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늑대인간 L 씨는 한숨을 내쉽니다. 내일이 보름달이 뜨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대 사회에서, 한 달에 최소 한 번씩 휴가를 내야 한다는 점은 큰 페널티였습니다. 특히 그의 종족 특성도요. 밖에서 방문을 잠그는 정도로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집기를 모조리 박살 낸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요. 또 사랑하는 사람을 다치게 할 뻔한 적은요? 정부가 지원해 준 돈으로 구속복을 사긴 했다만, 그것도 하루 이틀. 사실상 매번 새로 사야 했습니다.


“또 구속 준비 중이야?”

“아, 응. 좀 도와줄래? 입기가 힘드네.”

“그래. 여기. 입마개도 필요하지?”

“그걸 잊었네. 지금 쓸게.”


 L 씨는 구석에 놓인 입마개를 들었습니다. 피부 친화적인 소재로 만들어진 명품이죠. 약간 찢긴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멀쩡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불편함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늑대인간이 되면 이성이 날아가서 무관하지만, 인간일 땐 동물이 된 기분을 지우기 힘들었으니까요. 손을 들어 입마개를 쓰다듬자 금속 특유의 거슬리는 감촉이 느껴졌습니다.


“네가 이런 걸 본 지 얼마나 오래됐지?”

“일 년? 그 정도는 넘었지.”

“그렇구나.. 항상 생각하지만, 정말 고마워. C.”

“괜찮아. 그냥 지금처럼 남아 있어 줘.”


 L 씨의 애인 C는 약 1년 전부터 그의 곁에 있었습니다. 사실 굳이 따지자면 이 년 전부터였죠. 둘이 처음 만났을 때, L 씨는 자신이 늑대인간이란 사실을 숨겼습니다. 그게 이 년 전이었고, 일 년 전에 L 씨가 자신의 정체를 밝힌 후엔 더욱 돈독한 관계가 되었어요. 그때 L 씨는 C의 가슴팍에 큰 상처를 남겼거든요. 지금은 흉터로 남은 상처였습니다.


“있지. C. 미안해.”

“일 년도 더 된 이야기를 지금 꺼내는 거야?”

“이날이 올 때마다 계속 떠올라. 나 때문에 네가..”

“말하지 마. 나도 알아.”


 C는 L 씨의 한쪽 팔을 들어 자신의 가슴팍에 가져다 댔습니다. L 씨의 손이 셔츠 위를 더듬었습니다. 그 뒤엔 짐승이 남긴 흉터가 있겠죠. L 씨의 표정이 일그러졌습니다. 비록 본의 아니게 남긴 상처라지만, 그의 기억이 되새겨졌거든요. 일 년 전에, 사랑하는 이를 거의 죽음으로 몰아넣은 순간. 그는 거의 미쳐 있었습니다. 인간일 때 조차요.


“좋아.. 끝났어. L.”

“이제 방문은 잠그고 나가 줘. 난 당신이 다치는 걸 보기 싫어.”

“그럼 내일 봐. 부디 아무도 다치지 않길 빌게.”

“고마워. 내일 봐.”


 C가 방에서 나가고, 혼자 남은 L 씨는 천천히 자신 속에 잠겨 들었습니다. 어차피 몸이 변화하는 순간은 의식할 수 없었습니다. 꿈에 들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것과 크게 다를 일이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사람은 가끔 꿈을 기억하곤 하죠. L 씨도 비슷했습니다. 대신 무언가가 꿈이길 바랄 때면, 그중 과반수는 현실에 놓여있을 뿐이었죠.


“잠깐, C..”


 L 씨는 C를 부르려 했지만, 졸음이 몰려왔습니다. 사실 졸음보단 정신이 늑대인간 쪽으로 넘어가는 거지만, 그는 하품을 길게 뽑아내곤 몸을 조금 누였습니다. 어차피 하룻밤을 통째로 날려 버릴 걸 생각하면 편히 보내는 편이 나았습니다. 아마 C도 그걸 노리고 침구를 놓고 갔을 테고요. L 씨는 베개에 머리를 대곤 사라져 가는 정신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L!”


 L은 C의 절절한 외침에 정신을 차렸습니다. 의문으로 가득 찬 채로요. 물론 꿈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갑니다. 어쨌든 그걸 생각하더라도 지금 그가 처한 상황은 확실히 이상했습니다. 그의 숨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몸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를 깨닫자 그는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뒤로 넘어졌습니다. 하지만 아프지 않았습니다. L이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할 때, C의 말이 이어졌습니다.


“정신 차려, L!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이건 아니잖아. 당신은, 당신이잖아! 제발..”

“어.. C? 나 여깄어. 나도 지금 이게 무슨..”


 L의 말이 멈췄습니다. 그가 있는 곳은 집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C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래도 주위의 풍경은 도시의 넓은 골목 정도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한 번 더 놀랐습니다. 자신의 목소리가 이토록 굵다는 점에요. 그제야 그는 깨달았습니다. 털이 덥수룩한 몸과 평소와는 다른 시야. 늑대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거기까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모습으로 정신을 차렸다는 건, 그를 제외하면 그 어떤 늑대인간도 겪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도 처음 겪었고요.


“L? 진짜 당신이야? 하지만 어떻게..?”

“나도 모르겠어. 근데 그거 하나는 확실해. 난 지금 백 퍼센트 제정신이야.”

“그래? 그러면 이걸 대답해 봐. 원주율의 제곱근은?”

“3.141.. 잠깐만, 내가 원주율의 제곱근을 어떻게 알아!”

“당신 이과 전공했잖아! 아니, 일단 병원부터 가 보자.”

“지금 병원을? 이 상태로? 그게.. 되나?”

“되든 말든 일단 가 보긴 해야지. 자, 여기 받아.”


 L은 C가 건넨 입마개를 받았지만, 차마 쓰진 못했습니다. 그건 사실상 찢어진 수준으로 망가져 있었습니다. 이에 L은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비싼 물건이란 게 언제나 그런 법이죠. 그는 입마개는 대충 버려두곤 C를 따라갔습니다. 그의 기억상 근처에 이종족을 위한 병원이 하나쯤은 있었을 겁니다. 기억이 남아 있었거든요.


“있지. L. 항상 하는 말이지만..”

“내가 어떤 모습이든 사랑한다고?”

“응. 방금은 미안했어. 이런 일이 처음이라서.”

“괜찮아. 나도 미안해. 당신에게 그렇게 굴어서.”


 C는 L의 손을 잡으려다가 실패했습니다. 감정적인 이유에서가 아닌, 지극히 물리적인 이유에서요. 나름 하나의 커플로서 손을 잡은 적은 많았습니다. 그럴 땐 키의 차이가 그리 크진 않았죠. 하지만 지금은 달랐습니다. 사지가 정상적인 위치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고요. L은 길을 걷다가 가끔 균형을 잃었습니다. 애초에 어느 늑대인간이 제정신으로 걷겠어요. 요점은 그게 아니긴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몸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어느새 둘은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정확히는 L이 자주 다녔던 병원이었습니다. 어쩌면 정신과를 가는 게 맞지 않냐고, 그는 스스로 자문했습니다. 정작 병원엔 들어가지 못했지만요. 아주 기막힌 우연으로, 경찰이 그를 제지했습니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보름달이 뜬 밤에 엄청난 덩치의 늑대인간이 길을 걸어 다닌다? 막지 않는 게 이상하죠.


“L? 누구 죽였어?!”

“아냐! 그러니까.. 내 기억상은! 피도 안 묻어 있잖아!”


 경찰들은 C가 L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에 놀랐지만, 이어서 L이 대답했다는 사실엔 더욱 놀랐습니다. 처음 보는 일이었으니까요. 둘은 잠시 서로를 추궁하고, 이어서 L이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제야 경찰들은 깨달았습니다. 처음보다 못해 역사에 남을 수준의 일인 건 둘째 치고,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늑대인간이 엄연히 지성인이란 사실을요.


 일은 빠르게 해결됐습니다. L이 누군가를 살해했단 기록도 없고, 엄연히 그는 좋은 사람이었으니까요. 대신 그에게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밤이 지나가기 전까진 다들 그러려니 했지만, 낮이 되고도 복슬복슬한 모습을 본 한 의사 겸 과학자가 말했죠. 돈이야 넉넉하게 줄 테니, 한 번만 연구해 보면 안 되냐고요. 물론 연구 윤리는 반드시 지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C?”

“난 괜찮지 싶어. 평생 그 모습으로 지낼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치료인지 연구인지 받고 올게.”

“다녀와, 사랑해, L.”

“나도. C.”


 L은 C를 한 번 껴안았습니다. 엄청나게 큰 덩치 차이 때문에 껴안기보단 감싸는 듯했습니다. C는 마치 거대한 개가 달려드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L은 굳이 따지면 거대한 늑대였거든요. 그는 마지막으로 C를 한 번 꽉 껴안은 후, 연구 시설에 들어갔습니다.


 후일담이지만, 후에 L에게서 나온 연구 결과는 꽤 큰 변혁을 일궈냈습니다. 늑대인간이 변신한 상태로도 이성을 유지하게 하는 도구 혹은 약물. 그 많은 변화가 L에게서 시작했습니다. 물론 후에도 C와 L은 행복하게 지냈고요. 행복한 결말이었습니다.


 L이 끝내 돌아오지 못했단 걸 제외하면요. 그래도 C는 그를 좋아했습니다.