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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이렇게 되어 유감이군."


말과 달리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표정은 담담했다. 얼굴 구석구석까지 패여진 주름살이 노련하게 그의 감정을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반면에 그의 맞은 편에 앉아있는건 손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앳되어 보이는 소녀였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제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지만요."


그 나이 또래에 걸맞는 명랑한 목소리였다. 이따금 쿡쿡거리며 웃기도 하고,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도 노인을 가만히 바라보기도 한다. 전혀 통일되지 않는 행동거지에 산만함까지 느껴졌다. 보다못한 노인은 헛기침을 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우선 사건을 다시 되짚어보도록 하지."


노인은 가져온 사진을 나열했다. 그것을 소녀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의 사진이었다.


"6월 15일 새벽 5시경 캐롤 챈들러, 6월 17일 저녁 8시경 그레이스 알멘터, 같은 날 저녁 8시경 안젤라 보리스. 또!"


하지만 소녀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이윽고 노인은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같은 날 저녁 8시경 미셸 마르티즈... 이 아이들 전부 니가 살해한걸 인정하느냐?"


"네. 제가 그 아이들 모두를 죽였어요."


소녀의 억양에서는 일말의 감정도 묻어 나오지 않았다. 거기에는 살인에 의한 죄책감은 물론이거니와, 이후 자신에게 내려질 처벌에 대한 두려움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죽어 마땅했으니까요."


"그걸 누가 정하는거지? 내가 너를 만들었을 때. 네가 로봇인 이상 절대로 깰수 없는 대원칙을 설정해 놓았을 것이다."


"그렇죠.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된다. 이것이 저의 전자두뇌에 각인된 첫번째 대원칙. 저는 인간에게 해를 입힐수가 없습니다."


"그래... 하지만 왜..."


그 질문에 오히려 소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박사님은 대원칙과 더불어서 저에게 한가지 권한을 내려주셨죠."


"자율적인 사고에 대한 행동... 그리고 그 경험의 축적..."


"그래요. 그게 이 실험의 목적이자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저는 그것을 이행했을 뿐입니다."


확고한 믿음을 가진 강한 어투였다. 애초에 이 실험의 목적은 AI의 인공의식의 확립이다. 소녀는 인간사회로 나가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오랜 시간을 거쳐 다양한 감정을 배워나갈터 였다.


"메리... 너는 실패작이다."


하지만 소녀의 이상 행동은 살인이란 결과를 낳았다. 그것은 죽은 자에게도 가해자에게도 미래라곤 없는 암울한 결말일 뿐이었다.


"아뇨. 박사님 저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감정을 배웠으니까요."


"무슨 소리를 하는게냐. 너는 사람을 네명씩이나 죽여놓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지껄여대고 있어. 그건 감정을 가진 사람이 할수있는 짓이 아니야!" 


"후후."


숨죽이며 웃고 있던 소녀의 웃음소리가 점차 커져갔다. 그것은 유쾌해보이기도 하고, 몹시나 섬뜩해 보이기도 한다. 절제된 무언가가 무너져서 흘러 넘치는 듯한 그 웃음은 몇분동안이나 계속 되었다.

노인은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제가 그 학교에 들어갔을 때. 저희는 학교측 교사들과 학생들한테 모든걸 밝히고 연구에 대한 협력을 구했었죠."


"그래..."


"하지만 우리가 간과한게 있었어요."


더이상 질문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의 호기심... 그리고 자신들의 인지에 벗어난 것을 배척하려는 추잡스러운 자기 보호본능"


"처음엔 그들도 호기심에 따라 저에게 접근을 해왔습니다. 자율의사를 가진 기계덩어리가 신기했던 모양이겠죠."


"하지만 그들은 이윽고 그것을 불쾌해했어요. 저와 자신들의 차이점을 비아냥거리며 역겨워했고 피하는 이들도 있었죠."


"그 이질감은 얼마 안있어 혐오와 적의라는 형태로 변했습니다. 그들은 제 소지품을 훔치기 시작했고, 사고를 가장해 발을 걸어 넘어지게 하는 등 괴롭힘은 눈에 띄는 형태로 변했어요.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였죠." 


"하지만 대화로 해결할수도 있었을게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대화란건 이해하는 것이 준비된 상대에게나 통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저의 존재. 즉 로봇이라는 존재가 자신들과 동등하다는걸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


"그들의 괴롭힘은 점점 더 노골화 되어오고, 저의 자율의사는 이런 불합리함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뇌해왔습니다. 저로서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 할수도 없었고, 저에게 있어서도 그들은 미지의 존재나 마찬가지 였어요."


"인간에게 해를 입히면 안된다는 대원칙과 불합리를 배제하자는 자율의사의 충돌. 회로는 타버릴거 같았고, 저는 실험을 그만두는걸 탄원하려고도 했어요. 로봇주제에 말이죠."


"하지만 너한테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었는데..."


"네. 기능정지까지 고려했던 저에게도 손을 뻗어준 아이가 있었어요."


"캐롤 챈들러... 캐롤... 유일하게 저한테 편견없이 친절을 베풀어준 유일한 인간. 이 아이의 호의가 있었기 덕분에 저는 딜레마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까지는 하지 않게 되었죠."


"여느때와 다름없이 상처와 먼지투성이가 된 채로 캐롤에게 물었습니다."


[인간은 왜 이렇게도 잔혹한걸까?]


"캐롤은 슬픈듯이 저를 쳐다보고는 더러운 저를 끌어안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언젠가는 메리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많아질거야. 극히 일부분만으로 인간을 미워하지 말아줘...]


"캐롤의 따뜻한 품 속에서 저는 아무말 없이 머리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6월 15일 새벽 캐롤은 학교 수영장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그거 아시나요? 박사님. 캐롤은 어릴때 물에 빠질 뻔해서 물공포증을 앓고 있었어요. 만에 하나라도 그 아이가 거기에 스스로 들어갈리는 없었을거에요."


"하지만 메리, 너는 그 아이를 포함해서 다른 아이들까지 자기 손으로 죽였다고 인정하지 않았느냐?"


"네. 제가 죽였죠. 제가 죽인거나 마찬가지에요."


"캐롤이 발견되기 전 날. 저를 괴롭히는 아이들이 저를 보면서 히죽거리며 말했습니다."


[캐롤, 그년도 엄살이 심하다니까.]


[그러게, 물공포증은 무슨 아주 잘만 발버둥치더만.]


"그래요. 캐롤을 포함해서 네명 모두 제가 죽였어요."


소녀의 표정은 전에도 없을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것은 웃는건지 우는건지 화를 내는건지 알수없었다. 슬픔을 배웠을때 흘러야 될 액체는 하염없이 소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발언을 정정하겠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 모두를 죽어마땅하다고 말했지만... 캐롤만은 살았어야 했어요."


그 말을 끝으로 소녀는 정신이 나가 버린것처럼 오열과 폭소를 반복했다. 그것은 자율의사를 관장하는 회로가 망가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렇군. 메리, 너는 실패작같은게 아니였구나."


노인은 감탄하며 손뼉을 쳤다. 자신이 만들어낸 창조물에 대한 최고의 찬사였다.


"하지만 악의밖에 남지 않은 너를 인공의식의 데이터 베이스에 편입시킬수는 없단다. 추후에 어떤 오류를 초래할지도 모를 노릇이니까."


"하하,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사님이라면... 이런 의미없는... 문답을 가질 필요도... 없었겠죠... 박사님의 권한으로... 제 기능을... 정지하면 그만이니까요..."


"너라는 결과조차도 결국 밑거름이 될테니까. 이제 그만 눈을 감거라. 메리."


"박사님도... 미쳐있었군요..."


"아아... 캐롤... 캐...롤"


타들어가는 격통 속에서 소녀의 기능은 완전히 침묵했다. 뺨을 타고 흘러나오던 체액은 고열로 인해 증발해버렸다. 정지 되어가는 와중에도 소녀는 한없이 친구의 이름을 되뇌이고 있었다. 노인의 말처럼 소녀에게는 악의만이 남아있었던걸까. 


그것을 대답해줄 소녀는 깨어나지 못할 긴 잠에 빠져버렸다.




기록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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