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한 시간 밖에 안 남았다고? 맙소사.”


 붉은빛과 함께 불길한 기계음을 내며 움직이는 타이머는 59분 58초라는 시간을 내보였다. 우주가 멸망할 때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우주가 과학적으로, 즉 우주의 팽창으로 인해 풍선처럼 터져..


“좀 닥쳐 봐. 지금 2초를 낭비했잖아!”


 그러자 시간이 59분 53초로 흘러갔다. 어쨌든 그는 틀렸다. 방금 자신이 낭비한 시간까지 합산해 7초의 시간이 흘렀으니까.


“너희 둘이 총합 8초.. 9초.. 됐고 닥쳐!”


 그리고 또다시 2초가 소멸했다. 하지만 또다시 참견이 들어오진 않았다. 저 한마디가 시발점이 되어 모든 연구원이 쌍욕을 내뱉기 시작했다. 황산으로 녹여버리겠다. 엔트로피값을 떨어트려 버리겠다. 아니면 절대 영도에 노출 시켜 버리겠다는 등. 무시무시한 욕설이 날아다녔다.


“자. 다들 일단 진정해. 우리가 우주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중재자의 말은 거대한 소란에 묻혔다. 온갖 화학 물질과 모욕이 난자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세계 제일의 천재라는 사람들이 이런 추태를 보이다니. 그렇게 한동안 수많은 것이 오가던 와중, 한 연구원의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


 최초에 59분 58초가 남았음을 알린 연구원이 자신의 왼팔을 내려다봤다. 그건 이미 본래의 모습을 잃었다. 일종의 용해액에 녹아 흐물거리는 액체가 되었을 뿐이다. 이에 그는 공포와 고통이 섞인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의 뒤에 위험한 용품들이 가득한 선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말은 지어졌다. 첫 번째로 떨어진 유리병이 연구원의 머리를 가격하며 깨졌다. 그리고 서서히 더 많은 유리병이 떨어져 내렸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진 확실했다. 이 연구실에서 처음으로 사망자가 나왔다.


 겁에 질린 나머지의 사람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생각이 멈추는 듯했다. 그가 외쳤던 처절한 절규가 귓가에 맴돌았다. 절대 잊을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제야 그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어떻게든 해야 한다.


“좋아. 다들 진정한 것 같네. 저 친구는 안 된 일이지만, 우린 뭐든 해야 하잖아?”


 중재자의 말은 이번에서야 효력을 발휘했다. 그대로 굳어 있던 연구원들은 결심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 다른 눈빛이 그 중재자에게 집중됐다.


“그래서 우리가 뭘 할 수 있지?”


 자타공인 괴짜 천재들만 모인 집단답게, 다양하다 못해 기괴한 의견들이 튀어나왔다. 시간을 고정하자,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의 움직임을 멈추자. 그냥 남은 시간 안에 지구를 박살 내 버리자 등등. 하지만 그 모든 의견은 실행하기 힘들었다. 하나만 빼면 말이다.


“그냥 새로운 우주를 하나 창설하죠.”


 손을 들고 아무렇게나 내뱉은 연구원은 순간 정적이 내린 걸 깨닫곤 조용히 손을 내렸다. 부끄러워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눈빛은 동의를 담고 있었다. 이제 토대가 세워졌다. 건축물을 쌓을 다른 의견들이 필요했다. 이에 다시 연구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러니까 압축 수소로 빅뱅을 일으켜서..”

“엔트로피 조율을 통해 빅 프리즈를 막으면..”

“그냥 포기해. 우린 다 망했어..”


 본래 의견을 낸 연구원은 별말 없이 자신의 실험에 착수했다. 그 사이에도 끊임없이 의견들이 오고 갔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슬슬 타이머가 30분 28초를 표시할 때였다.


“여기. 받아요.”

“그.. 이게 뭔가요?”

“아. 그거요.”


 무의식적으로 구 형태의 용기를 받은 연구원이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 전에. 우주의 근간이 뭐죠? 여러분은 수소나 반물질, 암흑 물질이라고 답할 것 같지만, 미안하게도 난 그러기 싫어요. 애초에 난 철학자 명의로 참여했으니까요. 어쨌든 모든 것의 근원이 뭘까요? 상당히 흥미로운 질문이죠. 어쨌든 난 공간이라고 답할래요. 아니지. 허무인가? 뭐든 상관없겠죠. 이게 아무것도 없음, 이라는 실존은 자명하니까요.”


 그것은 말 그대로 공허였다. 검게 보이기도 하고 희게 보이기도 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무에 대한 견해의 차이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 단 하나의 사실엔 동의했다. 이건 새로운 우주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내용물을 채워 넣는 건 우리다.


“자. 이제 여러분의 의견이 필요해요. 이 안에 넣고 싶은 걸..”

“저는 반드시 중세 판타지적 요소를 넣어야 한다고..”

“아뇨! 만유인력 법칙을 뒤집어서 넣읍시다!”

“제발 저 세상엔 성별 개념이 없게 해주세요!”

“우린 망했어. 진짜로 망했다고. 다 죽었어..”


 순식간에 폭발한 의견에 평정심을 보이던 그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딱히 티가 나진 않았다. 어차피 순식간에 표정이 풀렸다. 한 연구원이 곁에서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어차피 기반 구성은 완전히 같게 하실 생각인 것 같은데, 맞습니까?”

“맞아요. 당신들 말로는 빅뱅 당시의 성분을 그대로 재현한다고 해야겠네요.”

“그럼 이건 신우주가 아니지 않습니까? 사실상 모든 게 같을 텐데요.”


 공간을 만든 연구원은 잠시 말을 쉬었다가 탁자에 놓인 물을 한 모금에 삼키곤 말했다.


“아뇨. 뭘 넣든 이 우주는 우리의 역사를 역사할 거예요. 아. 너무 어려운 말장난인가?”

“그.. 어떻게든 이해는 했습니다. 그건 뭣 때문이죠? 당신 때문입니까?”

“맞아요. 인간이란 본래 그런 족속이고,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요.”


 그의 목소리엔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당연히 곁의 연구자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철학자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웃곤,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아무래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자신의 손을 잡은 사람의 뜻을 깨달았다. 이어서 둘은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 심히 지친 모습으로 나왔다. 그때가 신우주 완성 직전이었다.


“좋아.. 다들 잘 되어 가요? 아니지, 가는 게 아니구나. 방금 막 끝났죠?”

“뭘 하다가 이렇게 늦게.. 아뇨. 말하지 마십시오. 말하면 저 화낼 겁니다.”

“그거 말인데요. 내가 한 일이 아니에요. 여기 이 친구가 해낸 일이랍니다?”

“제가 뭘 어쨌습니까! 애초에 당신이.. 이런, 시간이 없군요.”


 타이머가 4분 59초를 가리키자 마침 신우주 탄생의 준비도 끝났다. 모든 조건이 충족됐다. 빅뱅 유도 장치도 잘 만들어졌고, 셀 수 없이 많은 시뮬레이션 끝에 완벽한 구성을 끝냈다. 그러자 갑자기 침묵이 횡행했다. 묵념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한 연구원이 예상치 못한 일을 벌였다. 무언가를 빼먹었다고 외치며 온 연구실을 헤집었다. 그때 타이머는 1분 21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경건한 분위기가 단숨에 깨졌다. 무엇이 빠졌는진 알 수 없었다. 그저 그게 무엇이든 중요할 거란 사실만 알뿐.


“..찾았다. 내 라자냐!”


 사실 틀렸다. 어딘가의 선반에서 무언가의 음식을 꺼낸 연구원은 행복감에 겨워 그걸 입에 넣었다. 나머지는 이에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거나, 아니면 격분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식사를 끝낸 연구원은 역으로 의문을 던졌다.


“어차피 세상이 끝날 건데 다들 좋아하는 걸 먹지 그래요?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과.. 참. 우리 모두 학문에 일생을 바친 사람들이었죠? 그거 슬프네요. 어차피 저도 없거든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저 왠지 모를 분노가 느껴졌다. 모두가 그러진 않았다. 일부는 이 해괴한 상황에 웃음을 터트리며 서로를 다독였다. 어차피 세상이 끝난다. 그러므로 긍정적으로 죽자. 그런 풍조가 연구실 안을 휩쓸었다.


 어느새 시간은 채 10초도 남지 않은 상황. 누군가 틀은 신명 넘치는 음악에 그들은 즐겁게 춤췄다. 그새 시간이 5초로 접어들었다. 신우주가 작은 가동음을 내며 새로운 시작을 예고했다. 노래가 끊겼다. 그들은 여전히 미소지으며 평소 친했던 동료를 껴안았다. 시간이 1초를 향했다.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초침이 소수점을 지나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짧다 못해 체감하기도 힘든 시간. 그가 말하려다 말았다. 무슨 말인진 알 수 없었다. 그저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