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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문이 망했다. 처참하게 망했다.(3)




귀족들의 사교 파티는 제각기 의미를 지닌다.
 
 
그중에서도 성인식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인생을 살면서 단 한 번 밖에 겪을 수 없는 인생의 중대사. 대상이 누구던 축하 받아야 마땅한 자리리라.
 
 
그것은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에레모스 남부령을 지배하는 루테티아의 후계자. 저택의 최상층이 댄스 홀로 삼을 정도로 막대한 재력과 위상을 지닌 가문의 후계자가 오늘 성인식을 한다.
 
 
그 누가 오지 않을까.
 
 
나는 눈부신 댄스 홀 안에서, 빛보다 찬란하게 꾸민 이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소니아 양! 어른을 향한 첫 계단, 축하드립니다!"
"아, 감사합니다."
 
 
나를 향해 인사하는 귀족들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름을 모르는 귀족이지만 진심으로 나를 축복 하는 게 느껴졌다. 아니, 속으로는 나를 의심하는 반 루테티아 파일지도 몰랐지만 문제는 그런 게 아니었다.
 
 
'앞으로 한 시간.'
 
 
나도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진심을 다해 이번 성인식을 즐겼을 것이다. 가족들과 관객들에게 축하를 받으면서, 왕의 축복 아래에 무사히 성인식을 마치고 사회에 발을 들이는 첫걸음으로써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축하 파티의 주인공이 아닌 나의 자질을 심판 받는 죄인으로써 이 자리에 서있었다.
 
 
'할 수 있어.'
 
 
나는 주변에 설치된 장치들을 끊임없이 점검하는 하인들을 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실패는 죽음.
 
 
"이런, 또 뵙는군요. 소니아 양."
 
 
문득 드리워진 그림자에 고개를 돌렸다. 일주일 전에 저택에 쳐들어왔던 왕의 칙사. 에레모스의 동부, 보르치노령을 지배하는 보르치노 가의 일원 다니엘 N 보르치노.
 
 
그리고, 지금은 가문의 손님이자 적. 다니엘이 손을 내밀었다.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가 내게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한 곡 추시겠습니까?"
"...염치 없으신 분이군요."
 
 
저번 주에 있었던 일을 싸그리 잊었단 말인가. 내 비꼼에도 다니엘은 그저 싱글싱글 웃을 뿐이었다. 순간 표정이 무너질 뻔했다.
 
 
자리를 피하려 했으나, 드레스 끝에 무언가가 걸려 신체 축이 앞으로 쏠렸다.
 
 
"아!?"
 
 
샛된 비명. 눈을 감고 충격을 대비했으나, 기다렸던 아픔은 오지 않았다. 눈을 뜨니 두꺼운 팔이 내 허리를 떠받치고 있었다. 나는 내 몸을 받쳐준 자를 보곤 안색을 굳혔다.
 
 
"후훗. 괜찮으십니까."
"......감사합니다."
 
 
빌어먹을 다니엘이 내 눈앞에 있었다. 재빨리 떨어지려 했으나 그가 허리를 단단히 휘감았다. 내가 버둥거릴 때, 그가 살며시 가슴 팍의 브로치를 매만졌다.
 
 
"호오. 예쁜 브로치군요."
"놔, 주시죠...!"
"마력이 느껴집니다. 마정석으로 만든 제품일까요. 푸르게 발하는 마나의 빛이 아름답습니다."
 
 
문득. 순간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약 1초도 안되는 시간. 간신히 표정 관리를 한 내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요. 성인식을 맞이해 특별히 준비한 물건입니다. 그보다 이제 좀 떨어져주시면."
"호오. 이렇게 소형화된 아티팩트를 준비하시다니. 요즘에는 규제가 심해져서 얻기 힘든 물건인데 잘도 구하셨습니다."
"...무언가 문제라도?"
"아뇨아뇨. 이런, 너무 붙어있었군요."
 
 
다니엘이 팔에서 힘을 풀었다. 나는 황급히 떨어졌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경계하자, 그가 웃으며 나를 지나쳤다.
 
 
"무슨 생각인진 모르지만, 애잔한 발악이군."
 
 
마치, 뱀이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
 
 
"그 재롱, 어디까지 가나 지켜보지. 큭큭."
 
 
그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비틀거리듯이 자리에 앉은 나를 향해 부모님이 달려왔다.
 
 
"소니아! 괜찮은 거냐?"
"...괜찮아요. 들키진 않은 것 같아요."
 
 
나는 가슴 팍에 달린 브로치를 매만졌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지만, 잘 넘어간 것 같다. 나는 걱정되어 달려와 준 부모님을 다독였다.
 
 
"그것보다. 준비는요?"
"무사히 다 끝났다. 이제는 너와 아버지의 몫이야."
"할아버지는? 괜찮으신 거에요?"
"괜찮다."
 
 
나는 느닷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등을 돌려왔다. 그곳에는 요양을 핑계로 몸을 숨겨야 했던 할아버지가 계셨다.
 
 
"할아버지!? 여긴 어떻게...?"
"미안하군."
 
 
할아버지의 등 뒤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찬란한 휘장을 보자마자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내 앞에 선 존재는 에레모스를 다스리는 만인지상의 존재.
 
 
"세레스 경이 아픈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손녀의 성인식을 보지 못한다는 건 섭섭하다 생각해서 말이지."
 
 
헤이든 라그 에레모스. 일격에 이 저택을 무너뜨려 모두를 생매장할 수 있는 최강의 존재.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감춘 채 황제의 말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시선 끝에 왕과 할아버지의 발끝이 마주했다.
 
 
"억지를 부려서 미안하군. 세레스 경."
"아닙니다. 저도 내심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나이다."
 
 
하하하하-.
 
 
둘의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왕께서는 할아버지와 작은 담소를 나누다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
"소니아, 라고 하던가?"
"폐하께서 이름을 알아주시다니, 가문의 기쁨입니다."
"하하하. 과연 듣던 대로 천재가 맞나 보군. 이 어찌 사교계에 처음으로 나온 소녀란 말인가."
 
 
"아니, 이제 처녀인가?"왕께서는 스스로 자문하다 나를 직접 일으켰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다. 떨고 있는 날 본 왕께서 살며시 다독여주셨다.
 
 
"너무 두려워하지 말게. 그대는 뭐니뭐니해도 이번 파티의 주인공이 아닌가?"
 
 
단순한 위로의 말이 칼을 삼킨 듯 가슴을 후벼팠다. 왕께서 호전되지 않는 내 태도를 보곤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몸에 이상이 있다는 말이 사실인가보군. 오늘은 무리인가?"
 
 
나는 화색이 돌았다. 얼른 지병에 관한 변명을 떠올리던 중 왕께서 말했다.
 
 
"그럼 마법 시연의 기회는 물 건너가겠군. 이후에는 내가 따로 궁으로 초대해서 봐야겠어."
"아닙니다!"
 
 
나는 황급히 대답했다. 지금 궁으로 가게 된다면 빼도박도 못한 채 정체가 탄로나게 된다. 나는 등을 돌리려는 왕을 향해 필사적으로 호소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평소에 사람이 많은 곳이 익숙치 않아 잠시 현기증이 났을 뿐입니다."
"현기증이라니. 그럼 쉬어야하지 않겠는가."
"어찌 저 때문에 고귀하신 태양의 발걸음을 무위로 돌리겠나이까. 제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저를 증명해 폐하의 근심을 덜어드리겠습니다."
"흐음..."
 
 
왕께서는 입술을 감싼 채 침묵에 잠겼다. 일말의 시간이 지난 후 왕께서 등을 돌리셨다.
 
 
"미상의 사태를 대비해 그대를 부축할 인원을 붙여야겠군. 보르치노 경."
"예."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방금 뭐라고? 왕께서는 내 속도 모른 채 다니엘에게 명령했다.
 
 
"아까 그녀를 부축 하는 광경 잘 봤네. 꽤나 친한 사이인 것 같더군."
"후후, 그리 비춰졌다니 다행입니다."
"그녀는 오늘 파티의 주인공일세. 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나?"
"예.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그녀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겠나이다."
 
 
왕께서 다니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곤 자리를 떠났다. 나는 혐오감이 든 눈빛을 숨기지 못했다. 다니엘은 그런 내 반응조차 즐겁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그렇게 되었으니,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망할."
"저런, 벌써 그리 상스러운 말을 하시면 곤란합니다."
 
 
다니엘은 내 귓가에 속삭였다.
 
 
"아직 밤은 기니까요."
 
 
 
 

-
 
 
 
 
 
루테티아 가의 연무장. 관객들을 위해 비치한 좌석에서 모두가 등장하지 않은 주인공을 기다렸다. 빛 한 점 없는 관객석에서 귀족들은 저마다의 기대감을 품고 연무장을 바라봤다.
 
 
"드디어 보는 건가. 루테티아의 소문난 천재의 솜씨를."
"나는 과거에 본 적이 있었지."
"어떠했습니까."
"흠, 한마디로 일축하자면 '불'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군."
 
 
대답한 노신사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젊은 귀족은 그의 턱에서 미처 수염에 가려지지 못한 화상 자국을 엿보았다. 젊은 귀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턱에 큰 변고를 당하신 모양입니다."
"으음? 하하핫. 아니네. 이건 말이지, 추억이라네."
 
 
노신사가 아련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어느 찬란한 별빛이 가져간... 자그마한 추억인게야."
 
 
그리고, 노신사의 앞에 자그마한 반딧불이가 내려앉았다. 뜨거운 불이 아닌, 마치 햇볕처럼 따스한 불꽃. 그 노신사를 기준으로 수많은 관객들의 앞에 작은 불꽃들이 넘실거렸다.
 
 
그리고, 연무장의 대기실에서 이번 성인식의 주인공, 소니아 F 루테티아가 해맑은 표정으로 걸어 들어왔다. 소니아가 목에 걸린 브로치를 조작하자 그녀의 목소리가 연무장 전체에 울려퍼졌다.
 
 
"오늘, 루테티아 가를 찾아와준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소니아가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였다. 이에 반응해 관객석에서 수많은 박수가 쏟아졌다. 박수를 맞이한 소니아가 양손을 가슴 위로 뻗었다.
 
 
그러자, 연무장을 환하게 비추던 모든 불빛이 그녀에게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오오...!"
 
 
관객들은 자신의 앞에서 빛나던 반딧불이들이 연무장에 모이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수십, 수백의 작은 무리들이 그녀의 주위를 둘러쌓았다.
 
 
"모두들 오매불망 기다리셨을 것입니다. 루테티아의 작은 천재가 대체 어느 정도길래 그 미명이 천하를 진동 시키고 저 드높은 태양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는가?"
 
 
소니아의 손짓에 따라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물결치는 불꽃들이 이내 한 점으로 모였다. 응집된 반딧불은 한 점의 태양이 되어 그녀의 머리 위에서 강렬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오늘, 보여드리겠습니다."
 
 
소니아가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머리 위의 태양이 소용돌이치며 흩어져 8마리의 새로 나뉘었다.
 
 
새들은 제각기의 궤도로 하늘을 비행하며 뜨거운 깃털을 흩날리며 연무장의 허공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관객들은 자신의 머리 위에서 흩어지는 불씨들을 보며 감탄사를 내질렀다.
 
 
"루테티아의 진정한 힘을. 그 이름이 가진 명예를. 지금 여기에서 증명하겠습니다."
 
 
하늘을 유영하던 새들이 이윽고 소니아의 한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 마리, 두 마리 씩 손아귀에 들어온 새들이 형체를 잃어 그녀의 손아귀에 넘실거렸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소니아가 방긋 웃으며 자신의 불꽃을 하늘 위로 던졌다. 불꽃은 천장까지 치솟다가 하늘의 끝에 닿아서 화려하게 터졌다.
 
 
퍼펑!
 
 
불꽃이 연쇄적으로 분할되며 터지고 뭉치길 반복했다. 마치 밤하늘을 밝히는 초신성들을 눈앞에서 관측하는 듯한 광경에 관객들은 위압되었다. 연쇄적인 폭발 속에서 태어난 한 마리의 불사조가 피어올랐다.
 
 
소니아가 활기차게 소리쳤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불사조가 비상하며, 무대가 시작되었다.
 
 
이 순간, 루테티아 사상 최대의 사기극이 시작되었다.
 
 
 
 

-
 
 
 
 
 
연무장에 선 나는 마법에 집중하면서도 마음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다행이다.'
 
 
'연극'은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루테티아의 마력 구조가 선천적으로 다르게 부릴 수 있는 묘기. 나는 허공에 핀 포인트를 몇 군데 지정하여 짧은 도화선을 생성해 온도를 높였다.
 
 
-화르륵!
 
 
그러자, 지정한 도화선에 반 박자 늦게 불꽃이 생성되었다. 나는 자신의 브로치에 걸린 확성기능을 끄고 통신 기능을 열고 조용히 속삭였다.
 
 
"엄마, 할아버지는요?"
-아직 건장하셔. 신경 쓰지 말고 마법에 집중하렴.
"신경을 안 쓰긴요."
 
 
나는 허공에 마법을 부리며 손짓하면서도 슬며시 미소지었다.
 
 
"내가 지금 마법을 쓰는 이유가 순수히 '할아버지' 덕분인데."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작전이었다. 자신의 마법 위에 할아버지의 마법을 덧씌우는 작전. 오직 직계 혈통만이 서로 마법을 간파 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한 트릭.
 
 
'내가 허공에 도화선을 생성에 그곳의 온도를 높이면.'
 
 
허공에 도화선을 생성한다. 그러면 내 마법을 감지한 할아버지가 그 포인트를 향해 불꽃을 생성한다. 그리고 나는 그 불꽃을 이용하여 마법을 펼친다.
 
 
'할아버지가 그 위에 마법을 써서 불을 덧씌운다. 마치 내가 불을 만든 것처럼.'
 
 
아버지가 구해온 통신 아티팩트를 이용해서 할아버지와 끊임없이 소통한다. 숨겨진 방 틈새로 연무장을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내 마법의 흔적을 따라서 마법을 부린다. 엄마는 구해온 약재를 이용해 할아버지를 끊임없이 돌보면서 비상시를 대비해서 회선을 열어두고 대기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한 최선.
 
 
작전명 글레이징(덧칠기법).
 
 
'이거면 할 수 있어!'
 
 
나의 손아귀에서 꽃핀 화염이 내 뜻에 따라 움직인다. 마치 과거로 돌아간 기분. 온몸을 감싸는 전능의 감각에 절로 웃음꽃이 피었다. 허공을 수놓은 불꽃을 볼 때마다 번개를 삼킨 듯이 짜릿한 쾌감이 뇌리를 관통했다.
 
 
동시에, 씁쓸한 맛이 혀끝에 맴돌았다.
 
 
'죄송해요. 할아버지.'
 
 
자신이 힘이 잃지 않았다면, 차라리 과거에 힘이 강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겪지 않았을텐데. 이제 몸을 챙겨야 하는 나이임에도 아직도 활동해야만 하는 할아버지의 처지가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도, 이번 일만 무사히 지나간다면.'
 
 
한동안은 외부에서 새는 잡음을 잠재울 수 있으리라. 그 시간을 이용해 닥치는 대로 세계를 돌아다녀 병에 대한 치료법을 찾아낸다. 나는 흔들리는 정신을 다잡고 마지막 피니셔를 준비했다.
 
 
그때였다.
 
 
-쿨럭!
 
 
브로치 너머로 고통스러운 기침 소리와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님!? 아버님! 괜찮으신가요!
 
 
할아버지의 지병이 도지신 것이다. 나는 하늘에서 힘없이 일렁이다 사라지는 불꽃을 보며 당황했다.
 
 
'안돼!'
 
 
지금 작전이 무너진다면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간다. 심지어 자신의 눈앞에는 왕도 있었다. 왕을 기만한 죄는 그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다. 소니아는 이를 악물고 꺼져 가는 불씨를 붙잡았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한 관객들이 서서히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어어, 뭐야?"
"불길이 점차 약해지고 있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제발...!'
 
 
점화된 불꽃이 차차 사그러들기 시작한다. 나는 필사적으로 마력을 집중해 온도를 높이기 위해 애썼다. 바늘 구멍, 아니 바늘 끄트머리 수준으로 마력을 압축해 도화선을 지폈다.
 
 
-화르르르…
 
 
그러나, 내 노력이 무색하게도 불길을 사그라들기만 했다. 이윽고 모든 불이 꺼지자, 눈앞이 캄캄하게 변한 연무장에서 저 마다의 의구심을 쏟아냈다.
 
 
"설마, 그 소문이 사실인가? 루테티아의 손녀가 힘을 잃어간다는 소문이?"
"뭐라고? 하지만 방금 전까지 굉장한 마법을 부렸잖아?"
"그러니까 수상한 거지. 왜 갑자기 잘하던 마법을 취소한 거지?"
"그러고 보니 아까 다니엘 경이 그녀의 곁에 있을 때 아티팩트 어쩌구 했던 것 같은데."
"아티팩트? 그럼 여태까지 보여준 게 바로?"
 
 
웅성웅성.
 
 
술렁거림이 늘어갈 때마다 장갑 안이 축축해져갔다. 등골이 서늘했다. 두려움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틀렸어.'
 
 
고개를 숙인 채 체념했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뭐가 천재고 뭐가 루테티아란 말인가. 고작 불씨 하나 붙이지 못해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사람이 천재? 허탈해서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곧 머지않아 돌변할 사람들의 시선이 참을 수 없이 두려웠다.
 
 
이제 그만,
포기하자.
 
 
'어쩔 수 없잖아.'
'불도 붙이지도 못하는데 어떡하라는 거야?'
'나는 할만큼 했어.'
'대체 왜 나만? 어째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거지?'
'죄송해요. 모두들.'
 
 
두 눈을 꼭 감고 내게 다가올 파멸을 기다리고 있자, 문득 눈꺼풀 너머로 밝은 무언가와 함께 함성이 들렸다.
 
 
"불이 다시 붙었다!"
 
 
방금 뭐라고? 나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화염구. 아직 사그라들지 않은 루테티아의 불꽃. 나는 고개를 돌려 할아버지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할아버지가 피를 문 채 손을 뻗고 있었다.
 
 
"......!"
 
 
나는 울컥한 감정을 가슴 깊이 삼켰다.
 
 
지금은 다른 무엇도 아닌, 눈앞에 던져진 불꽃에 집중한다. 나는 기도하듯 마력을 응집하여 수 갈래의 도화선을 수놓았다.
 
 
거대한 불꽃이 선을 그리며 하나의 형상을 취했다. 이는 루테티아의 상징인 불사조가 아닌 또 다른 영물.
 
 
힘을 숭배하는 에레모스를 상징하는 만물의 정점. 홀로 완전하여 그 존재만으로도 다른 이들을 굴복 시키는 최강의 생명체.
 
 
드래곤.
 
 
---!
 
 
화염의 용이 울부짖으며 하늘로 솟구쳤다. 쩍 벌어진 아가리에서 뜨거운 브레스를 뿜으며, 손에는 여의주의 형상을 한 화염을 지닌 채 뜨겁게 타오르는 구름을 타고 너머로 승천했다.
 
 
"오오오...!"
 
 
마지막 힘을 짜내어 도화선을 짜내었다. 부모님의, 할아버지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불꽃을 단 한 톨도 낭비하지 않도록 세세한 공정을 가했다. 마지막 선을 그린 나는 마침내 불꽃을 해방했다. 드래곤의 형상이 산산이 흩어지며 불꽃이 수 백의 생명체가 되어 관객석을 향해 날아갔다.
 
 
그들의 눈에 비친 것은.
 
 
"나비?"
 
 
자그마한 열기를 지닌 나비가 파도처럼 관객석을 덮쳤다. 자리에 앉은 귀족들이 무의식적으로 비명을 지른 채 손을 들어 올리며 뜨거운 열기에 대비했다.
 
 
그러나, 그들이 기다린 열기는 찾아오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이 맞이한 것은.
 
 
"따뜻해."
 
 
마음을 따뜻하게 밝혀주는 온기와.
 
 
"어머, 예뻐라."
 
 
눈을 정화하듯이 밝혀주는 어여쁜 불꽃. 불꽃의 나비들은 제각기 관객들의 손가에 머물다가 창밖으로 사라졌다. 주인들의 아쉽다는 듯이 휘젓는 손길을 뿌리치고, 창밖의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깊은 여운을 남긴 채 사라진 요정. 이것이 내 마지막. 모든 것을 쏟아낸 나는 앞으로 내가 감당해야 할 미래를 대비했다.
 
 
그리고.
 
 
-짝짝짝!
 
 
연무장이 점차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깜짝 놀랐군! 무엇을 준비하나 했더니 용을 만들더니 마지막엔 앙증맞은 나비라니!"
"이런 서프라이즈면 언제든 환영이지! 아깐 의심해서 미안했습니다!"
"역시 루테티아의 작은 천재로군!"
"다시 한번만 해줄 수 있나요?"
 
 
나를 향해 쏟아지는 극찬을 안심하고 맞이하다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할아버지!'
 
 
많이 위독하실까? 걱정이 앞선 나는 황급히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뜨려 했으나, 눈앞에 나타난 존재에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훌륭하군."
 
 
에레모스의 왕, 헤이든 라그 에레모스.
 
 
소소한 박수를 곁들인 채 내 곁으로 다가온 그가 내게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대의 마법 시연, 아주 잘 봤네. 살면서 이리 화려한 마법을 직관 할 수 있는 줄은 몰랐군. 마치 전성기 시절의 세레스 공을 보는 기분이었네."
"감사합니다."
"정말 훌륭했어요. 소니아 양."
 
 
황제와 대동한 다니엘이 게슴츠레한 미소를 띈 채 나를 극찬했다. 내가 안절부절 못한 채 왕의 말을 기다리고 있자, 왕께서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내 그대와 좀 더 담론을 나누고 싶다만 앞서 밀린 예정이 넘쳐 나서 쉽지 않겠군."
"황공하옵니다."
"그러니까, 한 가지만 부탁을 하지."
 
 
왕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다시 한번 보여줄 수 있겠나? 자네의 마법 시연을 말이지."
 
 
직후, 내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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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 달아주시면 너무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