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순이는 네크로맨서야

생사의 경계를 넘어 망자를 부리는 그들은 모두의 기피와 혐오를 받지만 별로 상관할 문제는 아니야 지엄한 자연의 법도를 거스른 죄는 언젠가 받아야 마땅하겠지만 죽은 이와 소통하고 그들의 미련을 풀어주고 못다한 재능을 다시금 피어낸다 이러한 뒤틀린 방식이야말로 세계에 호소할 유일한 수단이자 헌신이니까 수단을 가릴 필요는 없어 깨끗하기만 해선 더렵혀질 뿐이란걸 그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어


얀순이는 네크로맨서야 신참내기에 햇병아리지 그녀는 날 때부터 고독했고 세상과 격리되어 일생을 강령술과 함께했지만 경력은 보잘 것 없었어 국가가 만들어지기 이전 원시적인 사회집단 시기부터 이어져온 네크로맨서의 유구한 역사에 비한다면 얀순이는 한없이 작은 존재였으니까 단순히 그녀는 수명이 다한 스승에게서 자리를 물려받은 것 뿐으로 재능은 인정받았지만 미숙했지 나이도 어렸고 경험도 부족했어 스승은 그런 얀순이가 걱정되어 여러가지 조언을 해주었지만 유독 강조했던 것이 있어 사랑을 해선 안된다고 네크로맨서는 평생 고독해야만 해 세상과 분리되어 홀로 죽어가는게 이상적인 인생이야


얀순이는 이해하지 못한 가르침이었지만 특별히 신경쓰지는 않았어 애초에 모르는 것이었고 해본 적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얀순이에게 얀붕이가 나타나


얀붕이는 백마탄 왕자님은 아니었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깊었고 상냥해서 미움받지 않는 남자였지 그는 오랜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외톨이였어 워낙 많은 사람들이 죽어 묫자리가 부족해지자 어쩔 수 없이 어둡고 음침한 숲 속에 가족을 묻었어


얀순이에겐 처음으로 사귄 친구이자 처음으로 만난 이성이고 처음으로 이해받은 타인이었어 모든 것이 새롭고 따스한 감각이었지 단 한번도 사랑받은 적이 없는 그녀에게 이 짜릿한 감정은 독약처럼 퍼져갔고 자신이 가진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위험하게 뒤틀려가는거야


네크로맨서는 고립된 존재 하지만 얀붕이는 모두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멋진 사람 자신이 다가가기엔 너무 눈부셨어 몸은 가까이있어도 입장은 그렇지 않았지


그러면 얀붕이가 죽으면 되는거 아니야?

얀순이는 네크로맨서 망자를 부리는 직업 살아있는 얀붕이는 자신에게 너무 멀어 하지만 죽어버린 얀붕이라면 평생을 함께할 수 있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않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않고 오직 자신만 온전하게 얀붕이의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어 그런 어두운 생각이 점점 얀순이를 지배하기 시작해


네크로맨서는 망자를 부리는 직업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을 죽이는 자들은 아니야 그들은 항상 눅눅한 묘지와 고약한 시체냄세를 풍기지 그건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 아니야 죽은 자와 함께하기 때문이지 생명을 다루는 이로서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 알기에 그들은 오직 죽은 사람만을 취급해 


무언가를 다스리는 감각을 얀순이는 이미 알고있어 그래서 사랑은 위험했던거야 사회성이 부족한 얀순이는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몰라 오직 소유하고싶단 생각이 머릿 속에 가득해 얀붕이를 갖고싶어 살아있는 얀붕이는 함께할 수 없어 죽으면 모든게 해결돼


결국 얀순이는 그의 목숨을 앗아가 망자로써 손에 넣을 수 있었어 네크로맨서의 법도를 어기고 스승의 유언을 깨뜨리고 사람들에게 마녀라고 손가락질 받으면서 품어낸 얀붕이는 얀순이가 바라는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그리고 이제 이걸 누가 써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