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십시오, 자매님."


종소리가 세 번 울려퍼졌다. 건너편 칸막이에서 사르르 방석에 앉는 소리가 들리자 반대편의 신부 역시 방석 위에 무릎을 꿇었다. 신부는 성호를 그은 다음 기도문을 읊었다.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어 주시니
하느님의 자비를 굳게 믿으며
그동안 지은 죄를 사실대로 고백하십시오.


다시 세 번의 종이 울린 후 칸막이 너머의 아가씨는 조용히 읊주렸다.


"신부님, 제 죄를 고백하옵나이다."

"무엇입니까?"

"첫째는 제가 한 남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가 아니지 않습니까?"


작은 한숨소리가 들렸다. 그 속에 작은 울음소리가 섞인 듯, 한숨은 미세한 떨림을 지니고 있었다. 반대편의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신의 뜻을 따르는 치유사이기 때문입니다."

"자매여, 당신이 그를 사랑한 것은 죄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신부님. 제 사랑 자체가 죄악이 되었습니다."

"자매님의 고백을 듣겠습니다."


신부는 그녀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헛기침을 하고 깍지를 쥐었다. 칸막이 사이로 흐느끼는 듯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


제가 그를 만난 것은 수도의 작은 교회에서였습니다. 그는 함께 산맥을 넘을 동료를 찾고 있었고, 교회에선 저를 그의 치유사로 붙여 주었습니다. 견습이었던 저는 미숙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늑대들에게 습격당하는 그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는 온 몸을 바쳐 저를 지켜 주었습니다. 과묵한 그는 저에게 어떤 책임도, 원망도 묻지 않았습니다. 저는 죄송하고 안타까워 그의 어깨에 기대 한참을 울었습니다.


하지만 전 다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산맥을 넘을 때 저희를 노리는 산적이 있었음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또다시 저를 지키기 위해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그의 앞에 엎드려 울었습니다. 저의 미숙함을 탓하며 그에게 자비를 구걸했습니다. 그는 화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깨를 빌려주며 단 한 마디를 짧게 읊주렸습니다. "괜찮다."


그 때부터 그를 볼 때마다 가슴에 불이 깃드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와의 여행은 산맥을 넘고 나서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저와 계속 여행하기를 원했고, 교회 역시 이를 허락했습니다. 우리는 초원을 누비고 산맥을 넘으며 바다를 건넜습니다. 저는 그의 여행에 무슨 목적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와 함께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그를 지켜주지 못했고, 그는 다시 몸을 바쳐 저를 지키고 다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 덕에 치유 능력은 날이 갈수록 능숙해졌습니다. 그는 여전히 저를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통을 느끼고 몸에 상처가 새겨지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모험가로서의 견목도 높아져 갔습니다. 야생 동물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언제쯤 사냥에 나서는지, 어디 지역에 산적이 있고 어느 지역에 분쟁이 일어나는지, 최대한 위험한 길을 피하는 법과 고르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죄를 고백하옵나이다, 신부님. 전 일부러 위험한 길을 택했습니다.


전 일부러 위험한 길을 택했습니다. 그로 인해 그가 고통받아 쓰러지는 모습을, 그리고 저를 찾아 회복을 요청하는 그를 보며 희열을 느꼈습니다. 가학증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단지 저를 필요로 하고, 저 없인 곤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의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그가 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그의 몸에 새살이 돋고 상처가 메워지는 것이 뿌듯하고 기뻤습니다. 어느새 그의 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욕심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의 몸에 상처가 하나 새겨질 때마다, 그가 저를 위해 몸을 바친 횟수라고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상처는 영광의 상처, 나를 지켜주는 영웅의 훈장이라 여겼습니다. 일부러 그가 위험할 때까지 회복을 해 주지 않다가 그의 목숨이 진정 위험할 때쯤 치료해 주기도 했습니다. 선량하고도 가엾은 그는 저에게 어떤 책임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는 저를 탓하기엔 너무 순진하고 우직했습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났습니다. 그를 향한 마음을 가누지 못한 저는 그에게 고백할 때를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의 노력이 무색하게 저희의 여행은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여행의 목적을 알고 말았습니다. 그는 먼 타국에서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용병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연인에게 돌아가기 위해 함께 여행할 동료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 죄를 고백하옵나이다. 그와 그의 연인이 껴안고 우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저는 웃으며 그의 고난과 사랑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은 거짓이었습니다. 그에게 웃으며 축복의 말을 뱉는 저의 마음은 까맣게 타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피눈물을 흘리며 그와 저의 운명을 저주했습니다.


그 날 밤 저는 처음으로 혼자 사냥에 나섰습니다. 산에서 들짐승들을 잡아 기름을 있는 대로 모았습니다. 저도 제가 그렇게 사냥에 능숙한지는 처음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건 제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의 오두막으로 달려갔습니다. 창문 틈으로 집 안을 엿보았습니다. 그는 그의 연인을 사랑스럽게 안으며 행복한 표정으로 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그런 표정은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화가 치밀었습니다. 내게선 보여주지 않은 그 표정을 저 여자는 독점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제 죄를 고백하옵나이다. 저는 오두막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질렀습니다. 통나무로 지어진 오두막은 불이 잘 붙었습니다. 까맣던 한밤중 숲을 붉게 물들이는 그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불길 속에서 살아있는 사람과 죽어잇는 사람을 추리는 것이었습니다.


제 죄를 고백하옵나이다. 저는 보호 주문을 외우고 불길 사이로 뛰어 들었습니다. 잠결에 곤경을 당한 그들은 대처도 하지 못한 채 불길에 삼켜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를 데리고 불길 사이를 헤쳐 나갔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는 그의 연인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습니다. 불길을 헤치고 밖으로 나오지 가엾은 그의 몸뚱이는 불길에 그을려 까맣게 타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부드러운 풀밭에 그를 뉘었습니다. 그의 몸을 치료하기 전에, 중요한 것을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다행히도 그의 눈은 불길에 의해 약간 녹아 있었습니다. 망막이 녹아 시력을 앗아간 것 같았습니다.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제가 직접 그의 눈을 으깨버려야 했으니까요. 저는 그의 몸을 치료했습니다. 까맣게 타버린 그의 살에 새 살이 돋아나고, 남은 화상들은 흉터가 되어 점점 아물어가고 있었습니다.


제 죄를 고백하옵나이다. 저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습니다. 오밤중에 당신의 집에 화재가 난 바람에 당신의 연인은 죽고 말았다며, 제가 더 늦기 전에 당신을 데리고 나온 것이라며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제 어깨를 빌려 머리를 기대었습니다. 그는 울었습니다. 그의 연인의 이름을 쉰 목소리로 부르며 마른 울음을 했습니다. 가엾은 그의 눈엔 눈물도 흐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안으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가 제 어깨를 빌린 것이 기뻤습니다. 그가 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하느님, 제가 죄를 지어 참으로 사랑받으셔야 할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기에 악을 저지르고 선을 멀리 한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나이다.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


"나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 자매의 죄를 용서합니다."


종이 세 번 울리고, 칸막이 너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고해실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밖으로 나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신부는 고개를 들어 남은 고해성사의 수를 헤아려 보았다. 앞으로 두 번의 고해가 더 이어질 예정이었다. 신부는 한숨을 쉬고 한 자매의 고백을 잊으려 애썼다. 잠깐 그녀의 죄에 대해 고민한 신부는 그 죄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녀와 비슷한 죄를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교회의 자매님은 알고 있을까? 신부는 어제 바람을 핀 남편을 죽이고 성기를 소금통에 담아놓은 아가씨의 고해를 생각했다. 그녀의 고해 이전에 한 여자를 사랑해 그녀를 미행하고 매일 밤 그녀의 집 창문에 죽은 쥐의 내장을 던지는 남자의 고해를 생각했다.


그리고 신부는 그녀의 죄를 이 죄들과 함께 잊어버리기로 결심했다. 신의 사도로써, 그는 그래야만 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고해성사 기도문은 나름 바꿔서 넣어봄

단편소설로 여러 편 쓸까 하다가 안 써져서 단 1편으로 찍 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