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었다. 내가 그랬다. 가장 사랑하던 이를. 나에게 그 무엇보다 가까웠던 이를. 내 손으로. 검은 잉크 담긴 팬으로. 하얀 서류에 소리도 없이 써내려가 무참히 죽인 것이다.


이제는 실종이라는 단어가 사망이란 것으로 바뀌었다. 두 글자 동등한 단어임에도 그럼에도. 보기 싫어 채 마르지 못한 잉크 묻은 것을 허공으로 내팽개쳤다. 종이가 하늘을 가로지르다 천천히 떨어졌다.


천장에선 종이가 떨어지고. 밖에선 빗방울이 소리 내며 내려온다. 눅눅해진 종이가 잉크를 거부함에도 이를 낚아채 한자 한자 써본다. 이름을. 주소를. 내가 알고 있는 그 모든 걸 차분히 내려놓는다. 오늘. 흰 것이 검은 것을 받아들여가고 있었다.  


변하지 않을 것들을 쓰며. 변해버린 것을 생각한다. 이름. 호칭. 나와의 관계 같은 것들을. 나에게 있어 이제는 바뀔 수 없는 그 모든 걸 바라본다. 


밤늦게까지 문고리 열어놓고. 어두워 떠나갈까 불 켜서 기다렸다. 다시 만나지 못할까 두려워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 계속 멈춰 섰다. 혹여나 잠든 사이 찾아올 그대 위해 좋아했던 밥 한상 차려놨다. 모락모락 피오른 김이 임자 잃고 사라져도 멈출 수 없었다. 아직 죽지 않았기에. 실종자라는. 허울 좋은 껍질 안에서라도 살아있었기에. 내 모든 건 산자를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간다고 말했다면. 그대 간다 말하며 갔다면. 그대 내게 남겼던 만큼 나도 웃으며 배웅하려 했는데. 보내는 줄 모르고 보냈던 그날 얼굴이 왜 이리도 후회되는가. 멈출 수 없다는 걸 알았음에도 떠나간 기차 응시하며 발 동동 굴렸던 내 모습이 차츰 초라해진다.


슬픈 하루다. 더 이상 기대된 마음으로 잠을 잘 수 없다. 넓은 침대 한편이 따뜻해진다는걸 꿈꿀 수 없다. 머리맡에 놓인. 큰 눈 둥그렇게 뜸에도 날 보지 못하는 사진이. 희미하게 금빛 번쩍이던 구리 반지가. 어찌 다시 나를 안아주고 위로해줄까. 다시 감싸줄까. 변해버린 사람은 변치 않을 흔적만을 두고서 가버렸다. 내가 따라가지도 못할 먼 길을.


곱게 적은 서류를 가방 깊숙이 밀어 넣는다. 이미 식어버린 밥을 입에 구겨 넣고선 문고리 돌려 방 한편 수구려 앉는다. 


빗 소리 들려오매 콘크리트 박스에서도 비가 내린다.



 +) 예전에 쓴 거 생각나서 올려봄, 이상한건 댓글로 남겨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