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사냥꾼들은 도착했나?"


레실리아는 대답하는 대신에 대열의 끝을 바라보았다. 사냥꾼 열다섯이 말을 탄 채로 대열의 제일 후미에 몰려 있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니아젤이 보였다.

에와라닐은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말이 없던 레실리아가 툭 하고 한 마디 던져 왔다.


"불길하군요."

"뭐가?"


레실리아의 중얼거림에 에와라닐은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도시 밖으로 나가기 전에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것은 관둬주게."

"음... 근데 뭐라고 해야 할까요? 일이 좀 잘 풀리는 것 같지 않아요? 겨울도 다가오겠다, 갈색 평야에 일 거리 없는 게 뻔한데 이런 두둑한 건수도 들어오고, 수색꾼 없어서 깊은 숲은 원래 못 가는데 사냥꾼도 도시에서 대주고."


에와라닐의 말을 반쯤 무시하며, 레실리아는 말했다. 에와라닐은 어깨를 살짝 으쓱하며 대답했다.


"뭐, 운이 따라줬다고 생각하면 되지. 대신, 일이 좀 위험하지 않나."

"위험하다고요?... 글쎄요. 저희 비무장 지대에도 올라가 본 적 있는 거 아시죠?"


에와라닐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도시의 대문을 담당하는 보안관에게 천천히 말을 몰아 다가갔다. 보안관은 그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크게 외쳤다.


"하얀 손 순찰대가 출정한다. 문을 열어라!"


횡대로 여덟 명이 줄지어서 지나갈 수 있을 크기의 문이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에와라닐은 말의 고삐를 잡고 당겼다. 그가 보안관의 옆을 지나칠 때, 문을 담당하는 보안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살아서 다시, 도시에서 보자고."

"그래."


에와라닐은 짧게 대답하며 고개를 잠깐 숙였다. 보안관은 씨익 웃으며 눈길을 에와라닐의 바로 뒤를 따르는 부관, 레실리아에게 돌렸다. 보안관이 말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레실리아는 빠르게 말했다.


"살아서 보자고요. 에드룬드."


보안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 밖으로 나서자 정오의 태양이 보였다. 겨울이 다가오는 날씨이기에, 높이 뜬 태양은 방해가 아니라 오히려 도움이였다. 문을 빠져나오자, 그는 선두를 바로 뒤에서 따르던 수색꾼들에게 넘기고는 말을 몰아 레실리아와 함께 대열의 옆으로 비켜섰다. 100명이 넘는 거대한 행렬이였다.


"생각보다 짐이 적은 것 같은데?"

"여러 순찰대가 동시에 출정하다 보니. 도시에서 여력이 조금 달렸나 봅니다. 그래도, 요새에서 우릴 지원해 줄 겁니다. 깊은 숲으로 가는 첫 번째 요새와 마지막 요새에서 보급을 받으면 충분할 테지요."

"계획이 너무 깔끔한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는군. 초원의 괴물들은 다 겨울잠이 들어갔나?"

"놈들이 언제는 겨울잠 잔다고 안 기어 나왔습니까? 그래도 겨울이 다가오니 땅굴을 파고들어 가긴 했을 겁니다."

"맹약파기자들은?"


"그림자의 망령이 떠돈다는 소리는 못 들어 봤는데...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걱정거리는 아닐 겁니다. 사냥꾼까지 합치면 선택받은 자들만 서른 둘이예요. 알다시피 최근에 황무지에 전쟁도 없었고요."


레실리아의 대답에 에와라닐은 눈썹을 살짝 들썩이는 것으로 답했다. 어느덧 대열의 중간에 다다르자, 그는 자연스럽게 대열에 합류했다. 레실리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천천히 말을 몰며 뒤를 보았다. 사냥꾼 열다섯.


맡은 임무는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다.

깊은 숲 까지 가서, 사라진 순찰대의 흔적과 용의 흔적을 찾는 것.


하지만 사냥꾼과의 동행은 약간 꺼림칙했다.

순찰대는 인간과 트루드를 수호하기 위해 싸우고, 용병기사들은 돈을 위해, 사냥꾼들은 괴물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싸운다.

그렇기에 사냥꾼들은 그들이 맹세한 대로, 괴물에 대해 복수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테니까.



첫 번째 성채까지로 가는 길은 수월했다. 도시 밖에서의 첫날밤도. 하기야, 도시에서부터 이 정도 거리에 괴물이 날뛴다면 그것이야말로 더 큰 문제였을 테니까.

겨울로 접어들며 갈색으로 변해 버린 평야 위에서 그들은 도시에서 깊은 숲으로 향하는 첫 번째 성채를 바라볼 수 있었다.


"첫 번째 성채의 주인은 아직도 그대로인가요?"


인간에게는 좀 많이 커 보이는 아리아만산 품종의 말 위에서 니아젤이 말했다. 에와라닐이 힐끔, 니아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 아직도의 기준이 언제 인지는 모르겠다만, 지금 첫 번째 성채의 주인은 할도르 드라이켄이다. 전직 용병기사지. 6년째야."

"음... 이런."

"별로 안 친한가보지?"

"사냥꾼과 기사가 친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죠."


에와라닐은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의 주인인 드라이켄은 그와도 그리 친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드라이켄과 친한 사람은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괴팍한 그 성격이 어디로 가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도시로부터 위임받아 성채을 관리하다 보니 제아무리 요새의 주인이여도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다행스럽게도 개인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역참에서 푸대접을 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환대에 가까운 대접이였다. 성채 수비대의 안내받아 짐을 정리하는 순찰대들을 뒤로한 채, 에와라닐은 팔짱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는 드라이켄에게 다가갔다.

이제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큰 키와 곧은 자세는 그가 황무지에서 30년을 넘게 전장에서 구른 노병임을 잊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오랜만입니다. 드라이켄. 에와라닐입니다. 이쪽은 사냥꾼, 니아젤."

"반년만이군. 에와라닐. 그리고 거기 새끼사냥꾼은 6년 만이고."

살벌한 목소리와 눈빛으로 니아젤을 쳐다 보면서, 드라이켄은 말했다.

"그러게요. 벌써 6년이나 됬나요?"

"그래. 네년이 내 뒤통수깐지 6년이지. 왜, 내가 여즉 살아 있어서 불만이냐? 어미따라 가고 싶은 게냐?"

"아뇨. 뭐, 불만까진 아닌데. 조금 아쉽긴 하네요."


드라이켄이 으르렁거리며 한 발자국 니아젤을 향해 내디뎠다. 순식간에 험악해진 분위기 속에서 에와라닐은 재빠르게 둘 사이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그만. 드라이켄. 트루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아니. 사냥꾼이야. 선택된 자다. 열의 인간보다, 다섯의 트루드보다 강하지. 1급 괴물을 사냥하는 사냥꾼에게 인간이니 뭐니 운운하지 마라."


드라이켄은 에와라닐의 어깨를 붙들고 밀며 말했다. 에와라닐이 그 자리에서 잠시 밀려나지 않고 버팅기는 사이 니아젤이 말했다.


"하잘것 없는 원한은 나중에 푸시죠. 저는 지금, 이 요새에 도시, 하를론드의 요청에 따라 왔습니다. 당신이 아직 도시와의 맹약에 묶여 있다면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죠."

"그래... 빌어먹을년. 네놈의 족속들에게 두고두고 텅 빈자들의 저주가 내리기를 비마. 요새가 해 줄 수 있는지원은 모두 해 줄 테니, 내 눈앞에 다시는 띄지 마라!"


에와라닐의 어깨에서 손을 떼며 드라이켄은 말했다. 낮은 목소리로 그르렁대던 그가 몸을 홱 돌려 사라지자, 에와라닐은 한숨을 가볍게 내쉬었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성채의 부관 네르도가 말했다.


"순찰대 에와라닐, 사냥꾼 니아젤. 요새 꼭대기로 와주시지요. 이번 사냥에 대해서는 도시로부터 들었습니다. 요새가 알고 있는 걸 알려드리겠습니다."

"고맙네. 네르도."


에와라닐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 네르도 역시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대신하고는 요새 중앙 첨탑의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에와라닐은 네르도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몸을 돌려 니아젤을 쏘아 보며 말했다.


"시비 걸고 다니는 게 취미인가? 트루드이자 요새의 주인인데. 인간이라면 존중을 보여야지."


니아젤은 코웃음 쳤다.


"용병한테 무슨. 출세해서 요새의 주인이 되었다 한들 그 근본이 변할까? 고맙지만 신경 안쓰셔도 됩니다. 저도 저 얼굴을 다시 보고 싶진 않군요."


그러고 그녀는 네르도의 뒤를 따라 첨탑을 올라갔다. 쉽지 않군. 에와라닐은 눈을 살짝 감으며 숨을 깊게 들이킨 후 내쉬었다. 


계단에 오르자, 돌로 된 벽의 사각 창 너머로 짐을 정리하느라 준비하느라 분주한 사냥꾼들과 순찰대가 가득한 성채가 한눈에 보였다. 어느덧 꼭대기에 다다라 문을 열자, 거기에는 레실리아, 니아젤, 그리고 니아젤의 부관인 페리투스가 보였다.


"늦었군요."


레실리아가 말했다. 에와라닐은 눈썹을 살짝 들썩인 다음에, 빈자리를 찾으며 말했다.


"좋아. 네르도. 어떤 용무가 있길래 우리 모두를 이 자리에 부른 거지?"


에와라닐이 자리에 앉자 요새의 부관이자 트루드인 네르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원탁 위에 놓인 두루마리를 펼쳤다. 황무지 전역을 가로지르는 지도였다. 하지만 그냥 지도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대상들의 교역로군." 


지도 위에는 황무지 위의 요새 들이 표시되어 있었고, 남부 여러 도시에서 황무지를 거치는 수많은 대상들의 길이 표시되어 있었다. 네르도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보시는 건 도시와 대상들의 오랜 협약에 따라 지켜지는 대상들의 길인 비단길입니다. 오직 이 길 위에서만 도시의 순찰대와 사냥꾼들, 경비대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죠. 허가되지 않은 자들에게 비밀인 이 길을 걷지 않는 수많은 밀수꾼들이 매년 북부와 남부 사이의 중개 무역을 통한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죽어갑니다."

"그런 건 알고 있어. 네르도."


레실리아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궁금한 건, 대장이 말한 것처럼 어째서 우릴 이곳에 불렀는지야. 비단길이 뭔지 구절구절 설명하는 게 아니라."

"걱정하지마. 알기 싫어도 금방 알게 될 테니. 그러니, 잠자코 내 말 들어."


레실리아는 콧김을 강하게 내뿜었다. 네르도는 그런 레실리아에게서 눈을 돌리고 다시 지도를 향하며 말했다.


"카드린의 순찰대의 목적은 다들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사라진 대상들의 추적이었죠."


니아젤이 말했다. 네르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주욱 뻗어 지도 위에 선명하게 라그론드라고 쓰인 곳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인카라스의 수도 라그론드에서 대상 다섯이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비단길을 걸어 첫 번째 요새를 통과한 게 세 달 전."

"하를론드에 들어온 건 셋이였네."


에와라닐이 말했다. 네르도는 다시 손을 뻗어 이번에는 깊은 숲을 도는 비단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둘이 없어졌습니다. 그자들이 걸은 길은 바로 이쪽 깊은 숲 어간을 도는 길입니다. 위험하고, 경비대의 시야에서 종종 벗어나는 길이지만 황량한 갈색 평야를 걷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걷는 길이죠."


에와라닐은 네르도의 손이 훑고지나간 가느다란 선을 바라보았다. 인카라스의 수도, 라그론드에서 올라와 깊은 숲 우측을 가파르게 타고 깊은 숲임을 나타내는 표지석에서 하를론드로 꺾어지는 길이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들이 어디 있나? 깊은 숲의 어두운 그늘속에 도사리는 것이 뭔지 다들 알 텐데."

"사실, 이 길을 걷는 자들은 깊은 숲 어간이 도시의 눈 밖에 있다는 사실을 꽤 선호하는 편인 자들입니다."


네르도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허. 밀수꾼들과 용병기사들과 엮여 있는 자들이군."


에와라닐이 혀를 찼다. 길은 험하고 도시로부터 도움은커녕 걸리면 물품마저 압수당할 수 있는 게 밀수꾼들이지만, 8개 자유도시를 지나며 내는 끔찍한 양의 통행세와 관세의 압박에서 자유로운 탓에 성공만 한다면 떼돈을 벌 수 있는 작자들.


"모든 대상들이 밀수꾼들하고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닙니다. 대상들처럼 대규모로 상단을 굴리기 어려운 처지에서 대상들이 이끄는 막대한 수레들의 수송량은 꽤 매혹적일 테고, 대상 처지에서도 밀수꾼들이 그 대가로 내놓을 황금과 호위는 충분히 매력적일 테니까요."


에와라닐과 네르도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니아젤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말했다.


"요새에서 이걸 아는데 도시에서 밀수꾼들의 경로를 방치하고 있었다고요?"

"그래서 위험한 깊은 숲 어간을 이용하는 거죠. 저 길이 비단길이라고는 해도 도시와 요새의 감시가 닿기는 힘든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심증만 있다 라고 말하는 거죠. 허나, 중요한 게 지금 그게 아닐 텐데요? 사냥꾼 니아젤?"


네르도는 니아젤의 말에 약간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잠깐 사이에, 에와라닐은 네르도의 눈빛 속에서 인간에 대한 경멸을 볼 수 있었다. 금세 사라졌지만.

니아젤이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침묵하자 네르도가 가볍게 한숨을 들이키며 말을 이어 나갔다.


"실종된 순찰대가 여기, 깊은 숲을 빙 돌아가는 길을 향해 떠났습니다."

"그리고 전멸했다는 거군. 하지만 알고 있네. 우리는 이제 첫 번째 요새를 떠나면, 티모르강 상류를 건널걸세. 요위들이 없는, 얕은 곳을 몇 군데 알고 있지. 음... 한 보름 조금 넘게 걸릴걸세."


네르도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번에 지도에 그어져 있는 또 다른 선을 가리켰다.


"글쎄요. 문제는, 삼 주 전에 나이르의 수도에서 또 다른 대상들이 출발했다는 겁니다."

"상황이 이런데, 대상들이 출발했나? 왜지?"

"대상들의 실종을 인지하고 도시에서 카드린의 순찰대를 보낸 게 한 달 전. 그리고 도시에서 나이르까지 전서구가 가는 데 2주. 그 사이에 대상들이 떠나버렸죠."

"그렇다 하더라도 그게 뭐가 문제지? 나이르의 수도에서 오는 길하고 인카라스의 수도에서 오는 길은 다르잖아."


레실리아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르도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말을 이었다.


"나이르의 수도에서의 비단길과 인카라스의 수도에서의 비단길은 거의 안겹치긴 하지만 딱 한 곳이 겹칩니다."


네르도의 말에 에와라닐은 유심히 지도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표지석? 깊은 숲의 표지석인가? 깊은 숲과 갈색 평야의 경계를 나타내는?"


"맞습니다. 카드린의 순찰대는 대상들을 추적하러 깊은 숲까지 들어갔습니다. 생존자들의 말로는 대상들의 흔적이 깊은 숲으로 이어졌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요."


네르도는 그렇게 말하고 지도의 한 지점을 짚었다. 에와라닐은 네르도가 짚은 지점을 유심히 보았다. 그저 깊은 숲을 둘러싼 지점 중 하나일 뿐이었다. 몇 가지만 제외하면.


"표지석과 매우 가깝군. 세 시간도 안 걸리겠어. 거기에 주변에 공터까지 있고. 그렇다면 순찰대가 여기에 거점을 만들고 깊은 숲으로 들어갔겠군. 표지석이 아니라. 대상들이 삼 주 전에 출발했다고 했나?"


에와라닐이 말했다. 네르도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나이르의 수도, 리데사에서 표지석까지는 약 한 달. 하지만 이곳에서 표지석 까지는 열 닷새. 만만치 않은 거리였다.


"어떤 말인지 알겠네. 가서 시체라도 수습하려면 서둘러야겠군. 다른 길이 있나?"


에와라닐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에와라닐의 탄식에 잠시 눈을 끔뻑이던 레실리아가 말했다. 


"그래서, 지금 깊은 숲의 표지석으로 가야 하는 건가요?"


레실리아의 물음에 에와라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네. 리데사에서 출발한 대상들이 깊은 숲의 표지석에 도달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자들을 마중나가야 할 판국이 되었으니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보게 될 건 시체뿐이겠지. 용이 나타났건 아니면 쥐새끼들이 나타났건 간에, 순찰대가 깊은 숲 안에서 괴물들에게 학살당한 건 똑같으니 말이야."

"표지석은 깊은 숲 바깥에 있잖아요. 대상들이 깊은 숲으로 들어가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왜냐하면 깊은 숲에서 흐른 순찰대의 피가 괴물들을 불러냈을 테니까요. 순찰대가 깊은 숲으로 들어가기 전에, 말과 물자들을 보관하는 거점도 분명히 괴물들한테 무너졌을거고. 그러면 그 인근에 고기맛을 본 괴물들이 득실득실하겠죠?"


니아젤이 불쑥 끼어들어 대신 대답했다. 네르도가 인상을 찌푸렸다. 애써 얼굴에서 불쾌함을 지우며, 네르도는 말했다.


"하지만 지금 당신들이 선택한 경로로는 대상들이 표지석까지 도착할 일주일을 채울 수 없습니다. 아무리 빨리 간다고 하더라도요. 그리고 제가 아는 한, 다른 길은 단 하나뿐입니다. 다섯 번째 요새에 있는 인간의 다리."


잠시 침묵이 좌중을 감쌌다. 니아젤이 잠시 이마에 손가락은 얹더니 말했다.


"좋아요. 도시에 고용된 입장이고 순찰대가 어디로 가던 간에 간섭할 수는 없지만, 사냥꾼으로서 조언정도 해 줄 수 있다면, 대상들은 그냥 알아서 살아남게 둬요. 인간의 다리를 건너는 건 미친짓이니까."


에와라닐은 눈을 감았다. 6년 전의 그 일 이후로 페이우스 강의 상류 말고 다른 곳을 건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말 그대로 미친짓이니까. 하지만 그는 순찰대였다. 괴물로부터 사람을 지키기로 맹세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네르도가 물었다. 에와라닐은 눈을 뜨고 고개를 살짝 돌려 레실리아를 쳐다보았다. 에와라닐과 눈을 마주치자, 레실리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르도의 이야기를 들은 순간,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에와라닐은 숨을 한번 들이키고는 말했다.


"인간의 다리로 가지. 우리는 맹약을 지킨다. 괴물로부터 사람을 지켜내는 게 순찰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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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입니다.


프롤로그: https://arca.live/b/writingnovel/37753927?p=1

1화 : https://arca.live/b/writingnovel/37884473?p=1

2화 : https://arca.live/b/writingnovel/37971843?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