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우스 나루터는 아무리생각해도 미친짓이에요."

레실리아가 말했다. 에와라닐은 앞에 놓인 술잔을 비우고는 레실리아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에와라닐에 침묵에 레실리아는 마치 항변하듯이 답했다.

"6년 전 이후로 티모르강 하류는 완전 정신 나간 곳됐다고요. 적어도 요위 천마리는 거기에 잠들어 있을걸요."
"티모르강을 가 본 적 없는 자들이 그렇게 착각하곤 하지. 하지만 거기에는 요위보다 더 위험한 게 잠들어 있네. 특히 인간의 다리에는."
"그게... 뭐죠?"

레실리아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부관의 반응에 에와라닐은 피식 웃었다. 레실리아가 발끈하기 전에 에와라닐은 손을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농담이네. 요위 1천마리가 우스울 정도의 괴물이 어디 있겠나?"

에와라닐은 그러더니 지나가던 종업원을 불러 술잔을 채우고는 말을 이었다.

"심심한데, 밤은 길고. 그러니 우리 내기나 하나 하지. 이기면, 내가 마시고, 술값도 다 내고. 지면, 이길 때까지 마시기."
"좋아요."

레실리아는 흔쾌하게 받아들이며 잔을 가볍게 들어 비웠다. 레실리아가 지나가던 종업원을 불러 술을 주문하고 나자, 에와라닐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냥꾼의 대장. 니아젤의 장비를 봤나?"
"완전 번쩍번쩍 하던데요."
"그래. 완전 번쩍번쩍 하지. 그중에서 가장 귀한 게 무엇인지 아나?"

레실리아는 잠시 곰곰이 생각했다. 그렇게 머리를 긁적이며 계속 생각하다가, 그녀는 말했다.

"창? 도올의 순백색 송곳니로 만든 창?"

에와라닐은 대답 대신에 때마침 술잔을 새로 갖고온 종업원에게서 잔을 받아들어 레실리아의 앞에 두었다. 짧은 욕설이 있고, 레실리아는 그녀의 앞에 놓인 술잔을 비웠다.

"검. 여제들의 대장장이가 가공해낸 보석이 박힌 검!"

에와라닐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자기 앞에 놓인 잔을 레실리아의 앞으로 밀었다. 레실리아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무시하고 종업원을 불러 말했다.

"여기, 잔을 더 채워주게."

성난 눈빛으로, 레실리아가 거칠게 잔을 들어 비우고는 종업원에게 빈 술잔을 넘겼다.

"어린애도 추측할 만한 그런 뻔한 문제를 내가 냈겠나?"
"사기꾼."
"그래. 하지만 내기는 이미 시작했으니. 남은 시간은 많고, 요새의 창고에 쌓여 있는 술도 많으니까. 천천히 해도 되네."

에와라닐은 말을 마치고는 슬쩍 몸을 뒤로 기대며 깍지를 끼고 머리 뒤에 손을 가져갔다. 그가 흥얼거리고 레실리아가 끙끙대는 사이, 종업원이 새로운 술잔을 가지고 와 그들의 앞에 두었다.

"이거 수수께끼죠? 눈? 보라색 눈?"
"자네, 눈이 장비인가? 눈을 빼었다 꼈다 할 수 있는 모양이군? 대단해."

레실리아가 다시 한번, 욕설과 함께 술잔을 비웠다. 에와라닐은 다시 레실리아의 술을 한잔 더 시키고 자기 잔을 비운 뒤 말했다.

"강철조차 녹이는 불을 두르고, 한꺼풀 얇디얇은 피막은 우리의 가장 강한 창을 막아 내네. 보라! 위대한 궁수들의 거대한 요새 들은 불에 타 폐허로, 위대한 기사들과 사냥꾼들의 도시는 그 뱃속으로. 무엇으로 사냥 할 수 있느냐? 무엇으로 죽일 수 있으랴? 단 하나. 거꾸로 된 갑옷으로 보호받는 심장에 꽂은 그림자의 단검만이 괴물을 쓰러트리리."
"사냥꾼들이 읊고 다닌다던 노래 아닌가요? 모든 괴물에 대한 노래가 다 있다던데."

에와라닐은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는 잔을 톡톡 치다가 말했다.

"사냥꾼들의 노래는 대부분 그 괴물을 사냥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지. 용에 대한 노래도 마찬가지. 알려줄건 다 알려줬네. 너무 쉬운 것 아닌가 모르겠군."
"용에 관련된 거? 용에 관련된 것?... 심장에 꽂은 단검?.. 뭐 용의 심장이라도 먹었나?"
"역린."

레실리아가 머리를 부여잡은 사이, 뜻밖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사냥꾼 니아젤."
"거꾸로 된 갑옷은 용을 보호하는 갑옷인 비늘 중에서 거꾸로 난 비늘을 말하죠. 용에게서 난 단 하나뿐인 비늘.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


레실리아는 갑자기 끼어든 인간에게 으르렁 거림으로 답했다. 하지만 에와라닐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의자 하나를 질질 끌고 와 앉으며 니아젤은 말했다.

"역린 얘기가 나오는 걸 보니 뭔가 재밌는 대화라도 하고 계셨나 보군요."
"내기 중이었지. 그리고 이제 자네 때문에 지게 생겼군."
"역린!"

의기양양해하는 레실리아를 보며 눈가를 매만지며 에와라닐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그래. 잘 맞췄네. 참 빨라. 훌륭해. 다른 사람이 끼어들었어도 내기는 내기니까."
"어떤 내기를 하고 계셨던 거죠?"
"당신이 가지고 있는 장비 중에 제일 귀한 것을 맞추는 거요."

레실리아의 말에 니아젤은 잠시 자기 가슴팍을 쳐다보았다.

"용의 역린은 귀하죠. 그나저나, 사냥꾼이 아니라면 역린에 대해 아는 사람이 드문데 이런 지식에 해박하신가보죠?"
"그런 셈 치게나. 여기, 두 잔 더 주게."


에와라닐은 적당히 말을 끊고 손을 살짝 들며 말했다.

"용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용의 약점 정도는 알아야지."
"역린이 그런데 뭐죠?"

살짝 홍조 띈 해맑은 얼굴로, 레실리아가 말했다. 에와라닐이 눈썹을 살짝 들며 설명하려는 사이, 니아젤이 먼저 말했다.

"용의 가슴팍에 있는 거꾸로 난 비늘이에요. 화살이고 창이고 뭐든 다 막아 내는 용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약점이죠.
역린을 찌르면, 용을 죽일 수 있어요. 물론,  용의 머리를 잘라도 용을 죽일 수 있죠. 그나저나, 혹시 합석해도 되나요?"

에와라닐은 잠자코 듣다가 니아젤의 마지막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합석을 했는데 어떻게 거부하겠나? 그렇지 않나? 부관?"
"오호라. 용을 만나게 되면, 가슴팍에 있는 거꾸로 난 비늘. 아주 비싼 것. 흐음..."

에와라닐의 물음에 레실리아는 살짝 허공을 쳐다보며 중얼거림으로 답했다. 에와라닐이 가볍게 한숨 쉬는 사이, 니아젤이 말했다.

"아마, 일평생 써먹을 일이 없을지식일 테니, 크게 기억 안 해도 돼요. 저도 역린을 직접 본 적은 없으니까."
"거기 있지 않나."

에와라닐이 니아젤의 가슴에 매달린 목걸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목걸이의 한가운데에는 인간의 손가락 세 개를 합친 크기의 커다란 파충류 비늘이 있었다. 니아젤은 잠시 목걸이를 만지작 하더니 말했다.

"뭐, 저도 받은 물건이니까요. 살아 있는 용에게 달린 역린은 본 적이 없어요. 아니, 살아있는 용 조차 본 적이 없는 걸요."
"듣기로는 역린에는 용의 마법이 걸려 있다고 하던데. 자기 약점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야. 그래서 가지고 있는 사람을 단 한 번의 위기에서 구해 준다고 하더군."
"어... 저는 잘 모르겠던데요. 이미 그 기회를 써버렸나?..."

니아젤이 머쓱하게 대답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각자 자기 앞에 놓인 잔을 다 비우자, 허공에 시선을 두던 레실리아가 갑자기 눈살을 찌푸리더니 니아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그러는데, 아까 성채의 주인하고 있었던 이야기 들었어요. 아무리 선택받은자에 사냥꾼이래도도 인간인데, 트루드한테 예의를 갖춰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자 니아젤이 레실리아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홍조. 그리고 제대로 맞지 않는 초점. 니아젤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취하신 거 같은데. 대답이 필요해서 물어보시는 건가요?"
"당연하죠!"
"지금은 요새의 주인이라고 뻐기지만 그 근본은 셀소드 나부랭이인데, 제가 어째서 그런 떨거지한테 예의를 갖춰야 하나요?"
"뭐라고!"
"그만. 레실리아. 좀 취한 거 같은데, 말을 아끼도록."

탁상을 가볍게 내리찍어 주의를 집중시키며 에와라닐이 말했다. 레실리아가 뭐라 더 말하려다가 그대로 입을 꾸욱 다물었다. 에와라닐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 잘못일세. 이해해주게. 하지만 자네의 잘못도 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하는군. 저 남쪽 아달라스에서 북쪽의 나말라스까지, 사르가바룬 대륙에서 그 어떤 인간도 트루드에게 무례하지 않아. 그걸 어기려는 건가?"
"그 어떤 인간도 트루드에게 무례하게 굴진 않지만, 그렇다고 모든 인간이 트루드에게 복종하는 건 아니죠.
전장에서 만난 인간이 트루드에게 죽어 주나요? 그리고 여기는 나말라스나 아나리엘같은 왕국이 아닙니다. 자유도시예요.
인간이 트루드보다 밑에 있는 곳이 아니라, 인간과 트루드가 동등한 위치에 서 있는 곳입니다. 그저 관습적으로 인간이 트루드에게 약간의 예를 더 표해왔을 뿐이죠."
"그렇다 한들, 그런 태도는 황무지 뿐 아니라 사르가바룬 어디에서라도 용납되지 못할 걸 세. 혹시 둘 사이에 어떤 일이라도 있나?"
"이곳에 주인이랍시고 거들먹거리는 셀소드가 이 자리에 앉게 된 일이 있었죠. 6년 전, 바로 이곳에서."
"요위랑 밤피르... 그때인가?"
"네. 요위들이 판을 치면서 잠잠했던 밤피르 역병이 북쪽 폐허에서부터 내려와 갈색평원 전체를 집어삼켰었죠."
"알아. 기억하네. 어제 일같이 생생하게. 많은 좋은 사람들이 죽었지."
"갈색평원의 8개 요새중에 5개가 밤피르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평원의 강줄기에서는 요위와 싸우고, 요위와 싸우는 자들을 지원해 줘야할 성채에서 우리는 밤피르와 스트리고이같은 괴물들하고 싸웠죠. 그리고 밤피르에게 넘어간 갈색 평원의 첫 번째 요새를 되찾을 때, 그때에 저 셀소드와 함께 있었어요."
"어떻게 됐지?"

니아젤은 에와라닐을 쳐다보는 대신 술잔을 잠시 바라보며 말했다.

"첫 번째 요새에 있던 밤피르는... 밤피르나 스트리고이 같은 괴물은 오래 묵으면 묵을수록 강력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나요?
우리가 만난 놈은... 500년은 족히 묵은 놈이었어요. 마치 신화에서나 나오는 말처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히는...
거기서 희생자가 없을 리 없죠. 제가 이끌던 사냥꾼들도 열이 넘게 죽었고 셀소드가 이끄는 용병들도 수십이 죽었어요. 그래도 결국 사냥에는 성공했죠.
저 셀소드는 그때 자기 부하들이 죽은 걸 우리가 방관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자기 부하들 수십이 죽어 가면서 약화시킨 밤피르를 사냥꾼들이 날름 해치웠다고."

"실제로 그랬나?"

"그랬으면 저 늙은이가 밤피르 토벌의 공으로 이 성채의 주인을 하고 있을 일도 없을 텐데요. 방금 말씀 드렸죠. 제가 이끌던 사냥꾼들도 열이 넘게 죽었어요."
"오해할 만한 일이 있긴 했군. 그래."
"오해는 무슨. 저 늙은 용병은 그저 자기 부하들의 목숨값으로 자신이 편한 자리에 앉은 걸 인정하지 못하는 거예요. 자기 부하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고 싶은 것 뿐이죠. 뭐, 맘대로 생각하라 해요. 
기사란 그런 족속들이니까. 자기 자기 신념을 위해 사는 자들이니까, 자기 신념을 꺾는 사실은 회피하는."

니아젤은 말을 마치고 앞에 있는 술잔을 들어 그대로 들이켰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술을 몇 잔 더 주문하며 말했다.

"뭐, 안 그래도, 저 늙은이 때문에 기분도 안 좋은데, 내기나 하나 하죠. 먼저 뻗는 사람이 지는 걸로."

에와라닐은 크게 웃었다. 그는 앞에 놓인 술잔을 잡아채 남김없이 입에 털어놓고 말했다.

"아무리 인간을 상대로 한다 한들, 트루드가 이런 대결을 사양할 리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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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위 : 강을 메운 도롱뇽. 여섯 다리의 도마뱀.

다리 여섯달린 거대한 도롱뇽의 형상.


밤피르 : 피의 역병. 피의 저주를 받은 자. 밤의 귀족, 흡혈귀.


스트리고이 : 구울의 왕. 시체파먹는 자들의 지배자. 구울 킹. 거대한 박쥐와도 같은 날개가 달린 구울의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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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입니다


3화 : https://arca.live/b/writingnovel/38079148?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