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롤은 버려진 민간인형이었어.

소체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고 커피숍에도 가고 병원에도 가고 레스토랑에도 가고 종국에는 탄광으로 떨어졌지만,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어서 버려졌어.

하지만, 그 인형을 우연히 거리를 지나던 지휘관이 발견하게 돼.


의식이 꺼져가던 리베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어.

가는 목소리로 최대한 힘을 짜내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


"도와..."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지.

지휘관은 이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고 고심 끝에 그녀를 IOP에 맡겨 수리하기로 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자리에서 깨어나지.

옆에는 지휘관이 있었고 그녀는 어째서 자신이 병실에 있는지 반신반의하지.

지휘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다만 말없이 사과를 깎아, 조각난 사과 하나를 그녀에게 내밀었지.

그러자 그녀가 말했어.


"감사합니다..."


만약 지휘관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그대로 폐기될 운명이었어.

지휘관은 수복하는 동안 리베롤의 곁을 지켰고 리베롤은 머지않아 수복되었지.

수복 결과 소체 상태는 아슬아슬하지만, 간신히 전술인형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어.

단, 마음에 걸리는 점은 그녀의 마인드 맵에 미지의 버그가 존재한다는 점이었지.

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민간 인형 시절의 일로 겪은 일 때문에 생긴 일종의 PTSD같은 걸까? 지휘관은 생각했지.


사업장의 인간들은 그녀를 거칠게 대했고 그녀의 자존감은 바닥을 기었어.

예상했던 점이지만, 그녀의 전투 시뮬레이션 결과는 그리 좋게 나오지 않았어. 전장으로 보내기에 그녀의 전투수행능력은 매우 아슬아슬했지.

그래도 지휘관은 리베롤을 포기할 수는 없었어.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줄 수 있을까 전전긍긍했어.

만약 자신마저 그녀를 버린다면 그녀는 설 자리를 잃게 될 거고 사업장에 가서 좋을 대로 굴려지다가 다시 한 번 버려질 게 뻔했으니까.


고심한 끝에 지휘관은 그녀에게 자신의 부관을 보조할 수 있도록 사무보조 업무를 맡겨.

그의 부관은 HK416이었고 지휘관과 서약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지휘관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지.

HK416의 처지 또한 리베롤과 다르지 않았어.


지휘관에게 거둬졌고 마인드맵에 문제가 있었지만, 작전 능력을 인정하여 지휘관은 그녀를 기꺼이 부관으로 두었어.

그런 와중에 자신의 보조로 리베롤이 들어오니 HK416의 눈에 그것이 좋게 비춰질 리 없었어.

하지만, 지휘관은 리베롤을 잘 부탁한다고 말하며 그녀에게 케익을 하나 선물로 주었지.


HK416의 눈에 리베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인형이었지만, 지휘관의 당부가 있었으니 일단은 잘해주기로 했어.

우선 간단하게 OA업무 정도만 맡겨보려고 했지. 전에 있었던 작전을 보고서로 정리하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어.

하지만, 서비스업이나 탄광을 전전하던 리베롤에게 오피스 업무가 맞을 리 없었고 결과물은 처참했어.


결국 일은 부관인 HK416이 다시 할 수밖에 없었고 리베롤은 HK416이 부탁하는 복사 업무 정도만 맡는 신세가 되었지.

하루는 지휘관이 리베롤에게 일에 대해 물었지.

그에 리베롤은


"죄송해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리베롤은 결국 눈물을 흘리게 돼.

문서를 작성하는 기본적인 일조차 못하는 무능한 인형이라니 지휘관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어서 그녀는 고개를 들지 못했어.

하지만, 지휘관은 괜찮다며 리베롤을 격려했어. 그럴 수 있다고 아직 처음이라 어려운 거라고 하다 보면 나아질 거라고 머리를 쓰담으며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지.


그리고 이 모습을 HK416이 엿보았어.

분명, 열심히 일을 한 인형은 자신인데 왜 리베롤이 지휘관의 격려를 받는 걸까?

분명, 지휘관의 부관은 자신일 텐데 어째서 자신보다 리베롤이 관심받을까?

분명, 지휘관을 사랑하는 인형은 자신일 텐데 어째서 자신은 사랑받지 못할까?


분명, 분명...

그녀의 말아쥔 주먹에 힘이 들어갔어. 혼탁해진 눈동자에는 쓰다듬을 받는 리베롤의 모습과 지휘관의 손이 비춰졌지. 


그 날 이후 리베롤에게 지옥이 펼쳐졌어.

HK416은 과중한 업무를 리베롤에게 맡겼고 당연히 리베롤은 해내지 못했어. HK416은 지휘관이 없을 때 그녀를 다그쳤고 리베롤은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할 때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지.


HK416은 생각했어.

리베롤의 무능함을 입증하여 그녀를 지휘부에서 내쫓는다면 예전처럼 지휘관이 자신을 바라봐줄 거라고. 지휘관이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는 리베롤 때문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것은 리베롤도 마찬가지였어.

이제껏 자신을 이렇게 상냥하게 대해준 인간은 지휘관이 최초였어.

리베롤은 지휘관에게 '따스하지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 즉, 지휘관을 사랑하게 되었지.

설령 HK416에게 모진 구박을 받는다 해도 그녀는 버틸 수 있었어. 지휘관님이 있으니까, 지휘관님이 자신을 바라보니까, 지휘관님이 처음이라 어려운 거라고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해주었으니까.


눈동자는 점차 생기를 잃어갔고 리베롤의 모습은 초췌해졌어.

초췌해진 리베롤에게 지휘관은 물었어, 무슨 일 있냐고, 하지만, 지휘관을 걱정시킬 수는 없었기에 그녀는 괜찮다고 말했어. 

하지만, 지휘관의 눈에 그녀는 전혀 괜찮아보이지 않았지. 그리고 그 원인은 HK416에게 있었어.


그걸 간파한 지휘관은 HK416을 추궁했지. 최근에 리베롤에게 너무 많은 업무를 맡기는 거 아니냐고, 조절을 해야 하는 건 아니냐고 말이야.

HK416은 지휘관이 리베롤을 믿는 것만큼 자신도 리베롤을 믿는다고 말했지만, 리베롤의 상태가 믿을 수 없을만큼 돌아버린 나머지 눈동자에 초점을 잃을 정도인데 그 말이 씨알도 먹힐 리 없었지.


결국 HK416은 후임을 갈군 죄로 부관직을 박탈당하고 지휘관은 다른 인형을 부관으로 임명해.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진 HK416은 리베롤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되는데


같은 소설 없냐?


요즘 근첩비틱잼민이들이 많아져서 챈 분위기가 어수선하길래 하나 써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