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





1.

"허윽-!"


기함하듯 토해내는 숨과 함께, 발작하듯 몸을 일으킨다.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있던 의식이 돌아오며 느껴지는 가장 처음의 감각은 불쾌할 정도로 온 몸에 흐르는 식은땀.

급히 몸을 일으키며, 짓씹듯 욕을 내뱉은 정우는 곧장 시선을 자신의 하반신으로 향했다.


없다.

뱀은, 없다...

...멀쩡하다.

그렇기에 이상은 없다.

꿈이 아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감각의 이상을 하나하나 점검하던 정우는, 한참동안 침묵한 끝에서야 겨우 숨을 내뱉었다.


"커흐윽 흐윽..."


땀에 절은 앞머리가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질척거리는 몸.

불쾌함이 잔류하는 쿱쿱하고 퀴퀴한 냄새.

그것이 꿈에서 맡았던 그 것과 별 다를 바 없어, 정우는 발작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청-


그러나 몸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흔들린다.


"......"


정우는 무너지는 몸을 보며 그것이 위험신호라는 것을 직감했다.

한계에 달했음을.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더이상은 안 된다며 몸이 부르짖는 것 만 같았다.

허나 쓰러지려는 몸을 정우는 허망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오늘만.

조금이라도 좋아.

버텨.

제발 버텨.


삐걱거리는 몸을 부여잡는다.

이제는 실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의식이라는 끈은 너무나 얇아져 있었다.

하지만 정우는 흐릿해지며 아래로 가라앉으려는 의식을 억지로 일깨웠다.

그 행동의 일환으로 짓씹은 아랫입술.

으득-하며 살이 찢어지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당장 떠나려는 의식을 간신히 붙잡을 수 있었다.


툭- 투둑-


입술을 타고 흐른 피가 방울져 바닥에 떨어진다.

그제야 느껴지는 아릿한 고통.

꽤나 심하게 찢어진듯, 피는 멈출 생각도 없이 정우의 턱에 붉은 선을 만들어내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그 일주일간, 옆집에서 생활하며 정신 상태는 더욱 나빠져 있었다.

밤이 될때마다, 그 끔찍한 순간이 찾아올때마다 불가항력적으로 참을 수 없는 잠이 쏟아졌고.

그렇게 의식을 잃으면, 전보다 훨씬 노골적이고 끔찍한 악몽에 시달렸다.

단순한 장소의 문제가 아니었던가.

정녕 방법은 없다는 것인가.


깊은 무력감에 벽에 기대어있던 몸이 아래로 가라앉는다.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그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거부하고 싶었지만.

거듭되는 악몽과 더불어 벌레처럼 갉아먹힌 정신은, 이제는 그만 받아들이라며 제 귓전에 달라붙어 속삭이고 있었다.


이제 포기해.

못 도망가.

너도 알잖아.

늦었어.

어쩔 수 없는거잖아.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짓쳐들었다.

나가.

나가...

나가!


속으로 부르짖으며, 발악하듯 주먹을 내리쳤다.


뻐억!


나가!


뻐억!


나가아!


빠악!


나가아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바닥을 내리치자 짓뭉개진 주먹에 파고든 손톱에서부터 붉은 피가 비산한다.

다만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수 없었다.

그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제 정신을 지키기 위해, 유지하기 위해.

머릿속 그 소리가 사라질때까지 거듭 내리쳤다.


"하아- 하아-"


얼마나 내리쳤을까.

이윽고 소리가 가라앉았다.

파들거리는 손으로, 그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담담히 귓전을 매만지던 정우가, 그제야 터진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키흑...흐흐..."


물에 닿자마자 시큰한 고통이 물밀듯이 밀려오지만, 정우는 차라리 웃었다.

아픔이 있으면, 그곳은 현실이다.

몸이 아프고 피가 흐르면, 아주 짧기는 해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생각으로 찢어지고 터진 손을 정성스레 씻어낸다.


정우는 서서히 고개를 들어 거울을 쳐다보았다.

거울 속에 갇혀있는 자신은 이상하게도 웃고 있었다.

이윽고 눈이 보인다.


...어째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울에서 똑같이 바라보고 있는 그 눈은.

그 일렁거리고 있는.

수명이 다한 전구처럼 깜빡이는 그 눈은.

자신이 분명 알고 있는 눈이었다.



2.

일주일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 정우는, 들어오자마자 미리 싸두었던 짐을 챙겼다.

얼마 되지도 않는 그야말로 단촐하기 짝이 없는 짐이기에,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이제는 떠난다는, 마음속 후련함의 영향일까.

일전에는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집 사방에서 느껴지던 그 끔찍한 시선들은 오늘만큼은 느껴지지 않았다.

의식의 문제. 혹은 심리적인 문제인가.

뭐가되었든 지금으로서는 그것만으로도 기꺼운 것이다.


완전히 나가기 전, 정우는 그나마 남아있던 추억을 되짚는 마음으로 천천히 집을 둘러보았다.

이제는 돌아오지 못할 곳.

한 때는 자신의 안식처가 될지도 몰랐을 곳.

그러나 이제는 다시금 추억속에 매몰해야할 장소다.


정우는 그렇기에

다시는 찾아오지 못할 곳이기에, 집의 모든 곳을 머릿속 깊이 담아내었다.


"아아..."


마지막 방에 이르며, 정우는 서서히 탄식을 내뱉었다.

오래되어 누리끼리하게 바래버린 그 벽지에 그려진, 수많은 낙서들을 보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언젠가는, 완성하려고 했는데.

언젠가는, 내 자신이 만족할 수 있을만큼 실력을 늘려서...

이쁘게 그려놓고 싶었는데.

정우는 삐뚤하게 그려진 가족의 모습을 한참동안 손으로 매만졌다.


미안해요. 아버지.

미안해요, 어머니.

도망쳐서.

도저히 버틸수가 없어서.

무너져버린 아들을...

제발 용서해주세요.


정우는 어린아이처럼 오열했다.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자신이 너무나 비참해서.

이미 한번 도망쳤음에도, 또 한번 도망쳐야만 하는 자신이 너무나 한심해서.

차마 맞부딪히려는 생각조차 못한채, 그저 지나가기를 원하며 두려움에 절어있는 제 꼴이 우스워서.

참을 수 없어서 비뚜름하게 튀어나온, 그 일그러진 미소로 처절히 오열했다.


...

가자.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정우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비척거리는 몸을 억지로 이끌어, 감정을 최대한 죽였다.

소모되고 마모된 정신을 조금이나마 온존하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썩어가는 생선처럼.

말라 비틀어진 눈으로, 정우는 천천히 현관앞에 섰다.


덜컥-


손잡이를 잡아 여는 그 시간은 참으로 길었다.

마지막 순간임을 알기에.

여는 것 하나에도 의미를 실어, 한참을 그리 서있었다.

허나, 이제는 가야지.

그런 생각으로 결국은 문을 열었다.


...

..

.

.

.

.

.

.

.

.

.

.

.

.

내려가 있는 시선이 뭔가를 보고 말았다.


그것은 사람의 발이었다.


반사적으로 시선은 점차 위로 향한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눈은 자꾸만 흔들려서 초점이 맞지 않는 것 처럼 흐려졌다.


아니야.


아니라고, 절대 아닐거라며 부정해도, 머리에서 미친듯이 울리는 그 경종은 이것이 엄연히 현실임을 주지시키고 있었다.


그 발의 위에는 곧장 새하얀 색이다.


때묻지 않은 그 순수한 색이 눈을 이지러뜨리고 있었다.


아아-


그것은 분명 보았던 것이다.


새하얀.


아주 새하얀 원피스-


멈추고 싶어도 시야는 계속 올라간다.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흰 색과는 반전되는 흑단과도 같은 머리칼이 바람을 타며 휘나끼는 것이었다.


아니야..


부정한다-


아니, 부정하고 싶었다.


더는 보지 말라는듯, 머리가 아파오고, 시야는 급격히 어두워진다.


허나 그것이, 제발 '그것'이 아님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는 억지로 들어올려진다.


제발 아니라고 해줘.


제발...제발 아니라고 해줘...


차라리 꿈이었다고 말해줘.


현실이 아니라고 말해줘.


그리 빌고 빌며, 빈다.


그리고 어느덧 그 마지막 선에 이른다.


자신 앞에 서있는.


그녀의 목과 턱.


그 구분선 앞에 눈을 멈춘채.


한참을 그리 굳어있었다.


"정우 씨."


머지않아 그 말이 귓전을 때렸다.


얼굴을 일그러뜨린채, 병신같이 몸을 떨고있는 자신을 향해, 그리 말한다.


눈이 멈췄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그녀가 몸을 천천히 숙인다.


원하지 않았던, 아주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던 '그녀'가 아니라는 희망을 깨부수듯.


어느새 자신과 같아진.


그 일렁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며.




"오랜만이에요."


그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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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시 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