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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내 가문이 망했다. 처참하게 망했다.(1)




나는 머리가 굳은 이후부터 예전부터 궁금했던게 하나 있었다.
 
 
'왜 우리 가문은 진작에 망하지 않았을까?'
 
 
내가 살고 있는 땅은 에레모스. 체제부터가 왕의 천명아래에서 모든 이들이 힘과 실적에 집착하는 순수실력주의 집단이다. 어느 정도냐면 아무리 인성이 썩은 범죄자라도 실력만 있다면 높은 관직에 기용할 정도로. 왕국에서 쓰레기같은 놈들이 판을 쳐도 나라가 존속 되는건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런 치열한 에레모스에서 불꽃을 다루는 마법사, 루테티아 가문의 마법사는 할아버지가 전부다. 나를 제외하고서도 우리 집안에서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할아버지가 유일했다. 우리 부모님을 포함하고서도 말이다.
 
 
'역시 할아버지는 대단해!'
 
 
이 모든게 처음에는 할아버지 덕분인 줄 알았다. 할아버지는 대단한 마법사였으니까. 가문의 비전마법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할아버지의 마법실력은 왕국의 3대공조차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허나 머리가 굳은 이후 할아버지께 내 의문을 물었을때, 할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다.
 
 
'소니아. 우리 루테티아 가문이 존속하는 건 내가 아닌, 네 덕분이란다.'
'네?'
'불쌍한 소니아. 나중에는 싫어도 이해하게 될것이란다. 사랑한다, 내 손녀야.'
 
 
그리고 할아버지는 날 꼭 안아주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붉어진 눈시울에 애써 시선을 돌리며 생각했다.
 
 
'한 사람에게 가문의 존폐가 걸려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리고 지금, 난 이걸 확인하기 위해서 멀리 돌아갈 필요도 없었다. 당장 내 처지만 돌아봐도 십분 이해가 되었으니.
 
 
딱. 딱. 딱... 나는 사방이 밀폐된 폐관수련장에서 미친듯이 손가락을 튕겼다.
 
 
"제발...! 왜 안 되는건데!"
 
 
나는 멀리서 불 한 점 없이 우뚝선 촛대를 보며 소리쳤다. 욕도 해보고, 신께 빌어도 보고, 심지어 울어도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현실은 그저 차가운 양초 끝처럼 냉정했다.
 
 
흘러내리는 금발을 쥐어뜯으며 이를 갈았다. 내 비통어린 절규에도 불구하고 마법은 발동되지 않았다.
 
 
"대체 왜? 뭐가 문제인건데!?"
 
 
모든 것은 6살의 어느 날, 죽을만큼 뜨거운 고열에 시달린 이후부터. 어릴적에 자그마한 홍역을 앓고난 후 내 마법은 작지만, 아주 천천히 약해져갔다.
 
 
산을 태우는 불꽃이 자그마한 숲을, 나무 한그루를, 더 나아가서 잡초 하나를 겨우 태울때까지.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제 부싯돌의 도움없이는 불을 피워낼 수 없었다.
 
 
"저번달만 해도 초에 불은 붙였는데...!"
 
 
처음에는 내 문제인줄 알았다. 이론도 모른체 마력만 남발하니 마법이 약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램프 속의 기름처럼 줄어만 가는 마력은 수련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내가 부족해서,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법이 약해진 것이라고. 열심히 공부하고 수련하여 나 자신을 갈고닦으면 자연스레 극복될 징크스라 생각했다.
 
 
가문에 있는 모든 고서를 탐독했다. 비전가문에 대한 모든 이론을 터득했다. 자신의 불꽃만이 아닌 다른 이의 불꽃마저 빼앗아 다룰 수 있을만큼 성장했다. 눈을 감고도 주변에 대기와 마력을 조작해 세밀한 도화선을 짜낼 경지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 어떤 짓을 해도 나는 내 스스로 불꽃을 피워낼 수 없었다.
 
 
이유는 단 한가지.
 
 
그냥 내 마력이 약했다. 불을 붙일 최소한의 발화점까지 도달하지도 못할만큼.
 
 
"젠장!"
 
 
발치에 깔린 수많은 마법이론서와 수식이 적힌 종이를 발로 찼다. 잉크병이 엎어지고, 온갖 수식이 적힌 종이가 공중에 흩날렸다.
 
 
당장 다음 주가 성인식이었다. 수많은 견제를 막아주던 할아버지조차 몸져누운 상황에서 가문이 멸문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수를 써야한다.
 
 
흥분한채 분을 삭히고있자, 문뜩 허리춤에서 아티팩트가 발광했다.
 
 
나는 아티팩트를 들고 통신을 연결했다.
 
 
-소니아 아가씨. 외부에서 손님이...
"거절해."
 
 
단칼에 거절했다. 가뜩이나 답답하던 속이 더 타들어갔다. 평소에는 찾아오는 손님들도 잘 타일러 돌려보내던 사람이 왜 갑자기 뜸을 들이는건지.
 
 
부모님은 영지 밖의 활동때문에 안 계시고, 할아버님은 가뜩이나 악화된 건강때문에 현재 요양 중이셨다. 이를 통해 적당히 구슬려서 보내면 될 일이다.
 
 
하지만 뒤따라 들려온 답변이 모든 걸 설명해줬다.
 
 
-왕실에서 찾아오신 분입니다. 어찌 변명해야할지.
"나 없다고 해. 멀리 요양 갔다고."
-요양이라, 이런 퀴퀴한 수련장에 말인가?
 
 
나는 화들짝 놀란채 아티팩트를 꺼버렸다. 회선이 다른 누군가에게 침범당했다. 들킨건가? 황급히 몸을 숨기려던 그때.
 
 
쾅!
 
 
누군가가 폐관수련장의 문을 날려버렸다. 내가 날아오는 문짝을 피해 구르자 누군가가 손뼉을 털며 들어왔다.
 
 
"이거이거 원. 얼굴 한번 보기 힘든 분이시군. 안그래?"
 
 
앞머리를 시원하게 넘긴 올백머리의 남자가 외알안경을 들어올렸다. 그는 뿌연 먼지를 마법으로 날려버리곤 어질러진 수련장을 둘러봤다.
 
 
"하하. 뭔가 바쁜 일을 하던 중이었나보군. 조금 미안한데?"
 
 
그의 손에는 자신의 전속 시녀만이 들고있는 비상연락용 아티팩트가 들려있었다. 남자는 아티팩트를 집어넣고는 옷깃을 정돈했다. 내 손에 들려있는 아티팩트에서 하녀의 샛된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아가씨! 큰일났습니다. 가문에 찾아오신 손님이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셨…
 
 
뚝. 나는 통신을 종료하고 눈앞에 선 귀족과 마주했다. 당했다. 그는 마법을 이용해 환영을 만들고 온 영지를 뒤진 것이다. 고작 나 하나를 찾기위해서.
 
 
남자는 별다른 반응없이 자기소개를 했다.
 
 
"에레보스의 동부, 보르치노령을 다스리는 다니엘 N 보르치노다. 잘부탁하지."
"...무례하시군요. 주인이 오지않는다고 집안을 부수고 들이닥치는 손님이 어디있습니까?"
"이런. 인사가 거칠었던건 사과하지. 한참을 기다려도 집주인이 마중나올 생각이 없어보여서 말이야."
 
 
폐관수련장을 부수고 온 남자, 다니엘은 빙긋 웃으며 무릎을 살짝 굽혔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미안한 구색 하나 없이 차가웠다. 나는 회선에 침범한 아티팩트를 보고 확신했다.
 
 
'보르치노라면 할아버지를 견제하는 반대파 귀족 중 하나였나.'
 
 
분명 아직도 변변찮은 후계없이 정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할아버지를 시기하는 작자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항상 내 존재를 의심하며 왕에게 간언해 확인사살을 요구한다. 남쪽령을 공작가도 아닌 고작 백작가가 지배하고있었으니. 하지만 이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할아버지를 시샘하는 자가 집안의 비밀회선에 침범해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한가지.
 
 
첩자. 집안에 누군가가 침입하여 정보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다니엘을 쏘아보았으나 그는 아랑곳않고 반박했다.
 
 
"하지만, 몇번이고 왕실의 부름에 응하지 않는 무뢰한에게는 가벼운 처사가 아닐까?"
"건강상의 이유였을 뿐입니다. 이는 왕실에서도 묵인해주었고요."
"정확히 말하면 그때그때 떠오르는 변명을 조부모의 힘을 빌려 모면한거지. 아닌가?"
 
 
큭큭큭. 다니엘이 기분나쁜 목소리로 웃었다.
 
 
"조부모의 품안에서 호의호식하는 것도 정도가 지나치면 미움을 산다네. 이렇게 자식이 하루가 멀다하고 속을 썩히니 세레스 공도 결국 앓아 누우신게 아닌가?"
 
 
나는 입을 다문채 입술을 깨물었다. 분하지만 눈앞의 남자에게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우리 가문이 존속이 되었던건 순전히 할아버지의 노력 덕분이었으니까.
 
 
어릴적에 나의 천재성이 온 나라에 퍼진 이후, 왕실과 귀족 등 수많은 손님이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왔다.
 
 
처음에는 문제가 없었다. 나는 진짜 천재'였으니까'. 내 화려한 마법실력을 맘껏 뽐내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장담하건데, 그 시절이 우리 가문이 가장 행복하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마법이 차차 약해지자, 가문에서는 비상사태가 걸렸다. 집안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수많은 회의를 거친 결과, 단 하나의 결론이 나왔다.
 
 
-소니아의 재능이 회복될때까지 최대한 비밀을 유지해야한다!
 
 
그 뒤로 나는 모든 영외활동을 금지당했다. 영지를 나가는건 물론이고, 사교계는 커녕 집안에서 한발자국 나가는 것조차 금지당했다. 사람이 많은 날은 창문조차 열지 못하고 커튼을 치는 날이 다반사였다. 왕실을 포함해서 날 만나러 오는 모든 손님들의 발을 끊었다.
 
 
이 모든게 가능했던건 우리 가문에 마지막 남은 마법사인 할아버지 덕분이었다.
 
 
그러나, 지금 여기엔 할아버지도 없다. 다니엘은 팔을 활짝 편채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제 세레스 공도 걱정이 없겠군. 화염마법의 스페셜리스트라 불리는 루테티아가의 희대의 천재가 가문을 짊어질테니!"
"무슨...?"
 
 
내 물음에 다니엘이 품에서 한가지 서신을 꺼냈다. 두루마리처럼 돌돌말린 양피지를 펴자 그 안에 찍힌 왕의 직인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재빨리 무릎을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왕의 서신이라고!?'
 
 
의문을 풀을 새도 없이 다니엘은 근엄하게 칙서를 읽어나갔다.
 
 
-나, 헤이든 라그 에레모스는 이르노라. 에레모스의 남부가 의지할 곳은 루테티아 령의 세레스 F 루테티아 경 뿐인데, 세레스 경조차 세월의 풍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가니 내 어찌 근심을 감추리.
 
 
-여가 지난 반년간 루테티아 가를 말없이 찾은 것은 모두 무거운 근심의 뿌리를 떨쳐내고 새로운 싹을 잇기 위함인 것이거늘, 세레스경은 미래에 남쪽령을 이끌 어린 가주대신 노쇠한 몸을 일으켜 아직도 국가에 이바지하려 애쓰는구나. 심히 통탄할 일이로다.
 
 
-내 이를 가엾게 여겨 한동안 루테티아를 지켜보았으나, 결국 남쪽의 기둥인 세레스 경은 몸져눕고, 남은 이라고는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않은 어린 마법사뿐이니 어찌 걱정하지 않으리오.
 
 
-내 이를 축복하기위해 새로운 차기 가주, 소니아 F 루테티아의 돌아오는 16째 탄신일에 이른 성인식을 맞이해 내 친히 그대에게 축복을 내릴 것이니, 루테티아의 새로운 가주 소니아는 성인식에 필히 참석해 앞으로 국가에 이바지할 강건한 모습을 선보여 나라의 근심을 재빨리 털쳐낼 것을 엄숙히 선고한다.
 
 
-From. 헤이든 라그 에레모스. To. 소니아 F 루테티아.
 
 
다니엘이 낭독을 마치자, 목 뒷덜미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쉴새없이 떨리는 내 마음을 아는지 다니엘이 무릎꿇은 내 귀에 다가와 속삭였다.
 
 
"드디어 그 추악한 민낯을 만천하에 드러내겠군."
 
 
다니엘은 차갑게 뇌까린채 고개를 돌렸다. 그는 나를 등지고 부서진 문을 지나치며 말했다.
 
 
"아, 부서진 문은 우리 보르치노 가에 청구하게. 그때까지 귀족의 작위를 들고 있다면 말이지. 큭큭."
 
 
나는 다니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너무 갑작스럽게 들어온 수많은 정보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왕께서 직접? 내 성인식을 오신다고?'
 
 
이것이 현실인가. 나는 귀를 의심했다. 주먹을 쥔 손아귀가 축축했다. 뒷덜미에는 식은땀이 맺혀있었다.
 
 
나는 폐관수련장의 구석에 가서 조용히 주저앉았다.
 
 
"왕께서...친히 오신다고."
 
 
나는 손을 뻗어 마법을 발동했다. 대기중의 산소를 모으고, 먼지로 도화선을 직조해 그 끄트머리에 마력을 응집했다.
 
 
그러나, 불은 붙지않았다. 나는 마력으로 조작된 일련의 과정을 손짓으로 날려버렸다.
 
 
"대체... 어쩌라는거야."
 
 
나는 무릎을 모은채 고개를 파묻었다. 목안에서 뜨거운 것이 솟아올랐다. 뜨거워진 눈시울을 감추고, 가슴에 담긴 응어리를 삼키며 어질러진 수련장 안에서 조용히 흐느꼈다.
 
 
"할아버지..."
 
 
내 눈물조차도 마음에 불을 붙여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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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과 관심은 언제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