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죄책감이 있었다.

내가 받는 모든 것은 절대 당연한 것이 없었다. 무언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맹목적인 것은 있었다. 이를테면 사랑같은것.

국가장학금은 세금으로 운영되고, 교내에서 운영되는 자체 장학금은 등록금으로 운영된다. 자체 소득이 적으니 내는 세금도 적고, 덕분에 낮은 분기로 두가지의 혜택을 모두 받아서는 전액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니는 나는, 그것을 받는 것에대한 호응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나에 대한 죄책감을 말하는 것이였다.

알지도 못하는 타인들의 고혈을 빼먹는다는 생각을 하면, 이딴 성적표를 받아들고 맘편히 있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를 않았다.

축복이라 해야할지, 내 주변엔 좋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착하고 사람 좋으며 후배를 잘 이끌어주는 선배들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나쁜 성격인 나같은 놈과도 놀아주는 동기들도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가장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랑 같이 있다보니, 내가 뭔가 되기라도 한 듯이 착각이라도 했던 걸까.

나는 여전히 서울 안에서 달동네라 불리는 곳에 살고있고, 어머니 아버지는 맞벌이를 해야만 하고, 미래에 대한 고민과 기대보다는 불안과 걱정만 가지고 있는 새끼인데.

... 며칠 전이였다.

연습실을 사용해야할 일이 있었다. 준비하는 공연도 있었고, 올라가야 할 무대도 있었고, 개인적인 실력의 성취 또한 이뤄야 했다. 음대생에게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였다.

때문에 교내에 마련된 연습실은 어찌보면 음대생들의 만남의 광장이기도 했지만, 방음이 조금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곳이였다.

다만 방음이라는게 늘 그렇듯이, 여러 연습실을 어느정도의 규모로 마련해놓으면, 소리가 조금씩은 흘러나왔다.

목소리라는 것은 어느정도의 수준을 만들 수는 있을지언정, 몸이라는 악기를 사용하는만큼 컨디션의 영향이 결정적이였다. 노래가 잘 불러지는 날에는 파바로띠와 카우프만, 모나꼬와 분더리히를 만날 수 있을지 몰라도, 아무것도 안되는 날은 그저 악보를 보고 대가들의 영상을 보며 기본을 숙지하고 응용을 연습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기도 했다.

"야, 2학년에 그새끼, 좀 그렇지 않냐? 솔직히 걔한테 가기엔 여자가 너무 아깝지."
"뭐 그건 나도 인정하는데..."
"아니 뭐 하나 잘난게 없잖아. 뭐 못생긴것까진 아니다만 잘생겼다 하기에는 부족하고. 노래도 좆같지는 않지만 잘부른다 하기엔 그렇고. 공부야 뭐. 집이 잘사는 것도 아니고. 근데 여자애쪽은..."
"완벽하지, 뭐."

왜 그런 말들이 귀에 들려오는 걸까.

"뭐 걔네 인생인데 뒷담까지 하고 그러냐. 연습이나 하자."
"쩝... 행운이 부러워서 그러는거지 뭐. 어차피 둘이서 크게 차이나면 나중에 다 헤어질텐데 뭐."
"그렇긴 하지. 근데 걔가 고백한거도 아니고. 여자애가 먼저 달려들어서 가져간건데 뭐."

조금이지만, 심장이 찌릿하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