 날이지, 하며 위로할 만한 소식을 떠올려보지만, 그가 말했던 휘파람 이야기에 괜시리 바닷바람이 선율로 들리는 듯하여 소름이 끼쳤다.

가슴이 저미는 듯한 겨울바람에 작업복 후드는 너무나도 추웠다. 이 한 세상 잘 살아보겠다며 '안전제일' 글자에 형광빛으로 페인트 된 작업복은 어지간히 빨아 입지 않아 먼지가 쌓여 묻었다. 철컹, 바깥이 동으로 장식되어 비싸 보이지만 어느 원룸이던 가진 검은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는 둔탁했다. 그는 작업복만 벗고서는 뜨뜻하지도 않은 방바닥에 겨우 홑이불 한 개를 깔고 누워 몸을 웅크렸다. TV를 틀어 놓긴 했지만 세상 일 알아본다 해도 그에게는 사치 같다고 느낀 것들이었다. 그대로 그는 피곤한 눈을 감았다.

 다음 날 눈을 떴을 때에는 10시도 넘은 채였다. 정 반장은 밤샛동안 계속 켜져있던 TV를 보며 놀란 가슴을 졸이며 무릎걸음으로 재빨리 다가가 TV를 끄려고 했다. 근데 잠깐, 이게 뭐지? 하면서 익숙한 곳이 비춰지는 뉴스를 보며 그는 아직 남아있는 잠결에 재차 놀라야 했다. 


[지난 새벽 XX 앞바다 건설 현장서 자살로 1명 사망... 다툼 흔적 있어 경찰 조사 중]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일인가, 자살한 곳에서는 당연시리 집값이 떨어지는 법이었다. 그럼 일한 값도 받지 못하고 이대로 말짱 꽝인 것이었다. 가만 보니, 바로 앞에 바다가 있는데 왜 떨어져 죽은 것이냐면서 죽은 사람에게 원망이 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원망은 다음 날 출근하면서 곧 씁쓸함으로 바뀌고 말았다. 

 떨어져 죽은 사람은 이야기꾼 그였다. 몸싸움 흔적이라니, 환각이라도 본 것일까, 다들 수군대면서 그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에 대해서 열띠게 소문을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양복을 입은 건설업체 놈들이 따각거리며 구두소리를 내면서 다가옴에 그 창작 작업은 이내 끊어지고 말았다.


"오늘 부로 여기 건설 사업은 무기한 연기 될 겁니다. 노동자가 죽었는데 소비자들이 뭐라 하겠습니까?
당연히 우리 탓 하지. 우리 기업 이미지 살릴 목표로 여긴 좀 닫겠습니다. 미안합니다. 다들 그저께까지 한 할당량은

입금 꾸준히 해드릴 테니까, 불만 말고 가쇼."


검은색 하얀색. 죽은 그를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형식을 맞추기 위한 수단으로서 작용했을 뿐인 양복을 작업장의 먼지가 묻었다면서 인상을 찌푸리고는 툭툭. 털고서 그들은 바깥으로 사라져갔다. 그제까지만 해도 고단함을 겪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자유의 몸이 되자, 좋아하는 사람은 커녕 에잇, 퉤, 하면서 그들의 재수없음을 비탄하는 듯 했다. 정 반장은 이야기꾼이 뛰어내린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술병 옆 구겨진 종잇장에  '휘파람 그만 불라고, 알겠으니까 이만 나를 놔주라'는 등 처절한 글씨체가 가득 차 있었고, 

어제 갓 바른듯한 콘크리트가 천장에 덕지덕지 형편없게 붙어 있었다.

'미안하다. 용서해줘라.' 라는 글씨가 써진 채로.



1시간 30분 컷 낸 단편입니다.
단타 치려니까 조금 빡세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