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낡은 햇빛이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와 한 노인의 방 안에 멈춰 섰다.

노인의 방 안에 있던 한 청년이 커튼을 걷자, 미처 들어오지 못한 햇빛이 기지개를 켜며 방 안을 환히 비추었다.

 “어르신,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으세요?”

 “일없다.”

쩍쩍 갈라지는 노인의 목소리는 그의 건강상태를 유추하기에 적당했다. 청년은 탁자 위의 먼지를 손으로 대충 쓸고는, 노인의 잠자리와 침구류를 정리했다. 노인은 그런 청년의 모습이 익숙한 듯,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는 한참 오래된 것 같은 옷장 속을 뒤적거렸다.

 “왜요 어르신, 외출 하시려구요?”

청년은 잔뜩 숙였던 허리를 피고 몇 번의 스트레칭을 하며 노인을 향해 물었다. 노인은 늙고 여러 군데 병들었지만, 분명 귀가 어둡지는 않았다. 나이에 비해 상당히 건강한 시력과 청각이 노인의 유일한 자랑거리였으니까. 

하지만 노인은 청년의 물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옷장을 뒤적거렸다. 마침내 돌아선 노인의 손에는 그의 분위기와 맞는 오래된 밤색 코트가 들려 있었다. 노인은 들고 있던 코트를 탁자 의자에 대충 걸고, 퀘퀘한 방 안의 공기를 환기하려 창문을 여는 청년에게 말했다.

 “니 옷 입으라. 저 갈 데가 있다.”

 

노인은 시골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시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곳에 위치한 동네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 동네에서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우선 노인의 말투에서 묻어나는 이북 지역의 사투리와, 또 주변 사람을 봐도 아는 체 마는 체하는 태도가 그 이유였다. 때문에 노인은, 동네 아이들에게는 북쪽 할배라 불리는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동네 어른들에게는 성깔 더러운 영감으로 통했다. 결혼조차 하지 않은 노인에게는 그의 상주 사회 복지사가 유일한 동무였다. 

 “거두매질은 다 했니?” 

 “예 어르신. 어제 저녁에 설거지 다 해놓고 들어갔습니다.”

청년의 대답에 노인은 심드렁하게 자동차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노인의 집을 떠난 청년의 자동차는 어느새 외진 숲 길을 달리고 있었다. 잔뜩 우거진 수풀, 나뭇잎들의 마음을 받아 초록색으로 내리쬐는 태양, 창문에 달라붙는 뿌연 흙먼지, 그 모든 것이 노인의 고향을 그리고 있었다. 노인은 그것들을 바라보면서 이따금씩 깊은 한숨을 내쉬곤 하였다.

이윽고 청년의 자동차가 멈춰 섰다. 노인과 청년의 앞에 들어온 것은 자동차로는 들어갈 수 없는 좁은 산길이었다.

 “어르신, 어떻게 할까요? 차로는 더 이상 못 갈 것 같은데요?”

차에서 내린 청년이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은 청년을 따라 차에서 내리고는 잔뜩 낀 흙먼지를 주름진 손으로 휘저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걷자.”

 

노인은 종종 생각에 잠기는 경우가 있었다. 황혼, 여명. 그 추상적이고 어딘가 아련한 시간 속에서, 노인은 꼭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눈빛으로 과거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이는 그의 복지사, 지훈도 분명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노인은 누구에게나 심지어 거의 10년을 함께한 지훈에게까지 철저히 자신을 숨겼기 때문에, 지훈은 노인이 누구를 그리워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지훈은 노인이 차에서 내린 순간, 이 외출의 목적을 헤아릴 수 있었다. 노인의 눈은, 그 어느때보다 진실되게 감정을 표현했다. 그의 눈에는 알지못할 눈물방울이 맺혔다.

이른 봄, 벚꽃이 채 여물지 못할 무렵이었다.

 

 “니 빨갱이가?”

가슴을 후벼 파는 말들은 언제나 똑같았다. 빨갱이, 북조선놈, 혹은 북괴. 시퍼런 강애(가위)같이 날카로운 그 말들은, 한시도 무뎌지지 않고 내 품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너 때문에 우리 엄마 아빠 돌아가셨어!!!”

나의 고향. 산꽃들이 선명한 바닷바람에 취해 몸져 눕는 곳. 그곳에서 그 모든 비극은 항상 나의 탓이었다. 북한이 전쟁을 벌인 까닭이었다. 이북 평안도 선천군의 외딴 마을에서 전쟁이 벌어진 것도 모른 채 평화로이 살아가던 나도, 그들의 눈에는 찢어 죽여 마땅할 괴뢰군이었다.

 “야, 야 고마해라∙∙∙ 그기 우째 얘 잘못이고? 그리고 점마∙∙∙ 점마 부모님도 돌아가셨다 아이가∙∙∙.”

나는 말을 아꼈다. 오랜 갈증으로 입이 쩍쩍 갈라진 탓도 있었지만, 혹시나 입을 열어 괜한 변명이라도 하는 날에는, 또래에게 둘러 쌓여 동네 가이(개)처럼 두들겨 맞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전쟁을 피해 한반도 곳곳으로 피란을 간 동향 사람들, 그리고 애석하게도 북한 군인에게 죽임을 당한 어머니, 아버지가 떠난 고향에는 더 이상 내 자리란 없었다. 크진 않았지만 세 가족 살기에는 넉넉했던 우리 집은, 포탄을 맞고 무너져 먼지만 풀풀 풍기는 흉가가 되었고, 낡은 벼케(부엌)냄새가 나던 시장통은, 이제 피란민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나의 고향에 더 이상 고향의 모습이란 없었다. 나는 실향민이었다.

 

 “내래∙∙∙ 밥 좀 주시라요.”

 “어? 어 기래 묵고 또 무라. 동네 얼라들 해쌌는 말은 신경 쓰지 말고.”

나는 저녁 때가 되면 배식 받은 음식을 챙기고서는 꼭 마을 뒷산 언덕으로 향했다. 뒷산에는 사람들이 올라가기 편하게 만들어 놓은 돌길이 있었는데, 그 입구에서 옆으로 빠진 가파른 경삿길을 내려가다 보면 유일하게 남은 마지막 나의 고향이 있었다.

 “기래도 여기는 한결뿐이 곱구나∙∙∙.”

동백꽃이 수평선 너머 넘실대는 곳. 반딧불이 별빛을 대신하고, 어두운 밤하늘과 새카만 바다가 가늠이 되지 않는 곳. 붉은 동백꽃이 어지러울 정도로 만연히 피어났던 그 곳은, 어릴 적 아버지 손에 이끌려 매번 졸린 눈을 비비고 찾아왔던 곳이었다. 아직도 낡은 추억들이 선명하게 아른거리는 장소는 그곳이 유일했다. 

달빛이 파도에 부서져 꽃밭에 흘러 들어오는 날에는, 마치 동백꽃들이 별빛을 반사하는 드넓은 바다처럼 붉은 제 몸과는 어울리지 않는 새푸른 빛을 띄워 나를 감싸 안았다. 그곳에서 나는 동백꽃 한 송이 꺾어 여기저기 꽃잎들을 흩뿌려 놓고, 줄기줄기 엮어 어머니, 아버지 얼굴을 그려 품에 꼭 끌어안고서 잠들었다. 나에게 그 꽃밭은 마지막 남은 고향이자 어머니고, 아버지고, 형제였다. 나의 슬픈 처지에 동백꽃들은 눈물을 떨구었고, 벼랑 끝 흔들거리는 소나무는 고개를 휘저었다.

해가 저물고, 달이 차오르고, 다시 달이 저물고, 해가 차오르는 날이 손가락으로는 더 이상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반복되었다. 동백이 알맞게 익어가는 계절. 뺨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과, 하늘을 부유하는 거대한 구름은 전쟁통의 풍경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로웠다. 나는 그 속을 헤집었다. 점심으로 배식 받은 주먹밥 한 덩이를 품에 들고서 잔뜩 우거진 수풀 사이를 가르며 꽃밭으로 향했다.

 

 휘이이-

 

바람이 불고, 동백이 흩날렸다. 동백 말고도 그 꽃밭에 만드러지게 피어 있었던 이름 모를 꽃들, 그 날 그 바람에 그곳에 수놓아 있었던 수많은 꽃들의 향기가 어지럽게 아른거렸다.

바람이 싣는 꽃향기가 가시고, 곧 미적지근한 바닷바람이 피부를 간지럽힐 즈음, 쬐여오는 햇빛 사이로 꽃밭 한 가운데에 서있는 이름 모를 꽃 하나가 보였다.

 “어? 나 말고 이 곳을 아는 애가 있었네?”

그 꽃 하나가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첫만남의 순간은 그 아름다움에 매몰된 향수였다. 바다냄새 사이로 미약하게 풍겨오는 꽃들의 향기. 그 중에서도 단연 코를 찌르는 향기가 있었다.

서서히 다가오는 그 모습에, 나는 그것이 꽃이 아닌 소녀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소녀를 꽃으로 착각한 데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소녀는, 정말 꽃처럼 고왔다. 


소녀가 점점 더 나에게 다가왔을 때, 나는 이번에 소녀를 처음 본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피란민들이 모인 시장통 같은 움막집들의 외딴 곳에서, 민들레 하나를 꺾어 귀퉁이에 꽃고는, 계집들과 웃으며 노닐던 모습이 기억이 났다.

 “보니까 우리 또래인 것 같은데? 넌 어디서 왔어?”

소녀는 손에 동백을 한 아름 끌어안은 채, 나에게 물었다.

나는 망설였다. 내 출신은 곧 명분이었다. 전쟁을 피해 머나먼 이북 땅까지 도망 온 피란민들이, 적당히 화풀이를 할 수 있을 만한 정당한 명분이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을 참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입은 이미 사실을 고하고 있었다. 바닷바람은 어제보다 시원했고, 햇빛은 엊그제보다 화사했다.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던 풍경에 동백꽃들이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것들 앞에서 도저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었다.

 “∙∙∙내래 이북 놈이다. 이 곳이 내 고향이지비.”

나는 소녀의 눈을 피했다. 무서웠다. 돌팔매질을 당할 수도, 욕 한지꺼리를 얻어먹을 수도, 세상에 존재하면 안되는 사람처럼 무시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일들이, 내 출신 탓에 내가 고향에서 겪었던 수모들이었다.

 “오! 나는 서울에서 왔는데! 나 이곳에서 북한사람 처음 본다?”

그러나 그 소녀의 행동은 뜻 밖이었다. 동향사람을 만난 것처럼, 나를 반가워하며 눈인사를 건넸다.

 “여기가 고향이면 이 꽃밭도 진즉부터 알고 있었겠네? 부럽다야~ 서울에는 이런 곳 없는데… 뭐 그래도 역시 다시 서울로 돌아가고 싶긴 하다!”


소녀는 뒷짐을 지고 동백들 사이로 흩어졌다. 소녀의 품에 끌어안긴 동백들은, 모두 아이와 같은 웃음을 지으며 해에게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 아름다운 상황 속에서도, ‘저 아이는 내가 밉지 않은건가?’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니는 내가 안 밉니?”

 “응? 내가 널 왜 미워해?”

 “동네 아새끼들은 나만 보면 때리고, 자라이들은 챙게주는 척 하메 뒤에서 흉보지 않니. 거저 이거이 북쪽이 전쟁을 일으켔다고 그러지 않간?”

말을 뱉는 와중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가 겪은 수모를, 나 스스로 입 밖에 내본 적은 처음이었다. 또 전쟁이 일어나고, 피란민들이 마을에 상주하고 난 이후 이렇게 말을 길게 해 본적도 처음이었다. 말하는 와중에도 내 처지가 안쓰럽다고 느끼며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너 몇살이야?”

소녀는 내 말에 안고있던 동백을 바닥에 살포시 내려놓고선, 옷에 붙은 풀떼기들을 손으로 툭툭 털어내었다.

 “응? 너 몇살이냐고.”

소녀는 뒷짐을 지고, 웃으며 다시 나에게로 다가왔다.

 “내래∙∙∙ 열 다섯정도 먹었디”

 “나랑 동갑이네! 근데, 전쟁을 너가 일으켰어?”

 “아니디. 내 군인들이 마을 들쑤시기 전까지는 전쟁 난 줄도 몰랐다.”

 “근데 그게 왜 니 잘못이야?”


소녀의 물음은 날카로운 가시처럼 가슴에 박혔다. 그것이 너무도 아파,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잘못이 되어야 했다. 그것이, 고향에서 처음 맞닥뜨린 또래가 나한테 한 말이었다.

 -‘그기 니 잘못이 아이가? 니 잘못이 아이가? 니가 문디 잘못이 없다고 하노!! 빨갱인기 잘못이다!!’

나는 그날, 내 멱살을 잡은 아새끼한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기∙∙∙ 그기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비로소 나의 결백을 이야기했다. 두근거리던 가슴은 차차 잦아들고, 달아오르던 얼굴은 시원한 바닷바람을 받아 차분히 가라앉았다. 햇빛을 받아 노래를 부르던 동백꽃들은, 그 너머에 우뚝 서있는 나를 보고는 눈물을 삼켰다. “그래, 다 니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꽃밭에서 눈물을 토해냈던 시간들. 그 시간을 넘어 그곳에서 동백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