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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내 가문이 망했다. 처참하게 망했다.(2)




태양이 까맣게 져버린 밤하늘. 창문 너머에서 쏟아지는 별빛이 무릎 위로 쏟아져 파랗게 부르튼 손을 비췄다.
 
 
얕은 불빛 하나 없이 무겁게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움츠러든 몸을 풀었다. 고개를 들어 수련장의 창문 너머를 바라보니, 보석처럼 낱낱히 박힌 별자리가 눈에 비췄다.
 
 
"......"
 
 
아무런 상관없이 하늘위에서 반짝이는 별들이 무심했다. 가슴에 묻어두었던 뭉클한 것들이 붉게 메마른 눈가를 간질였다. 홧김에 별자리를 향해 손가랑을 튕겼다.
 
 
딱.
힘없이 튕겨진 손가락에선 불똥 대신 통증이 느껴졌다. 월광에 비춘 손가락은 푸르다 못해 검게 물들어 있었다. 손을 물들인 멍자국을 보다가 슬며시 고개를 떨궜다.
 
 
암울했다.
 
 
왕실의 명을 받고 온 빌어먹을 칙사가 떠난지 반나절. 놈이 떠난 후 집안에는 비상사태가 울려퍼졌다. 당장의 성인식의 준비도 준비였지만, 제일 중요한건 바로 나였다.
 
 
"...나보고 대체 어쩌라는거야."
 
 
힘은 이미 애저녁에 사라졌다. 푸르댕댕하게 물든 손끝이 이를 증명했다. 무슨짓을 해도 혼자선 불을 붙일 수 없었다. 발치에 어질러진 마법수식 공부들도 모두 의미가 없었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기본적인 힘이 있어야 뭘 하지 않겠는가. 부서진 폐관수련장의 문을 넘어서 저택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터벅터벅.
 
 
집에 가는 발걸음이 점차 무거워졌다. 몸에 족쇄가 걸린듯 보폭이 점차 줄어들었다. 저택의 정원을 지나서 저택을 바라보니 3층의 어느 한 방의 창문만 샛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집무실."
 
 
홀린 듯이 저택에 들어와 3층을 향했다. 집무실 앞에 서자 안에는 몸져누웠던 할아버지와 연락을 받고 긴급히 저택으로 돌아온 부모님이 다급히 회의하고 계셨다.
 
 
나는 문틈 사이에 기댄채 내부상황을 엿들었다.
 
 
-지금이라도 도망치죠, 아버지. 더는 숨길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맞아요, 아버님. 에레모스에서의 작위 박탈이 어떤 의미인지 아시지 않나요.
-......
 
 
할아버지는 부모님의 설득에도 묵묵부답이었다. 할아버지는 왕국에 대한 마지막 충심과 가문의 존폐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답답하게 여기고 있었다.
 
 
-아버지!
-아버님!
-그만.
 
 
심사숙고하시던 할아버지는 더이상 듣기 싫다는 듯이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가슴을 움켜쥐시곤 인상을 쓴채 손을 내저었다.
 
 
-오늘은 그만 논의하자꾸나. 피곤하다.
-이제는 인정하셔야 합니다! 소니아는 더이상...
-그만!
 
 
할아버지는 호통을 치시다 갑자기 입가를 틀어막으셨다. 기침을 하시며 자리에 쓰러지려는 걸 부모님이 황급히 부축했다. 입가를 막았던 손의 틈새에 검붉은 피가래가 흐르고 있었다.
 
 
-아버지!
-크흡! 쿨럭쿨럭!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부축하며 말했다.
 
 
-이젠 아버지의 몸도 생각하셔야합니다! 당장 맑은 곳에서 요양하며 의원들의 치유를 받아도 모자랄 판에 정계에 나선다니요. 아버지, 걱정 마세요. 제가 숨어 살 곳을 모두 알아놓았...
-가긴, 어딜 간다는게냐.
 
 
할아버지는 피묻은 손바닥을 물끄러미 보셨다.
 
 
-이 에레모스에서 작위를 박탈당한 가문은 단 한곳도 살아남지 못했다. 이게 의미하는게 무엇인지 알지 않느냐.
 
 
에레모스에서 작위박탈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힘에 미친 나라니까, 400년을 국가에 이바지 했다는 둥의 변명따위는 통하지 않았다. 당장 왕이 찾아와 주먹 한번만 휘두르면 가문은 멸문한다.
 
 
-이 에레모스를 벗어나 도망친다 하자. 그럼 그 다음에는? 너는 왕국의 눈을 피해서 도망친 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들어본게 있더냐?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의미는 단 하나였다. 암살자. 왕국에는 힘과 실적에 따른 부귀영화를 호시탐탐 노리는 살쾡이들이 차고 넘친다. 당장 왕의 명령을 저버리고 국외로 도망친 백작가를 귀족들이 가만히 내버려둘까?
 
 
전혀 아니다.
 
 
기껏해야 죽을 때까지 그들의 눈을 피해 숨어 사는 수밖에 없었다. 이마저도 가능성이 한없이 낮았다. 생존자에 관해 그 어떤 소문조차도 찾을 수 없었으니.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할아버지는 피묻은 손을 움켜진채 힘겹게 일어섰다.
 
 
-우리는 맞서야한다. 비록 비참하게 죽을지라도 할 수 있는데까지 의연하게 부딪쳐야 하는게다.
-하지만 아시지 않습니까! 소니아는 이제...!
-무작정 소니아를 믿자는게 아니다.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이 가문의 일은 나나 소니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다. 그러니 대책을 짜는 것도 우리 모두가 궁리해야 하지 않겠느냐. 애당초 한사람에게 모두의 미래를 맡기는 게 올바른 일인 것 같으냐? 그런 가문이 진정 맞는 것 같더냐?
-그러니 제가 도망치자 하지 않았습니까!
-도주는 의미가 없다. 소니아는 우리의 미래다. 그 아이에게서 미래를 뺏는다면 우리에게 대체 무엇이 남는단 말이냐. 평생 숨어살 각오? 아이에게 그런 걸 물려주고 싶은게냐?
-그럼... 어쩌시려는 거에요. 대체.
 
 
아버지가 할아버지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그을음이 묻어났다.
 
 
-아버지가 현 가주이시지만, 소니아와 아내는 제 가족이고, 행복입니다. 제가 가장이고 기둥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희박한 희망에 제 행복이 짓밟히는 걸 무력하게 지켜봐야 한단 말입니까?
-아범아.
-좋습니다, 아버지.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고개를 들었다. 문틈으로 본 눈빛에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의지로 가득차있었다.
 
 
-오늘 밤이 가기전에, 저와 아내를 설득 해주십시오.
-......
-제가 아버지를, 소니아와의 미래를 믿을만한 청사진을 제시해 주십시오. 뭐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희망을 품을만한 근거를 제시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반박에 할아버지는 침묵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난 후, 아버지가 등을 돌리려던 그 때 할아버지가 말했다.
 
 
-소니아.
 
 
덜컹. 갑작스런 나도 모르게 자세가 무너졌다. 자세를 고치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부모님이 휘둥그레한 눈으로 날 쳐다보셨다. 아버지는 날 보곤 고개를 저었다.
 
 
"다 들었구나."
"...네."
"들어서 알겠지만, 우리는 도망을 갈거다."
 
 
아버지는 성큼성큼 다가와 내 어깨를 부여잡으셨다. 떨리는 손길을 애써 감춘 채,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나를 설득했다.
 
 
"소니아. 나는 죽고싶지 않단다. 죽고싶지 않고, 그 이상으로 우리 가족이 평안하길 원한단다."
"아버지."
"신성국 오라리온으로 가자. 벨로보그 주신의 비호 아래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거야. 그곳에는 너를 고칠 수 있는 수단이 있을지도 모른단다. 최대한 숨죽여서 살면서, 너와 네 할아버지도 요양하면..."
"아버지."
 
 
나는 떨리는 아버지의 손을 쥐고 고개 숙인 아버지와 마주봤다. 아버지의 눈동자는 빛을 잃은 반딧불이처럼 여기저기 떠돌고 있었다.
이게 다음주에 성인식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란 말인가. 나는 불효자된 몸으로써 부모님의 근심을 덜어드리기 위한 마지막 부탁을 준비했다.
 
 
"제게 방법이 있어요."
"...뭐?"
 
 
아버지는 눈을 찡그린채 나를 바라보셨다. 할아버지의 시선과, 어머니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로 쏠렸다. 모두의 이목을 끌은 지금,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계책을 들려드렸다.
 
 
"먼저 성인식에 들어선다면 먼저 아버지께서..."
"어머니는 최대한 아티팩트를 이용해서..."
"할아버지는 요양을 핑계로 모습을 드러내지 마시고..."
"그렇게 무사히 넘어갈 수 있다면..."
 
 
내 일장연설이 끝나자, 집무실은 고요와 침묵으로 가득했다. 살떨리는 침묵 속에서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마법을 속인다니, 그게 가능 할 것 같니?"
 
 
아버지는 반박했다.
 
 
"성인식에 오는 마법사가 몇인줄 알고, 그걸 모두 속일 생각을 한다고? 너 제정신이야?"
 
 
나는 말이 끝날때까지 기다렸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였으니까. 에레모스는 실력지상주의. 그것은 마법사들의 생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마법에 미친 스페셜리스트인만큼 백작가에서 아무리 흔적을 숨긴다 하더라도 은폐한 마력쯤은 쉽게 찾을지도 몰랐다.
 
 
'평범한' 마법이라면.
 
 
"아버지, 저희 가문의 비전마법 특징이 뭐죠?"
"뭐? 그야...!?"
 
 
반박을 하려던 아버지는 그제서야 깨달은 듯 입을 벌린채 상황파악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우리 가문의 마법이라면?"
 
 
에레모스의 남부령을 통치하는 루테티아 가의 비전마법. 애당초 마력구조 자체가 다르게 태어나는 루테티아의 혈통이 아니라면 감지할 수 조차 없는 비전마법이라면 속이는 게 불가능하진 않았다.
 
 
만일, 정말로 무사히 속여 넘어갈 수 있다면.
 
 
"정말 자신 있는 거냐?"
 
 
아버지의 물음에 내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저 소니아에요. 루테티아의 소문난 희대의 천재."
 
 
내가 먹은 마법짬이 얼마나 되는데. 그까짓 일이야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었다. 내 자신감이 전해진 것인지 모두 비장한 기세를 풍겼다. 나는 손을 앞으로 뻗은채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할 일은 알겠죠?"
 
 
아버지, 어머지, 할아버지가 말없이 다가와 손에 손을 얹었다. 다들 한번씩 심호흡을 한뒤에 한마디씩 건냈다.
 
 
"이게, 정말로 성공한다면."
"엄마는 소니아만 믿을게."
"할아버지, 아직 할 수 있으시죠?"
"물론. 우리 막둥이를 위해서라면 몸이 부서지더라도 이뤄내야지."
 
 
서로 겹친 손을 보며 각자 상념에 잠겼다. 각자가 과정은 다르지만 모두 통일된 목표만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약 일주일 후. 파티 준비로 분주한 저택.
 
 
방안에서 단장을 마친 나는 손아귀를 감싼 장갑을 매만지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후우......"
 
 
수많은 리허설과 조정을 통해 연습을 했지만 아직도 떨렸다. 쿵쾅대는 가슴을 다스리고 있자니 문 너머에서 하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니아 아가씨. 곧 준비하실 시간입니다."
"알겠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손잡이를 잡았다. 장갑 너머로 느껴진 손잡이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잡념을 날려버리고자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심호흡을 한번 내쉬었다.
 
 
"괜찮아. 나는 천재니까."
 
 
방문을 나서서 계단을 내려갔다. 두려움이 겉으로 세어나오지 않게 더 의연한 자세로 걸었다. 한걸음 두걸음 도달해 저택의 문을 열자, 마당의 연회장에서 수많은 인파의 시선이 내게 쏟아졌다.
 
 
모두의 관심이 쏟아지는 가운데,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았다. 지팡이를 쥔 할아버지께서 내 손을 맞잡아주셨다.
 
 
"괜찮으냐?"
"괜찮아요. 저는 천재니까."
 
 
나는 연회장으로 이동했다. 화려한 드레스가 바람에 휘날리고, 가슴팍에 달린 브로치가 태양빛에 빛났다. 손가락과 귀에는 각각의 장신구들이 그림자 속에 가려졌다.
 
 
"가죠."
 
 
오늘 우리는, 세상을 속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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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과 관심은 언제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