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수행평가가 짧은 소설 쓰기라서

쓰긴 썼는데 뭔가 맘에 안듬

학교에 내야 되는 거라 자유롭게 쓸 수가 없어서 뭔가 어색함

사실 여기 사람들 너무 잘써서 올릴까 말까 했는데

그래도 피드백 받는게 좋을 거 같아서 올림


+)제목 지금 막 지은거라 좋은 거 있으면 추천좀




제목:<이별의 멜로디>

 

 본인의 꿈. 우리나라 교육에서 가장 강조하지만 동시에 가장 이루어지지 않는 것. 반복적이고 고정된 교육에서 꿈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이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나도 그중 하나다. 

 어릴 때 처음 연주해 본 바이올린이 좋아서 단순하게 정한 진로를 통해 고등학교까지 진학하고, 예고에 오게 되면 바이올린 연주에 관한 나의 꿈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예고에서 하는 활동을 통해 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진짜 이유와 나의 새로운 목표를 찾아 나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예고의 생활은 철저하게 대학 입시에 맞춰진 생활이었고, 꿈을 찾기보다는 성적을 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목표인 학교였다. 

 그렇게 입시만을 바라보면 학교생활을 한 1학년이 지나가고, 어느덧 1학년의 마지막 날,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내가 뭘 하려고 이렇게까지 열심히 입시 준비를 하고 있지?’

나는 내가 학교를 열심히 다니는 이유, 나아가 음악을 하는 이유까지도 깊게 고민해보게 되었다. 처음에 시작한 것은 단지 재미있어 보여 시작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재미있어서 바이올린을 계속한다고 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친구들과도 겉으로는 계속 잘 지내지만 내 마음속에 의문이 품어지기 시작하니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예전만큼 즐겁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속에 혼란을 품은 1학년 종업식이 끝나고, 쏜살같던 방학이 지나 어느새 사전교육 기간이 돌아왔다. 새로운 학년들이 들어오고,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었지만, 내 심정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그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학기 중에 시간이 부족해 못다 한 상담을 점심시간에 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나의 성적과 진로에 관해 이야기하셨지만, 정작 나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고 내가 음악을 하는 이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짧지만 긴 상담을 끝내고 나니, 점심시간이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급식실에 뒤늦게나 가보았지만 이미 배식은 전부 끝난 뒤였고, 급식실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어쩔 수 없이 매점에 가서 뭐라도 사려고 하였으나, 지갑을 기숙사에 두고 와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배고픈 상태로 벤치에 앉았다. 그러나 그 조그맣고 낡은 벤치가, 내 음악을, 나아가 나의 삶을 바꿔 주었다.

 벤치에 앉아 있을 그때, 한 아이가 나에게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선배님?”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얼떨떨하게 앉아 있는 나에게, 그녀는 빵 한 조각을 내밀며 말했다.

“아까 보니까 아무것도 못 드신 것 같은데 이거라도 드세요, 선배님.”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일단 빵을 받고 말한다.

“어……. 고마워.”

“에이, 뭘요. 수업시간에 배고프면 집중도 안 되잖아요. 저도 그런 적 있어서 드리는 거예요, 선배”

“아, 그리고 제 이름은 가연이에요. 한가연. 꼭 기억해 주세요! 그럼 나중에 봬요!”

그녀는 나에게 빵을 주고 인사를 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내 마음에 이상하지만 새로운 감정이 들고,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된 나는 한동안 그 자리만을 바라보았다.

 

 새로운 일이 일어난 한 주를 뒤로하고, 주말이 되었다. 이번 주도 항상 가는 똑같은 학원에 간다. 매주 반복되는 같은 일상에 지루했지만, 이번 주 만큼은 무언가 기대되고 새로운 마음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가방을 챙겨 집에 돌아가려는 그때, 학원 복도 앞에서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나는 그녀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

“어, 선배 이 학원 다녀요? 저도 여긴데. 어떻게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지?”

그래도 나름 이 학원 내에서는 유명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나보다. 궁금해하는 그녀의 말을 제치고 말한다.

“이제 알았으면 됐지 뭐. 그나저나, 저번에는 내가 얻어먹었으니 이번에는 내가 편의점 가서 뭐라도 사줄게. 따라와.”

“네? 괜찮아요. 어차피 그거 얼마 하지도 않는데.”

“내가 미안해서 그래. 빨리 와.”

“알았어요. 가요 가.”

 

 1층의 편의점, 나와 후배는 계산대에서 빵 두 개를 결제한 뒤 서서 빵을 먹는다. 

“고마워요, 선배. 굳이 안 사줘도 되는데.”

“그래도 양심이 있지 어떻게 받아먹기만 하냐.”

“그런데 너는 언제부터 이 학원 다닌 거야?”

“저는 올해에 중학교 졸업하면서 들어와서 얼마 안 됐어요.”

“그러면 초급반에 있겠네?”

“초급반이요? 혹시 G1이 초급반이에요?”

“…어?”

순간적으로 내 눈앞에 있는 소녀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학원에 온 지 한 달도 안 돼서 G1반 이라고?

“잠시만, 네가 지금 G1반 이라고?”

“네. 그래도 나름 그 반 안에서는 잘하는 편인데.”

나는 순간적으로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학원 내 제일 높은 반에서도 잘하는 편이라니. 대체 얘는 예전에 뭘 했길래.

“그러면 혹시 예전에 다른 학원에 다녔던 거야?”

“2학년 때는 학원 다니기는 했는데 3학년 때는 거의 입시만 해서 학원은 안 다녔어요. 어떻게 보면 다른 학원에서 온 게 맞긴 하죠.”

심지어 3학년 때에는 학원에 다니지도 않았단다. 내가 점점 내 성적에 대해 회의감을 가질 때쯤 그녀가 다시 말을 걸었다.

“왜요, 선배. 그게 그렇게 놀라워요?”

“놀란 것도 놀란 건데, 네 이야기가 조금 궁금해서.”

“제 이야기요? 별거 없을 텐데.”

“그래도 궁금해서.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아니에요, 진짜로 별거 아닌 얘기여서 그래요. 뭐부터 얘기해야 하려나….”

후배는 고민하는 듯하다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 그거부터 하면 되겠다. 제가 피아노 전공생인 건 아시죠?”

“몰랐는데. 몇 번이나 봤다고.”

“에이, 그 정도 눈치도 없어요? 아까 같이 다니던 친구들도 다 피아노과 친구들인데.”

“어쨌든, 저는 피아노를 예전부터 계속 쳤던 건 아니고, 재작년부터 치기 시작했어요. 그 전에는 제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교에 가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거든요. 근데, 그때 저한테 조금 큰 사건이 있었어요. 아직은 말씀드리기 좀 그렇지만…. 그래서 저는 그 사건 때문에 갑자기 의문이 생겼어요. ‘내가 대학에 간다고 정말로 행복할까? 그냥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한다고 행복할까?’라는 의문이요. 그때부터 열심히 하던 공부를 내려놓고, 하고 싶은 것들을 잔뜩 해보기 시작했어요. 운동부터 게임, 요리, 노래같이 웬만한 건 다 해본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들도 결국은 질려서 그만두고, 마지막으로 피아노를 한 번 배워보기로 했는데, 처음에는 피아노도 정말 재미없었어요. 저는 ‘아 이것도 일주일 뒤면 그만두겠다’라고 생각하고 연주를 했는데, 연습하던 곡을 딱 완성하고 완벽한 곡을 쳐 보니까 저한테는 너무 감동적인 거에요. 멜로디들이 서로 어우러져서 조화를 이루고, 그걸 내 손으로 직접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그 뒤로 거의 온종일 피아노만 연습해서 겨우 예고에 들어왔어요.”

“솔직히 제가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피아노를 잘 치는 편은 아니거든요. 다른 친구들은 아무래도 이 길을 걸어왔던 시간도 짧고, 제가 엄청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래서 저는 제 연주가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여러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이라도, 딱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감동시킬 수 있는 연주를 해 보고 싶어요.”

그 순간 내 머리에서 큰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나의 아무 의미 없던 연습들이 의미가 생겨나고, 새로운 감각에 내 머릿속은 음악이 줄 수 있는 감동이 새롭게 채워가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 새로운 영감들이 떠올랐고, 나는 그 영감을 내 머릿속에 붙잡아 놓기 위해 애썼다.

“어때요, 별거 아니죠? 제가 말했잖아요.”

나는 충격받은 내 머리를 바로잡고 대답했다.

“아니야, 네 덕분에 머리가 좀 비워진 것 같아. 고마워.”

“선배는 참 쓸데없는 것으로도 고마워하네요, 헤헤.”

그녀가 나에게 이야기하며 웃음을 짓자,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을 다시 느꼈다. 분명 그때 벤치에서 느꼈던 감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 감정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그저 덩달아 웃을 뿐이었다.

 

 편의점에서의 대화 이후, 우리는 학교에서 종종 인사하거나 가끔 대화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는 활발하지는 않지만 친근하게 다가오는 성격이었고, 그것은 나에게도 힘이 되었다. 그녀는 내 지루한 일상에 한 줄기 빛이 되어 주었고, 내 삶도 조금이나마 활력이 도는 것 같았다. 그렇게 2주간의 짧은 사전교육을 마치고,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새 정식 입학식 날이 다가왔다. 나에게는 그저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진급하는 날이지만, 그녀에게는 기념비적인 날이겠지. 

 입학식에서 그녀가 웃으며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내 마음도 함께 즐거워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웃는 모습을 계속 지켜봤고, 내 친구들은 무얼 그리 열심히 보냐고 물었지만 나도 웃음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학기 첫날의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은 의외로 흥미로운 일이었다. 학교를 신기해하는 신입생들과 본인들의 새로운 교실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우리, 그리고 처음 뵙는 담임선생님과 익숙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기숙사까지,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렇게 바뀐 것 중 하나에는 나와 그녀의 관계도 포함되어 있었다.

 반에서 새로 나온 바이올린 곡을 들으며 감상에 잠겨 있을 때쯤, 옆에서 한창 이야기하던 친구들이 말했다.

“야, 너는 좋아하는 애 없냐 성진아?”

“너희 그거 저번 주에도 물어본 거 알지?”

“왜, 신입생 중에 맘에 드는 애가 있을 수도 있지.”

‘마음에 든다’라…. 뭐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침묵을 지키고 있자 옆의 친구들이 더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다.

“뭐야, 진짜 있었어?”

“야 그래도 다행이다. 나는 네가 바이올린 얘기밖에 안 해서 어디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한테 대놓고 문제가 있다니 너무하네”

“생각해봐라, 네가 바이올린 말고 관심을 준 상대가 있긴 하냐?”

생각해보니 딱히 없긴 했다. 그래도 그건 내가 굳이 관심을 주지 않은 거지 못 주는 게 아니잖아.

“나도 사람이거든?”

“됐고, 아까 걔 얘기나 더 해봐. 뭘 어떻게 했길래 우리 돌부처 이성진 씨의 관심을 받나.”

“뭐래, 내가 너네한테 얘기해서 뭐하냐, 더 놀리기만 할텐데.”

“아 왜~ 어디 과인지라도 말해줘~”

그러고 보니 피아노 과인데 한번 찾아가기라도 해야 하나?

“피아노 과 후배다, 됐냐?”

“올~ 벌써 다른 과 후배 꼬시는 거야?”

“꼬시기는 무슨, 내가 누구한테 그러는 거 봤냐?”

“그래서 더 신기한 거라니까.”

“아 아니라고!!”

“뉘예뉘예 아니시겠죠~”

“너 잡히면 뒤진다.”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가니 친구가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쟨 뭐 예고생이 저렇게 빨라.

친구를 따라가다 보니 다른 건물까지 오게 되었다. 잠깐만, 여기는 피아노과인데?

“피아노과까지 데려다줬으니 다음은 알지?”

친구가 얄밉게 윙크를 하고 다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아 진짜!!”
내가 소리치자 갑자기 주위에서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나 생각해보니까 다른 과 와서 소리치고 있는 거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 여기서 뭐 해요?”

나는 내가 듣는 것이 환청이기를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내 소원은 산산이 깨져버렸다.

“선배, 여기서 뭐 하냐니까요.”

나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하게 말했다.

“아, 친구 좀 쫓아오다가….”

나는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다는 말이 비유적 표현인 줄 알았다. 그리고 그게 실제 표현이라는 것을 오늘 깨달았다. 

“엥, 선배가요? 선배 오늘 뭐 잘못 먹었어요?”

“별거 아니야…. 미안!”

나는 다시 도망치려고 했으나 팔이 다시 붙잡혀 끌려왔다.

어라, 팔에 힘이 왜 안 들어가지.

불안한 마음에 내 팔을 잡은 사람의 얼굴을 보니 우리 후배가 아닌 피아노과 부장 선생님이 계셨다.

“바이올린과 학생이 피아노과에는 대체 무슨 볼일이실까? 방금 소리치는 것도 들린 것 같은데?”

아, 큰일 났다.

“선생님 그게 아니라…”

“조용히 하고 따라와.”

아, 내 이미지는 학년 첫날부터 저 멀리 날아갔구나.

 

 학교에서는 항상 학기 초에 멘토-멘티라는 것을 통해 선후배 간 친목을 다지는 활동을 한다. 2학년 선배 한 명이 멘토가 되면, 멘티가 된 신입생이 멘토에게 학교에 대한 소개, 학교 활동의 특징, 학교에서 주의해야 할 점 등을 알려줌과 동시에 멘티가 학교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특이한 점은 멘토와 멘티가 꼭 같은 성별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는 학년 말에 멘토와 멘티가 함께 듀엣을 하는데, 이 때문에 같은 악기는 잘 배정되지 않고 듀엣이 서로 어울리는 악기끼리 편성되기 때문에 성별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 작년에는 비올라를 연주하시는 선배와 듀엣을 했는데, 최고는 아니었지만 나름 성공적으로 연주를 마쳤던 것 같다. 이런 멘토와 멘티를 입학식 날에 정하는데, 마침 나와 그 후배가 멘토-멘티에 배정되게 되었다. 바이올린-피아노 듀엣도 흔한 조합이니, 그럴 수도 있지만 나름 신기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후배와 인사를 나누었다.

“너하고 내가 멘토-멘티라는데? 뭐, 서로 소개는 안 해도 될 거고, 앞으로 잘 부탁해, 멘티님?”

“에이, 딱딱하게 멘티님이라뇨. 아까까지만 해도 그렇게 도망치려고 했으면서.”

“그거는 제발 잊어줘….”

“그러고 보니 선배는 제 이름 한 번도 불러주신 적 없지 않아요?”

“부끄럽게 뭘 이름을 불러, 그냥 후배님이라 부르면 되지.”

“선배 후배가 한두 명도 아니고, 뭔가 구별이 안 되잖아요. 이름으로 불러주시면 안 돼요?”

“그래, 뭐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러면 잘 부탁해, 우리 가연 후배님.”

“아직도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그래요, 선배님!”

벌써 선배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당돌한 후배님이였지만, 어쩐지 앞으로의 학교생활이 심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 멘티 후배님, 아니 가연 후배님은 생각보다 실력이 뛰어났다. 본인 말로는 재능이 없다고 했지만, 2년 전에 피아노를 시작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능숙한 테크닉과 뛰어난 기교를 지니고 있었다. 오죽하면 피아노에 대해서 문외한인 나도 다른 후배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판단했을까. 그녀의 실력에 탄력을 받아 나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그를 통해 최소한 학교 내에서 실력으로 열 손가락 안에는 꼽힐 수 있을 정도의 듀엣이 되었다.

 그렇게 연습을 이어가던 어느 날, 연습실에서 듀엣 연습을 하고 있던 우리는 연습을 끝내고 나가 귀가하였다. 아니, 귀가하려고 했다. 연습실 문이 굳게 닫혀 열리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문을 밀어봐도 문은 열리지 않고, 점점 시간은 흘러만 갔다. 결국, 우리는 문을 여는 것을 포기하고 망연자실한 상태로 연습실에 앉아 있다가, 가연 후배님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참에 저희 못다 한 이야기나 더 해보는 게 어때요? 저는 제 이야기를 해드렸지만 저는 선배님 이야기를 못 들었잖아요.”

“내 이야기? 내가 이야기할 게 있나? 나는 진짜로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좋아해서 예고에 온 케이스인데.”

“에이, 그거 말고요. 선배 뭔가 고민 있는 거 아니었어요?”

“그, 그걸 네가 어떻게…….”

“선배, 그래도 저 나름 눈치는 빠른 편이라고요? 매번 연주는 열심히 하시지만 뭔가 열정적으로 열심히 하시는 게 아니라 기계적으로 반복하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그래서 그 고민이 뭔데요 선배? 네? 네??”

“아이고, 알았어. 말해줄게. 누구한테도 말 안 한 건데, 너한테 처음 말할 줄은 몰랐네”

그렇게 나는 나의 이야기를 가연 후배님에게 털어놓게 되었다. 처음에는 즐거웠지만, 점점 지루해진 바이올린 연주부터, 내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마음, 그리고 후배님의 이야기를 통한 새로운 의미까지, 모든 이야기를 전하자 후배님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되게 의외네요. 선배라면 진짜 뭔가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음악을 할 것 같았는데. 사실 물어본 것도 대체 무슨 의미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길래 저런 표정을 짓는지 궁금해서였거든요.”

“생각보다 별거 아니지? 그래도 요즘은 가연 후배님 덕에 뭔가 새로운….”

말하는 도중에 갑자기 후배님이 말을 끊었다.

“선배, 진짜 죄송한데 그 후배님이라는 거 제발 안 붙이면 안 돼요? 너무 어색하단 말이에요. 차라리 그냥 가연이라고 불러주세요.”

“내가 부끄러워서 그러지.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도 거의 없는데.”

“멘티 부탁인데 이 정도도 못 들어줘요?”

순간적으로 어이가 없어서 후배님을 쳐다보았지만, 진심으로 바라는 표정에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진짜 너처럼 선배 막 대하는 후배도 찾기 힘들 거야. 알았다 알았어. 가연이라고 불러주면 되지?”

“네! 이름으로 불러주면 얼마나 좋아요, 친근하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너는 나 이름으로 안 부르잖아.”

“에이, 제가 선배님 이름을 어떻게 함부로 불러요? 제가 아무리 스스럼없어도 그 정도는 지킨다고요.”

“그러면 이름으로 한 번만 불러줘. 어떻게 부를지 궁금해서 그래.”

“어……. 성진 선배…?”

“아니다, 그냥 선배라고 불러. 나도 오글거려서 못 듣겠다.”

“봐봐요, 본인도 싫어하면서.”

투닥대면서 싸우는 우리 둘이었지만, 후배님, 아니 가연이와의 사이는 점점 돈독해져 가는 듯했다.

“그러면 아까 하던 이야기로 돌아와서, 선배는 어떤 음악을 해 보고 싶은 거예요?”

“어떤 음악을 해 보고 싶냐니, 바이올린이 클래식 연주 말고 무슨 음악을 해.”

“선배, 그게 무슨 구시대적 발상이에요. 요즘 바이올린으로 영화 OST나 팝송 연주하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 선배는 그런 것부터 한 번 연주해봐요. 아니면 선배가 평소에 좋아하던 노래를 연주하거나.”

“그래, 그것도 괜찮은 것 같네. 나중에 한 번 해볼게.”

“시간도 많은데 뭐하러 나중에 해요, 그냥 지금 한 번 해봐요.”

“응? 지금?”

“연습도 한 번도 안 해봤는데?”

나는 너처럼 희대의 천재가 아니라고, 이 천재 후배님아.

“악보 정도는 제가 다 가지고 있으니까 천천히 연습해봐요”

응? 악보가 어디에 있다는 거지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실실 웃으며 대답한다.

“제가 다른 건 못해도 악보 외우는 거 하나는 잘하거든요. 웬만한 노래는 악보 화음까지 다 외우고 있어요.”

나는 그녀가 담담하게 말하는 그 사실에 혀를 내둘렀다. 이야, 아무리 재능이 있다지만 이 정도면 인간초월의 영역이 아닌가.

“그러면 뭐부터 해보실래요?”

“그래, 그러면 요네즈 켄시의 ‘Lemon’ 연주해줘. 네가 연주하면 내가 따라갈게.”

“어, 선배도 그 노래 알아요? 제 최애곡인데! 이건 저도 자신 있죠! 바로 연주해드릴게요!”

잠시 후 연습실 내에서 퍼지는 익숙한 멜로디. 평소에도 듣던 노래이기에 별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건 내 큰 착각이었다. 피아노로 펼쳐지는 멜로디에 또 다른 느낌을 받았고, 완전히 새로운 노래가 나의 귀를 강타했다. 나는 이 신기한 느낌에 감탄하고 있었다. 

아,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나는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린 뒤 활대를 잡고 연주를 시작했다. 나도 좋아하는 노래이기에 음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처음 연주하는 곡이라 그런지 음도 몇 개씩 틀리고 음의 세기도 쉽게 조절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연주가 끝난 뒤, 나를 맞이하는 느낌은 평소와 같은 기계적으로 연습하는 사람의 느낌이 아닌, 가연이가 말한 것처럼 곡이 완주 되었음을 통해 느끼는 감동이었다. 내가 감동에 취해 있음도 잠시, 가연이가 말을 걸었다.

“거봐요, 클래식 말고 다른 곡을 연주해도 느낌이 좋다니까요?”

“그러게, 나는 계속 클래식만 해 와서 다른 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고마워 가연아.”

“또 그러신다. 고마울 것도 아닌데. 그러면 선배, 우리 듀엣곡 이걸로 한 번 해볼래요?”

“응?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곡 말고?”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곡도 좋지만, 그 곡을 주신 것도 우리끼리 곡을 못 정했을 때 하라고 주신 거잖아요. 선생님도 저희가 다른 곡을 들고 가면 좋아하실걸요?”

“그래, 그럼 한 번 해보자.”

그렇게 우리는 연주회에 연주할 곡을 정하고, 이야기를 계속 나누다가 우연히 우리를 발견하신 선생님에 의해 구출될 수 있었다. 선생님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선생님은 가연이를 보고 이상할 정도로 아무 말도 없이 우리를 바로 보내 주었다. 

 

 연습에 시간을 쏟아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몰두하다 보니, 어느새 2학년의 두 번째 시험이 끝나고 짧은 방학이 지난 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학기에서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연습을 하였으나, 새로운 재앙이 다가오는 것은 알지 못한 채 그저 행복한 나날을 보낼 뿐이었다.

 유독 날씨가 흐리던 어느 날, 그날따라 날씨가 우중충해 아침에 기숙사에서 나올 때부터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아침을 먹고 연습을 하러 함께 가는데, 가연이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나는 가연이에게 괜찮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제가 어디 아플 사람이에요? 건강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가연이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지.

나는 걱정을 뒤로하고 연습실에 들어가 다시 연습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가연이가 실수를 많이 하여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죄송해요. 선배. 오늘따라 실수가 좀 자주 나네요.”

“괜찮아, 사람이 가끔 실수도 하고 그러는 거지. 그럼 다시 시작하자.”

그러나 가연이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눈이 조금씩 감기더니, 그 뒤로는 얼굴이 조금씩 빨개지고 급기야는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가연이가 걱정되어 말했다.

“상태가 진짜 안 좋은 것 같은데, 가연아 진짜 보건실 안 가봐도 되겠어?”

“오늘은 뭔가 새로운 연주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와서요, 왠지 쉬기 싫어요.”

그렇게 불안한 상태로 연습을 하던 도중, 가연이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ㅂ….”

결국, 가연이는 연주 도중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가연아. 가연아? 가연아!!”

나는 급한 마음에 119에 전화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선생님께 달려갔다. 내가 급하게 달려오는 모습을 본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바로 가연이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119를 부른 뒤 나를 진정시켰다. 나는 선생님의 행동에 기시감을 느꼈지만, 그것보다 가연이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그 주는 나에게 있어 최악의 주였다. 수업 내용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걱정하는 마음이 그렇게나 심한데 바이올린 연습이 될 리가 없었다.

 

 학교 근처의 대학병원, 그 안에는 한 소녀가 주삿바늘을 꽂은 채로 힘없이 누워 있다, 그녀 곁에는 어머니가 앉아 있으며, 방 안에서는 어머니의 흐느끼는 소리와 그녀의 슬픈 표정만이 보일 뿐이었다. 나는 그 광경에 한동안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뭐에요, 선배. 병문안을 왔으면 무슨 말이라도 해 줘요.”

“너 지금…! 하아, 아니야. ”

“나한테 설명해야 할 게 많을 거로 생각하는데.”

“그렇죠. 그런데 지금은 힘드니까,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말할 테니까, 들어줄래요?”

 

 중학교 때 나는 나름 모범생이었다. 전교 1등은 아니었지만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 정도로 열심히 했고, 반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것은 일상이었다. 학원에서도 나를 치켜세워 줬고, 자사고는 떼 놓은 당상이라고 선생님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비록 아버지가 없어 어머니와 둘이 생활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 행복하게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사건은 중학교 2학년 어느 평범한 날에 발생했다. 

 그날도 학교가 끝나고 하교해 학원에 가던 중, 갑작스럽게 어지러움을 느꼈다. 당시에는 수면 시간이 적었기에 단지 수면 부족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고 타이레놀 한 알을 먹고 학원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어지럼증은 더 심해지기만 했고, 이제는 깨질 듯한 두통과 고열까지 나기 시작했다. 오늘은 학원의 중요한 시험날이었기에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지만, 결국 시험을 보기 직전에 쓰러지고 말았다.

 깨어나 보니 낯선 천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팔에는 주삿바늘 여러 개가 꽂혀 있었고, 하반신 아래로는 감각이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사람을 부르니 가운을 입은 의사 한 명과 간호사 두 명이 다가와 증상을 체크하고 나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아실지는 모르겠는데, ‘오드리 증후군’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굉장히 희귀병인데, 이름의 뜻처럼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지만, 결국은 신체에 무리를 줘 수명 자체를 극한으로 줄여버립니다. 신체의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대신 수명을 깎는 거죠.”

“이번은 첫 번째 증상이라 신체에 큰 결함은 없지만, 다음번부터는 빈도도 늘고 증상도 점점 심해질 겁니다. 주로 첫 발병 이후 일정 주기를 기점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증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환자분께는 유감스럽지만, 아마 5년, 기껏해야 6년을 넘기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의사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신체에 무리를 준다고 사람이 이렇게 쉽게 쓰러지나? 하지만 마지막 말을 듣고, 내 상황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그렇다, 나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것이다. 속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는 듯했지만, 현실을 떠난 나의 감각이 이를 묵살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찾아온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서서히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울고 있는 엄마에게 나 역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을 보고 많은 사람은 그래도 희망을 품으라고 말하겠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내 건강은 금세 돌아와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가 되었지만, 정작 내 일상생활은 돌아오지 않았다. 집안의 분위기는 예전과 달리 침울해졌고, 나는 더 이상 학원에 나가지 않았다. 학원에서도 소식을 전달받았는지 더 캐묻지 않았고, 학교도 당분간 병가를 내 나가지 않았다. 나는 문득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잠을 줄여가면서 노력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어차피 5~6년 뒤면 죽을 텐데, 내가 지금 열심히 노력해서 무엇하겠는가. 그 이후로 나는 하던 공부나 수업 등을 전부 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운동부터 게임, 노래, 춤 등 여러 활동을 해 보았지만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고, 결국 모두 질려서 그만두게 되었다. 그렇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마지막에 선택한 것이 피아노였는데, 피아노도 처음에는 어렵고 지루해서 금세 그만둘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첫 피아노곡을 완성했을 때,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울리는 느낌과 함께 감동을 가지고 왔다. 이 감동을 잊지 못한 나는 그 뒤로부터 피아노에 매진했다. 밥을 먹고도 피아노, 잠을 거르고도 피아노, 심지어는 연습 중간에 쉴 때는 내가 치고 싶은 곡을 쳤다. 거기에 더해 오드리 증후군으로 인해 향상된 능력은 피아노 선생님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선생님은 나의 재능에 놀라면서 예고를 준비해 보라 하셨고, 나는 그때부터 예고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예고에 입학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의 피나는 노력에 향상된 능력을 더하니 쉽게 예고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수명을 위협하고 있는 이 병에 대해 나는 점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 왜 나는 피아노를 오랫동안 칠 수 없는 것일까. 이 기쁨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는 없을까.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벤치에 앉아 있는 한 선배를 발견했다. 그 선배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듯했고, 그 선배가 불쌍했던 나는 선배에게 빵 한 조각을 건네주었다. 당황하는 모습이 무언가 이상했지만, 귀여운 느낌도 있었다. 

 입학식 날, 누군가를 쫓아 뛰어온 선배를 보고 무언가 새로운 감정이 들었다. 반가움에 가장 가까운 것 같았지만, 반가움과는 또 달랐다.

 연습실에서 갇힌 날, 나는 예전부터 선배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던 그늘에 관해 물었다. 선배는 담담하게 본인의 고민에 대해 말했고, 나는 뚜렷한 목표가 없던 사람이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것이 놀라워 선배에게 곡을 연주하는 이유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목표가 없을 때 이 정도이면, 목표가 생겼을 때 대체 어떤 음악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선배에게 새로운 음악을 추천해 주었다. 처음에는 새로운 음악을 낯설어하는 듯했지만, 그 뒤부터는 진짜로 음악을 즐기고 본인이 원하는 것을 연주하는 듯했다. 나는 뿌듯함을 느끼고 선배와 함께 열심히 연습했다. 나에게 다가올 미래는 잊고 아주 행복하게.

 학기가 넘어가고 어느 날, 나는 2년 전과 똑같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분명히 의사는 5년 후에나 재발할 것이라고 했는데. 하지만 선배와의 연습이 중요했던 나는 애써 어지럼증을 무시하고 연습을 계속했다. 증상은 점점 심해지고, 2년 전과 같은 증상이 반복되었지만, 나는 내 정신력으로 이 고통을 이겨내려 했다. 하지만 결국 이전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고, 나는 선배를 부르며 쓰러졌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하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녀도 나의 얼굴을 바라보다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 이야기는 진짜로 선배한테 처음 하는데……. 생각보다 좀 부끄럽네요.”

나는 그녀가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숨기고 있었다는 것에 화도 났지만, 가장 큰 감정은 그녀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러면, 그러면 가연아, 얼마나…. 더 살 수 있는 거야?”

“글쎄요, 의사 말로는 두 번째 증상이 나타난 뒤에는 길어야 6개월이라던데.”

나는 그녀의 수명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무엇보다 이러한 사실을 담담하게 말할 정도로 체념한 그녀에 대한 슬픔이 내 마음속을 채웠다.

“대체……. 대체 왜 말을 안 한 거야?”

“선배가 알아봐야 좋을 거 없는 얘기기도 했고, 무엇보다 선배가 이렇게 슬퍼하는 모습을 딱히 보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녀의 현실을 내가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원망스러움과 동시에 그녀에게 이런 시련을 내려준 하늘에게 분노를 느꼈다.

“선배, 제 마지막 부탁인데,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요?”

나는 마지막이라는 말에 슬퍼하며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하고 같이 하는 연주회 있잖아요. 그거, 저랑 끝까지 해주세요. 비록 몸 상태가 이래도, 손은 멀쩡하니까요. 저도 선배하고 연주회 하는 거 기대했거든요.”

나는 슬픔이 내 눈을 덮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헤헤, 고마워요, 선배. 그럼 연습이나 더 할까요?”

나는 얼핏 그녀의 눈에서 반짝이는 것을 보았지만, 그녀의 말에 따라 연습을 함께 해주었다. 그녀가 힘겨운 손으로 건반을 누름에도 그 망할 질환 때문에 실력은 녹슬지 않았고, 나는 그녀의 연주에 따라 나의 멜로디를 연주해 나갔다. 병원 내에서의 키보드는 열악했지만, 우리의 멜로디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듯 아름다운 소리를 뽐내었다. 마치 지기 전 마지막 꽃잎처럼.

 

 마침내 멘토-멘티 조의 각자 발표가 끝나고, 우리의 발표만 남은 상황. 우리는 병원에서 영상을 녹화해 학교로 보낼 생각이었다. 그렇게 비워진 병실에서 연주를 시작하려는 순간, 밖이 소란스러워 잠시 확인하니, 밖에 가연이의 친구들과 부모님, 친척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내가 그대로 굳어 문을 잡고 있으니, 그중 한 명이 다가와서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렇게 모두가 우리만의 작은 연주회에 들어오자, 가연이는 놀란 표정을 짓고, 그들을 바라보다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에이, 우리가 왔는데 왜 울어. 나 섭섭해?”

“그러게, 가연아, 우리 갈까?”

그러자 반쯤 울면서 말했다.

“어딜 가요. 연주회 왔으면 연주는 듣고 가야지.”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역시나 아름다웠고, 그랬기에 내 슬픔은 더해져만 갔다.

 

 연주를 시작하고, 우리는 우리의 멜로디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 멜로디는 행복하지만 슬프고, 즐겁지만 고통스러운 멜로디이자, 만남과 동시에 이별의 멜로디였다. 연주는 아름다웠고, 사람들은 손뼉 쳤다. 하지만 그 역시 감동의 박수뿐만이 아닌 그녀에 대한 이별의 박수이기도 했다. 그렇게 병원에서의 작은 연주회는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연주회였다.

 

 병원에서 계속 입원해서 지냈지만, 가연이의 상태는 심각해져만 갔다. 기절하는 횟수도 늘어만 갔고, 몸 상태도 눈에 띄게 나빠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나를 평소와 같이, 하지만 다른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그 부름을 듣고 병실로 들어갔고, 그녀는 잠시만 둘이서 나가게 해달라고 부모님께 부탁하였다. 그녀의 어머님은 곤란해하는 눈치였지만, 딸의 부탁이었기에 결국 잠시 밖으로 나가 주셨다.

 우리는 병원 주위의 벤치에 앉았지만, 여전히 벤치에는 정적만이 감돌고, 역시나 이번에도 가연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배는 그 벤치 기억나요? 저희가 처음 만난 곳이잖아요. 어쩌다 보니 마지막 이야기도 벤치에서 하게 생겼네요.”

마지막 이야기라니, 나의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나는 애써 슬픔을 참고 말했다.

“그러게, 나도 벤치에 인연이 있나 보다.”

“선배, 저도 이제 알고 있어요. 이번이 선배와 마지막으로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걸. 저도 음악이나 학교 얘기처럼 다른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선배와 나한테 가장 중요한 이야기, 단 하나의 이야기를 할게요.”

 

“좋아해요, 선배. 선배가 제 첫사랑이고, 이제는 마지막 사랑이겠지만, 그래도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어요. 죽기 전에 마지막은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으니, 저도 행복한 사람이네요.”

나는 그녀가 이 정도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만든 세상에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다. 대체 어떤 사람이 병으로 죽는 것이 행복하다고 하겠는가.

“죽더라도 이렇게 선배한테 고백은 하고 죽고 싶었는데, 그래도 소원은 이루고 죽네요, 헤헤.”

나는 고백을 듣고 설레는 마음 대신 슬픈 마음이 더 차올랐다. 결국, 나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다.

“왜 울어요. 선배, 이렇게 예쁜 후배가 고백도 해 줬는데. 그래서 대답은 안 해줄 거에요?”

그 말을 듣고, 슬픈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나도 좋아해, 나도 네가 첫사랑이고, 마지막 사랑이 될 거야. 사랑해 가연아.”

내 말을 듣고 그녀도 흐느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라기보다는, 기쁨과 후련함의 눈물이었다.

“선배, 선배는 꼭 본인이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먹고 싶은 것도 다 먹어보고, 그리고 본인이 연주하고 싶은 걸 다 연주해봐요. 이게 내 진짜 마지막 소원이에요.” 

가연이는 울먹이지만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그녀의 마지막 웃음은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녀가 떠나가는 것을 배웅할 준비를 했다.

 

 청소년기와는 다른 굵고 성숙한 목소리가 말한다.

“이번이 딱 열 번짼가…. 열 번째 날에 이런 프로그램이라, 기분이 묘하네.”

나는 몸을 일으켜 대기실에서 나와 카메라들 앞에 섰고, 어느새 PD의 진행 신호가 왔다. 카메라들이 돌아가기 시작했고, 항상 하는 오프닝 멘트와 함께 프로그램이 시작한다. 나름대로 방송에 많이 나와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촬영은 아직도 떨리는 활동이었다. 어느새 진행이 돌아 내 차례까지 오고, 나에게 질문이 한 가지 던져졌다.

“이성진 씨에게도 여러 가치가 있고, 여러 소중한 것이 있겠죠. 하지만 그중에서도 본인이 바이올린을 계속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그 질문을 듣고 나의 과거를 돌아보고, 씁쓸하지만 후련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텐데, 괜찮으실까요? 하하.”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